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숙칼럼

기사 49개

  힌턴의 오래된 생각

힌턴의 오래된 생각

그는 캐나다 토론토 시내에서 미국 타호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2012년 12월이다. 버스 뒷좌석에 누운 상태로 뉴욕까지 갔다. 거기서 캘리포니아 트러키까지는 기차를 이용했다. 다시 택시 뒷좌석에 드러누워 30분 동안 산길을 올랐다. 그렇게 시에라네바다산맥 북쪽에 있는 타호에 다다랐다. 당시 만난 뉴욕타임스 기자(케이드 메츠)에게 말했다. "제가 마지막으로

  오죽하면 한은 총재가

오죽하면 한은 총재가

참고서 저자들이 시대를 풍미한 시절이 있었다. 1950년대 말 안현필이 펴낸 '영어실력기초'는 500만부 이상 팔렸다. 제주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 배달을 하며 영어 공부를 했다. 돌아와 학원을 설립하고 여기서 직접 교재를 만들어 일약 갑부가 된 것이다. '성문종합영어'의 저자 송성문과 '수학의 정석' 홍성대는 1960년대 후반 학원가를 휩쓴다. 이들�

  벤처 영웅의 몰락

벤처 영웅의 몰락

미국의 제프 베이조스가 세상의 모든 물건을 인터넷에서 팔겠다는 포부로 아마존 문을 연 때가 1994년이다. 온라인 경매업체 이베이도 그해 사이트를 오픈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신시장이 우리에게 온 것은 그로부터 2년 뒤다. 데이콤의 사내벤처 인터파크와 롯데인터넷백화점에서 K이커머스는 시작된다. 그때 직원들은 이메일로 주문을 받고 계좌에서 입금을 확인한

  라면, 바다를 건너

라면, 바다를 건너

"라면의 탄생은 수천년 동안 이어진 허기를 달래준, 식량사의 전환으로 꼽힌다('라면을 끓이며')"고 말한 이는 소설가 김훈이다. 라면이 우리나라에 처음 나온 것이 1963년이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됐던 시대다. 시장 상인들은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잔반과 음식물 쓰레기로 꿀꿀이죽을 끓여 5원에 팔았다. 간혹 씹다 뱉은 껌이나 담배 꽁초까지 섞여있기�

"지붕이 불타고 있다"

1986년 3월 덩샤오핑 시대 개혁개방의 바람이 중국을 덮치고 있을 때였다. 세계 굴지의 회사들이 중국의 값싼 노동력, 거대한 신시장에 취해 앞다퉈 합작사를 세우던 시기다. 원자력, 인공위성 분야 과학자 4명이 덩샤오핑에게 편지 한통을 보낸다. 더는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미래 분야가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덩은 편지를 읽고 바로 움직인다.

  제조업의 시간

제조업의 시간

1962년 2월 현대중공업 울산 공업센터 기공식에서 울려 퍼진 박정희의 연설문은 비장감이 넘친다. "4000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 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신생 공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로 시작한다. 하이라이트는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 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 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갈 것"

 테무는 알고 있다

테무는 알고 있다

중국의 돤융핑 부부가오 그룹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유명하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했던 오포, 비보의 창업자였고 IT 투자업계 거물로 통했다. 지금은 미국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지만 여전히 중국 창업 교사로 막후에서 활동한다. 그는 2006년 워런 버핏과의 점심을 62만달러에 낙찰받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돤융핑은 그 자리에 26살의 앳된 청년을 데려갔다. 그가

  포스코를 대하는 방식

포스코를 대하는 방식

"정부는 필요할 땐 아무리 찾아도 없고, 필요하지 않을 때 바로 뒤에 서 있다." 이 말을 한 이는 포철 신화의 주인공 박태준 포스코 전 회장이다. 박정희 시대 정주영 현대 회장이 도로로 '산업화 대동맥'을 구축할 때 박태준은 철강이라는 '산업의 쌀'로 근대화의 기수가 됐다. 가난한 나라, 척박한 땅에서 쇳물이 터져나올 것이라고 기대한 해외 인사는 없었다. 자�

  카카오가 어쩌다

카카오가 어쩌다

5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간 집안의 기둥이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86학번) 재학 시절엔 극한의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대고, 가족 생계를 책임졌으며 한편으론 노는 것도 열심이었던 낙천주의자. 카카오 김범수 창업자의 성공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얼핏 봐선 흔한 분투기일 듯싶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어느 날 후배 하숙집에서 PC통신 현장을 처음 보고 그는 정신이 아득

  포니의 이 대리

포니의 이 대리

서울대가 공업교육과에 자동차공학 전공을 처음 개설한 때가 1963년이다. 그해 신입생 이충구는 사상 첫 자동차 전공 세대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학과 동기들 대부분이 그때까지 타 본 자동차라곤 미군이 쓰던 승합차를 개조해 만든 19인승 시내버스가 유일했다. 겨울이면 배터리에서 황산과 유황 타는 냄새가 바닥을 뚫고 올라왔다. 이제 시작인 학과의 환경은 열악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