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묶는 전세 지고 월세 뜬다… 현금 흐름 따라가는 부동산 ['멈춘 돈, 바뀐 집' 부동산은 재편 중(중)]
서울 아파트거래 월세 비중 54.8%
지난해 47.6%서 상승 5년래 최고
대출규제 강화·전세 사기 등 영향
6개월새 전세 매물 17% 이상 줄어
임대인·임차인 월세선호 현상 심화
#1. 서울에 사는 A씨. 최근 남는 아파트 하나를 월세로 내놨다가 곧바로 '계약하겠다'는 연락이 와 깜짝 놀랐다. 계약 직후에도 여러 부동산에서 전화를 받은 A씨는 그제서야 월세난을 체감하게 됐다.
#2. 서울 아파트에 혼자 거주하던 B씨. 아파트가 너무 큰 탓에 임대를 주고 본인은 작은 오피스텔로 옮길 계획이다. 처음에는 전세를 놓을 계획이었지만 여러 조언을 종합한 끝에 월세로 마음을 굳혔다. 다음 세입자 계약 날짜 등 여러 조건을 맞춰야 하는 전세와 달리 공실만큼만 손해 보는 월세가 더 낫다고 판단해서다.
전세사기 우려와 대출규제·갭투자 금지·실거주 의무 등 여러 부동산 규제가 겹치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의 월세화가 빨라지고 있다. 전세가 과반을 차지하던 전월세 비중은 어느새 역전됐고 더욱 가속화하는 추세다. 시세 차익 및 자산 축적보다 현금 흐름을 중요시하는 집주인의 수요와 목돈이 묶이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임차인 수요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 5년래 최고
23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2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에서 신규 전세 비중은 45.2%, 월세 비중은 54.8%를 나타냈다. 최근 5개년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2022년 50.9%였던 월세 비중은 2023년 43.2%로 급락한 뒤 2024년 45%, 2025년 47.6%로 50%를 밑돌았다.
올해의 경우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한강벨트(용산·마포·광진·성동·영등포·동작), 서울 외곽 대부분 지역에서 월세 비중이 전세 비중보다 높았다.
강남4구 가운데 이 비중이 가장 큰 곳은 강남(56.3%)이다. 서초가 55.1%, 강동 54.6%, 송파 52.6%로 뒤를 이었다. 한강벨트에서는 광진구가 61.8%로 60%를 넘어섰다. 용산 59.2%, 마포 56.8%, 영등포·성동구가 51.0%로 50%대를 기록했고 동작구가 유일하게 47.2%로 50% 밑을 보였다. 서울 외곽에서는 관악과 강북이 각각 61.9%, 61.7%로 1, 2위를 기록했다. 강서(52.9%), 은평(52.6%), 노원(51.7%), 성북(51.6%)이 모두 절반을 넘었다.
■부동산 규제 강화 등 복합적 이유
서울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세의 월세화가 빨라지는 이유는 부동산 규제 강화, 전세사기 우려, 인구구조 변화 등 복합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부동산 대출규제가 꼽힌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6·27대책, 10·15대책 등을 통해 주택담보대출 최대 6억원 한도, 토지거래허가 지역 아파트 매수 시 실거주 의무 등 규제안을 다수 발표했다. 과거에는 대출과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가 활발했지만, 실거주 의무와 각종 대출규제 강화로 이 방법을 활용할 수 없게 되자 전세 공급 자체가 감소한 것이다. 실제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11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만9112건으로 올해 초 2만3060개 대비 17% 이상 감소했다.
최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집값 상승 원인 중 하나로 전세자금대출을 지목하면서 전세대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 금지 등이 대책으로 나올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는 사실상 세입자가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마련하는 구조"라며 "대출이 막히면 어쩔 수 없이 반전세나 월세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임차인도 임대인도 월세로
전세의 월세화는 임대차 시장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 월세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시장구조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수억원의 보증금을 맡겨야 하는 전세보다 월세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고 위험도 낮다. 이에 전세사기 위험과 목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월세를 선택하고 있다. 여기에 향후 전세대출 규제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월세 선호 현상은 더욱 강해지는 모습이다.
임대인들도 월세 선호로 기울었다. 과거에는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추가 주택을 매입하거나 자산 규모를 키우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월세를 통해 꾸준한 현금 수입을 확보하는 전략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한 고령층의 경우 부동산을 노후 생활비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부동산 시장에서도 '자산 축적'보다 '현금흐름 확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집값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을 기대하기보다 매달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임차인은 전세사기 위험을 피하려 하고 임대인은 현금흐름을 선호하면서 임대차 시장은 월세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전세 소멸 아닌 구조 변화
전문가들은 전세가 당장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월세 비중 확대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임대인들이 조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일부 전가하려는 목적뿐 아니라 노후 생활비 등 안정적인 운영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월세를 선호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월세화가 계속 이어지긴 하겠으나 전세가 씨가 마를 정도로 소멸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올해 연말까지 세 낀 집을 살 수 있게 풀어줬고, 계약갱신권을 쓰는 사례도 있다"고 짚었다. 이어 "유형으로 보면 아파트보다 비아파트가 빠르고, 지역으로 보면 지방이 빠르며 면적으로 보면 작은 평형이 더 빠르다"며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할 때의 부담 자체가 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월세 확대를 단순히 정부 정책에 따른 변화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시장구조 자체가 바뀌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강한 대출규제와 실거주 의무 강화로 전세를 활용한 갭투자가 사실상 어려워졌고, 임대차 시장도 이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임대인 입장에서는 자금이 부족한 경우 전세가 유리할 수 있지만,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려는 경우에는 월세가 더 유리하다"며 "정부가 전세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같은 정책 환경이 지속되면서 시장이 자연스럽게 월세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