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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두부로 감동 주던 그녀… 떠나는 길도 따뜻했다 [토종 콩 지킴이 함정희 박사]

강인 기자
파이낸셜뉴스

"사람 살리는 음식에 타협 없다"
수입 GMO 안쓰고 '국산콩' 고수
식품회사·식당 이윤도 내려놓고
올바른 재료 가치 알리는 데 앞장
환갑 넘어 박사 학위 취득 열정적
지난해 8월 뇌사 장기기증
5명에 새 삶 선물하고 영면

고(故) 함정희 박사가 생전 전북 전주 팔복동에 있던 자신의 공장에서 모아둔 표창과 상장 등에 대해 설명하며 웃는 모습. 사진=강인 기자
고(故) 함정희 박사가 생전 전북 전주 팔복동에 있던 자신의 공장에서 모아둔 표창과 상장 등에 대해 설명하며 웃는 모습. 사진=강인 기자

【파이낸셜뉴스 전주=강인 기자】 '우리 콩 투사'로 불리며 일생 좋은 음식 연구에 매달린 함정희 박사가 영면에 든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고 함정희 박사는 전북에서 콩을 중심으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기에 평생을 바쳤다. 늦은 나이에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며 건강한 음식을 만들려다 보니 운영하던 식품회사는 수익을 내지 못하고 도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2일 함 박사의 주변에 따르면 회사가 문을 닫는 순간에도 함 박사는 자신의 장인정신을 꺾지 않았다. 주변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으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사람을 살리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그의 장인정신을 아는 이들이 그를 위해 나서기도 했지만 함 박사는 지난해 8월 20일 갑자기 눈을 감았다. 향년 71세였고, 병명은 뇌경색이었다. 함 박사는 마지막 길도 숭고했다. 장기기증으로 5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한 것이다. 유가족은 "장기기증은 어머니의 평소 뜻이었다"며 "여러 사정으로 장례도 치르지 못했지만 함정희 박사의 정신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기업 납품도 포기한 고집

고인은 함씨네토종콩식품을 창업하고 유기농 콩을 사용해 두부와 청국장 환 등을 생산했다. 2001년 전북 전주시 팔복동에 터를 잡고 회사 문을 열었다. 다른 식품 기업들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건강을 생각하는 직원들의 마음은 여느 기업보다 컸다.

원광대학교에서 '한국인의 건강관점에서 콩의 영양, 기원 및 유전자원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많은 이들이 암(癌)에 걸리는 이유가 먹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은 먹는 것에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쥐눈이콩 마늘 청국장 환'을 만들었다.

새로운 가공 방식을 개발해 특허도 받았다. 미래에 식량 전쟁이 닥칠 거라는 우려와 유전자조작식품(GMO) 등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 함 대표가 식품 공부를 시작한 계기였다.

20여년간 모진 세월을 견디며 건강한 식품에 몰두한 결과는 노벨상 후보로 추천받으며 빛을 발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대한민국 노벨재단은 2019년 함정희 박사를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추천했다. 중국에서 투유유 중의과학원 교수가 개똥쑥을 이용한 말라리아약을 개발해 노벨상을 수상한 전례가 있었기에 우리나라도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우리 땅에서 나오는 쥐눈이콩(약콩)은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식품이라는 것이 함 박사의 지론이었다.

기업 경영의 가장 중요한 수익 창출보다 소비자 건강을 먼저 생각하게 된 계기는 2000년 전주시청에서 진행한 안학수 고려대 농학박사의 특강을 들은 뒤부터다. 이전까지 수입 콩을 이용해 두부를 생산하고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지만 강의를 들은 뒤 '좋은 먹거리'가 우선이라는 가치관을 갖게 되면서 큰 변화가 찾아왔다. 국산 유기농 콩을 사용하게 되자 단가가 높아졌다.전주지역 한 대형마트까지 납품하고 있었지만 단가가 맞지 않아 자진해 대형마트 납품을 포기했다. 이런 그를 두고 사정을 아는 이들은 '우리 콩 독립투사'라고 칭송했다.

이 같은 그의 장인정신은 여러 상훈을 남겼다. 20여년 연구개발로 대통령상(2010년), 농림수산식품부장관 표창(2008년), 경찰대학교 감사장 수상(2013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표창(2011년), 2018년 서울대학교 명예의전당 등재, 2018년 전주 세계슬로워드 수상, 2018년 대한민국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장인정신 지키고 마지막까지 숭고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대중에 소개하기 위해 전주 한옥마을에 열었던 식당이 문을 닫으며 경영난이 시작됐다. 결국 생산공장까지 경매에 넘어갔다. 이 시기 만난 함 박사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동안 국산 콩을 고집하며 겪어야 했던 어려움에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였다.

수입 콩을 사용하지 않으며 높아진 단가로 대형마트 납품을 포기해야 했을 때도, 국산 콩을 고수하는 함 박사를 나무라는 가족의 성화에도, 생업을 이어가며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던 시기에도 그는 타인 앞에서 항상 웃음을 보였다.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콩의 꽃말인 '언젠가 올 행복'이 있었기에 여러 풍파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런 그도 생활의 근간인 공장이 문을 닫게 되자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결국 2023년 공장이 타인의 손에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함 박사는 처음 울분을 터트렸다. 오직 좋은 음식 만들기에 몰두했는데, 20년 넘게 공을 들인 공장에 대한 강제집행을 보게 된 현실이 참담했을 것이다.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학교와 개인 등에 입소문을 타며 경영이 개선됐다. 건강한 음식을 찾는 곳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함 박사는 지역 대표 관광지인 전주 한옥마을에 식당을 차린다. 2017년 전주시 시설을 위탁받아 '함씨네밥상' 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가장 건강한 밥상을 차려내면서도 수익은 창출되지 않았다.

높은 단가가 발목을 잡았고 시장이 바라는 음식은 '건강'보다 '자극적인 맛'이었다. 임차료가 밀리기 시작한 함 대표는 결국 쫓겨나듯이 식당을 비워줘야 했다. 함 박사는 이 시기부터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밀린 임차료와 과태료 처분은 자금의 흐름을 막았다. 금융기관에서 자금이 융통되지 않았고, 학교 급식 납품도 거부됐다. 하나의 실패가 사업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에도 그는 국산 콩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수입품을 사용해) 단가를 낮추고 시장경쟁력을 갖출 생각은 없나"라는 기자 질문에 눈을 질끈 감고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영면에 들었다. 지난해 8월14일 모처에서 특강을 마치고 재기를 꿈꾸던 사무실로 귀가했는데,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급성 뇌경색 진단을 받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고인이 생전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고, 평소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나눔을 실천한 것을 받들어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지난해 8월20일 전북대학교병원에서 고인의 간과 신장(양측), 안구(양측)를 5명의 환자에게 기증했다. 마지막까지 함정희 박사는 남들과 다르지만 아름다운 길을 갔다.

kang1231@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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