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사회적 분노조절장애
'저주 인형'이 온라인에서 잘 팔리고 있단다. 기발하다기에 앞서 놀랍다. 남을 미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행을 겪도록 빈다는 것이 저주 아닌가.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됐을까. 증오하다 못해 저주까지 퍼붓는 세상. 그런 심리에 편승해 물건을 파는 세태.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질투해 저주하는 드라마를 흉내 냈다. 저주하는 사람 인형을 만들어 불태우거나 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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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인형'이 온라인에서 잘 팔리고 있단다. 기발하다기에 앞서 놀랍다. 남을 미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행을 겪도록 빈다는 것이 저주 아닌가.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됐을까. 증오하다 못해 저주까지 퍼붓는 세상. 그런 심리에 편승해 물건을 파는 세태.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질투해 저주하는 드라마를 흉내 냈다. 저주하는 사람 인형을 만들어 불태우거나 때리

죄를 다스리는 데는 법과 사법제도, 법관이 필요하다. 진실을 추구하고 공정한 심판을 위한 요소들이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관이 가장 중요하다. 법관은 오직 법에 따라 재판을 하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개인의 주관과 사회적 관계를 초월해야 한다. 보통의 인간을 뛰어넘는 인격과 냉철함이 요구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이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나라가 쪼개진 듯 좌우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 도달했다. 본 적 없는 법원 난입 사태도 벌어졌다. 광복 후 서로 잡아먹을 듯 싸웠던 분열상의 재현이다. 80년이 지났어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그때로 돌아가 보자. 100년 전인 1925년 4월 17일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트로이카가 조선공산당을 창건했지만 기를 펴지 못했다. 일제라는 타력(他力)에 의해 공산당의 싹이 자라�

비상계엄 발령을 놓고 아직도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많다. 고조되는 사법 리스크로 더불어민주당은 가만히 둬도 자멸할 수도 있었다며 보수 지지자들은 여태껏 아쉬워한다. 도리어 몰락의 위기에 몰린 상황이 못내 안타깝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보호에 급급한 안이한 인식으로는 보수의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시대착오적 오판인 윤 대통령�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채널을 돌리다 KTV에 멈추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무슨 담화문을 읽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과 서울중앙지검장 탄핵을 시도한다니까 긴급 호소문 같은 것을 발표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이상해지더니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이건 아닌데' '경제도 안 좋은데 큰일 났다' 등의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야당�

미국 정치 전문매체인 '액시오스'가 대통령 취임을 앞둔 트럼프에 대한 각국의 맞춤 전략을 소개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골프 연습을 첫머리에 올렸다. 대통령의 골프가 일상화된 미국의 시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골프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우리 모습이 낯설거나 신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골프의 어두운 측면이 유난히 강조되는 것은 골프장의 밀실정치를 떠올리기 �

끝을 알 수 없는 막장 드라마다. 상대가 쓰러져 죽어야 끝날 것인가. 오케이 목장의 결투처럼 정치판은 증오와 살기가 넘친다. 한쪽만 옹호하고 한쪽만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옳고 그름이 무분별해진 세상은 그악스러운 패거리들이 정의의 탈을 쓰고 설쳐댄다. 추락하는 한국 정치에는 날개가 없다. 망해야 추락을 멈출 것 같다. 한국의 정치 수준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3~4

작은 희망이 보였다. 노벨상 얘기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논문에 한국인 하일호 박사가 공동 1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말하자면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결정적 도우미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푼다. 윤석열 정부가 작년에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과

윤석열 대통령은 좀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체코에서 원전 수주 확약받느라 고생고생하고 돌아왔는데,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닥을 치는 지지율이기 때문이다. 30%를 오르내리는 지지율은 득표율 48.56%에 비하면 대폭락이다. 보수들도 셋 중 하나는 등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는 '뚝심'이다. 전임 정권들이 알고도 손대지 못한 개혁을 실행에 옮겼다. 연

우울한 광복절 아침을 맞았다. 이념 논쟁으로 기념식이 두 쪽이 났기 때문이다. 광복절마저 휘감은 이념의 굴레는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인식이 틀린 것이 아니다. 먹고사는 것만큼 소중한 가치는 없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인식과 실제가 다른 데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