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달콤한 잔치'가 끝나면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정상균 경제부 부장
정상균 경제부 부장

1980년대 일본은 대호황기였다. 반도체와 전자 등 주력산업에서 대체불가 일본산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수출기업은 돈을 쓸어담았다. 1985년부터 4년여간 닛케이지수는 1만3000에서 3만9000까지 급등했다. 돈은 부동산으로 흘러 가격이 치솟았다(연평균 상승률 22%). 1989년 도쿄 도심 부동산 가격은 미국 전체 국토의 가치를 넘어설 정도였다. 두둑한 월급을 받은 근로자들은 호황의 단맛을 누렸다. 그러나 1985년 플라자합의(엔화 절상)를 거쳐 거품이 붕괴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4만을 코앞에 둔 닛케이지수는 1992년 1만4000으로 폭락했다. 쏟아진 매도 물량에 반토막 난 부동산 가격은 더 떨어졌다. 이후 '긴 침체에 빠진' 일본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급속한 고령화로 사회복지지출이 급증(GDP 대비 20% 이상)했고, 과잉 생산설비 감축과 같은 구조개혁에 실패했다. 2026년 '반도체 초호황'이 40년 전 '일본의 대호황'의 단면과 닮아 있다. 코스피지수는 5000에서 다섯달 만에 9000을 넘어섰다. 올 한 해 수십조원의 돈이 반도체 회사의 성과급과 증시, 부동산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집값은 급등세다. 경제지표 중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올해 사상 최대인 2300억달러를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 1·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5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전 분기 대비 1.8% 성장했다. 명목 GDP는 50년 만에 상승률 10%를 넘었다. 커진 '모수(명목 GDP)' 덕에 올해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50%를 넘지 않을 모양이다. 초과세수는 많게는 5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1년 전만 해도 중국에 반도체 빼고 주력산업 주도권을 다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과 초조함이 컸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반도체의 가격이 치솟는 울트라 사이클에 올라타면서 '그런 걱정을 했었나' 할 정도로 잊혀 버렸다. AI만 갖다 붙이면 대박이 날 것 같은, 지금의 반도체가 홀로 끌어올린 수출·증시 호황에 '붕 떠있는' 듯한 축제의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금은 한국의 시간"이라고 치켜세웠으니 "우리가 뭔가 대단히 바뀌고 있나" 할 만하겠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0%대로 하락 수렴해가는 잠재성장률의 본질이 달라진 것은 없다. 우리는 세계 최저 출산율(0.8명), 초고속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감(20년 후엔 2700만명)한다. 매년 20조원 이상 지출하는 기초연금과 몇 년 안에 기금이 고갈될 공무원연금·사학연금 등 공적연금, 적자에 빠진 건강보험 등의 위험신호도 그대로다. 여기에 농어촌 기본소득 등과 같은 새로운 현금성 복지까지 출현하고 있다.

나는 지금껏 우리 경제가 단단히 다져온 구조조정과 혁신의 노력이 이제서야 발현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현상은 본질이 아닌 '프레임'의 전환일 뿐이다. 그래서 이 '가벼운 잔치', 국지성 호황이 머지않아 끝날 것 같다. 거품이 일시에 붕괴되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K자형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고, 정책비용은 더 들 것이다. 정부의 씀씀이가 커진 만큼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을 것이다. GDP와 경상흑자 등 놀라운 경제지표와 역행하는, 제조업과 청년층의 악화하는 고용지표는 그래서 더 사실적이다.

우리가 잔치에 흥겨워하는 중에 중국은 AI 반도체 자립에 고삐를 더 죄어 우리를 넘어설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과 대만을 앞세운 반도체 밸류체인 재건에 이를 악물고 있다. 이것들이 적어도 5년 안에 벌어질 일이다.

초과세수는 횡재가 아닌, 기업과 납세자가 인내한 결실이다.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기반을 깔아주고, 이것이 일자리가 되는 선순환을 만드는 미래 투자에 '귀한' 세수를 써야 한다. 그것이 실용정부가 말하는 '성공의 비용'과 '상상력의 투자'라는 취지에 맞을 것이다.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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