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으라 말하기 전에 삶부터 봐야죠" 100만 독자 사로잡은 황보름[인터뷰]
'휴남동 서점' 이후 4년 만의 신작
저출생·세대갈등 다뤘지만 "결국 사람을 얘기한 소설"
K문학 경쟁력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힘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왜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지, 그들의 삶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전 세계 50개국에 번역 출간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로 'K힐링소설'을 세계에 알린 황보름 작가(사진)가 4년 만에 두 번째 장편 '윗집 부부'를 내놨다. 저출생이라는 한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다루지만 그가 끝내 들여다본 것은 출산율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었다.
지난 3일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에서 만난 황 작가는 "이 작품을 쓸 때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고, 누가 옳고 그른지도 생각하지 않았다"며 "70대 노인과 젊은 부부를 만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작 '윗집 부부'는 저출생으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70대 남성 오경직이 윗집에 사는 젊은 부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노인은 부부의 고단한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조금씩 생각을 바꿔간다.
황 작가는 "70대 할아버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분들이 살아온 시대에는 결혼도, 아이를 낳는 것도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삶의 과정이었으니까요. 반대로 젊은 부부는 저출생 문제를 고민하는 인물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사람들이에요."
저출생을 소재로 삼게 된 계기는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이었다. 한 인구 전문가가 "합계출산율 1.3명 이하가 3년 이상 이어지면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한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낮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은 충격이었어요. 그 순간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떤 할아버지가 젊은 사람을 설득해 아이를 낳게 하려는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소설이 출산을 권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젊은 사람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를 설명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너무 바쁘게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는 부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묻게 되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과연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을까' 하고요."
첫 소설의 성공은 두 번째 작품을 쓰는 데 오히려 부담이 됐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전 세계 50개국에 번역 출간돼 누적 판매 100만부를 돌파했고 일본에서는 2024년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이날도 도쿄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에서 열린 'K-BOOK in TOKYO' 북토크에는 황 작가를 보기 위해 20~50대 일본 독자 50여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작가의 사인을 받으려는 긴 줄이 이어졌다.
황 작가는 "첫 작품이 예상보다 너무 큰 사랑을 받으면서 1년 반에서 2년 정도는 '내가 다시 소설을 쓸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휴남동'은 소설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던 시절,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음대로 썼던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사랑을 받으면서 오히려 다음 작품을 시작하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을 쓸 때는 오히려 모든 부담을 내려놓기로 했다.
"'힐링소설을 또 써야 하나'라는 생각도, '이번에는 전혀 다른 작품을 써야 하나'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가 쓰고 싶은 얘기를 쓰자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전작이 번아웃에 지친 사람들이 동네 서점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얘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저출생을 중심으로 세대 차이와 고단한 노동, 가족 돌봄의 공백을 들여다본다. 두 작품은 분위기와 소재가 다르지만 평범한 인물들의 구체적인 삶을 따라간다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다.
신작 '윗집 부부' 역시 한국 출간 전부터 미국·영국·일본 등 15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이례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황 작가는 '휴남동 서점'이 일본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있었다고 했다.
"일본 출판사와 계약했을 때 내심 기대가 있었어요. '휴남동'을 쓰면서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카모메 식당'을 정말 좋아했고, 그런 영화 같은 분위기를 소설로 구현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결이나 속도, 정서가 일본 독자들에게도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만의 특별한 현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출판사를 통해 일본 독자들이 많이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 독자들의 반응을 받아보니 놀랄 만큼 비슷했어요."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등장인물을 응원하다 보니 어느새 자기 자신을 응원하게 됐다는 독자들의 고백이었다.
"'나는 잘 살고 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지 못했는데 소설을 읽으며 그 말을 찾게 됐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어떤 분들은 몇 년 동안 고민하던 일을 결단했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일부 한국 독자와 일본 출판 관계자의 반응에서 문화적 차이를 느낀 대목도 있었다. '휴남동 서점'의 주인공 영주는 가족과 사실상 연을 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일부 한국 독자는 "어떻게 가족과 연을 끊을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본 출판 관계자들은 영주의 선택을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영주의 선택이 한국에서만큼 놀랍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국은 가족주의가 조금 더 강하고 일본은 개인의 결단을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차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K문학의 존재감이 커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문학이 훨씬 다양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 소설은 지금처럼 장르가 다양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SF도 있고, 호러도 있고, 판타지도 있고, 힐링소설도 있잖아요. 해외 독자들이 만나는 한국문학도 그만큼 다양하고 풍성해졌습니다."
그는 한류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K팝과 드라마를 통해 이미 한국 문화에 호감을 갖고 있는 독자들이 많아요. 그런 상태에서 한국 소설을 읽으면 낯선 문화가 아니라 어느 정도 익숙한 문화 안에서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실제로 읽어보고 재미를 느끼는 독자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황 작가는 한국문학의 또 다른 매력으로 사람의 미세한 심리를 포착하는 힘을 꼽았다.
"한국 작가들은 본인조차 잘 느끼지 못하는 마음속 작은 진동 같은 심리를 굉장히 잘 포착해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이 해외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얻는 이유가 아닐까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K힐링소설'의 대표작으로 불린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그런 장르를 의식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휴남동'을 쓸 때는 힐링소설이라는 장르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출간된 뒤 독자들이 그렇게 불러주면서 처음 알게 됐죠."
그래서 이번 작품 역시 '힐링을 벗어나야 한다'거나 '다시 힐링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힐링소설을 쓰겠다거나 쓰지 않겠다고 정한 게 아니라, 그냥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는 스스로를 재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라고 표현했다.
"제 소설은 큰 사건이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문장 단위로 지루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해요. 극적인 사건이 없어도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