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숙칼럼

기사 49개

  시진핑의 야망, 인민의 한숨

시진핑의 야망, 인민의 한숨

"날은 더워졌는데 눈이 내렸다. 세월이 병들었다." 지금 중국에서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 옌롄커의 소설 '레닌의 키스'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름에 갑자기 눈이 내린 바러우산맥 장애인마을 서우훠. 해결사로 등장한 현장 류잉체는 보통 캐릭터가 아니다. 혁명과 출세에 목숨 건 류는 러시아가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 시신 관리비로 고민이 많다는 신문기사

  이이효재와 긴즈버그

이이효재와 긴즈버그

지난달 87세 나이로 타계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50여년 법조인생 중 27년을 미국 대법관으로 지냈다. 자신의 후임 지명은 대선 후 해달라는 말을 남겼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보수 중의 보수 에이미 코니 배럿 지명은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성대하게 열린 행사장. 하필 거기서 백악관 인사들이 대거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대�

  벨라루스의 목소리

벨라루스의 목소리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벨라루스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2015년)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72).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에서 그는 반복적으로 이 표현을 썼다. 기자 시절에 쓴 반정부 글로 인해 해외를 전전하다 고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게 10년 정도 된다. '하얀 루시'라는 뜻의 벨라루스는 러시아, 우크라�

  아직도 재택근무를 안하세요?

아직도 재택근무를 안하세요?

"독일 대장장이 출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이후 이토록 큰 변곡점은 없었다." 미국 저명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의 지적이다. 그가 말하는 변곡점은 정확히 2007년에서 시작한다. 특별할 것 같지 않아 보였던 그해 1월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 세상을 뒤흔들었다. 페이스북이 e메일 주소를 가진 13세 이상 모두에게 사이

  푸틴은 어떻게 세계를 속였나

푸틴은 어떻게 세계를 속였나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어중간한 시공무원에서 최고권좌에 오른 과정은 극적이다. 1990년대 말 막판 병약해진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그들 안위를 위해 급히 스카우트한 국가보안위원회(KGB) 중령 출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초반 2%대 지지율에 불과했지만, 그후 정교하게 터져나온 체첸분쟁이 이 무명의 정치인을 대통령 자리까지 올�

  트럼프냐 시진핑이냐

트럼프냐 시진핑이냐

마오쩌둥 주석이 이끌던 중국의 2인자 저우언라이 총리는 인민복 차림으로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의 베이징 숙소를 찾았다. 1971년 7월 9일 오후였다. "키는 작지만 우아한 자태며 표정이 풍부한 얼굴에 번득이는 눈빛이었다. 탁월한 지성과 품성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키신저는 저서 '중국이야기'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냉소적

  미셸 오바마

미셸 오바마

한때 미국 언론은 그를 '성난 흑인 여성'의 대표자로 그렸다. 하지만 이제는 재클린 케네디 이후 가장 우아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영부인에 그를 올려놓는다. 시카고 변두리 흑인동네에서 태어나 프린스턴대·하버드대·유명 로펌·백악관까지 차례로 정복하며 완벽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여인. 남편이 대통령에서 물러났어도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아니,

  어떻게 미국에 이런 일이

어떻게 미국에 이런 일이

극우 기세에 바람 잘 날 없던 이탈리아의 코로나발(發) 붕괴는 그럴 수 있다 치자. 경제력, 군사력, 기술력 세계 최강 미국의 코로나발 초토화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봉쇄령에 지친 미국인들은 이제 총까지 들고 나와 셧다운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확진자수는 80만명을 넘었다. 세계 모든 국가를 압도하는 이 수치만으로도 공포스럽다. 도널드 트럼프

 日 코로나 미스터리

日 코로나 미스터리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미군에 공식 항복을 선언한 날, 도쿄 풍경은 그로테스크했다. 궁성 앞 오열하는 젊은이들 사진은 훗날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당시 시내 거리엔 이상한 활력이 넘쳤던 모양이다. 작가 사카구치 안고(1906∼1955)는 "전쟁의 위대한 파괴 아래 운명은 있었으나 타락은 없었다. 무심했지만 충만했다"는 말로 그 순간을 기억했다. 사카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