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교육일반

"대학에 기부 때 稅 혜택… 부자감세 아닌 교육사다리 재건" [인터뷰]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취약계층 뽑고 ‘나 몰라라’ 안돼 맘 놓고 공부할 환경 마련해야 대학 독립재원으로 끝까지 지원 등록금 동결에 대학들 ‘벼랑 끝’ 정부 1년짜리 예산 기대선 한계 한국형 ‘레거시 텐’이 돌파구 공익법인 등에 재산 출연 시 감세 영국은 이미 도입해 기부 활성화 단 한건의 유산도 대학엔 큰 기둥 내 자식에게만 향하던 교육 열망 다음 세대 위한 나눔 고민할 때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을 대학 문 안으로 뽑아만 놓고, 그들이 걸어갈 복도의 불을 꺼버리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대학 재정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등록금 16년 동결 끝에 올해 전국 4년제 대학의 65.8%가 인상에 나섰지만, 학령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가뭄 속에서 대학 강의실과 실험실의 불은 여전히 꺼져가고 있다. 청년들은 입학이라는 문은 통과했으나, 생활비 부담과 학업 격차의 무게에 짓눌려 어두운 복도에서 헤매고 있다. 이에 세법 권위자이자 대학 행정의 최전선에 서 있는 박훈 서울시립대 대외협력부총장을 만나, 무너진 '교육 사다리'를 재건할 구원투수로 주목받는 유산기부 세제 개편안 '한국형 레거시 텐'의 가능성과 대한민국 교육 재정의 미래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박훈 서울시립대 대외협력부총장이 16일 서울시립대 부총장실에서 '한국형 레거시 텐'과 대학 재정, 교육 사다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립대 제공
박훈 서울시립대 대외협력부총장이 16일 서울시립대 부총장실에서 '한국형 레거시 텐'과 대학 재정, 교육 사다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립대 제공

박훈 서울시립대 대외협력부총장은 16일 서울시립대 부총장실에서 "오랫동안 억제돼 온 대학 등록금과 급등한 물가, 인공지능(AI)·첨단 분야 투자 수요 사이에서 대학들이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고 털어놨다. 대학 입학 자원이 2021년 43만명에서 2040년 28만명 수준으로 급감하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학생 수와 투자 수요의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대학 재정 고갈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취약계층 학생'들이라고 지적했다. 박 부총장은 "재정이 부족해지면 대학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며 "소외계층 학생을 뽑아놓고 기초학습이나 생활비 장학금 같은 사후 지원(풀 패키지)을 못 하든지, 지원을 못 할 바에야 선발 규모 자체를 줄이든지. 어느 쪽이든 피해는 취약한 학생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기부문화의 마지막 빈칸'

박 부총장이 제시하는 돌파구는 '한국형 레거시 텐(Legacy 10)'이다. 지난 3월 국회에서 발의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의 핵심으로, 상속세 과세가액의 10%를 초과하는 재산을 대학 등 공익법인에 기부하면 상속세 산출세액의 10%를 공제해 주는 제도다. 자녀에게 모든 부를 대물림하는 관행을 깨고, 생의 마지막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강력한 세제 인센티브를 주자는 구상이다.

모델이 된 영국은 이미 2012년부터 유산의 10% 이상을 기부할 경우 상속세율을 40%에서 36%로 낮춰주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연간 유산기부 규모가 45억파운드(약 8조원)에 달할 정도로 자선단체의 핵심 재원이 됐다. 국민적 수용성도 높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세제 혜택이 도입될 경우 유산기부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기존 29%에서 53.3%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박 부총장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부자감세' 논란에 대해 "줄어든 세금이 자녀의 주머니로 들어갈 때나 감세지, 레거시 텐은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내놓는 것이 전제"라며 "혜택의 종착지가 상속인이 아닌 '공익'"이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이 법안은 대기업 특수관계 공익법인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전장치를 법률에 명시해 편법 상속의 통로를 원천 차단했다.

서울시립대 전경서울시립대 제공
서울시립대 전경서울시립대 제공

■유산기부로 대학 장기 비전 세워야

박 부총장은 '레거시 텐'이 대학 생태계의 자립을 도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과거 외부 기부금을 유치하려 발로 뛰던 국내 대학 총장들의 시선은 최근 정부가 푸는 국책 사업 예산을 따내는 데만 온 신경이 쏠려 있다"고 현실을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 예산은 단년도 회계와 촘촘한 칸막이 행정이라는 한계가 있어, 대학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장학 제도를 설계하거나 기초학문을 육성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자산이 쏠리는 수도권 명문대가 기부금까지 독식해 '기부의 양극화'가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박 부총장은 자산가들의 기부 성향이 반드시 일류대로만 향하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어 "독지가들은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초일류 대학보다, 자신의 자산이 가장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대학의 구체적인 '비전'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또 "레거시 텐이 도입되면 단 한 건의 유산기부 펀드만 조성돼도 중소 대학이나 지방대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독립 재원이라는 거대한 기둥이 세워지는 셈"이라며 "이 재원이 마련돼야 등록금뿐만 아니라 생활비, 주거비, 멘토링까지 묶어 취약계층 학생을 끝까지 밀어주는 '진짜 의미의 기회 보장'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부의 세습 넘어 '교육적 상속'으로

박 부총장은 지난 4월 자신이 재직 중인 서울시립대에 유산의 일부를 환원하는 '1호 유산기부 약정'을 맺으며 말보다 실천을 먼저 선보였다. 제도 설계자로서 스스로 신뢰를 증명하겠다는 의지다.

그는 "우리 국민은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를 더 낫게 만들겠다는 열망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지금까지는 그 열망이 주로 내 자식에게만 갇혀 있었다"고 짚었다. 이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며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세대 간 자산 이전이 시작되는 지금이 바로 패러다임을 바꿀 때"라며 "부의 세습 대신 우리 모두의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하는 교육적 상속이 결국 내 자녀가 살아갈 대한민국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현명한 상속"이라고 강조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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