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쓰레기 민폐집회 욕먹지는 말자" 올공 나름의 분리수거장...새벽에 고수들이 나타났다 [낮은 곳의 기록자]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구호 멈춘 자리…고물 줍는 노인들의 새벽]
올림픽공원 집회 속 분리수거함 주변 쓰레기 수거
"가벼운 캔이 최고여"…봉투·손수레 끌고 한바퀴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인근에 임시 분리수거함과 종이상자, 쓰레기봉투 등이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인근에 임시 분리수거함과 종이상자, 쓰레기봉투 등이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큰 집회 현장에는 참가자와 구호, 정치적 요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집회가 끝난 뒤 남은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 그 속에서 빈 깡통과 폐지, 각종 고물을 찾는 노인들도 있다. 기자는 재선거를 요구하는 구호가 이어지는 올림픽공원에서 직접 쓰레기를 주우며, 노인들의 노동과 생계를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먼저 온 사람이 가져가면 남는 게 없어요."

18일 오전 5시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임시 분리수거함 앞. 한 노인이 캔이 담긴 봉투 안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올림픽공원 일대에서는 선거 관리 논란과 관련해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참가자들이 모인다. 집회가 끝난 뒤 공원 한쪽에는 컵과 생수병 등 각종 쓰레기들이 남는다. 공원 관리 인력이 이를 정리하지만, 그보다 먼저 쓰레기 주변을 살피는 이들이 있다. 폐지를 모으는 노인들이다.

이날 공원은 비교적 정돈돼 있었다. 바닥에 쓰레기가 널려 있지는 않았다. 다만 임시 분리수거함 주변에는 아직 수거되지 않은 봉투와 접어 둔 종이상자들이 남아 있었다. 노인들은 그 앞을 천천히 돌며 빈 깡통과 고물상으로 가져갈 만한 폐지 등을 살폈다.

새벽 분리수거함 앞에 선 노인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주변에 ‘종이’, ‘병’, ‘플라스틱’, ‘캔’ 등으로 나뉜 임시 분리수거 봉투가 설치돼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주변에 ‘종이’, ‘병’, ‘플라스틱’, ‘캔’ 등으로 나뉜 임시 분리수거 봉투가 설치돼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공원에서 만난 노인들은 대부분 큰 리어카 대신 중형 비닐 봉투나 작은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공원 안까지 리어카를 가지고 들어오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이들이 주로 찾는 것은 캔과 폐지였다. 집회가 끝난 뒤 남은 음료 캔과 종이상자는 고물상에 넘길 수 있는 물건이다.

70대 여성 A씨는 주변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A씨는 "새벽에 오면 그나마 낫다"며 "사람들이 다녀간 뒤라 분리수거함 주변에 캔이 남아 있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A씨 설명에 따르면 그는 보통 새벽 2시께 집을 나와 공원 일대를 돈다. 3시간 가까이 걸어도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다. 캔과 종이를 모아 고물상에 가져가면 하루 2000원 정도 받을 때가 있다고 했다. 먼저 다녀간 사람이 있으면 빈손에 가까운 날도 있다.

전날에는 저녁 7시가 넘어 공원을 찾았지만, 그때도 이미 누군가 한 차례 다녀간 뒤였다고 했다. A씨는 "어저께도 왔는데 없더라고요. 없어요"라고 털어놨다.

공원 한쪽에서 만난 70대 남성 B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는 "사람이 많이 모인 날이면 캔이 좀 나온다"며 "그런데 여기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빨리 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용돈이라도 되면 좋은 것"이라며 "고물상에 가져가면 큰돈은 아니어도 그냥 버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B씨는 폐지보다 캔을 주로 찾는다고 했다. 그는 "종이는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많이 못 가져간다. 캔이 그나마 낫다"며 "요즘은 폐지도 예전 같지 않다. 박스도 가게에서 따로 모아두는 데가 많고, (이를 주워가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공원에서 만난 또 다른 60대 노인 C씨는 부부가 함께 나오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둘이 오면 한 사람은 박스 보고, 한 사람은 캔을 본다"며 "많이 벌려고 한다기보다 새벽에 운동 삼아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원 돌며 쓰레기 청소 해보니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주변에 분리수거를 안내하는 손글씨 안내문과 집회 관련 문구가 붙어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주변에 분리수거를 안내하는 손글씨 안내문과 집회 관련 문구가 붙어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집회가 이어지는 동안 공원 한쪽에서는 쓰레기 정리도 계속됐다. 분리수거함 주변에는 묶어 둔 봉투와 접어 놓은 상자들이 모여 있었다. 수거함에는 '종이', '병', '캔', '플라스틱'이라고 손글씨로 쓴 안내지가 붙어 있었다. 옆에는 "분리수거 전, 확인"이라는 안내문도 세워져 있었다. 컵이나 물병에 남은 음료를 비운 뒤 버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기자도 공원 주변을 돌며 바닥에 떨어진 종이컵과 비닐, 플라스틱 컵을 주웠다. 분리수거함 앞에 놓인 봉투가 사람들의 통행을 막으면 옆으로 옮겼고, 캔과 플라스틱이 섞인 봉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따로 나눴다.

