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국회·대통령, 대법원장 제청에 관여 못해"...헌법 문언으로 맞섰다(종합)
"협의는 헌법상 의무 아닌 자진 협력...서면 제청도 제한 없어"
법조계 "문리해석상 제청권은 대법원장 전속"
[파이낸셜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국회와 대통령도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 제청에 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임명된다는 헌법 조문을 근거로 청와대의 재제청 요청과 국회의 증언 요구를 모두 거부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법 해석의 출발점인 '문리해석'에 따르면 제청권은 대법원장에게 전속한다며 조 대법원장의 주장이 여권보다 타당하다는 설명이 나온다.
조 대법원장은 6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장이 국회 동의 절차, 대통령 임명 절차에 관여할 수 없듯이 국회와 대통령도 대법원장 제청에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강요하는 것은 헌법상 아무런 근거 없이 동의 절차를 담당하는 국회의 한 부분인 법사위가 다른 한 축의 제청권을 담당하는 대법원장의 제청에 간섭하는 것"이라며 "헌법에 명문으로 정한 기관 간 권한 분배와 사법권 독립에 반해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일반증인으로 채택된 조 대법원장이 선서와 답변을 하지 않는다는 김기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대한 답이었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를 놓고 청와대와 협의해 온 관행에 대해서도 "헌법에 근거가 없지만, 대법원장이 신속하고 원활한 임명을 위해 자진해서 협력한 것"이라며 "협의를 하지 않아도 헌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헌정사상 처음인 서면 제청을 두고서도 "헌법에서 전혀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문제 삼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존중' 규정에도 선을 그었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때 추천위의 추천 내용을 존중하도록 정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이 존중한다'고만 규정돼 있다"며 "존중하지 않아도 정치적 문제에 그치고 위헌, 위법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장은 제청으로 모든 헌법상 권한과 동시에 의무가 다 끝났다고 할 수 있다"며 "국회에서 따지고 물을 절차와 방식이 헌법에 전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선서와 증언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리해석상 제청권은 대법원장 몫
청와대는 지난 8월 재제청을 요청하면서 제청권은 임명권을 대체하는 권한이 아니라 임명권이 올바르게 행사되도록 뒷받침하는 권한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법 해석의 방법론을 따를 때 조 대법원장의 주장이 여권의 주장보다 타당하다는 설명이 나온다. 법 해석은 '문리해석'에서 출발해 '체계적 해석'과 '역사적 해석'을 거쳐 '목적론적 해석'으로 나아가는데, 그 첫 단계인 '문리해석'은 조문에 적힌 문언 그대로 읽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법관 임명을 규정한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한다. 제청권 자체는 대법원장에게 전속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제청을 국회로 넘기는 일은 정부가 관례적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법제처 관료 출신의 한 법제 전문가는 "헌법 제52조가 법률안 제출권을 국회의원과 정부에만 두고 있어 사법부가 국회에 직접 문서를 낼 통로가 없고, 이 때문에 사법부가 국회로 보내는 제청서 등을 정부가 대신 제출하는 관례가 굳어졌다"며 "다만 이것은 정부가 사법부를 대신해 제청서를 내는 것일 뿐, 그 관례적인 대리 제출이 대법원장의 제청권 자체를 침해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법리에 맞다"고 설명했다.
■국감서도 평행선...두 달째 이어진 공방
앞서 조 대법원장은 오전 인사말에서 "청와대의 재제청 요청 공문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명확히 기재돼있지 않아 후속 절차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대법원장의 제청권, 국회의 동의권, 대통령의 임명권이 각각 헌법적 의미에 맞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대법관 공석 장기화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범여권은 거세게 반발했다. 서영교 법사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이 선서하지 않자 "증인선서 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울 경우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후속 조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손솔 진보당 의원은 조 대법원장에게 "혹시 제2의 윤석열을 꿈꾸는 것이냐"며 "법복 입고 정치하는 것 아니냐고 많은 국민들이 묻고 있다"고 말했다. 선서나 증언을 할 수 없다며 재제청 관련 질의에 답하지 않던 조 대법원장은 이 질의에는 "그런 말씀은 너무 모욕적이고 서글픈 일"이라고 답했다.
통상 대법원장은 국감에서 인사말을 한 뒤 이석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법사위는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조 대법원장을 일반증인으로 채택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일 대법원장에게 국회 출석·답변 의무를 부과하지 않은 국회법 제121조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내용의 불출석 의견서를 냈다. 1988년 국감이 부활한 이후 대법원장이 증인으로 답변한 전례는 없다.
■서면 제청·재제청 요구...두 달째 평행선
갈등은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와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추천하면서 시작됐다. 노 전 대법관이 지난 3월 2일 퇴임해 공백이 현실화했고, 조 대법원장은 지난 8월 18일 합의되지 않은 손 후보자를 서면으로 제청했다. 청와대는 열흘 뒤인 8월 28일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내지 않고 재제청을 요청했다. 1987년 현행 헌법 체제에서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조 대법원장은 25일 만인 지난달 22일 재제청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면서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한다는 헌법 제82조를 언급했다. 청와대는 같은 날 오후 "마치 대통령의 재제청 요청이 헌법상 문서주의와 부서제도를 준수하지 않은 흠결이 있는 것처럼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입장 발표"라고 반박했다. 8월 28일자 공문은 전자문서로 시행됐고 국무총리가 부서했다는 설명이다. 청와대는 "국민들이 다 아시는 반려 사유를 유독 대법원장만 공문에 그 내용이 없으니 모르겠다고 하는 것인지 그 의도를 가늠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튿날 대법원 언론 공지를 통해 추가 입장을 냈다. 그는 "'제청과정에서의 절차적 흠결'이 존재한다는 사유는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기초해 볼 때 수긍하기 어렵다"며 "공문의 문언상 명확한 근거와 사유가 제시되어야 그 효력에 다툼이 없고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 제82조 언급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내용이지, 8월 28일자 공문에 형식적 하자가 있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4시간여 만에 다시 공지를 내고 "공문상 누가 보더라도 대통령의 임명 거부 입장이 명백히 드러나 있다"며 "적법하게 추천된 후보자들을 제청 대상에서 배제하려는 시도야말로 절차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email protected] 김동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