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가 진단한 SK하이닉스…"AI 메모리 대표주, 진짜 시험대는 지금부터"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SK하이닉스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욕증시 나스닥에 데뷔했다. 첫날 주가는 13% 급등하며 시가총액 1조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265억달러(약 40조원)를 끌어모은 이번 상장은 알리바바가 2014년 세운 외국 기업 최대 IPO 기록(250억달러)까지 갈아치웠다. 월가와 외신은 일제히 "AI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새 국면"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가능성과 삼성전자·마이크론의 추격, 생산능력 확충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짚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건 실제 자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들이었다. 가벨리펀드의 헨디 수산토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SK하이닉스 주식을 이미 일부 매수했고, 주가가 조정을 받으면 추가 매수까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메모리 산업 특유의 경기 순환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지만, 2026~2027년 성장 로드맵만큼은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US뱅크 자산운용의 롭 호워스 선임 투자전략 책임자 역시 궤를 같이했다. 그는 SK하이닉스가 한국 증시에서 이미 입증한 상승세가 미국 상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고스란히 옮겨붙었다고 진단하면서, AI 성장 스토리가 앞으로는 반도체를 넘어 산업재·유틸리티 등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좀 더 큰 그림을 제시했다.
투자 접근성 자체를 상장의 핵심 가치로 꼽은 목소리도 있다. 재너스 헨더슨의 리처드 클로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로이터통신에 "이번 ADR 상장으로 한국 주식에 직접 투자할 수 없었던 미국·글로벌 투자자들이 세계 최고 HBM 기업에 처음으로 접근할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이미 한국 시장에 투자 중인 해외 투자자들에게도 미국 거래시간에 맞춰 매매할 수 있다는 점이 변동성이 큰 메모리 업종에서는 상당한 매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AI 금융분석업체 리플렉시비티의 주세페 세테 공동창업자는 더 나아가 SK하이닉스를 "미국 투자자들이 AI 메모리 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대형주"라고 규정했다. 다만 AI 성장 스토리의 힘으로 성사된 이번 상장과 달리 뒤따르는 기업들은 훨씬 까다롭고 선별적인 시장 환경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의 관심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여부로 옮겨갔다. 주피터자산운용의 샘 콘래드 아시아 배당주 투자매니저는 로이터통신에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 대비 PER 기준 할인 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최소한 마이크론과 동등한 밸류에이션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ADR 상장과 함께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 새로운 주주환원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고, SK하이닉스가 재평가되면 삼성전자 역시 구체적인 주주환원 계획을 내놓을 경우 동반 재평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의 펀드는 할인 폭이 더 큰 삼성전자 우선주를 담으며 SK하이닉스보다 삼성전자 비중을 더 크게 가져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레이트힐캐피털의 토머스 헤이스 회장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금이 몰린 투자 분야가 반도체인 만큼, 주관사들과 SK하이닉스가 그 수요를 정확히 겨냥해 높은 밸류에이션을 적극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뉴욕라이프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의 줄리아 헤르만 글로벌 시장전략가는 신규 주식 공급이 시장에서 가장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반도체 분야에 갈수록 몰리고 있다며, 이번 ADR 상장이 투자자들에게 반도체 업종 비중 확대를 사실상 요구하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미국 투자자 접근성과 기업가치 재평가에 대한 기대가 이어진 가운데 자금조달과 공급 경쟁을 둘러싼 보다 냉정한 진단도 나왔다.
S&P 글로벌 레이팅스의 지청 부국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IPO 자금이 향후 2년간 연 50~70조원에 달할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설비투자를 일부 뒷받침하겠지만, 대부분은 연 2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내부 영업현금흐름으로 조달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IPO 자금 조달 효과보다 미국 투자자 접근성을 확보했다는 상징성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경쟁 구도에 대한 경고도 잇따랐다. 신흥시장 전문 자산운용사 레일리언트의 필립 울 수석 포트폴리오매니저는 HBM 수요 급증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SK하이닉스가 오히려 '자기 성공의 희생양'이 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틈을 타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경쟁 제품 투자를 가속화하고 하이퍼스케일러들과 별도 공급계약을 맺으며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퓨처럼그룹의 롤프 벌크 반도체·인프라 부문장은 SK하이닉스가 HBM 최대 공급사 지위는 유지하겠지만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약 57%에서 올해 약 50%, 이후에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추격으로 40%대 초반까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결국 관건은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생산능력(캐파)이라며 현재 발표된 팹 증설 계획만으로는 2020년대 말까지 예상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외신에 등장한 전문가들의 시각을 종합하면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은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험대에 가깝다. 관건은 미국 투자자 접근성 확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주주환원 강화로 이어질지,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추격 속에서도 HBM 주도권을 지켜낼 생산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여부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