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여전히 근로시간이 세계 최상위권에 속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872시간으로, 이는 독일 등 주요 선진국보다 400~500시간 이상 긴 수준입니다.
그러나 긴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노동생산성은 낮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0.9달러 수준으로, 미국(83.6달러), 독일(83.2달러), 프랑스(81.8달러)에 크게 못 미칩니다. '많이 일하지만 효율은 떨어진다'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이에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근로시간 속에서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정부 역시 변화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주4.5일제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과제이자 대선 공약으로 포함돼 있으며,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을 출범시켰습니다. 추진단은 내년부터 주4.5일제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범사업은 공공기관 일부와 민간기업 자율 참여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정부는 장시간 근로 문제를 개선하고 새로운 근무제 모델을 실험함으로써 제도화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시범사업이 공공부문 위주로 진행될 경우 민간 기업, 특히 중소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됩니다. 정책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지 않고 실제 제도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재정 지원, 제도 설계, 업종별 현실 반영 등 복합적인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거론되는 형태는 '금요일 반일 근무제'입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기존과 동일하게 근무하고, 금요일에는 오전에만 절반 근무를 한 뒤 오후에는 휴식하는 방식입니다. 이 제도의 장점은 매주 금요일 오후가 고정된 휴식시간으로 확보된다는 점입니다. 주말이 실질적으로 길어지면서 근로자 입장에서는 짧은 여행, 여가 활동, 자기계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익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습니다. 여전히 매주 5일간 출퇴근을 해야 하고, 실제 근무시간은 하루 4시간 줄어드는 것에 불과해 피로도 개선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장거리 출퇴근자에게는 반나절만 근무하더라도 왕복 출근 시간은 동일하게 소요되므로 실질적인 편익이 떨어집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방식이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제도일 뿐, 노동시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은 약하다"고 지적합니다.
또 다른 형태는 '격주 단축 근무제'입니다. 격주로 금요일 하루를 통째로 쉬게 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2주에 한 번 주4일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한 달에 이틀 정도는 금요일을 포함한 3일 연속 휴식을 보장받을 수 있어 체감 효과가 큽니다. 장거리 여행이나 가족과의 시간을 계획하기에도 유리합니다. 또한 출퇴근 횟수를 월 2회 줄이는 효과가 있어 교통비와 시간 절약 측면에서도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특정 주에는 인력 공백이 하루 전체로 발생하기 때문에 생산·서비스 운영에 부담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업종별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어떻게 조율할지도 중요한 과제로 꼽힙니다. 전문가들은 격주 단축이 "실질적인 휴식 체감은 크지만 기업 운영의 불확실성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모든 산업과 직종에 동일하게 주4.5일제를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IT, 디자인, 콘텐츠 기획 등 디지털 직군은 업무 성격상 재택근무나 유연근무제 전환이 쉽고, 근무일 단축으로 인한 공백도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러나 제조업, 물류업, 서비스업, 돌봄업 등 현장 근무가 필수적인 산업은 하루의 공백이 곧바로 생산·서비스 차질로 이어집니다. 공장 설비 가동률과 교대 근무 인력 운영이 직결되는 제조업은 근무일 단축 시 생산일수 감소와 장비 비가동률 증가라는 문제에 직면합니다. 병원, 돌봄시설, 유통점포 등은 365일 운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추가 인력 충원 없이 근무일을 줄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동일한 제도가 오히려 산업 간·기업 규모 간 격차를 확대시키고, 특히 인력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만 구조적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근무일만 줄어들고 업무량이 그대로라면 현실에서는 오히려 압축 근무로 인한 부담이 커집니다. 남은 4일간 더 높은 집중력과 효율성을 요구받게 되며, 성과 중심 조직일수록 이 압박이 크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일부 기업에서 시범 도입된 주4일제 사례에서는 "업무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피로도가 오히려 늘었다"는 근로자 피드백이 보고된 바 있습니다. 특히 프로젝트 중심 직무, 일정 조정이 어려운 직종은 단축된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 압박이 강합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효율 개선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근로자의 스트레스와 번아웃 가능성을 높여 조직 전반의 생산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추진된 제도가 오히려 '성과 압박 강화'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제도 설계가 요구됩니다.
근로시간 단축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려면 생산성 향상 전략이 반드시 병행돼야 합니다. 업무 프로세스 혁신, 디지털 자동화, 협업 구조 개선 등 근본적 변화 없이 단순히 근무일수만 줄이면 기업 활동 전반에 왜곡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인건비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이 산업의 뼈대를 차지하고 있는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인건비와 고정비 증가는 이들에게 직격탄이 됩니다.
실제로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주요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근무일수를 줄이는 정책이 무리하게 추진되면 투자 위축, 채용 축소, 국내 고용환경 경직성 심화 등 연쇄적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의 해외 이전, 국내외 투자자 신뢰 약화라는 경제 전반의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근무일 단축과 함께 생산성 제고 대책, 중소기업 지원책이 병행돼야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