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도 갈 곳은 빌라뿐"…빌라 그리고 비아파트는 왜 불신의 대상이 됐을까 [주거사다리의 '밑단'·①]
아파트 전세보증금 2년 새 19% 상승…서울 빌라 매매 46% 증가 저렴한 가격에도 비선호…전세사기·낮은 환금성·관리 공백 '삼중고' 전문가들 "물량만 늘리지 말고 품질·보증·관리체계 함께 바꿔야" 23일 李대통령 참석 부동산 종합 토론회서 개선 방안 다룰지 주목
[파이낸셜뉴스] #1. 2021년 여름 장마와 함께 창틀 주변으로 곰팡이가 번졌다.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쉐어하우스라 편안히 쉴 수도 없었다.
당시 27세 직장인이었던 이철빈씨는 '혼자만의 집'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전세사기와 무자본 갭투자 사건 뉴스가 연일 보도됐지만, 부동산 스타트업에서 주택 임대관리 업무를 맡고 있어 누구보다 계약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서류와 절차를 잘 안다고 자신했다.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직접 확인하고 공인중개사와 권리관계도 꼼꼼히 분석했다. 하지만 계약 당시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집주인은 60억원이 넘는 세금 체납이 있었고, 수천억원 규모의 무자본 갭투자로 1000채가 넘는 주택을 사들인 임대인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집에 세무서 압류가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집주인과는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씨는 직감했다. "전세사기를 당했구나."
5년이 지난 현재 그는 새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2. 일명 '노도강(노원·도봉·강북)'에서 전세로 살던 김진주씨(36)는 최근 의도치 않게 집주인이 됐다. 임대인으로부터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은 뒤 주변 아파트 전세 매물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상태가 좋은 신축 빌라와 비용 부담이 있는데다 설비도 오래된 구축 아파트를 매입할까를 두고 저울질했다. 선택은 후자였다.
집을 다시 팔 때 빌라가 매입가격만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데다 원하는 시점에 매수자를 찾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도 컸다.
여기에 공동현관, 경비 인력 부재 등이 주는 불안감에 주차장, 관리사무소, 단지 내 편의시설까지 고려하니 비용을 더 부담해도 아파트를 선택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실거주 목적이어도 빌라는 사지 말라", "나중에 팔고 나오려면 대단지 아파트여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도 한 몫했다.
22일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한 이씨와 김씨의 사례는 비아파트의 모순을 보여준다. 아파트를 구입하거나 임차하기 어려운 가구에게 빌라와 다가구·다세대주택, 오피스텔은 필요한 주거 공간이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비아파트 소유 기피 현상과 주거정책 과제'에 따르면 고급 빌라나 하이엔드 오피스텔을 제외한 비아파트는 아파트보다 가격 부담이 낮았다. 서울의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은 아파트가 15배, 비아파트는 7.9배였다.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도 각각 39.5%와 20.8%로 차이가 났다.
소득과 자산이 충분하지 않거나 직장·생활권을 유지해야 하는 가구에 비아파트는 현실적인 선택지다. 그럼에도 장기간 거주하거나 소유할 '내 집'으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생애 최초로 구입하고 싶은 주택 유형을 묻는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9.7%가 아파트를 선택했다. 비아파트는 자산이 부족할 때 잠시 머무는 임차주택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최근 서울 빌라 가격과 거래량이 늘었지만 이를 선호 회복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주택종합 매매가격은 4.52% 상승해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 2.34%를 크게 웃돌았다. 연립·다세대주택 상승률은 지난해 상반기 0.89%에서 올해 4.26%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아파트 상승률은 3.41%에서 5.07%로 높아졌다.
거래량도 늘었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1~5월 서울 연립·다세대 매매는 1만9273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45.8% 증가했다.
이를 두고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통계 착시'로 봤다.
박 위원은 "최근 서울 빌라 거래 증가는 빌라 자체에 대한 선호 회복으로 보기 어렵다"며 "재개발이나 정비사업을 통해 장래 아파트 입주권을 받으려는 묻어두기식 투자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빌라의 거주 가치보다 미래 아파트 취득 가능성에 투자하는 수요라는 설명이다.
