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화려한 '블루푸드테크' 돛, 근간 수산업 거친 바다를 보라
최근 부산의 수산정책을 바라보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실감하게 된다.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와 감천국제수산물도매시장 확충, 감천 수산물 수출가공선진화단지 구축 등 대규모 하드웨어 중심의 기반시설 고도화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에 더해 인공지능 전환(AX) 실증산단 조성, 피지컬 AI를 활용한 제조공정 자동화, 콜드체인 디지털 전환, 첨단 '블루푸드테크' 산업 육성과 글로벌 블루푸드 수출거점 조성까지 미래 청사진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수산기자재산업 육성센터 구축, 블루푸드 국가연구기관 유치, 국가해양생태공원 조성에 이르기까지 나열된 사업들은 하나같이 부산 수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중차대한 과제들임이 틀림없다.
기술의 대전환기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이와 같은 선제적인 투자와 정책 구상은 매우 고무적이며,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웅장한 돛을 올리고 거친 바다로 나아가는 거함(巨艦)의 조타수일수록 때로는 돛대 끝 높은 곳에 올라 전체 바다를 넓고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화려한 첨단 인프라와 디지털 신기술이라는 상부 구조에 마음을 뺏겨 정작 그 배를 떠받치고 있는 기초 생태계의 균열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차분하게 거시적 시야를 확보해야 할 때다.
■ 부산 수산업 두 기둥, 대형선망과 부산어묵 현실
현재 부산을 대표하는 수산업의 두 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연근해어업의 핵심인 대형선망·기선저인망 어업과 지역 대표 식품산업인 '부산어묵'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업종이 지역 경제와 고용, 식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화려한 첨단 정책의 중심부에서 정작 이들이 맞닥뜨린 혹독한 현안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세밀한 숨통 터주기는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는 아쉬움이 깊다.
지난 어기 부산 기반의 대형선망어업은 2011년 이후 최고의 어획 실적을 기록하며 오랜 침체 끝에 천금 같은 숨통을 틔웠다. 어장이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조업지까지의 거리가 단축됐다. 이는 유류비 부담 경감이라는 경영상 호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현장의 어업인들은 이러한 일시적 호황에 안도하기보다 다가올 내일을 더 걱정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어장 이동이 일시적 보너스에 그칠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 변화일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등어 어장의 지속적인 동편 이동은 향후 인접 지자체와 다른 업종과의 새로운 조업 분쟁을 야기할 불씨를 안고 있다.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둘러싼 국제적 긴장 속에서 조업 구역의 불확실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한 번의 어기 호황으로 감당하기에는 연근해 조업 환경의 구조적 리스크가 너무나 무겁다.
■ 90% 수입 의존과 글로벌 자본 틈바구니에 갇힌 K-푸드 아킬레스건
다른 한 축인 부산어묵의 사정은 더욱 절박하다. 부산에는 30여개 어묵 업체가 모여 대한민국 전체 어묵 생산량의 5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지역 내 총생산(GRDP) 규모만도 5000억원을 넘어선 고부가가치 효자 산업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산업의 이면에는 '원료 연육의 안정적 수급'이라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도사리고 있다.
과거 연근해에서 풍부하게 조달받던 국내산 어육 원료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현재 부산어묵산업은 원료의 90%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몇 년 사이 동남아시아 연육 시장의 물류와 유통 공급망은 거대한 중국 자본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됐다. 가격과 공급량의 헤게모니를 쥔 중국 자본의 의사결정에 따라 국내 업체들은 협상력을 잃고 끌려다니는 처지다.
그렇다면 고급 어묵의 주원료가 되는 북태평양 명태 연육 시장은 어떠한가. 미국과 캐나다, 러시아 등 주요 생산국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협약이라도 맺은 듯 등가성의 높은 가격대를 고수하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환율 변동성까지 겹치면서 수입 단가는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국내산 원료의 고갈, 동남아 시장을 장악한 중국 자본, 북미·러시아의 독과점적 가격 고수라는 3중고 속에서, 수입 연육은 이제 전 세계적인 양식용 사료 수요와도 경쟁하는 구조가 됐다. 원료 확보 전쟁 속에서 지역 기업들의 경영 위기는 이미 임계점에 달했다.
■ 기초가 무너지면 첨단 기술이 설 자리는 없다
우리는 이제 균형 잡힌 시각과 전체 업종을 아우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수산식품산업의 고부가가치화,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DX)을 넘어선 AI·AGI 시대의 대응, 그리고 블루푸드테크 생태계 조성은 모두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이다. 이러한 첨단 기술과 거창한 청사진이 들어설 토양이 되는 근간 산업 즉, 잡고 기르는 연근해어업·양식산업과 이를 가공하여 세계적 브랜드로 키워낸 부산어묵산업이 원료 고갈과 경영난으로 무너진다면 그 위에 세워질 디지털 대전환과 블루푸드테크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뿌리가 마른 나무에 화려한 인공지능 꽃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연근해 생산량 80만톤 언저리에서 정체된 어업 현실과 원료의 대부분을 해외에 저당 잡힌 부산어묵산업의 위기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애로사항이 아닌 부산 수산업 전체의 생존이 걸린 구조적 위기다. 인프라 확충 속도에 발맞추어, 근간 산업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이고 유연한 정책적 대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정부에 다각적인 연육 관세 인하와 할당관세 확대를 건의해 긴급한 원가 부담을 낮추어 주는 섬세한 지원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아가 특정 국가에 편중된 연육 공급망을 다변화할 수 있도록 외교적·정책적 루트를 개척하고, 장기적으로는 해외 원료 기지를 공동 확보하거나 대형선망 등 국내 연근해 어획물을 고도화된 기술로 가공해 대체 원료화하는 '상생형 자급 생태계' 구축에 예산과 정책을 투입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을 위한 AX 실증 예산 중 일부라도 현장 기업들이 당장 직면한 원료 수급 리스크 관리와 물류 효율화에 유연하게 전용될 수 있도록 정책의 칸막이를 허물 필요가 있다.
생산과 가공, 첨단 기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도는 '공생 구조'를 만드는 것만이 부산 수산업이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거창한 청사진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발밑의 진흙탕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부산 수산 정책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가장 기초적이고 본질적인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균형있게 내놓기를 기대한다.
임정현 부산대학교 미래선도과학자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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