[한동하의 본초여담] 돌쟁이 아이의 인사불성은 바로 주독(酒毒) 때문이었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에 여복(呂復)이란 의원이 있었다. 그는 모친이 병환 때문에 의술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실력이 뛰어나서 명의로 소문이 났다.
여복은 술도 마시지 않고 산해진미를 멀리하고 담담한 음식들만 먹었다. 항상 맑은 공기를 마시며 기를 수련해서 모든 감각이 예민했다.
하루는 그의 약방에 부모가 어린 여자아이를 데리고 허겁지겁 왔다. 아이는 유모가 업고 왔다. 아이는 유모 품에서 잠들어 있는 듯했는데,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깨어나지 못했다. 인사불성이었다.
여복은 놀라며 "어떻게 된 것이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 되는 사내가 "제 딸이 이제 한 돌이 갓 넘는데, 이렇게 잠만 자려고 하고 흔들어서 깨워도 일어나질 못합니다. 다른 의원들이 지금껏 만경풍(慢驚風)으로 보고 치료했지만 20일이 되도록 좋아지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만경풍은 오랫동안 허약해진 아이에게 서서히 나타나는 만성적인 경련 증상을 의미한다. 반면에 열이 나면서 갑자기 발작하는 경련은 급경풍이라고 한다.
여복이 진찰해 보니 아이의 얼굴은 붉었으나 열은 없었다. 여복이 조심스럽게 진맥을 해 보니 우측 관맥(關脈)만이 매끄러우면서 빨랐고 나머지 부위는 크기가 균일하며 화평했다. 진맥에서 촌관척(寸關尺) 부위 중 관맥은 비위와 소화기의 문제를 드러내는 부위다.
여복은 "이 아이는 풍(風)이 아니요. 별다른 병은 없으나 관맥이 활하다면 식적(食積)이 있는 것이요. 도대체 무엇을 먹인 것이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의 부모는 유모를 쳐다봤다. 유모는 "아이고 의원님, 아이에게 뭘 먹이긴 뭘 먹였다는 것입니까? 이 아이는 제가 갓난아이 때부터 제 젖만을 먹여서 키웠습니다. 요즘도 맹세코 젖만 먹였고 다른 것은 일체 먹인 일이 없습니다. 맹세합니다요."라고 울 듯이 말했다.
유모의 말을 듣더니 여복은 "생각건대 아마도 아이가 술에 취한 것 같소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부모는 깜짝 놀랐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가 술에 취해서 20일 동안이나 인사불성이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부모는 "의원님,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이 어린 아이가 어떻게 술을 마셨다는 것입니까? 술에 취하다니요?"하면서 당황스럽게 물었다.
여복은 "내 생각건대, 유모가 술을 좋아하여 음주 후에 곧 젖을 먹였기 때문에 아이가 취하게 된 것이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부모가 유모에게 캐물었다.
유모는 여복의 눈빛을 보고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서는 이실직고를 했다. 유모는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울음이 많았다. 유모는 그 때마다 젖을 먹였고, 그러면 아이는 잠시나마 울음을 그쳤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유모는 속상한 일이 있어서 혼자 있을 때 항상 술을 마셔서 취해 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울면 어쩔 수 없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깊은 잠이 들었고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여복은 유모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앞으로 술을 끊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고서는 갈화(葛花, 칡꽃)와 지각(枳殼, 탱자)을 연하게 끓여서 아이에게 하루에 두세 번씩 복용시키게 했다.
갈화는 술독을 풀고 위장의 열을 내리는 대표적인 약재다. 그래서 숙취로 인한 두통, 메스꺼움, 구토, 갈증을 완화한다. 지각은 술을 마신 후 속이 더부룩하고 트림이 나며 명치가 답답한 증상을 개선시키며 위장 운동을 촉진하여 음식과 술이 정체된 것을 풀어준다.
숙취를 푸는 대표적인 처방으로 갈화해정탕(葛花解酲湯)이 있다. 이 처방에는 갈화, 갈근, 인삼, 백출, 복령, 진피, 지각 등이 배합된다. 갈화해정탕은 술독을 풀고 비위 기능을 회복시키며 두통, 구역, 갈증, 식욕부진을 개선하는 효능이 있다.
이들이 모두 가고 나서 옆에 있던 제자가 "스승님, 유모가 술을 마시고 젖을 먹었다는 것을 어찌 아셨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여복은 "이놈아, 너는 코도 없느냐? 유모의 피부에서 묵은 술 향이 나지 않더냐? 게다가 숨을 쉴 때 조차 술 냄새가 진동하지 않았더냐?"라고 했다.
여복의 처방대로 아이의 부모는 지각과 갈화를 끓여서 꿀을 약간 넣고 아이에게 몇 차례 마시게 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차츰 정신을 차렸고, 얼굴의 붉은 기운도 사라졌다. 유모 또한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았다.
의원이라면 환자의 병 때문에 아픈 것인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원인이 있지는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불필요한 처방을 막을 수 있을 것이고, 굳이 약이 아니더라도 적절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의부전록> 醫術名流列傳. 明. 呂復. 按《醫學入門》:呂復爲呂東萊之後, 以母病, 攻岐扁術. 治一女孩病嗜臥, 面頗赤而身不熱, 醫以慢驚治之, 兼旬不愈. 復診其脈, 右關獨滑而數, 他部大小等而和. 曰:"此女無病, 關滑爲有積食, 意乳母嗜酒, 酒後輒乳, 故令女醉, 非風也." 及詰之, 果然. 遂以枳殼ㆍ葛花, 日二三服而愈. (의류명류열전, 명나라, 여복. 의학입문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여복은 여동래의 후손으로, 모친의 병 때문에 기편술을 공부하였다. 그가 치료한 어느 여자아이는 잠만 자려 하고 얼굴은 매우 붉으나 몸에는 열이 없었는데, 의사들이 만경풍으로 보고 치료했지만 20일이 되도록 낫지 않았다. 여복이 그 맥을 진찰하니 우측 관맥만이 활하면서 삭하고 나머지 부위는 대소가 균일하며 화평했다. 그는 "이 아이는 병이 없는데, 관맥이 활하다면 식적이 있는 것이니, 생각건대 유모가 술을 좋아하여 음주 후에 곧 젖을 먹였기 때문에 아이가 취하게 된 것이지 풍이 아닙니다. "라 하였다. 유모에게 캐물으니 과연 그랬다. 마침내 지각과 갈화를 하루에 두세 번씩 복용시키자 나았다.)
/ 한동한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