비아파트 기피는 단순한 아파트 선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임차인에게는 보증금 반환 위험이 있고 소유자에게는 가격 하락과 거래 부진의 부담이 있다. 거주하는 동안에는 주차와 방범, 청소, 쓰레기 처리, 건물 수선 등에서 아파트와의 격차를 체감한다.
결정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키운 것은 전세사기다. 피해는 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에 집중됐다.
국토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전체 전세가구 중 아파트 거주 비율은 50%였지만 전세사기 피해자 중 아파트 거주자는 13.6%에 그쳤다. 반면 다세대주택 거주자는 피해자의 29.3%, 오피스텔 거주자는 20.9%를 차지했다.
연립·다세대주택의 2014∼2024년 평균 전세가율은 88.2%로 아파트의 74.4%보다 높았다. 특히 2020∼2022년에는 평균 전세가율이 90%를 넘어 집값이 조금만 내려가도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질 수 있는 계약이 다수 체결됐다.
소유자에게도 비아파트는 매력적인 자산이 아니다. 감가상각으로 가격이 하락할 수 있고 거래량이 적어 필요할 때 팔기 어렵다. 여기에 비아파트 한 채를 보유하면 무주택 자격이나 청약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토연구원은 비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자산가치 하락과 청약 기회 상실 우려로 내 집 마련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주거 사다리의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자산으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거환경도 아파트와 비아파트의 차이는 뚜렷하다.
아파트는 공급 단계부터 진입도로와 주차장, 관리사무소, 주민공동시설을 갖추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다. 일정 규모 이상에는 전문 관리인력과 장기수선계획 등 체계적인 관리제도가 적용된다.
반면 다세대·연립주택 상당수는 소규모 필지에 개별적으로 지어져 관리사무소나 상시 관리인력을 두기 어렵다. 세대수가 적어 승강기와 주차장, 방범시설, 주민 편의시설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국토연구원은 소규모 필지에 비계획적으로 공급된 비아파트가 주차·안전·위생·녹지와 시설관리 측면에서 열악하다고 분석했다.
2023년 주거실태조사에서도 주택 상태와 주거환경 만족도는 모든 항목에서 아파트가 비아파트보다 높았다. 특히 청소와 쓰레기 처리, 방범, 보행 안전, 공원·녹지 접근성에서 격차가 컸다. 서울 아파트 단지의 녹지율은 27.4%였지만 저층주거지는 14.4%에 그쳤다.
김씨가 신축 빌라보다 오래된 아파트를 선택한 것도 집 내부보다 건물 밖의 생활환경과 관리체계를 더 중요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아파트는 청년과 1인 가구만의 주거 공간이 아니다. 아파트에 진입하기 어려운 신혼부부와 자녀가 있는 가구, 직장이나 가족 돌봄 때문에 특정 지역에 살아야 하는 중장년층, 소득이 줄어든 고령층도 비아파트 시장에 의존한다.
비아파트가 불안하고 불편한 집으로 남으면 피해는 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계층에 집중된다. 아파트를 구하지 못한 사람이 낮은 주거 품질과 보증금 위험, 자산가치 하락까지 감수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아파트 문제는 단순히 빌라 몇 채를 더 공급하는 문제가 아니다"며 "아파트에 바로 진입하기 어려운 계층이 이용하는 주거 사다리의 밑단을 복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가구가 아파트를 구입하거나 임차할 수는 없다"며 "다가구·다세대·연립주택과 오피스텔 시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에 가까운 품질과 안전성, 관리체계를 갖추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공급 부족의 대안으로 비아파트 활성화를 검토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5월 주택건설업계를 대상으로 진행한 타운홀 미팅에서는 신축 매입임대 활성화와 금융 규제 개선, 소규모 오피스텔의 주택 수 제외, 도시형생활주택 세제 지원 연장 등이 건의됐다.
다만 세제와 금융 혜택으로 공급량만 늘리면 비아파트가 외면받아 온 구조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아파트가 23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부동산 정책 토론회 테이블에 오를지 주목된다.
[email protected] 서윤경 김희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