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AI무대 '고급 조연' 그칠라… K반도체, HBM호황에 도취돼선 안 돼" [인터뷰]

정원일 기자, 최혜림 기자
파이낸셜뉴스

류페이전 대만경제연구원 산업경제 데이터베이스 총감
특정 분야 편중된 韓생태계 경고
"첨단 파운드리 점유율 높여야"
대만 반도체 산업 차별점 강조
"민관 원팀 생태계 구축이 핵심"
'안보자산' 사회적 공감대 바탕
초당적 합의로 정책 추진 앞당겨
'대만판 칩스법' 도입이 대표적

"AI무대 '고급 조연' 그칠라… K반도체, HBM호황에 도취돼선 안 돼" [인터뷰]
"AI무대 '고급 조연' 그칠라… K반도체, HBM호황에 도취돼선 안 돼" [인터뷰]

【파이낸셜뉴스 타이베이(대만)=정원일 최혜림 기자】 세계 경제에서 대만의 위상이 올라가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9489달러를 기록하며 22년 만에 한국(3만6227달러)을 앞질렀다. 올해는 4만달러 돌파가 유력하다. 오는 2031년 양국 간 1인당 GDP 격차가 1만달러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한국과 대만은 모두 반도체를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지만, 승부를 가른 것은 촘촘한 산업 생태계였다. 반도체 초호황의 과실이 TSMC라는 개별 기업을 넘어 수천개 공급망 기업으로 확산되면서 기업과 가계 전반의 소득 증가로 이어졌다.

류페이전 대만경제연구원 산업경제 데이터베이스 총감(사진)은 23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반도체 산업이 국민 실질소득 증가로 연결될 수 있었던 핵심은 지역 기반 클러스터 효과와 높은 인재 밀도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만 반도체 산업의 차별점으로 고임금 일자리와 엔지니어 소비력이 자체 생태계를 바탕으로 국내에 머물며 민간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지목했다. TSMC를 중심으로 설계·소재·장비·건설 분야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반도체를 국가안보 자산으로 바라보는 대만 사회의 공감대가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를 단순한 주력 산업이 아니라 국가 생존과 직결된 전략자산, 이른바 '실리콘 실드(Silicon Shield)'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관련 법안에 있어서만큼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대만 정치권은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국가안보 과제로 보고 관련 정책을 초당적으로 추진한다.

지난 2023년 핵심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국가안보법 개정과 함께 '대만판 칩스법'으로 불리는 산업혁신조례 제10조의 2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첨단 공정과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해 반도체 기업들이 핵심 생산시설과 선단 공정을 대만에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류 총감은 "반도체를 국가안보 자산으로 바라보는 집단적 인식은 대만 정치권의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관련 정책과 입법이 매우 빠른 속도로 추진되는 배경"이라며 "반도체 기업의 부지 확보와 세제 감면, 규제 완화 등의 사안에서는 정부 부처가 사실상 패스트트랙을 가동해 기업의 투자 속도에 맞춰 행정 절차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K-반도체 생태계 구상의 중심지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지난 2019년 발표 이후 용수 공급 문제와 송전선로 건설, 환경영향평가, 지방정부 간 협의 등이 맞물리며 착공까지 5년 이상이 걸렸다. 정부의 조정 능력과 정책 추진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AI 공급망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특정 분야에 편중된 생태계에 대한 경고도 제기된다. 류 총감은 "메모리 반도체는 본질적으로 경기와 공급·수요 사이클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큰 상품으로 이 분야에 편중된 한국을 경기 급등락에 취약하게 만든다"며 "HBM이 한국에 단기 호황을 가져다주고는 있지만, 첨단 파운드리와 선단 공정 등에서 유의미한 점유율을 갖지 못한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결국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고급 조연' 역할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one1@fnnews.com 정원일 최혜림 기자


기자 정보

#대만 반도체 #TSMC #반도체 호황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