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수사만 4차례…'사건 핑퐁'에 피해자들 "처분 언제 나오나"[500세대 전세사기 의혹 下]
고소 1년 넘도록 경찰·검찰 오가며 수사
보완수사 때마다 피해자들이 직접 증거 찾아
공소청 출범 뒤 직접 보완수사 폐지…장기화 우려
[파이낸셜뉴스]전세보증금 6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30대 이모씨는 임대인 등을 형사고소한 지 1년 2개월이 넘었지만 사건은 여전히 경찰에서 보완수사 중이다. 경찰의 불송치와 이씨의 이의신청을 거쳐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만 네 차례 이어지고 있다. 검찰청이 폐지되는 오는 10월 2일까지 사건의 향방이 정해질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이다.
13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씨는 지난해 6월 서울 동작구 사당동 빌라의 임대인 조모씨와 부동산 개발·시행업체 A사 대표 이모씨 등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혐의없음으로 불송치했지만 올해 1월 이의신청 이후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1월 16일 보완수사를 요구했고 경찰은 사흘 뒤 혐의점이 있다고 판단해 사건을 송치했다. 하지만 2월과 4월, 8월에도 보완수사 요구가 이어졌다. 이씨는 "10월 전에 검찰로 넘어갈 것 같지만 그 전에 결론이 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사건이 경찰과 검찰을 오가는 동안 피해자들은 사기와 기망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를 직접 찾아 제출해야 했다고 호소한다. 보완수사 요구가 내려올 때마다 부족한 증거를 채우기 위해 피해자들이 관계인과 금융자료 등을 추적하는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실제 이씨는 보완수사 과정에서 계약 당시 선순위 임차보증금이 실제와 다르게 고지됐다는 점을 뒷받침할 자료와 A사 대표의 당시 채무관계 등을 직접 추적했다. A사 대표 소유 건물의 과거 강제경매 기록을 확인한 뒤 당시 채권 관계를 아는 관계자에게까지 연락했고, 명의상 임대인의 계좌거래 자료 등을 토대로 다른 임차인의 계약관계도 확인해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게 왜 사기냐, 왜 기망이냐'는 답이 돌아왔다"며 "경찰이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물증까지 찾아서 제시하고 나서야 조금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미 제출한 자료를 다시 요구받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신림동 빌라 임차인 20대 이모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피해가 발생해 조사해달라고 접수한 것인데 증거까지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수준이라고 느꼈다"며 "금융기록 같은 자료까지 요구받는다고 느꼈는데 개인이 어떻게 확보하겠느냐"고 했다. 이어 "누군가 움직여야 단편적인 단서를 모아 퍼즐을 맞출 수 있다"며 "퇴근하고도 자료를 찾고 사람들을 연결하다 보니 거의 투잡을 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뒤늦게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연결되면서 여러 건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업체에 관한 자료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수백만원을 들여 변호사까지 선임했다. 사당동 빌라 피해자 금모씨도 이 과정에서 얻은 자료를 토대로 첫 형사고소를 했다. 금씨는 "피해자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면 고소할 때 많이 불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다음달 2일 검찰청이 공소청으로 전환한 이후를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공소청에서 검사는 송치 사건의 수사가 미진하더라도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고 경찰 등 수사기관에 보완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에 대해 고소인이 이의신청을 할 경우, 검사는 3개월 내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경찰도 요구받은 날부터 3개월 내 재수사를 마쳐야 한다. 이후에도 불송치 판단이 유지되면 다시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1년 넘게 수사가 이어진 피해자들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제도 전환 전 사건의 향방이 정해질 수 있느냐다. 30대 이씨는 "처분이 늦어지는 동안 관련자들이 무죄를 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게 걱정된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의신청 사건 중에는 경찰이 결론을 곧바로 낸 뒤 사건을 '토스하듯' 보내는 경우도 있다"며 "보완수사를 요구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거나 새로 수집된 증거에서 추가로 확인할 부분이 생기면 다시 보완수사를 요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접 보완수사 폐지 이후에 대해서도 "앞으로 검사가 생각한 만큼 충분히 확인돼 올라온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답답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같은 우려를 내놓는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11일 형사정책세미나 발제문에서 "이미 수사를 마치고 불송치한 수사기관에 다시 수사를 맡기는 기본구조는 그대로이고 부족한 수사가 반복되면 사건은 다시 검사와 경찰 사이를 왕복한다"며 "그동안 증거는 소실될 수 있고, 사라진 증거와 피해자의 사건을 회복시켜주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email protected] 최은솔 박성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