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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빠른' 사족보행 로봇이 계단도, 통나무도 알아서 넘는다 [언박싱 연구실]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53> 고려대 기계공학부 홍승우 교수팀
스스로 판단해 걸음걸이 전환하는 AI 제어 기술 개발
8분 만에 15.5시간 분량 '걸음 교과서' 가상 학습
실제 숲길·캠퍼스 완주… 시속 21.6㎞ 초고속 질주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로봇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 2026년 7월호 표지를 장식한 사족보행 로봇 'KAIST 하운드'의 모습이다. 인공지능 제어 기술을 탑재한 로봇이 실제 야외 숲길에서 바닥에 놓인 통나무 장애물을 스스로 판단해 역동적으로 뛰어넘고 있다. 사이언스 로보틱스 제공
세계 최고 권위의 로봇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 2026년 7월호 표지를 장식한 사족보행 로봇 'KAIST 하운드'의 모습이다. 인공지능 제어 기술을 탑재한 로봇이 실제 야외 숲길에서 바닥에 놓인 통나무 장애물을 스스로 판단해 역동적으로 뛰어넘고 있다. 사이언스 로보틱스 제공

[파이낸셜뉴스] 고려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국방과학연구소 공동 연구팀이 사족보행 로봇 스스로 계단이나 통나무 같은 장애물을 보고 걷기와 달리기, 뛰어넘기 가운데 가장 알맞은 동작을 골라 자연스럽게 전환하도록 하는 인공지능 제어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탑재한 로봇은 실제 숲과 계단 등 험한 야외 환경에서 순간 최고 시속 21.6㎞의 속도로 이동하며 다양한 장애물을 스스로 판단해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로봇 분야 최고 권위 국제 학술지로 꼽히는 사이언스 로보틱스 7월호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재난 현장과 험지에서 활약할 로봇

이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실험실이 아닌 실제 야외 환경에서 검증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사족보행 로봇은 평평한 바닥을 빠르게 달리거나 눈앞의 장애물 하나를 뛰어넘는 데는 능숙했지만, 계단과 틈이 뒤섞인 예측 불가능한 지형에서는 걷기와 달리기, 뛰어넘기용 컴퓨터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어 상황에 맞게 갈아 끼워야 했다. 이 과정에서 속도와 안정성을 동시에 잡기 어려웠다.

고려대 기계공학부 겸 스마트모빌리티학부 홍승우 교수는 "이번 연구는 로봇의 움직이는 힘과 최적의 경로를 찾는 기술을 인공지능 학습법인 강화학습에 결합해 컴퓨터가 배우는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라며 "앞으로 군사 임무나 재난 구조 등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거친 환경에서 로봇을 실제로 사용하는 시기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이나 숲처럼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 수색과 구조 임무를 수행하거나, 도심 속 계단과 턱이 많은 복잡한 지형을 오가는 배송·순찰 로봇에도 이 기술이 쓰일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인공지능 기술이 네 발로 걷는 로봇뿐 아니라 두 발로 걷는 로봇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동물 대신 컴퓨터로 만든 '걸음 교과서'

연구팀이 만든 기술의 이름은 'APT-RL'이다. 이름은 복잡하지만 핵심 아이디어는 비교적 단순하다. 로봇에게 본격적으로 걷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다양한 걸음걸이의 '기본기'를 컴퓨터가 미리 대량으로 공부해 두는 것이다.

기존에는 로봇에게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가르치기 위해 실제 동물의 움직임을 카메라로 촬영해 학습 자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다양한 지형에서 동물의 움직임을 많이 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대신 로봇의 몸 구조를 단순하게 계산하는 가상의 모델을 활용해 컴퓨터 시뮬레이션 안에서 걷기와 뛰기 동작을 순식간에 많이 만들어냈다. 그 결과 실제 로봇이 15.5시간 동안 움직여야 모을 수 있는 고품질 데이터를 단 8분 만에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만든 데이터로 연구팀은 사람의 뇌를 흉내 낸 인공지능 모델을 훈련시켜, 말처럼 경쾌하게 종종걸음으로 걷는 '트로트'와 토끼처럼 두 뒷발로 땅을 차며 뛰는 '바운드' 등 서로 다른 걸음걸이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압축해 저장했다. 이후 로봇이 실제 3차원 환경에서 스스로 학습하면서 이 압축된 걸음걸이 정보를 꺼내 쓰도록 하고, 여기에 상황에 맞게 조금씩 다리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보조 동작을 함께 배우도록 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깊이 카메라(거리를 재는 카메라)와 라이다(레이저 센서)로 주변 지형 정보를 얻어, 로봇이 몸에 복잡한 센서를 달지 않고도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식해 걸음걸이를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연구팀은 다섯 가지의 다양한 동물 걸음걸이를 비교 실험한 결과, 종종걸음인 '트로트'는 안정적이고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반면 껑충 뛰는 '바운드'는 빠른 속도로 높은 장애물을 넘는 데 유연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트로트와 바운드 두 가지를 로봇이 사용할 기본 걸음걸이로 최종 선택했다.

■숲길 340m, 도심 1.1㎞를 실제로 걸었다

연구팀은 이렇게 만든 기술을 자체 개발한 사족보행 로봇 'KAIST 하운드'에 탑재해 실내와 실외에서 두루 시험했다. 로봇은 계단과 경사로가 뒤섞인 1.1㎞ 길이의 대학 캠퍼스 구간을 완주했으며, 쓰러진 나무와 뿌리, 낙엽이 뒤덮인 340m 길이의 숲길도 문제없이 통과했다. 캠퍼스 구간에서는 속도가 낮을 때 계단을 트로트(종종걸음)로 내려갔지만, 속도가 시속 15.48㎞로 높아지자 스스로 바운드(껑충 뛰기)로 걸음걸이를 바꿔 계단을 내려갔다.

실내 실험에서는 로봇이 높이 60㎝의 턱을 바운드 동작으로 뛰어넘으며 순간 최고 속도 시속 15.3㎞를 기록했다. 3단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실험에서는 순간 최고 속도가 시속 21.6㎞까지 나왔다. 이는 계단 한 칸의 높이가 30㎝, 깊이가 58㎝인 조건에서 측정된 값이다.

연구팀은 로봇에 깊이 카메라만 달았을 때와 라이다만 달았을 때, 두 센서를 함께 달았을 때의 성능도 비교했다. 그 결과 계단이나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는 라이다 센서가 지형을 더 잘 알아챘고, 문턱이나 징검다리처럼 정밀하게 바닥을 디뎌야 하는 구간에서는 깊이 카메라가 더 유리했다. 결과적으로 두 센서를 함께 사용했을 때 모든 지형에서 넘어지지 않고 통과하는 성공률이 가장 높았다.

한편 실제 로봇 실험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도 있었다. 고속 이동 중 발이 땅에 부딪히는 충격이 커지면서 레이저 센서(라이다)의 측정값이 흔들려 일시적으로 오작동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연구팀은 로봇 머리와 라이다 사이에 3D 프린터로 제작한 충격 흡수 장치를 달아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 이번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국방과학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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