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분열의 시대, 국제포럼은 무엇을 해야 하나… 제주서 '실행 협력' 해법 논의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제주포럼 외교·안보 세션서 국제포럼 역할 재구상
제주평화연구원 주관, 해비치 다이아몬드A서 진행
보아오포럼·블레드전략포럼 관계자 참여
한·일 민간외교·아태 안보 전문가도 토론
AI 거버넌스·포럼 간 연계 필요성 제기

24일 오후 해비치 호텔&리조트 제주 다이아몬드A에서 열린 제21회 제주포럼 외교·안보 세션 ‘연결을 넘어 협력으로: 분열의 시대, 국제포럼의 역할 재구상’에서 참석자들이 국제포럼의 역할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주평화연구원 제공
24일 오후 해비치 호텔&리조트 제주 다이아몬드A에서 열린 제21회 제주포럼 외교·안보 세션 ‘연결을 넘어 협력으로: 분열의 시대, 국제포럼의 역할 재구상’에서 참석자들이 국제포럼의 역할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주평화연구원 제공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지정학적 분열과 복합위기가 깊어지는 시대에 국제포럼의 역할을 다시 묻는 논의가 제주에서 열렸다. 국가 간 공식 외교가 풀지 못하는 간극을 메우고, 정부와 민간, 지역과 국제기구, 포럼과 포럼을 잇는 실질적 협력 플랫폼으로 국제포럼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제주평화연구원은 24일 오후 해비치 호텔&리조트 제주 다이아몬드A에서 제21회 제주포럼 외교·안보 세션 '연결을 넘어 협력으로: 분열의 시대, 국제포럼의 역할 재구상'을 열었다.

제주평화연구원이 주관한 이번 세션의 공식 영문명은 'From Connection to Cooperation: How Global Forums Reinvent Collaboration in a Fragmented World'다. 한국어 세션명은 '연결을 넘어 협력으로: 분열의 시대, 국제포럼의 역할 재구상'으로, 대화와 교류의 장으로 기능해 온 글로벌 포럼이 실질적 협력을 이끄는 플랫폼으로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다뤘다.

세션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세계는 지정학적 경쟁, 공급망 불안, 기후위기, 에너지 안보, 지역 갈등이 겹친 복합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정부 간 공식 협상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포럼은 국가 정상과 관료, 전문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만나는 '중간지대 외교'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좌장은 김봉현 보다나은미래를위한 반기문재단 대외협력실장이 맡았다. 김 실장은 주호주대사와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 유엔 차석대사,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한국 측 셰르파를 지낸 다자외교 전문가다. 제주평화연구원장을 지낸 경험도 있어 제주포럼의 정체성과 국제협력 의제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토론에는 장진 보아오포럼 사무총장, 피터 그르크 슬로베니아 외교부 블레드전략포럼 사무총장, 김희은 아시아태평양전략센터 대표, 구도 야스시 겐론NPO 대표, 오영진 코리아타임스 사장이 패널로 나섰다. 유럽과 아시아의 대표적 국제포럼 운영자, 한·일 민간외교 전문가, 아태 안보 전문가, 언론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21회 제주포럼 외교·안보 세션에 참여한 주요 토론자들. 김봉현 보다나은미래를위한 반기문재단 대외협력실장이 좌장을 맡고, 장진 보아오포럼 사무총장, 피터 그르크 슬로베니아 외교부 블레드전략포럼 사무총장, 김희은 아시아태평양전략센터 대표, 구도 야스시 겐론NPO 대표, 오영진 코리아타임스 사장(왼쪽부터)이 패널로 참여했다. /사진=제주평화연구원 제공
제21회 제주포럼 외교·안보 세션에 참여한 주요 토론자들. 김봉현 보다나은미래를위한 반기문재단 대외협력실장이 좌장을 맡고, 장진 보아오포럼 사무총장, 피터 그르크 슬로베니아 외교부 블레드전략포럼 사무총장, 김희은 아시아태평양전략센터 대표, 구도 야스시 겐론NPO 대표, 오영진 코리아타임스 사장(왼쪽부터)이 패널로 참여했다. /사진=제주평화연구원 제공

논의의 출발점은 다자주의의 위기였다. 장진 사무총장은 강대국 간 대립과 분열이 커지는 상황에서 연대와 협력,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호주의와 일방주의, 힘의 정치가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경계하면서 국제포럼이 신뢰를 만들고 협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봤다.

장 사무총장은 국제포럼이 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보아오포럼이 청년 리더십 훈련, 인공지능(AI), 녹색전환, 에너지 전환 프로그램 등을 추진한 사례를 소개하며 포럼이 구체적 사업과 실행 과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포럼의 가치는 선언문보다 실제 협력사업으로 이어질 때 커진다는 취지다.

