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살아서 뭐하냐. 불 질러 죽어라" 환청이 부른 다세대주택 참극 [사건실화]

김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환청 들은 49세 남성, 다세대주택 방 안 이불에 불 질러
82세 아버지 숨지고 고령 이웃 2명도 피해
조모 살해 후 치료감호 종료 뒤 또 참극...法 "재범 위험성"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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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죽어라. 살아서 뭐하냐. 불을 질러서 죽어라."
40대 남성 구모씨는 평소 이런 환청에 시달렸다. 그리고 어느 겨울 오후, 방 안에 있던 이불에 라이터를 갖다 댔다. 작은 불씨 하나는 순식간에 다세대주택을 뒤덮었다. 함께 살던 82세 아버지는 끝내 목숨을 잃었고 같은 건물에 살던 이웃 주민 2명도 유독가스에 중독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고충정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현주건조물방화치사·현주건조물방화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모씨(49)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하고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구씨는 서울 강동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아버지 구모씨(82)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건물에는 구씨를 포함해 총 10가구, 22명이 거주 중이었다.

범행은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3시30분께 벌어졌다. 당시 구씨는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방 안에 있던 이불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길은 벽면을 타고 집 안 전체로 번졌고, 발생한 열기와 연기는 다세대주택 내부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가장 먼저 화를 입은 사람은 안방에 있던 아버지였다. 구씨의 아버지는 연기와 열기에 노출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약 3주 뒤인 지난 1월 20일 결국 호흡곤란으로 숨졌다. 같은 건물에 살던 고모씨(85)는 일산화탄소 독성으로 약 2주 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으며 한모씨(78)도 일산화탄소 중독 피해를 입었다.

구씨의 환청 증세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앞서 구씨는 2000년경부터 환청과 피해망상 증세로 조현병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던 중 2014년에는 "조모를 죽이라"는 환청을 듣고 조모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 구씨는 이 사건으로 2015년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존속살해죄가 인정돼 징역 3년6개월과 치료감호를 선고받았다.

그는 이후 2016년 6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치료감호시설에서 생활했으며 치료감호가 종료된 뒤에도 병원에서 조현병 치료를 계속 받아왔다.

그러나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증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법원은 구씨가 여러 차례 입·퇴원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약물 복용을 중단해 증상이 악화되는 일이 계속됐다고 판단했다. 구씨는 지난해에도 편집조현병 진단 아래 입원 치료를 받았으며 담당 의사는 피해망상과 환청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회적 위축과 무관심, 무기력, 현저한 인격 변화로 일상생활에 많은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소견을 냈다. 이후에도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또다시 범행에 이르렀다.

범행 직후 구씨는 출동한 경찰관에게 "자살을 하려고 라이터로 이불에 불을 붙여 불이 났다. 힘들어서 그랬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범행으로 피해를 입은 같은 건물 주민도 "평소 구씨의 걸음걸이나 전반적인 분위기가 정신적으로 정상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방화범죄는 공공의 안전을 해치고 다수의 생명과 재산에 중대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범죄로 사회적 위험성이 매우 크다"며 "이 사건은 다가구주택 한 세대에서 시작된 불이 함께 생활하던 아버지의 사망과 이웃 주민들의 상해라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고, 더 심각한 인명 및 재산 피해로 이어질 위험성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으며 피해 회복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구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있으며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 또 구씨의 형과 동생 내외가 치료를 도울 의사를 보이지 않는 등 출소 후 치료를 이어갈 지지 기반이 부족한 점을 고려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 치료감호를 함께 명령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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