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檢, '14조 유가 담합' 정유 4사 기소[종합]
전쟁 직후 가격 '인상 시기·폭' 담합…검찰 "26조원 경쟁제한 효과"
"우리 올해 2조 벌 듯" 내부 대화 확보…전량구매계약·증거인멸도
[파이낸셜뉴스]국내 정유시장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유 4사가 미국·이란 전쟁 직후 석유제품 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담합해 14조원대 규모의 유가를 교란한 혐의로 무더기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정유사 두 곳이 가격을 직접 담합했고, 나머지 두 곳이 이를 추종하는 방식으로 가담해 시장 전체에 26조원 상당의 경쟁 제한 효과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6일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법인과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장 A씨, 책임매니저 B씨, 법무실장 C씨, GS칼텍스 국내영업부문장 D씨를 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A씨는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직접 담합 규모를 약 14조2000억원,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추종 행위까지 포함한 경쟁 제한 효과는 약 26조원으로 산정했다.
수사 결과 핵심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가격 결정 책임자들의 '밀실 합의'였다. 검찰은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후 SK에너지가 HD현대오일뱅크보다 리터당 30~40원 높은 수준으로 가격을 올리는 방식에 합의했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이를 그대로 따라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파악했다. 당시 국내 정유시장은 두 회사가 먼저 담합가격을 정하면 나머지 두 회사가 이를 추종하는 구조였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은 이번 담합이 전쟁 직후 일시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이미 수년간 이어져 온 가격 정보 교환 관행의 연장선이라고 판단했다.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2024년 7월부터 가격 정보를 상시 공유하며 입금가를 결정해왔고, 전쟁이라는 국제적 위기 상황을 계기로 노골적인 가격 담합을 도모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만성화된 담합 관행이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 내부 메신저와 회의록도 확보했다. GS칼텍스 단체 대화방에서는 한 직원이 "우리는 독자적으로 줏대 있게 한다면서요"라고 묻자 다른 직원이 "줏대 없어유"라고 답했다. 에쓰오일에서는 "오늘 아침에 HD현대오일뱅크 가격 나온 거 보고 도저히 안 되겠어서 추가로 고고싱", "오늘 가격 102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 벌 듯",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라는 대화가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경우 가격을 추종한 '의식적 병행행위'는 인정되지만 직접적인 가격 합의 증거는 확인되지 않아 가격 담합 혐의로는 기소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정유업계의 고질적인 거래 구조로 지적돼 온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도 함께 문제 삼았다.
정유 4사가 자영주유소와 전량구매계약을 체결한 뒤 일방적으로 통보한 가격에 따라 자사 제품만 구매하도록 강제하고, 이를 위반하면 거액의 손해배상이나 보너스카드 중단 등의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거래 구조 때문에 주유소들이 더 저렴한 유통 경로를 선택하지 못했고, 결국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실제 확보된 정유사 내부 메신저에는 "(다른 폴로) 못 가요. 가는 순간 손해배상 아작 납니다", "소송으로 골탕 먹여야 한다"는 취지의 대화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현장조사 계획을 미리 파악한 뒤 가격 관련 메신저와 자료를 삭제하는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를 주도한 인원 2명을 공정거래법상 조사방해 등 혐의로 함께 기소했다. 또 정유회사 3곳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실제보다 낮은 공급가격을 허위 보고한 정황도 확인돼 관련 자료를 산업부와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HD현대오일뱅크 인원 3명을 기소했지만 SK에너지 인원은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협조 정도와 범행 가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지난 3월 23일 정유 4사와 대한석유협회를 압수수색한 뒤 약 3개월간 압수된 휴대전화 100여대를 분석하는 등 수사를 진행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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