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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와 한미동맹의 중요성, 미국 대중에게 알리고파" [fn이 만난 사람]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2부작 다큐 '한국의 진화' 제작
제이미 해먼드 美 PBS 프로듀서
삼촌은 한국전, 아버지는 2차대전 참전
DMZ 근무했던 동료가 처음 다큐 제안
두달간 고민후 수락…"나에겐 소명"
가장 큰 목적은 미국인 교육하는 것
한미 함께한 역사 알리고 동맹 굳건히
일제강점기 등 어떻게 전할지 고민
진실 보여주되 정치적이지는 않을 것

제이미 해먼드 미국 공영방송 PBS 프로듀서가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한남클럽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제이미 해먼드 미국 공영방송 PBS 프로듀서가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한남클럽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한국 역사와 한미동맹의 중요성, 미국 대중에게 알리고파" [fn이 만난 사람]

대담 = 노동일 주필

전쟁의 폐허에서 반세기 만에 세계 최첨단 국가로 도약한 나라, 대한민국.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한국은 여전히 K팝과 갤럭시 휴대폰, 현대자동차 정도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 이 간극을 메우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다.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을 2회 수상하고 7회나 후보에 오른 미국의 베테랑 프로듀서 제이미 해먼드이다.

거장(巨匠) 제이미 해먼드의 카메라가 한국을 담고 있다. 미국 공영방송 PBS를 통해 1억명의 미국인에게 방영될 2부작 다큐멘터리 '한국의 진화(The Evolution of Korea)'가 그의 차기작이다. 과학과 교육 분야를 주로 다뤄온 그가 왜 지금 한국의 역사에 주목하게 됐을까. 한국전쟁에 참전한 삼촌과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에 복무한 아버지를 둔 가족사, 그리고 비무장지대(DMZ)에서 복무한 동료의 기억이 겹치면서 이 프로젝트는 그에게 단순한 작업을 넘어 '사명'이 됐다. 파이낸셜뉴스 노동일 주필이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한남클럽에서 그와 대담을 나눴다.

―한국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해달라.

▲젊었을 때는 금융 분야에서 일하다가 정말 우연한 계기로 1978년 방송·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1992년 시애틀로 이주했을 때 마침 어린이 과학 시리즈가 막 시작되려던 참이었고, '빌 나이 더 사이언스 가이(Bill Nye the Science Guy)' 프로듀서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다. '빌 나이 더 사이언스 가이'는 에미상에 30회 이상 노미네이트돼 26개 부문을 수상했고, 나도 그 프로그램으로 2개를 받았다. 아이들이 과학을 사랑하게 만든, 상징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팀의 목표는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하는 데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TV 역사상 유일하게 전 세계 174개국 상업방송 신디케이션과 미국 PBS 전국 방송에서 동시에 방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어린이 금융교육·기업가정신 시리즈 '비즈키즈(Biz Kid$)', PBS에서 18시즌을 이어간 의료 시리즈 '세컨드 오피니언(Second Opinion)' 등을 만들었다.

―한국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이번 프로젝트에는 공동 작가이자 현장 인터뷰 연출자로 함께하는 윌리엄 윈십이 있다. 그는 DMZ에서 복무했던 사람이라 한국에 관심이 깊었고, 워싱턴DC 내셔널몰에 있는 미 육군 제2보병사단 기념비 관련 일을 했다. 기념재단을 도우면서 나와도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지난 2024년 2월 주미 한국대사관의 국방무관을 만나게 됐다. 그 자리에서 미국과 한국이 공유해 온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제안을 듣고 바로 수락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DMZ에 대해서는 알고 있고, 내 삼촌이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아버지는 해병대에서 26년을 복무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태평양 전선에서 싸우셨다. 전형적인 '군인집안 자녀'인 셈이다. 그런 제안을 받게 된 것은 영광이었지만, 수락하기 전에 공부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해 4월 다시 만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다면 영광일 것"이라고 답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더 해줄 수 있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나 그가 일기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기는 전쟁에 대한 고발장이었다. 아버지는 히틀러 탓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한국전쟁 역시 남한을 지키기 위해 필요했다고 이해했다. 특히 한국전쟁과 관련해서는 북한이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일들을 보며 얼마나 비통해하셨는지가 인상적이었다. 해병대에서 26년을 복무한 분치고는 놀라울 만큼 섬세한 분이었고, 인간의 존엄이 그렇게 짓밟혀서는 안 된다고 믿고 계셨다.

