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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안에서 만나자"…베네치아의 응접실이 된 300년 카페 [커피와 공간 '끽(喫)']

서윤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페 플로리안 caffè florian 이야기]
나폴레옹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베네치아의 심장된 산 마르코 광장
괴테·카사노바·헤밍웨이부터 혁명가에 예술가까지…유럽의 공론장 커피하우스
프랑스 혁명·이탈리아 통일운동·베네치아 비엔날레 출발점된 역사가 머문 카페
원로원 방 창가에서 마주한 시간의 두께…'플로리안에서 만나자'는 300년 약속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극찬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은 프로쿠라티라 불리는 아케이드 건물에 응접실처럼 둘러싸여 있다. 사진 왼쪽 카페 플로리안의 야외 테이블에 파라솔이 설치된 게 보인다. /사진=서윤경 기자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극찬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은 프로쿠라티라 불리는 아케이드 건물에 응접실처럼 둘러싸여 있다. 사진 왼쪽 카페 플로리안의 야외 테이블에 파라솔이 설치된 게 보인다. /사진=서윤경 기자

오스만튀르크 시절엔 '현자들의 학교', 17세기 영국에선 1페니 내고 논쟁적 대화에 참여하는 '페니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신경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랑스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글을 쓰고 피카소는 예술을 말하며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겐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커피'를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유형의 공간, 우리는 '카페'라 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라 세레니시마(La Serenissima)'.

수세기 동안 해상 도시이자 동서양을 연결하는 무역 중심지로 부와 번영을 일궈내고 외교 무대에선 중재자로 나선 이 도시에 붙여진 별칭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고요한 곳'이라는 뜻을 가진 라 세레니시마였다.

전쟁, 전염병 등으로 혼돈을 겪던 다른 도시들과 달리 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마냥 평화스러워 보였을지 모르겠다.

고요한 그 도시 속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극찬한 곳에 1720년 12월 29일 '고요하지 않은 집'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일상의 용어가 생겼다.

"플로리안의 집에서 만나자"는 뜻을 가진 "안데모 다 플로리안(Andemo da Florian)."

300년 넘도록 이 집은 주민에게도, 외지인에게도 약속의 장소가 됐고 사람들의 대화소리로 가득 찼다. 카페 플로리안(Caffè Florian)은 '고요한 도시'의 아름다운 응접실에 자리한 고요하지 않은 응접실이었다.

<산 마르코 광장, 응접실이 되다

12개의 섬 위에 세워진 베네치아는 오랜 세월 전쟁, 전염병의 위험을 비껴가면서 '가장 고요한 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렸다./사진=서윤경 기자
12개의 섬 위에 세워진 베네치아는 오랜 세월 전쟁, 전염병의 위험을 비껴가면서 '가장 고요한 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렸다./사진=서윤경 기자


'가장 고요한 도시'라는 이 별칭은 수세기 동안 지중해 무역을 지배한 베네치아 공화국을 상징한다. 12개의 섬 위에 세워진 베네치아, 그 중심에는 산 마르코 광장이 있다. 베네치아의 정치·종교·상업 활동이 집중된 이 공간은 도시의 심장부였다. 광장을 마주한 산 마르코 대성당은 동방무역으로 축적한 부와 권력을 상징했고, 종탑과 시계탑은 베네치아 시민들의 시간을 지배했다.

1797년 나폴레옹의 점령과 이후 오스트리아 지배,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이르기까지 베네치아의 굴곡진 역사는 모두 이 광장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그래서 산 마르코 광장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베네치아라는 도시 자체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산 마르코 광장에 압축돼 있다.그리고 광장의 품격은 광장을 둘러싼 건축물에서 완성된다.

광장 동쪽에는 베네치아의 상징인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자리한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이 성당은 비잔틴 양식의 돔과 황금빛 모자이크, 광장을 향한 화려한 파사드로 베네치아의 부와 권위를 드러낸다.

성당 위 청동 말 네 마리는 십자군 전쟁과 나폴레옹 점령, 반환의 역사를 거치며 베네치아가 겪은 영광과 약탈의 시간을 함께 보여준다. 대성당 옆으로는 과거 국가 권력의 중심이었던 두칼레 궁전이 연결돼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은 프로쿠라티라 불리는 아케이드 건물에 응접실처럼 둘러싸여 있고 그 끝엔 산 마르코 대성당과 종탑, 시계탑이 서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은 프로쿠라티라 불리는 아케이드 건물에 응접실처럼 둘러싸여 있고 그 끝엔 산 마르코 대성당과 종탑, 시계탑이 서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광장에는 종탑과 시계탑도 서 있다. 종탑은 한때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졌고, 시계탑 아래 아치형 길은 베네치아의 상업 중심지였던 리알토로 이어진다. 시간과 권력, 신앙과 상업이 이 광장 안에서 만난 셈이다.

