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늦게 나왔어도…" 대낮 마트 흉기난동에 무너진 일상 [흉기 공포, 끝없는 참극(上)]
인천 흉기난동 현장 가보니 식당가 '텅텅'
호신용품 검색 급증·사설 경호 수요 늘어
경찰 초동 대응 논란에 순찰 강화 목소리
[파이낸셜뉴스] "길에서 마주쳐도 누가 위험한 사람인지 알아볼 수가 없으니 무섭죠. 식당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공격당하면 어떻게 피하겠어요."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일상 공간에서 흉기난동이 반복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호신용품에 대한 관심과 사설 신변보호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다중이용시설의 치안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4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한 대형 복합상가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씨(40대)는 전날 평소처럼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온 건물에서 흉기난동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조금만 늦게 나왔어도 우리가 휘말렸을 수 있었다"며 "늘 밥을 먹으러 다니던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식사 장소를 바꾸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전날 이 건물에서는 59세 남성 최모씨가 일면식 없는 시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8명이 다쳤다. 이 중 20대 여성 1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사건 현장은 하루가 지나도 한산했다. 약 20개 점포와 300석이 넘는 좌석이 마련된 식당가에는 점심시간인데도 빈 의자가 대부분이었다. 피의자 제압에 나섰던 식당 주인의 아들이 있는 가게는 '오늘은 쉽니다'라는 안내문을 내걸고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근처 식당 주인 유모씨(50대)는 "우리 식당 손님도 등을 찔렸고, 피의자가 다른 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무서워서 숨어 있었다"며 "원래 이 동네는 조용한 편이고 강력범죄가 자주 일어나지도 않는데 왜 하필 이 건물에 와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시민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무차별 흉기 범행은 이전에도 반복돼 왔다. 지난해 4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마트에서도 흉기난동으로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2023년 7월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서는 30대 남성이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같은 해 8월 경기 성남시 서현역 인근에서는 20대 남성이 차량으로 보행자들을 들이받은 뒤 백화점에 들어가 흉기를 휘둘러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잇단 흉기난동을 계기로 공공장소 흉기소지죄가 신설됐지만 관련 사건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이 김준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법 시행 이후 올해 8월까지 공공장소 흉기소지죄 사건은 1193건 발생해 1164명이 검거됐고 1020명이 송치됐다.
반복되는 범죄에 대한 불안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으로도 이어지는 추세다.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호신용품' 검색지수는 지난 12일 19에서 사건 당일인 13일 100으로 약 5.3배 뛰었다. 지난달 13일(16)과 비교하면 6배 이상이다. 서울 서초구의 한 호신용품 판매업체 대표는 "앞서 신림역 흉기난동 당시 용품 구매가 크게 늘었다"며 "가스총과 전기충격기가 주로 팔리는데 이번에도 문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사설 신변보호 서비스 의뢰도 증가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사설탐정 사무소에서는 2023년 신림역·서현역 사건 이후 월평균 약 5건이던 의뢰가 최근 12건가량으로 뛰었다. 법원 동행 외에도 콘서트장 등 인파가 몰리는 장소에서 경호를 요청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는 설명이다. 경찰 출신 박민호 탐정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언제 어디서 공격당할지 알 수 없는 데다 경찰력만으로 대응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유사 시설에서 모방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흉기난동이 일상 공간의 안전에 대한 믿음을 흔들고 시민들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공공장소가 안전하다는 믿음이 무너지면 항상 경계하고 주의를 기울이게 돼 피로감이 커진다"며 "사건의 원인을 신속히 규명하는 한편 위기 상황에서 서로 도울 수 있다는 믿음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중이용시설의 치안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도 과제다. 쇼핑몰과 대형마트는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경찰의 순찰은 도로 중심으로 이뤄져 시설 내부가 상대적으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기동순찰대 등을 활용해 평상시 순찰을 강화하고, 경찰 인력과 장비가 부족한 지역에는 드론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순찰을 보완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현장에는 순찰차가 배치되고 경찰관들이 건물 내부를 순찰했지만 시민들은 일시적인 조치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사건 현장 인근 상가의 50대 상인 B씨는 "시민들은 의자 등 주변 물건을 들고 맨몸으로 범인을 막았는데 경찰은 나중에 방패를 들고 왔다"며 "경찰이 더 빨리 대응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건물 자체의 경비 체계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사건이 발생한 건물 관리실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건물은 별도의 경비실 없이 1층 안내데스크에 경비원 1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일부 이용객들은 대형마트 영업 중단 기간에 상주 경비 인력이 빠져나간 뒤 재영업 과정에서도 충원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주기적인 순찰을 통해 시민들의 불안감을 줄이고 범죄자의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며 "지역별로 부족한 경찰 인력과 예산, 장비를 적절히 배분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김예지 최승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