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글로벌 석유시장 낙관 이르다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윤재준 국제부 부장
윤재준 국제부 부장

미국과 이란이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석유 공급에 숨통이 트이고, 그동안 크게 올랐던 기름값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번 MOU 체결은 반드시 필요한 시기에 이뤄졌다. 이란전쟁으로 세계 원유 공급량의 5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해협이 막힌 이후 세계 각국의 비축원유 재고가 현재 위험 수준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원유 재고가 바닥을 보일수록 유가는 큰 폭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어 지난달 말에 이미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WB) 모두 감소 위험에 대해 경고한 상황이었다.

이란전쟁이 이어졌던 100여일 글로벌 석유시장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수입량을 대폭 줄인 것과 최대 산유국인 미국의 원유 증산, 각국의 전략비축유(SPR) 방출 때문이다. 전쟁 초기만 해도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폭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이란을 공습하기 전날인 지난 2월 27일 배럴당 72.48달러였던 것이 3월 31일 119.24달러까지 오른 것이 최고치였다.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SG)에 따르면 지난 1973년 주요 산유국들의 원유 금수조치로 인한 석유파동 당시 공급량이 7% 감소하고 유가가 130% 이상 상승했다. 반면 이란 사태로 인한 유조선들의 호르무즈해협 통행 차질로 공급량이 14% 줄었음에도 유가 상승폭은 약 30%를 보였다. 1970년대의 오일쇼크 때보다 상승폭이 크게 떨어진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에 비해 충격을 잘 흡수했다.

휴전 소식에 기름값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18일 해운정보업체 로이즈리스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110일 만에 주요 선사 등록 선박들이 호르무즈해협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석유시장이 곧바로 좋아질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지난 100여일 전쟁으로 억제됐던 수요가 급격히 회복되는 것이 유가에 큰 변수다. 역사적으로 대규모 석유파동이 끝난 후 각국이 에너지 안보 강화에 나서면서 '2차 수요 파도'를 겪어왔다. 이번에도 바닥이 거의 드러나고 있는 전략비축유 채우기에 나설 것이며, 정유업체들도 원유 확보에 적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원유 수입국들은 또다시 공급 차질로 인한 고통이 발생할 것에 대비하기 위해 대량으로 사들이던 과거의 관행을 반복할 것이다. 현재 석유 생산이 회복에 들어가는 시기로 치열한 확보 경쟁이 겹쳐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전문가들은 중동의 휴전이 앞으로 30일이나 60일 이상 지속되는 안정된 상황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원유 생산이 더 본격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MOU 합의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해협 안전 통행에 대한 불확실성과 느린 수송 같은 문제로 당장 숨통이 트이기는 힘들며, 에너지 기업들이 가동을 정상화하고 글로벌 수요를 맞추기까지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해협 내 기뢰 제거 등 안전도 확보돼야 해 유조선 선사와 보험사들은 신중함을 보이고 있다. 이란의 고농축우라늄 폐기와 희석 문제를 두고 더 까다로운 핵협상 또한 남아 있어 장기적인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네덜란드 투자은행 ING는 비록 미국과 이란이 MOU에 합의했지만 유조선들의 호르무즈해협 통행이 이번 여름 안에 최대한 빨리 정상화돼야 한다며, 차질이 생긴다면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급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와엘 사완 셸 최고경영자(CEO)는 글로벌 석유 수요 증가로 유가는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앞으로 5~10년 유가가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비톨 같은 글로벌 상품 거래기업들은 앞으로 치열해질 원유 확보 경쟁의 심각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이 끝났다고 무턱대고 석유 시장이 안정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jjyoo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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