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좋은 규제가 경쟁력이다

파이낸셜뉴스
강중모 중기벤처부
강중모 중기벤처부

과거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뛰어난 신약을 개발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다. 좋은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기술이 시장에 얼마나 빠르게 도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이제 규제는 산업의 걸림돌이 아니라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다.

이 같은 변화는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현재 한국 바이오의약품 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분야도 바이오시밀러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국내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구축했고, K바이오 수출을 견인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과 유럽의 규제기관은 바이오시밀러 개발 과정에서 대규모 임상 3상 시험을 축소하거나 면제하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있다. 정밀한 분석기술과 약동학 시험만으로도 오리지널 의약품과의 동등성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는 과학적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과학은 발전했는데 규제가 과거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최근 바이오시밀러의 임상 3상과 반복투여독성시험 자료 제출 요건을 완화하며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발맞췄다. 국내에서만 통하는 규제 완화가 아니라 선도국들이 추진하는 규제 조화 흐름에 한국도 합류한 것이다. 이는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서 확보한 개발 데이터를 글로벌 허가 전략과 보다 자연스럽게 연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더욱 크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규제를 푼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은 그대로 유지하되, 과학적으로 중복되거나 실익이 낮아진 절차를 합리적으로 정비하는 것이다. 규제혁신은 안전성을 희생하는 선택이 아니라 과학 발전에 맞춰 규제 수준을 진화시키는 과정이다.

물론 바이오시밀러만으로 K바이오의 미래를 설명할 수는 없다. 앞으로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세포·유전자치료제, RNA 치료제,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 등 새로운 분야에서도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이들 분야 역시 결국 얼마나 신속하고 예측 가능한 허가환경을 갖추느냐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기술은 기업이 만든다. 그러나 산업 경쟁력은 국가가 만든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만큼 중요한 것이 과학을 반영한 규제혁신과 예측 가능한 허가 시스템이다. 기술이 국경을 넘는 시대에 규제가 발목을 잡는 순간 경쟁력은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

vrdw88@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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