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의 상징' 그린스펀 별세…100년 삶 마감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마에스트로(Maestro)'로 불리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2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0세.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약 19년 동안 연준 의장을 지낸 그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장기 호황을 이끌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정책 결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금융 규제 완화와 저금리 정책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씨앗을 키웠다는 평가도 함께 받는다.
NBC뉴스에 따르면 부인이자 NBC 워싱턴 수석특파원인 안드레아 미첼은 "그린스펀이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준 의장에 오른 그린스펀은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까지 공화·민주 양당 4명의 대통령 아래에서 미국 통화정책을 총괄했다.
그의 재임 기간은 미국 경제의 '골디락스(Goldilocks)' 시대와 겹친다. 낮은 물가와 안정적인 성장, 정보기술(IT) 혁신이 맞물리며 미국 경제는 사상 최장기 확장 국면을 이어갔다. 시장의 자율과 기술 혁신을 신뢰하고 정부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당시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그는 취임 직후인 1987년 '블랙 먼데이' 증시 폭락을 비롯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1년 9·11 테러 등 굵직한 금융·경제 위기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유산은 엇갈린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린스펀은 저물가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며 미국 경제의 장기 성장을 이끌었지만, 풍부한 유동성이 주택시장과 금융시장 거품을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도 저금리 환경이 과도한 투자 열풍을 부추길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식했지만 적극적인 대응에는 나서지 않았다.
또 은행과 투자은행들이 파생상품 등 복잡한 금융기법을 확대하는 과정에서도 시장의 자율을 우선시하며 규제를 강화하지 않았다. 이후 이러한 금융상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다.
결국 2006년 퇴임 이후 2008년 금융위기와 대침체(Great Recession)를 거치면서 그린스펀의 경제 철학은 전면적인 재평가 대상이 됐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그가 기준금리를 더 일찍 인상해 주택시장 거품을 막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또 다른 전문가들은 자유시장 만능주의에 치우친 규제 완화가 금융시스템의 위험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