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숙칼럼

기사 49개

  여왕의 70년, 어른의 정치

여왕의 70년, 어른의 정치

"저는 여러분 앞에 선언합니다. 저는 평생, 단명하든 장수하든 헌신적으로 여러분께 봉사할 것입니다." 1947년 4월. 이 짧은 문장을 담은 6분짜리 연설이 영국연방 전역에 생중계됐을 때 수많은 이들이 울컥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지 6세의 장녀, 스물한 살의 엘리자베스다. 세상을 향한 그의 첫 메시지였다. 공주 역시 쉰한살 학자가 쓴 이 원고를 보자마자 그 엄숙함�

  엘리너 루스벨트의 헌신

엘리너 루스벨트의 헌신

"당신의 동의 없이는 아무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고 말한 이는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다. 미국의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FDR)의 부인이다. 엘리너가 남긴 어록은 수도 없이 많다. "돈을 잃은 자는 많은 것을 잃은 것이며 친구를 잃은 자는 더 많은 것을 잃은 것이며 신의를 잃은 자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이 �

  분석하고 행동하라, 메르켈처럼

분석하고 행동하라, 메르켈처럼

1989년 11월 9일 목요일 오후 독일 동베를린. 35세 동독의 과학자 앙겔라 메르켈은 동료들과 세미나를 끝낸 뒤 사우나에서 시간을 보냈다. 거리로 나왔을 때, 국경 검문소는 열려 있었다. 장벽에 오른 시민들의 함성이 쩌렁쩌렁했다. 그때 메르켈이 한 일은 평소처럼 맥주를 마시는 대신 "서쪽으로 걸어간 것"이 전부였다. 메르켈의 16년(2005~2021년) 집권기를 추적해 최�

  젤렌스키의 100일

젤렌스키의 100일

번쩍이는 분홍빛 의상으로 치장한 청년은 단호한 스텝을 밟고 있었다. 현란한 몸짓으로 압도하는 눈빛의 청년은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의 리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다. 그는 2006년 우크라이나 춤 경연대회 우승자였다. 그의 춤 동영상 편집본은 지금도 SNS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다. 소화가 안 되는 장르가 없다. 이토록 유쾌한 대통령의 과거라니. 젤렌스키

  게티 컬렉션, 이건희 컬렉션

게티 컬렉션, 이건희 컬렉션

미국의 석유재벌 폴 게티(1892~1976)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당대 세계 최고 부자에 속했으나 그보다 구두쇠일 순 없는 사례가 숱했다. 그 유명한 손자 납치사건(1973년) 때 보여준 일화가 가장 많이 회자된다. 손자의 잘린 한쪽 귀를 소포로 받고 나서야 게티는 협상에 나섰다. 납치범이 요구한 몸값은 1700만달러. 그는 이를 깎아 300만달러에 합의를 본다. 하지만 실제 부담한

  갈림길에 선 마크롱혁명

갈림길에 선 마크롱혁명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두 전직 프랑스 대통령이 없었다면 지금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샤를 드골 대통령이 문을 연 프랑스 제5공화국 역대 지도자 중 가장 인기 없었던 이가 사르코지, 올랑드인 건 분명하다. 이들 10년 치세가 부른 정치혐오, 대선 코앞에서 터진 쟁쟁한 거물들의 극적인 스캔들, 그 속에서 빛나는 정치�

  누가 푸틴을 두려워하랴

누가 푸틴을 두려워하랴

카키색 털모자를 눌러쓴 러시아 병사는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흐느끼고 있다. 땋은 머리에 보라색 물을 들인 우크라이나 여성은 스마트폰 화상으로 누군가를 불러낸다. "나타샤, 들리나요?" 병사의 어머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아들을 확인한 어머니 목소리가 떨린다. "잘될 거야, 다 잘될 거야." 지난주 외신이 보도한 러시아 병사의 트위터 영상 장면이다. 이보�

  선한 화가 박수근

선한 화가 박수근

1965년 5월 6일 새벽 1시. 서울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온 화가는 결국 숨을 거뒀다. 나이 쉰하나. 요절도 장수도 아니었다. '어느 예술가의 죽음/이젤조차 없이/가난으로 보낸 나날'. 신문은 그의 부고 기사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는 데 실패했던 무명의 화가. 하지만 모두가 사랑하는 국민화가에 이르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가 박�

  슬픈 운명 우크라이나

슬픈 운명 우크라이나

몇 해 전 에스토니아 탈린의 구시가 골목에서 악기 반두라를 처음 보았다. 기타처럼 생겼으나 목은 짧고, 몸통은 얇은 우크라이나 민속 현악기가 반두라다. 우크라이나 출신 건장한 청년이 이 악기로 한없이 슬픈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에 맞춰 노래하던 또 다른 청년은 저음의 굵은 목소리였다. 그 민요풍 노래 가사가 우크라이나 민족시인의 시였다는 사실은 한�

  쪼개진 미국, 바이든의 해법은

쪼개진 미국, 바이든의 해법은

1984년생 제이디 밴스는 미국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전도유망한 변호사다. 이 반듯한 백인 청년은 오하이오 출신으로 그곳에서 평범한 공립학교를 나와 해병대를 거쳐 이라크 파병부대 전투원 생활까지 했다. 예일대 교수들은 이 이력에 입을 쩍 벌렸다. 해병대에서 번 돈을 밑천으로 입학한 오하이오주립대 시절 구직 면접을 위해 그가 고른 복장은 해병대 전투화와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