버려진 컵 안에는 음료가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대로 봉투에 넣으면 다른 쓰레기까지 젖을 수 있어 내용물을 비운 뒤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공원 곳곳을 다니며 빈 종이컵을 줍고, 봉투를 묶고, 상자를 한쪽으로 옮기는 일이 반복됐다.

현장에는 공원 관리 인력과 주최 측 봉사자, 일반 시민들이 오갔다. 분리수거함 주변에 쌓인 봉투를 옮기는 사람도 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컵을 주워 담는 사람도 있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사용한 컵과 도시락 용기, 생수병, 현수막 주변 포장재도 보였다.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였지만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된 상태는 아니었다.

노인들에게는 이렇게 따로 모인 봉투와 상자가 그냥 버려진 쓰레기가 아니었다. 캔이 한곳에 모여 있으면 찾는 시간이 줄고, 접힌 박스가 쌓여 있으면 작은 손수레에도 비교적 쉽게 실을 수 있었다. 다만 젖은 컵이나 음식물이 묻은 봉투는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고물상에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회 참가자들 "집회 끝난 뒤 쓰레기 청소, 뒷 정리 중요해"

집회 현장 주변에 ‘종이’, ‘병’, ‘플라스틱’, ‘캔’ 등으로 나뉜 임시 분리수거 봉투가 설치돼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집회 현장 주변에 ‘종이’, ‘병’, ‘플라스틱’, ‘캔’ 등으로 나뉜 임시 분리수거 봉투가 설치돼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분리수거함 주변에서는 집회 참가자들도 쓰레기 정리에 신경 쓰는 모습이 보였다. 많은 인파가 모인 만큼 컵과 생수병, 도시락 용기 등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공원을 함께 쓰는 공간인 만큼 뒷정리가 필요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20대 집회 참가자 김모씨는 "사람이 많이 모이면 쓰레기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공원은 같이 쓰는 곳이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0대 박모씨도 "봉사자들이 분리수거를 계속 안내했다"며 "집회가 끝난 뒤에도 뒷정리가 중요하다고 봤다"고 했다.

50대 이모씨는 "쓰레기가 남으면 결국 청소하는 분들이나 다른 시민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 각자 정리하고 가는 게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분리수거함 앞에서는 정리와 수거가 함께 이뤄졌다. 봉사자들이 컵과 생수병을 나눠 담는 동안 노인들은 캔이 보이는 봉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통행로 쪽으로 나온 봉투는 한쪽으로 옮겨졌고, 캔이 따로 담긴 봉투는 노인들이 다시 살폈다.

이와 관련해 관할 환경미화 담당 측 설명도 현장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림픽공원 주변 집회로 쓰레기가 크게 늘어 추가 인원이 근무하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인력이 아직 많이 배치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도로가에 쓰레기가 있는지 기동반이 한 번씩 확인하고, 필요하면 수거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양이 많으면 근무자들이 그쪽으로 가서 담당을 하지만, 아직은 쓰레기가 많지 않다"며 "힘들다는 얘기도 아직은 없다"고 했다.

새벽 끝, 손수레에 남은 것

집회 현장 주변에 생수병과 컵라면 용기, 종이상자 등 행사 뒤 나온 물품들이 정리돼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집회 현장 주변에 생수병과 컵라면 용기, 종이상자 등 행사 뒤 나온 물품들이 정리돼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오전 7시가 가까워지자 공원 안쪽으로 산책 나온 시민들이 조금씩 늘었다. 밤새 남아 있던 집회 참가자들은 각자 짐을 정리했고, 분리수거함 주변에서는 봉투를 다시 묶는 모습이 보였다. 전날 구호가 오가던 자리에는 운동복 차림의 시민과 출근 전 공원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섞였다.

노인들은 사람들의 이동을 피해 움직였다. 길목에서는 한쪽으로 비켜섰고, 봉투 안쪽을 오래 뒤지기보다 겉으로 보이는 캔과 종이만 골랐다. 캔이 없으면 곧장 다음 분리수거함으로 향했다. A씨는 "여기서 오래 있으면 사람들 다니는 데 불편하잖아요"라고 말했다.

분리수거함 주변에 남은 물건들은 다시 나뉘었다. 음식물이 묻은 컵과 비닐은 일반쓰레기 봉투로 들어갔고, 빈 생수병과 캔은 재활용 봉투로 모였다. 접힌 종이상자는 한쪽에 쌓였다. 노인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그중에서도 고물상에 넘길 수 있는 캔과 깨끗한 종이뿐이었다.

폐지를 줍던 A씨는 마지막으로 분리수거함 안을 들여다본 뒤 봉투를 접어 들었다. 이날 그가 챙긴 것은 캔 몇 개와 접힌 종이상자 몇 장이었다. 그는 "오늘은 별로 없네요"라며 "그래도 집에 그냥 있는 것보다는 나와서 걷는 게 낫죠, 돈도 벌고…"라고 말했다.

진진한 삶의 이야기를 활자로 기록합니다. 투박하더라도 현장에서 주워 담은 말들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골목과 시장, 누군가의 일터에서, 우리가 지나쳐온 평범한 하루의 기록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낮은 곳의 기록자]를 편하게 받아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기자 정보

#올림픽공원 #집회 #노인 #폐지 #쓰레기 #분리수거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