―한국의 국가보훈부로부터 '평화대사' 메달을 받았다고 들었다.

▲지난 2024년 5월 국가보훈부가 수여하는 '평화대사(Ambassador for Peace)' 메달을 받았다. 주미 대사관 국방무관이 직접 메달을 주었는데, 믿기지 않을 만큼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 순간부터 최고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내는 일이 나의 소명이 됐다. 제안을 받은 이후 한국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 한국인의 저력과 결단력이 그만큼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가장 큰 목적은 미국인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솔직히 미국인들은 한미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모든 연령대의 미국인을 교육해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각 회차에 맞춘 교육용 수업지도안도 제작하고 있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양국이 공유해 온 역사를 가르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1896년 무렵부터 현재까지를 2시간에 담는다. 긴 세월이지만 한국은 그 이후 엄청난 일을 겪어 왔고, 그것이 곧 한국인의 강인함과 결단력을 보여주는 서사이다. 해외 라이선스 배급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이탈리아는 확정적이고,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제목이 '에볼루션(진화)'인 만큼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어떻게 그릴지 궁금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농업 중심의 나라였다. 그런데 현재 한국인들은 세계적인 현대 과학기술과 함께 문화 역량도 만개하고 있다. BTS, 블랙핑크도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한국이 교육에 투자했다는 사실이라고 본다. 1950년대 전쟁을 겪으면서도 국민의 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그 교육이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 나의 시각이다.

―한미동맹이 한국의 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나.

▲미국 역시 기술 분야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과 함께 성장해 온 나라이다. 두 나라가 협력하면서 함께 번영했다. 한국전쟁 당시 두 나라는 북한, 그리고 중국·러시아에 맞서 함께 싸웠고, 지금도 안팎으로 큰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이다. 핵심 과제 중 하나는 미국인 전체가 이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야 미국인들이 이 동맹을 굳건히 지키고 더 강하게 만드는 일에 당당히 목소리를 낼 것이다.

―주한미군 주둔이 미국에 큰 부담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름을 밝힐 필요는 없지만 일부 정치인 등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미국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주한미군 주둔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다루게 될 것이다. 그 비용은 지불할 가치가 충분한 '투자'라는 점이 중요한 메시지이다. 우리는 서로를 지켜야 한다. 한국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함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서로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 한미동맹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고) 양국이 서로를 지킬 것이고, 지켜야 한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를 다루면서 가장 어렵게 느끼는 부분은.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비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정직하게 다루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일제강점기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문제를 일으키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그 시기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그 시기를 어떻게 견뎌냈고, 이후 어떻게 번영해 왔나'를 보여주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다큐멘터리는 정치적이지 않을 것이다. 내 원칙은 언제나 같다. 나는 진실을 원하고, 아름다움과 어려움을 모두 보여주고 싶다.

―이번 방한 중 DMZ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어떤 느낌이었나.

▲DMZ 방문은 정말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DMZ 자체도 울림이 있었지만, DMZ의 남쪽과 북쪽이 얼마나 다른지를 관찰할 기회가 굉장히 깊은 감명을 주었다. 가이드가 말해준 것 중 흥미로웠던 점은 DMZ 일대에는 사람의 왕래가 없기 때문에 희귀한 동물과 식물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남북을 가르는 선 남쪽의 풍성한 나무와 식물들이 그렇지 못한 북쪽과 대비되는 상황은 나에게 남한의 번영과 풍요로운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굉장한 체험이었고, 내년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정말 기다려진다.

―작업을 하면서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낙관하고 있다. 이 '진화'의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이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보여주면, 사람들의 이해와 호기심이 커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 더 알고 싶고, 더 공부하고 싶고,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고, 한국과 함께 한미 양국의 관계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작품 공개 일정은.

▲미국과 한국 전역에서 방영되는 것은 확정적이다. 공개는 2027년이 될 예정이다. 아직 할 일이 많다. 오늘 한국의 아카이브 기관인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영상과 이미지 사용 허가(라이선스)를 요청할 기반을 만들었다.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결국 아카이브 영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미국은 지난 40년간 젊은 세대 교육에 투자하지 못했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매체의 확산 이후 진실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양국의 젊은 세대에게,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그 확고한 의지를 담아 끝까지 완성해야 할 작품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모두 늙어가고, 결국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공동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리=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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