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한강의 품격

파이낸셜뉴스
안승현 전국부장
안승현 전국부장

서울 사람들은 한강을 건너기만 했다. 다리 위를 달리는 자동차 차창으로 강을 흘끗 내려다볼 뿐, 그 물 위에 올라타 본 일은 없었다. 출퇴근길마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위를 시속 80㎞로 내달리며, 사람들은 한강을 풍경이 아니라 정체구간으로 기억한다.

강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장엄한 물줄기였지만 동시에 도시를 남과 북으로 갈라놓는 거대한 장벽이다. 한강은 여름마다 다스려야 할 치수의 대상이고, 양쪽에 도로를 깔기 좋은 둔치였으며, 다리를 몇 개 더 놓아야 할 교통의 빈틈이었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대도시 가운데 이만한 강을 도시 한복판에 끼고 있는 곳은 드물다. 그런데 그 귀한 강을 가장 푸대접한 도시가 서울이 아니었을까.

강을 손본다는 것은 늘 강을 가두는 일이었다. 둔치를 콘크리트로 두르고, 고수부지를 주차장과 운동장으로 메우고, 물길을 곧게 펴 빠르게 흘려보내는 것. 홍수를 막고 길을 내는 데는 요긴했지만 한강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 가는 곳이 됐다. 강에 다가가려면 복잡한 자동차도로부터 건너야 했다. 그렇게 서울은 강을 가까이 두고도 가장 멀리 사는 도시가 됐다.

서울시가 '한강버스' 계획을 발표했을 때 수많은 비판이 날아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서울 시민에게 한강은 어디까지나 '바라보는' 강이었지 '타는' 강이 아니어서다. 그런데 올해 한강버스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운항을 재개한 봄부터 이용객이 다달이 불었다. 지난해 9월 정식 운항을 개시한 한강버스는 올해 정원박람회로 몰리는 이용객을 실어 나르면서 드디어 누적 이용객이 40만명을 돌파했다. 한번 타본 사람 열에 아홉은 또 타겠다고 했고, 만족한다는 응답이 100명 중 96명꼴이었다.

세금 낭비라던 한강버스 사업은 서울시장 선거의 표심까지 갈랐다. 꾸준히 늘어나는 이용객 숫자 앞에서 공세는 슬그머니 잦아들었다. 서울의 유권자들은 결국 발로 투표한 셈이다.

강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콘크리트 교각은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비로소 그 위용을 드러내고, 강변의 빌딩 숲은 물에 거꾸로 잠겨 한 번 더 솟는다. 해 질 무렵이면 강물은 도심의 불빛을 받아 길게 일렁이고, 다리마다 켜진 조명이 수면 위에 두 번째 도시를 짓는다. 물살을 가르며 다리 밑을 지날 때, 매일 그 위를 건너기만 하던 도시가 문득 낯설고 새롭게 다가온다.

강을 가진 도시가 강물 위에 시민들을 올리는 일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런던의 템스강에는 '클리퍼'라는 수상버스가 다닌다. 지하철·버스와 같은 교통카드로 그냥 올라타면 되니, 시민들은 출근길 정체를 피하려 당연하다는 듯 배를 탄다. 파리의 센강에는 '바토뷔스'가 다닌다. 사방이 유리로 트인 배가 루브르며 에펠탑이며 도시의 명소만 골라서 잇고, 승객은 이동하는 내내 물 위에 떠서 파리를 즐긴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란 전기배는 매연도 소음도 없이 운하를 미끄러진다. 자전거를 그대로 싣고 탈 수 있어, 깨끗한 도시라는 그 나라의 자부심을 닮았다. 런던은 실용을, 파리는 예술을, 코펜하겐은 친환경을 자기들의 강물 위에 그대로 투영했다. 도시가 가진 고유의 빛깔을 강에 입힌 것이다.

강 위에 길을 여는 일은 새 교통수단 하나를 보태는 것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 완성하는 고도의 작업이다. 이제 서울 시민들도 그 정도 품격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한강버스가 대단한 명물이라고 추켜올리는 말이 아니다. 배 한 척으로 도시의 격이 단숨에 올라가지도 않는다. 다만 100년을 등지고 건너기만 하던 강 위에 비로소 사람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가치 있는 변화다. 런던도 파리도 아닌, 서울만의 빛깔을 강물 위에 입히는 일은 이제부터다. 적어도 그 물 위에 한번 올라본 사람이라면, 세금이 아깝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ahnma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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