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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남방큰돌고래, '대한민국 1호 생태법인' 될까… 세계 생태평화 모델 논의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제주포럼서 생태법인 글로벌 네트워크 세션
멕시코 자연권 법제화 사례 공유
송호영 "제주도 전체 생태법인화도 검토 가능"
진희종 "제주발 생태법인, 지구촌 메시지 돼야"
청소년 서포터즈 3139명으로 확산
박태현 "서포터즈를 가디언으로 키워야"
제주, 생태수도 위상 높일 제도화 과제 부상

제21회 제주포럼 ‘생태법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생태 평화’ 세션에서 참석자들이 생태법인 제도화와 국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제21회 제주포럼 ‘생태법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생태 평화’ 세션에서 참석자들이 생태법인 제도화와 국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대한민국 1호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려는 논의가 국제 생태평화 의제로 확장되고 있다. 자연을 보호 대상에 머물게 할 것인지, 아니면 권리 주체로 인정해 법적 대리와 책임 구조를 부여할 것인지를 놓고 제주포럼에서 법학자와 외교관, 청소년 활동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제주특별자치도 해양수산국 해양산업과는 26일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생태법인(Eco Legal Person)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생태 평화' 세션을 열었다.

이번 세션은 제주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지정 논의를 국내 제도화 과제와 국제 협력 의제로 함께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생태법인은 인간이나 기업처럼 자연·생태계에 일정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이를 대신해 권리를 주장할 대리인이나 후견인을 두는 개념이다. 자연을 행정의 관리 대상이나 개발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인간과 함께 공존해야 할 권리 주체로 바라보는 접근이다.

세션은 신정환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마르코 벨트란 주한멕시코대사관 참사관, 송호영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호준 한국국제학교(KIS) 학생이 발표자로 나섰다. 토론에는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희종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원장 등이 참여했다.

마르코 벨트란 주한멕시코대사관 참사관이 26일 제주포럼에서 멕시코의 자연권 법제화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마르코 벨트란 주한멕시코대사관 참사관이 26일 제주포럼에서 멕시코의 자연권 법제화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첫 발표자로 나선 마르코 벨트란 참사관은 멕시코의 자연권 법제화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멕시코 원주민 세계관에서 자연은 인간이 소유하는 물건이 아니라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살아 있는 존재로 이해돼 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인식이 연방헌법과 각 주의 제도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벨트란 참사관은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고 짚었다. 생태계 훼손은 한 번 발생하면 되돌리기 어렵고, 피해가 누적되는 특성이 있다. 또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는 것만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곧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며, 자연을 대신할 후견인을 누가 맡고 누가 감시할 것인지도 중요한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송호영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6일 제주포럼에서 생태법인 제도화의 법리적 쟁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송호영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6일 제주포럼에서 생태법인 제도화의 법리적 쟁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송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인 개념의 역사와 생태법인의 가능성을 법리적으로 풀어냈다. 송 교수는 "사단법인과 재단법인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법인 개념이 인간 중심의 권리 체계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동물권, 자연권 논의가 커지면서 인간이 아닌 존재에 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다고 봤다.

송 교수의 발표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제주도 전체의 생태법인화' 가능성이다. 그는 "생태법인을 제도화하려면 법인으로 인정할 수 있는 독자성과 외부에 알릴 수 있는 공시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정 생물종이나 개별 생태계보다 제주도라는 섬 전체는 지리적 독자성과 공시성을 비교적 분명하게 갖고 있어 새로운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송 교수는 "생태법인 제도화가 조례만으로는 어렵고 특별법 차원의 근거가 필요하다"고 봤다. 제주도가 생태법인으로 인정될 경우 누가 제주를 대리할 것인지,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생태법인이 단순한 자연보호 구호에 머물지 않으려면 기존 법체계 안에서 정교한 논리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준 한국국제학교 학생이 26일 제주포럼에서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서포터즈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이호준 한국국제학교 학생이 26일 제주포럼에서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서포터즈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청소년 발표자로 나선 이호준 한국국제학교 학생은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서포터즈 활동을 소개했다.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서포터즈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대한민국 1호 생태법인으로 지정하자는 취지로 결성된 자발적 시민 참여 모임이다.

이호준 학생은 "서포터즈가 해안 정화 플로깅, 플라스틱 줄이기, 윤리적 생태관광 캠페인, SNS 홍보,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남방큰돌고래 보호 필요성을 알려 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2025년 2월 발대식 당시 117명이던 서포터즈가 8개월 만에 1300명을 넘었고, 올해 5월에는 3000명을 돌파해 현재 3139명까지 늘었다고 밝혔다.

이호준 학생은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폐어구와 선박, 해양오염, 서식지 훼손 등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때 자유롭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멋있게만 봤지만, 자라면서 낚싯줄과 환경 문제로 고통받는 돌고래들의 현실을 알게 됐다"며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돌고래를 지켜야 할지 더 분명한 비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6일 제주포럼에서 자연권 논의와 생태법인 제도화 과제를 토론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6일 제주포럼에서 자연권 논의와 생태법인 제도화 과제를 토론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토론에서는 생태법인을 실제 제도로 옮기기 위한 조건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의 자연권 논의가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준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제주에서 시작된 생태법인 논의가 순천, 진주, 경기, 서울 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면 한국 사회가 더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청소년 서포터즈 활동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서포터즈를 가디언으로 만들고 싶다"며 "남방큰돌고래나 곶자왈 같은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미래세대 대표로 참여할 수 있는 공적·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생태법인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진희종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원장이 26일 제주포럼에서 제주 생태법인 논의의 의미와 확산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진희종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원장이 26일 제주포럼에서 제주 생태법인 논의의 의미와 확산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진희종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원장은 생태법인 개념이 제주 내부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진 원장은 "제주가 생태수도와 환경수도를 말하려면 외부 사례를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제주 안에서 만들어낸 제도와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생태법인이 특정 생물 한 종을 보호하는 제도에 머물지 않고 여러 생태계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개념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 원장은 청소년 세대의 생태 감수성에도 주목했다. 기성세대와 달리 청소년들은 기후위기와 동물, 생태계의 고통을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러한 감수성이 생태법인 논의를 확산시키는 중요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논의는 아직 제도화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세션은 제주가 단순히 자연보호 정책을 강화하는 수준에서 자연의 권리와 생태평화, 국제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새로운 의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21회 제주포럼 ‘생태법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생태 평화’ 세션이 26일 해비치호텔&리조트 제주에서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은 제주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제도화와 자연의 권리, 미래세대 참여를 통한 생태평화 확산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제21회 제주포럼 ‘생태법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생태 평화’ 세션이 26일 해비치호텔&리조트 제주에서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은 제주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제도화와 자연의 권리, 미래세대 참여를 통한 생태평화 확산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핵심은 앞으로의 설계다.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할 법적 근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후견인 또는 대리인 제도를 누가 맡을 것인지, 행정과 시민사회, 청소년 서포터즈가 어떤 방식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제주가 이 과제를 제도적으로 풀어낸다면 남방큰돌고래 보호를 넘어 세계 자연권 논의에 참여하는 생태평화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제주포럼에서 생태법인이 외교·법제·시민참여 의제로 다뤄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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