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머니 무브'의 그림자
"정말 적금 해지하시겠습니까?"
입사 후 매월 붓던 적금을 깨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1분 남짓이었다. 중도해지 이율이 적용된다는 경고문구도, 만기까지 남은 시간을 다시 알려주는 알림창도 그 순간만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적금을 깬 계기는 거창하지 않았다. 은행이 수신금리를 0.1~0.2%p 올린다는 기사를 쓰던 차였다. 같은 날 반도체주 주가 전망치가 줄줄이 상향 조정되며 '400만닉스·50만전자'를 예측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몇달 동안 돈을 묶어 얻는 이자와 단기간에 몇배씩 뛰는 주식 수익률 사이의 괴리감이 거대한 벽처럼 다가왔다.
은행권에서 말하는 '머니 무브'가 무엇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은행에서 수억원을 증시로 옮기는 자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월 넣던 적금을 중도해지하고, 만기가 된 예금을 다시 은행에 묶지 않은 채 증권사 앱을 들여다보는 평범한 직장인의 선택이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머니 무브가 보여주는 조급함이 다음 단계인 빚투(빚내서 투자)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상승장이 길어질수록 내 돈만 굴려선 주변의 화려한 수익률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때부터 대출을 받고 마이너스통장을 뚫는 일이 기회를 잡기 위한 '레버리지'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다. 실제 지난 23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08조6770억원으로 19일(107조6932억원)과 비교해 4일 새 1조원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마이너스통장 잔액도 43조3000억원을 넘어서며 연일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며 빚투 브레이크를 밟고 있지만 시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이 아니면 놓친다"는 불안심리를 자극해 카드론 등 고금리 상품으로 수요가 몰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의 대출한도 제한은 투자자들에게 '막차 안내방송'처럼 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시장은 속도전에 들어갔다. 옆 사람이 뛰니 나도 뛰고, 문이 닫힌다니 일단 몸부터 던지고 보는 식이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선로가 안전한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열차에 몸을 맡기는 형국이다. 대출 문턱을 높이는 일방적 규제만으로는 이 뜨거운 수요를 잠재우기 어렵다. 또 다른 대출 우회로를 찾게 만드는 풍선효과를 낳을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규제의 벽을 넘은 빚이 어디로 숨어들고 쏠리는지 그 위태로운 종착지를 추적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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