광장을 둘러싼 긴 아케이드 건물은 프로쿠라티(Procuratie)라 불린다.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도제에 이어 최고 행정관 중 한명이었던 산 마르코 검찰관들의 집무실과 거주 공간이었다.

북쪽 공간은 프로쿠라티에 베키에, 남쪽은 프로쿠라티에 누오베, 그리고 나폴레옹 점령기에 완성된 동쪽 공간 프로쿠라티에 누오비시메가 만들어내는 질서와 균형 덕분에 산 마르코 광장은 거대한 응접실처럼 보인다.

카페 플로리안은 이 중 남쪽이자 성당을 마주보고 오른 편에 있는 프로쿠라티에 누오베 아케이드에 자리하며 베네치아의 역사를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그 역사 안으로 들어간 장소가 됐다.

응접실이 된 카페, 역사가 되다

1720년 문을 연 카페 플로리안은 300년 넘게 정치인과 철학가,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이 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720년 문을 연 카페 플로리안은 300년 넘게 정치인과 철학가,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이 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720년 12월 29일 문을 연 카페 플로리안의 가치는 '유럽 최초의 카페 중 하나'라는 시간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유럽의 살롱 문화가 거리로 확장되는 공간이었다. 귀족 저택의 거실에서만 이뤄지던 정치와 철학, 예술과 문학의 대화가 카페 테이블 위로 옮겨왔다. 그저 커피를 파는 가게가 아니라 새로운 공론장이 됐다.

괴테, 카를로 골도니, 카사노바, 바이런, 마르셀 프루스트, 헤밍웨이, 니체, 찰스 디킨스, 앤디 워홀, 찰리 채플린 등이 이곳을 찾았다. 특히 여성의 출입을 허용한 커피하우스로 알려진 점도 플로리안이 단순한 사교장이 아니라 변화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카페 플로리안은 300년 넘게 정치인, 철학가,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이 됐다. 사진은 카페 플로리안을 찾은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과 그의 사인./사진=카페 플로리안 홈페이지 캡처
카페 플로리안은 300년 넘게 정치인, 철학가,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이 됐다. 사진은 카페 플로리안을 찾은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과 그의 사인./사진=카페 플로리안 홈페이지 캡처


역사의 한 페이지도 장식했다.


18세기 중반 가스파로 고치 백작은 초기 신문인 '가제타 베네타'를 카페 플로리안에서 구상하고 편집했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혁명 사상이 오가는 장소가 됐고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운동인 리소르지멘토 시기에는 베네치아 애국자들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원로원 방은 이들이 회합하던 장소였고, 때로는 부상자를 돌보는 임시 병원처럼 쓰였다.


카페 플로리안은 300년 넘게 정치인, 철학가,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이 됐다. 사진은 할리우드 배우 겸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원로원의 방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 /사진=카페 플로리안 홈페이지 캡처
카페 플로리안은 300년 넘게 정치인, 철학가,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이 됐다. 사진은 할리우드 배우 겸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원로원의 방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 /사진=카페 플로리안 홈페이지 캡처

예술사의 한 장면도 품고 있다. 1893년 리카르도 셀바티코 베네치아 시장은 이곳 원로원 방에서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국제 미술 전시회를 구상했다. 2년 뒤 열린 이 전시회가 오늘날 세계적 문화 행사로 자리 잡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출발점이었다.

공간 자체도 하나의 박물관이다. 두 개로 시작한 방은 세월이 흐르며 원로원 방, 중국 방, 오리엔탈 방, 저명인사의 방, 계절의 방, 자유의 방 등이 더해졌다. 원로원 방은 계몽주의와 문명을 주제로 한 패널 장식으로 꾸며졌고, 중국 방과 오리엔탈 방은 18~19세기 유럽인들이 상상한 동양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카페 플로리안은 현재 6개의 방이 각자의 콘셉트로 구성돼 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중국방, 오리엔탈방, 저명인사의 방, 원로원 방, 계절의 방과 리버티 방. /사진=카페 플로리안 홈페이지 캡처
카페 플로리안은 현재 6개의 방이 각자의 콘셉트로 구성돼 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중국방, 오리엔탈방, 저명인사의 방, 원로원 방, 계절의 방과 리버티 방. /사진=카페 플로리안 홈페이지 캡처

저명인사의 방에는 골도니와 마르코 폴로 등 베네치아 인물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자유의 방은 아르누보 양식의 장식으로 또 다른 시대의 감각을 보여준다. 하나의 박물관이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응접실인 셈이다.