피터 그르크 사무총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다자주의 체제가 약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질서가 규칙보다 힘의 논리에 더 크게 좌우되는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으며, AI 같은 신기술은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 간 권력 관계까지 바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르크 사무총장은 유럽연합(EU)의 경험을 들어 다양한 정치·사회·문화 체계를 가진 국가들도 대화와 타협, 협력을 통해 공동질서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존 다자주의 체계를 그대로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 글로벌 사우스와 새로운 행위자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국제 거버넌스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국제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아이디어 부족이 아니라 실행 부족이라고 짚었다. 기후위기, 안보 불안, 기술 변화에 대응할 방향은 이미 상당 부분 논의됐지만, 이를 실제 정책과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전략포럼의 역할도 다양한 관점을 모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동 대응을 만드는 방향으로 넓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은 대표는 국제포럼의 연결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대표는 정부와 기업, 학계, 시민사회가 각자의 시각만으로는 복합위기를 풀 수 없다고 봤다. 서로 다른 행위자들이 만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관점을 배우는 과정에서 협력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김 대표가 주목한 지점은 '포럼 간 단절'이다. 비슷한 의제를 다루는 국제회의들이 같은 참가자와 비슷한 결론을 반복하면서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면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다. 그는 국제포럼의 다음 과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포럼과 포럼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목은 제주포럼의 향후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제주포럼이 동북아 평화, 인도태평양 협력,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AI 거버넌스 같은 의제를 다루고 있다면, 다른 국제포럼과의 연계 구조를 통해 논의 결과를 공유하고 후속 협력으로 이어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24일 해비치 호텔&리조트 제주 다이아몬드A에서 열린 제21회 제주포럼 외교·안보 세션에서 패널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참석자들은 분열의 시대 국제포럼의 역할과 실질적 협력 플랫폼으로의 전환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제주평화연구원 제공
24일 해비치 호텔&리조트 제주 다이아몬드A에서 열린 제21회 제주포럼 외교·안보 세션에서 패널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참석자들은 분열의 시대 국제포럼의 역할과 실질적 협력 플랫폼으로의 전환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제주평화연구원 제공

구도 야스시 대표는 일본과 중국 사이의 민간 대화 경험을 바탕으로 민간외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도쿄-베이징 포럼과 한일 미래대화 등 트랙2 외교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정부 간 관계가 경색될수록 시민사회와 싱크탱크, 민간 포럼이 대화의 공간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도 대표는 협력이 반드시 같은 가치와 입장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행위자라도 전쟁 방지, 지역 안정, 기후위기 대응, AI 관리처럼 공동의 과제에 대해 책임을 나누는 데서 협력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상황이 바뀌어도 사람 사이에 쌓인 신뢰는 대화 채널을 다시 열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봤다.

동아시아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 발언은 무게가 있다. 한·일, 중·일, 한·중 관계는 역사 문제와 안보 갈등, 경제 경쟁이 겹치며 수시로 흔들린다. 정부 간 대화가 막힐 때에도 민간 포럼과 전문가 네트워크가 최소한의 신뢰를 유지하면 위기관리와 협력 재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오영진 사장은 국제포럼이 논의만 많고 실행은 약하다는 비판을 인정하면서도 AI가 국제포럼의 새 의제가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그는 AI가 전쟁, 감염병, 기후위기, 미중 경쟁 못지않게 국제질서의 권력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진단했다.

질의응답에서도 포럼의 실행력과 연결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보아오포럼이 아시아 경제통합과 지속가능발전 의제를 확산해 온 경험, 유럽 안보질서 재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과 통합 억제, AI 윤리 논의, 민간 포럼의 위기관리 기능 등이 논의됐다.

이번 세션은 제주포럼의 위상과도 맞닿아 있다. 제주포럼은 그동안 평화와 공동번영을 주제로 동북아와 인도태평양, 글로벌 이슈를 논의해 왔다. 그러나 국제질서가 더 복잡해진 만큼 포럼의 역할도 단순한 의제 제시에서 실행 가능한 협력 설계로 확장돼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제주가 가진 지정학적 상징성도 세션의 의미를 더했다. 제주는 냉전과 분단, 평화와 공존의 의제가 함께 축적된 공간이다. 제주포럼이 단순한 국제회의를 넘어 아시아와 유럽, 정부와 민간, 기술과 안보를 잇는 협력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다면 '평화의 섬' 제주의 외교적 활용도 역시 넓어질 수 있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국제포럼이 더 많이 열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포럼이 지식을 모으고, 사람을 연결하고, 신뢰를 쌓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 행동과 정책 협력으로 이어질 때 분열의 시대에 필요한 실질적 외교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기자 정보

#지정학적 분열 #복합위기 #국제포럼 #실행 협력 #제주평화연구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