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자원 싸게 사는 시대 끝났다… 脫중동 넘어 ‘에너지 독립’을 [종전 협상과 '뉴 이스트 로드' (상)]

박지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중동전發 에너지 안보 전환점
원유 수입 여전히 70% 중동 의존
에너지 수급취약 연결고리 보여줘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
‘입체적인 포트폴리오’ 구축 필요
새로운 ‘에너지 믹스’ 시대 온다
복수 공급망·대체 에너지원 확보
SMR, 新 에너지 안보 수단 주목
재생에너지는 단순 설비 확대 넘어
ESS 등 아우른 시스템 전환 필요

자원 싸게 사는 시대 끝났다… 脫중동 넘어 ‘에너지 독립’을 [종전 협상과 '뉴 이스트 로드' (상)]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중동전쟁이 세계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면서 한국의 에너지 안보 전략도 전환점을 맞고 있다. 원유 수입의 70%가량을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다면 지정학적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복수의 공급망과 대체 에너지원·전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자원개발을 통한 공급망 확보와 원전·소형모듈원전(SMR), 재생에너지를 결합한 새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값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사 오는 시대를 넘어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인디펜던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동 의존 여전…에너지 수급 취약성 재부각

23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원유 수입량의 69.1%가 중동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 80%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중동산 원유가 지리적으로 가깝고 운송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국내 정유설비 역시 중동산 중질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중동전쟁은 한국 에너지 수급의 취약한 연결고리를 다시 드러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유가 상승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가 다시 국가안보와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각국은 값싼 에너지를 확보하는 데서 나아가 위기 상황에서도 공급망을 유지할 수 있는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셰일혁명을 통해 에너지 수입국에서 생산국으로 변모했고,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리파워EU(REPowerEU) 전략을 추진하며 공급망 재편에 나섰다. 과거에는 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사 오는 것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회복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넘어 '전환 시스템' 구축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중동전쟁이 '탈중동'이 아니라 '에너지 인디펜던스' 전략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졌다고 지적한다. 외부 충격에도 경제와 산업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세계 석유·가스 교역 변화와 한국의 공급망 리스크 분석' 보고서는 단순한 공급선 다변화를 넘어 지분 확보 물량과 수송로 안정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김태헌 선임연구위원은 "단순한 양적 다변화를 넘어 기업의 지분 확보 물량과 같은 질적 지표 및 물리적 수송로의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실질적인 에너지 안보를 파악할 수 있다"면서 "도입선 다변화가 특정 지역으로 편중될 경우 지정학적 리스크가 자연재해 및 사고 리스크로 전이될 수도 있는 만큼 공급국별 위기 유형을 상호 보완적으로 배치하는 '입체적 포트폴리오'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해외 자원개발과 원전, 재생에너지를 결합한 새로운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동산 원유 의존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다면 지정학적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복수의 공급망과 대체 에너지원·전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주목받는 분야는 소형모듈원전(SMR)이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건설 기간이 짧고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 수소 생산시설 등에 분산형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너지 안보 수단으로 거론된다.

재생에너지 역시 에너지 안보 전략의 한 축으로 꼽힌다. 다만 단순한 설비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중동전쟁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할 것인가' 보고서를 통해 중동전쟁이 재생에너지 전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곧바로 전환이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재생에너지 투자를 자극하는 동시에 공급망 비용 증가와 금리 상승, 핵심광물 확보 부담이라는 새로운 제약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단순히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늘리는 수준을 넘어 전력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공급망 다변화 등을 포함한 시스템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박유미 연구원은 "지금까지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존 에너지를 대체하기보다 늘어나는 전체 에너지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존 에너지원에 더해진 '에너지 추가'였지만, 이제는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에너지 총수요 절감과 화석연료 사용 억제를 전제로 재생에너지 확대가 이뤄질 때 실질적인 에너지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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