역사의 파고를 넘어온 카페 플로리안도 질병의 재난만큼은 피하기 어려웠다. 300주년이었던 지난 2020년 카페 플로리안은 "3세기의 촛불을 꺼뜨릴 뻔 했다"고 고백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탈리아는 국경을 폐쇄했고 국가 간 이동은 물론 외출도 제한했다. 카페 플로리안의 한 해 매출은 80% 감소했다. 주주와 은행의 재정 지원으로 버텼지만, 끝을 알 수 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언제까지 버틸지 알 수 없었다.

2020년 코비드 팬데믹 당시 위기를 맞은 카페 플로리안의 소식을 전한 외신 보도. /사진=월스트리트저널·더 스페이스 캡처
2020년 코비드 팬데믹 당시 위기를 맞은 카페 플로리안의 소식을 전한 외신 보도. /사진=월스트리트저널·더 스페이스 캡처

외신도 이 유서 깊은 카페의 위기를 잇따라 보도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대전도 막지 못한 카페 플로리안을 코비드가 막았다((World Wars Couldn't Stop Venice's Caffe Florian. Covid Did)'는 제목으로 기사를 게재했다. 영국의 건축 공간 전문지인 더 스페이스도 300년 역사의 카페 플로리안이 직면한 위기를 전했다.


카페 플로리안을 살린 건 이 카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폐점 가능성이 제기되자 현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온라인 스토어에 모여 매출을 올려줬다. 엔데믹을 선언한 뒤엔 사람들이 일부러 베네치아를 찾았고 카페 플로리안은 다시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시간을 안고 커피를 마시는 공간

카페 플로리안의 6개 방 중 하나인 원로원 방에 앉으니 프레스코화에 대리석 테이블, 벨벳 소파가 시간을 그대로 담고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카페 플로리안의 6개 방 중 하나인 원로원 방에 앉으니 프레스코화에 대리석 테이블, 벨벳 소파가 시간을 그대로 담고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베네치아를 방문할 때면 습관처럼 찾게 되는 산 마르코 광장, 그 곳의 수많은 관광객 사이를 지나 플로리안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두께다.

프레스코화와 샹들리에, 벨벳 소파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역사 책에나 보는 장소가 여전히 살아있다. 수트에 보타이로 갖춰 입은 웨이터들은 은색 트레이에 음료를 담아낸다. 서비스 자체가 하나의 공연처럼 느껴진다.

안내받은 원로원 방 창가에 앉아 바라본 산 마르코 광장은 왜 나폴레옹이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불렀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창밖에는 수백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지고, 실내에는 예술과 정치, 혁명의 기억이 남아 있다.


은색 트레이에 담겨온 음료와 디저트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총독의 커피라는 뜻의 '카페 델 도지'(왼쪽)는 티라미수와 조화를 이룬다. /사진=서윤경 기자
은색 트레이에 담겨온 음료와 디저트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총독의 커피라는 뜻의 '카페 델 도지'(왼쪽)는 티라미수와 조화를 이룬다. /사진=서윤경 기자


총독의 커피라는 뜻의 '카페 델 도지'를 주문했다. 초콜릿 크림과 에스프레소, 우유 거품이 어우러진 독특한 이 음료의 첫 맛은 부드러웠고 끝맛은 에스프레소의 쌉싸름함이 남았다. 티라미수와도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커피 맛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면 수백년 동안 사람들이 만나고 토론하고 사랑하고 혁명을 꿈꿨던 공간에 잠시 앉아 있었다는 특별한 경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산 마르코 광장이 도시의 응접실이라면, 카페 플로리안은 그 응접실 안에서 가장 오래 불이 켜져 있던 방이었다.


카페 플로리안 입구에서 수트와 망토 차림의 직원이 손님을 맞이한다. 떠나는 손님을 향해 인사도 잊지 않는다. /사진=서윤경 기자
카페 플로리안 입구에서 수트와 망토 차림의 직원이 손님을 맞이한다. 떠나는 손님을 향해 인사도 잊지 않는다. /사진=서윤경 기자


커피를 마시고 카페 플로리안을 나오니 입구를 지키던 카페 직원이 작별 인사를 건넨다. 마치 베네치아 사람들이 300년 전부터 해왔던 것처럼.

"안데모 다 플로리안(Andemo da Florian)…플로리안에서 만나자."

그리고 다음에 소개할 곳은 영화 '미드나잇인파리' 속 어니스트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피츠제럴드 부부 등이 모이던 프랑스 파리 카페 '레 뒤 마고'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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