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집터는 부동산이 아니다… 선조의 영혼 깃든 공간
일본은 그야말로 고질적인 계급사회이며, 그 인식은 민주화되었다는 시민국가 속에서도 깊숙하게 자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민(平民) 계급에 속했고, 그 단어를 줄여서 한 글자로 적으면 민(民)이 된다. 민으로 시작하는 글자들의 저변에는 이러한 저간의 계급 개념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민가'라고 하면 평민의 집을 말하고,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창안인 '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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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그야말로 고질적인 계급사회이며, 그 인식은 민주화되었다는 시민국가 속에서도 깊숙하게 자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민(平民) 계급에 속했고, 그 단어를 줄여서 한 글자로 적으면 민(民)이 된다. 민으로 시작하는 글자들의 저변에는 이러한 저간의 계급 개념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민가'라고 하면 평민의 집을 말하고,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창안인 '민예'�

'우키요에'(浮世繪)는 글자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진 세상 풍정'을 그린 그림이다. 제작수가 적은 '육필화'는 소수가 남았고, 대중적으로 소비됐던 '목판화'가 주로 알려져 있다. 목판의 요철면을 이용해 채색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①화가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②그 그림을 목판에 얹어서 그림대로 조각을 하고 ③목판 위에 물감을 칠하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누르면서 색을 입

'마츠리'라고 하면 가무가 동원된 방식의 축제라고 생각하는데, 결단코 아니다. 팡파레와 행진으로 시작하는 페스티벌이라기보다는 멕시코나 페루의 피에스타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곳에서 먼저 살았던 분들의 돌아가신 영혼을 맞이하여 위로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접신용의 술을 마시고 숙취한 상태로 춤을 추는 모습들이 어울린다. 일본에서 마츠리는 '祭り'

'키모노'(着物)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입는 물건'이란 뜻이다. 여러 가지 사전들을 종합해서 정리해보니, 키모노는 직각과 직선의 포(布)를 봉합해서 만든 것이며, 굴곡과 요철로 인한 신체 움직임에 여유를 제공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방형의 천이 기본이기 때문에 표준화가 쉽고, 천을 만드는 과정의 노동이 예사롭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한 벌을 여럿이 공유할 수 있다는

동아시아 문화의 특징들 중 으뜸가는 물건을 꼽으라면 젓가락이다. 베트남까지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젓가락은 각 나라마다 특징도 잘 보여준다. 한국인들의 손재주가 젓가락 사용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젓가락의 길이와 미세한 생김새도 다양한데, 베트남의 젓가락이 가장 길다. 눈에 확 뜨이는 것은 오키나와의 대나무로 만든 '우메시'(赤黃箸)다. 혼롓날 아내가

동아시아 문화의 특징들 중 으뜸가는 물건을 꼽으라면 젓가락이다. 베트남까지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젓가락은 각 나라마다 특징도 잘 보여준다. 한국인들의 손재주가 젓가락 사용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젓가락의 길이와 미세한 생김새도 다양한데, 베트남의 젓가락이 가장 길다. 눈에 확 뜨이는 것은 오키나와의 대나무로 만든 '우메시'(赤黄箸)다. 혼롓날 아내가

내가 '마구로'라는 물고기 한 마리를 통째로 본 때가 국민학교 4학년, 1958년이다. 사모아로 원양어업을 나갔던 제동산업의 지남호가 잡아온 물고기 한 마리가 배달되어 우리집 마당에 자리하고 누웠는데, 머리에서 꼬리 쪽에 있는 동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1970년대 중반 전남 진도의 어촌에 살면서 어부들로부터 '다랭이'라는 이름을 배웠는데, 표준어 '참치'라는 단어는 통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선사시대의 학문을 꼽으라면, 단연코 '별의 학문'(星學)이다. 그리스어로 별인 '아스타'(asta)를 이어받은 단어가 '아스트로노미'(천문학)다. 동일한 역사적 궤적을 이어왔지만, 근자에 학문의 모습을 갖추려는 '가스트로노미'가 있는데, 그리스어의 '가스타'(gasta)는 위를 말한다. '위학'(胃學)이다. 프랑스어 '구루메'(식도락)도 '가스타'에서 왔다. 달 왕복을 성

발품을 팔아야 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브라질의 상파울루에서는 남미 일대에 어설프게 얽어진 '코리안 마피아'를, 사할린에서는 러시아의 진짜 '마피야'를 접할 기회도 있었다. 일본을 드나들다 보니 그야말로 우연히 '야쿠자'와 접할 기회가 있었다. 십여년 전 정월 안케이 유지 교수와 일본 최남단의 요나구니 섬을 방문했다. 대만의 고산준령에 110㎞ 다가선 곳으로, 1477년 그 �

10여년 전 '남경대도살' 전시 현장에서, 1937년 백인참수를 경쟁하는 일본군 장교의 사진과 우웨이샨(吳爲山)의 기억 조각 작품들이 340년 전 정유재란의 역사를 소환했다. 사령 저주가 두려운 공양의 심성이 민간신앙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사체 훼손을 서슴지 않는 역사적 현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앞세웠던 임진왜란 때는 많은 조선인이 포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