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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외치고, 걸레 비틀고, 하늘 읽는다…한국 개념미술의 질문들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김차섭 '바른 방향(삼부작)'. 갤러리현대 제공
김차섭 '바른 방향(삼부작)'. 갤러리현대 제공
김용익 '무제', 국제갤러리 제공
김용익 '무제', 국제갤러리 제공
김순기 '비데 & 오 함부르크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순기 '비데 & 오 함부르크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범 '풍경 #1', 작가 제공
김범 '풍경 #1', 작가 제공
곽덕준 '4개의 시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곽덕준 '4개의 시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파이낸셜뉴스] "여기", "저기", "거기"를 반복해 외치는 퍼포먼스는 어떻게 작품이 될까. 걸레를 비틀고 접는 단순한 몸짓은 왜 예술이 되고, "이 푸른 하늘을 보라"는 한 줄의 문장은 어떻게 풍경을 대신할까.
익숙한 언어와 사물, 몸의 움직임을 통해 한국 개념미술이 던져온 질문들을 풀어내는 전시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다. 특히 눈으로 감상하는 미술에서 생각하는 미술로 넘어간 1970~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집약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10월 11일까지 서울관 6·7전시실과 미술관마당에서 이번 전시를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공성훈, 곽덕준, 김구림, 김범, 김순기, 김소라, 김용민, 김용익, 김홍석, 박이소, 박현기, 성능경, 안규철, 오인환, 윤동천, 이건용 등 28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회화, 사진, 영상, 오브제, 퍼포먼스, 아카이브 등 140여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언어·논리·행위', '사물과 언어', '지도와 측정', '기호의 조정자들' 등 네 개의 주제로 한국 개념미술의 흐름을 따라간다. 서구 개념미술이 작품의 물질성을 지우고 언어와 개념 자체에 주목했다면, 한국은 언어와 신체, 사물과 현실을 함께 다루며 독자적인 개념미술을 만들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가장 먼저 만나는 '언어·논리·행위'에서는 몸 자체가 하나의 언어가 된다. 이건용의 '장소의 논리'는 바닥에 원을 그린 뒤 "여기", "저기", "거기"를 반복하며 장소가 공간이 아니라 신체와 언어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김용민은 '물걸레'에서 걸레를 비틀고 털고 접는 행위를 집요하게 반복해 노동을 예술적 사건으로 전환했다. 윤진섭의 '어법'은 입 모양과 물로 쓴 글자를 통해 언어가 몸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환기했다. 코디최는 분절된 신체를 상자에 가두는 퍼포먼스로 디아스포라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시각화했다.

'사물과 언어'에서는 언어가 세계를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안규철의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은 삶과 예술 사이에서 길을 찾는 예술가의 고민을 설치작업으로 풀어냈고, 김범의 '풍경 #1'은 풍경 대신 "이 푸른 하늘을 보라", "이 나무들을 응시하라"는 문장만 남겨 관람자의 상상 속에서 작품을 완성하게 했다.

박현기의 '무제'는 인간과 돌의 경계를 허물었고, 박이소의 '자본=창의력'은 번역의 순서를 뒤집어 자본과 창의성의 관계를 날카롭게 비틀었다. 김홍석의 '하나이자 셋인 친구'는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친구'를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주며 언어의 한계를 짚는다.

세 번째 공간에서는 지도와 시계, 계량기처럼 객관적이라 믿어온 기준을 흔든다. 성능경은 세계지도를 수백 조각으로 해체해 다시 배열하며 세계 질서가 하나의 관습일 뿐임을 드러냈다. 김차섭은 거꾸로 뒤집은 한반도 지도로 서구 중심의 시각을 전복했고, 곽덕준은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는 네 개의 시계를 통해 시간 역시 사회가 만든 약속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박이소의 '드넓은 세상'은 낯선 도시 이름만 남긴 세계지도로 세계와 장소의 의미를 다시 물었다.

마지막 '기호의 조정자들'은 신문과 광고, 사진 등 이미 존재하는 기호를 새롭게 읽는다. 성능경은 신문 편집기호를 재배치해 미디어가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비틀었고, 윤동천은 관람객이 직접 메시지를 쓰는 참여형 작업으로 예술과 사회의 경계를 허물었다.

오인환은 신문 개인광고 형식을 통해 정체성과 소통을 이야기했고, 김홍석은 인터뷰와 자막을 엇갈리게 배치해 언어가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드러냈다. 김소라는 하루치 신문을 해체해 현실의 정보를 새로운 서사로 재구성한다.

전시 제목에 붙은 '(아니)'는 개념미술을 하나의 정의로 묶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작품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남기고, 관람자는 그 질문을 따라가며 작품을 완성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개념미술이 언어와 몸, 사물과 기호를 통해 현실을 어떻게 새롭게 바라봤는지 조명한다. 익숙한 미술 감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경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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