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콜센터에 컴퓨터 설치했다 유죄... 대법 "방조 아니다"
공모주 사기 콜센터에 집기 설치·이전한 수리업자, 1·2심 사기방조 유죄
대법 "통상적 영업활동이 범행에 단순히 이용된 것으로 볼 여지 커"
"내용 부인한 경찰 피의자신문조서를 유죄 증거로 쓴 잘못도 있어"
[파이낸셜뉴스] 사기 조직이 쓰는 콜센터 사무실에 컴퓨터를 설치해 준 수리업자에게 범행을 돕겠다는 방조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통상적인 영업활동이 범행에 단순히 이용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는 취지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3일 사기 혐의로 기소돼 사기방조죄가 인정된 컴퓨터 출장 수리·판매업자 A씨(28)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552만원의 추징을 명령한 원심 가운데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4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중·고등학교 동창인 B씨의 부탁을 받고 경기 시흥시의 콜센터 사무실에 컴퓨터 등 집기를 설치하고 사무실 이전 작업을 해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직 총책인 B씨는 팀장 C·D씨 등과 함께 이 콜센터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해 "기존에 유료 주식정보 사이트에 가입해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 가입비를 환불해주고 있다"고 속여 카카오톡 단체방으로 유인한 뒤, 코스닥 상장 예정인 공모주를 싸게 팔겠다고 거짓말하는 수법을 썼다. 이들은 지난해 2월부터 5월까지 피해자 11명에게서 공모주 매매대금 명목으로 4억2592만원을 받아 챙겼다. 검찰은 A씨가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범행에 필요한 집기를 설치해 이를 도왔다고 보고 사기와 범죄단체 가입·활동 등 혐의로 함께 기소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A씨에게 방조의 고의가 있었는지, 컴퓨터 설치라는 행위가 사기 범행 실현에 현실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였다. 고의를 인정하는 근거로 쓰인 경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도 함께 다뤄졌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같았다. 1심은 A씨가 사기 범행의 목적을 인식한 구성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범죄단체 가입·활동과 무인가 금융투자업 영위 혐의는 무죄로 봤다. 다만 자신이 설치·이전한 컴퓨터로 범행이 이뤄질 것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보고 사기죄의 축소사실인 사기방조죄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심도 A씨와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A씨가 B씨의 지시로 컴퓨터를 처분하고 SSD를 초기화한 점, 사무실 창문이 암막 시트지로 가려져 있었고 보드판에 '비상장주식', '순위', '수익률' 같은 단어가 적혀 있던 점이 근거가 됐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방조범이 성립하려면 "방조행위가 정범의 범죄 실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정범으로 하여금 구체적 위험을 실현시키거나 범죄 결과를 발생시킬 기회를 높이는 등으로 정범의 범죄 실현에 현실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2023년 10월 선고된 판례의 법리다.
이어 A씨가 2020년부터 컴퓨터 출장 수리·판매업을 해오면서 통상적인 수준의 설치대금만 받았을 뿐 범죄수익을 따로 배분받지 않았고, B씨 외에 다른 조직원과 연락한 정황도 없다고 짚었다. B씨 역시 1심 법정에서 A씨에게 컴퓨터 용도를 설명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2심이 든 정황도 하나씩 반박했다. 텔레그램은 범죄와 무관하게 광범위하게 쓰이고, 개인정보가 담긴 저장장치를 복구할 수 없게 폐기하는 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보드판에 적힌 단어에도 불법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업의 적법성에 일부 의심이 드는 사정이 있다고 하여, 곧바로 피고인에게 구체적인 범행 내용과 그로 인한 법익 침해의 결과를 인식하고 이를 용이하게 한다는 방조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증거능력에 관해서도 잘못이 있다고 봤다. 2심이 고의를 인정하는 근거로 삼은 지난해 5월 27일자 경찰 피의자신문조서는 A씨와 변호인이 공판기일에 내용을 부인해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3항에 따라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는데도 이를 증거로 삼았다는 것이다. A씨가 동의한 나머지 조서에는 2심이 든 사정 대부분이 담겨 있지 않다고도 했다.
[email protected] 김동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