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89%, 곡소리 난다"...상폐 공포 관리종목들, 병합해도 83%는 '도로 동전주' [상폐 칼바람 분다①]

김희선 기자, 서윤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① 관리종목 열흘간 43곳 무더기 지정
'다산다사' 기조로 상장폐지 규정 강화
정책 방향 맞더라도, 개미 피해 불가피
"투심 위축되는 '낙인효과' 가능성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사진=챗GPT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사진=챗GPT

[파이낸셜뉴스] "상장주로 시작해서 밑바닥까지 내려오네."

지난 21일 코스닥 상장사인 E8(이에이트) 종목토론방에 올라온 글이다. '지하실 바닥은 어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작성자는 "상장 종목 3만원에 투자를 시작해서 물타기를 시전하고, 유상증자에 두 번 참여하며 감자까지 당해봤다"며 "또 유상증자를 하라고 하니 돌아버릴 지경이라 마지막으로 물을 타서 평단가를 4788원까지 낮췄는데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글을 올릴 당시 작성자의 수익률은 -89.74%였다. "곡소리 난다"고 울부짖는 작성자의 말에 또다른 이용자도 "물을 얼마나 타야 하는 건가… 4788원이면 열 배는 올라야 본전"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E8는 지난 12일 시가총액과 주가 기준에 동시에 미달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곳이다. 관리종목 딱지가 붙은 종목은 이 곳만이 아니다. 지난달 1일 상장폐지 기준이 강화된 이후 이런 종목이 잇따라 쏟아지면서, 코스닥 개인 투자자들의 시름도 함께 깊어지고 있다.

강화된 상장폐지 규정…한 달 반 만에 관리종목 43곳

정책 용어로는 '다산다사(多産多死)'. 신규 상장은 늘리되 부실기업은 빠르게 퇴출한다는 바로 이 원칙을 앞세워 금융 당국은 지난달 1일 개정 상장규정을 시행했다.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000원 미만이거나 시가총액이 기준(코스닥 200억원·코스피 300억원 등)에 미달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이후 90거래일 중 연속 45거래일 이상 기준을 회복하지 못하면 최종 상장폐지된다.

시장에서는 연내 상장폐지 기업이 최소 100곳을 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지난 2월 제도 개편을 발표하며 자체 시뮬레이션한 결과는 최대 220개사였다. 급락장에 앞당겨진 시행 일정이 겹치며 '신속한 퇴출'이라는 정책 목표와 '옥석 가리기'라는 부작용 방지 사이에서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자료=리더스인덱스, 그래픽=챗GPT
/자료=리더스인덱스, 그래픽=챗GPT

앞서 리더스인덱스가 지난 11일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2578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현재 시가총액 기준 미달 기업은 192곳(7.4%)이고 1000원 미만의 일명 동전주는 200곳(7.8%)이었다. 2027년 강화된 기준(코스피 시총 500억원·코스닥 300억원)이 그대로 적용되면 이 숫자는 479곳(18.6%)까지 늘어난다.

실제 수치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에 따르면 지난 12일부터 20일까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43곳에 '관리종목' 딱지가 붙었다. 특히 12일 하루에만 36곳이 한꺼번에 지정됐고, 20일까지 7곳이 추가됐다. 주가 미달(동전주)은 32곳, 시가총액 미달 종목은 15곳, 둘 다 해당하는 곳은 4곳이다.

이와 관련해 스몰인사이트리서치는 19일 보고서에서 코스닥 27개사가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12일 저녁을 기준으로 당일 종가와 14일 종가를 비교한 결과, 평균 -5.47%, 중앙값 -5.67%의 하락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상승 5개사, 보합 1개사를 제외하면 21개사 모두 하락한 셈이다.

스몰인사이트리서치는 "지정 이후 다수 종목에서 나타난 하락은 상장폐지 우려가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이른바 '낙인효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관리종목 지정이 강한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지면 매수세와 거래 유동성이 줄고, 이는 다시 주가와 시가총액 회복 여건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병합 러시 276건, 그런데 83%는 다시 동전주

관리종목 지정이 곧바로 상장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은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눈에 띄는 대응 방법은 액면병합이다. 제이엠아이가 주당 액면가 1000원의 보통주 5주를 액면가 5000원의 1주로 병합하고, 우리엔터프라이즈가 액면가 500원의 보통주 5주를 2500원의 1주로 병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 한화투자증권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지난 2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6개월간 이뤄진 액면병합은 276건(유가증권 57건·코스닥 219건)이다. 2024년 5건, 2025년 12건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폭증 수준이다.

그러나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달 15일 기준 병합을 마친 156개사 중 130개사(83.3%)가 병합 이후 다시 새 액면가 아래로 주저 앉았다. 액면가를 500원에서 2000원으로 올려 주가가 1200원이 되더라도, 새 액면가(2000원) 밑으로 떨어지면 여전히 퇴출 요건에 해당한다.

규정 자체도 이런 '재병합 버티기'를 겨냥해 설계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상장폐지 개혁방안 시행을 위한 한국거래소 상장규정 개정을 승인하면서 이런 우회를 막기 위한 장치도 함께 마련했다. 최근 1년 이내에 병합이나 감자를 한 경우 동전주 관리종목 지정 이후 90거래일 동안 추가 병합·감자를 금지하고, 병합·감자 비율이 10대1을 초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90거래일 동안 금지된다.

2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코스닥은 전 거래일보다 2.33포인트(0.29%) 오른 804.27로 장을 시작했다. /사진=뉴시스
2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코스닥은 전 거래일보다 2.33포인트(0.29%) 오른 804.27로 장을 시작했다. /사진=뉴시스

"방향성은 동의하지만…" 코스닥 개미 47만여명의 시름

문제는 상장폐지 제도의 영향이 기업의 상장 지위나 경영진에게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몰인사이트리서치가 지난 12일 관리종목 지정 사유가 발생한 36개사 가운데 공시자료를 확보한 32개사(코스닥 27곳·코스피 5곳)를 집계한 결과, 단순 합산 기준 47만367명이 소액주주로 나타났다.

회사별 공시 기준일이 다르고 동일 투자자가 여러 종목을 보유했다면 중복 집계됐을 수 있어 이 숫자를 서로 다른 고유 투자자 수로 보기는 어렵지만, 관리종목 지정의 여파가 소수 대주주나 경영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최근 코스닥 개인 투자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다들 끔찍한 하락장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전한 뒤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쏠림으로 코스닥이 이미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상장폐지 기준 강화 정책까지 겹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코스닥 투자심리가 더욱 위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삼전닉스라는 환한 태양빛에 대다수 코스닥 종목들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양극화 현상이 너무 심해졌다"며 "(코스피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정부가 코스닥 활성화 대책을 세워야 한다. '다산다사' 정책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 투자자가 피해를 보는 구도"라고 덧붙였다.

금융투자 손해배상 소송을 주로 다뤄온 법무법인 한결의 김광중 변호사는 현재의 개미 투자자와 미래의 개미 투자자를 모두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지배주주의 경우, 헐값에 자기 지분을 높일 수 있고 상장폐지된다고 회사가 망하는 것도 아니므로 가장 큰 피해는 개인 투자자가 받는 게 맞다"면서도 "상장폐지가 되지 않는 한계기업들이 주가조작 등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한계기업들을 내버려둘 수 없는 만큼, 정책적으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김희선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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