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재개방"에도 사라진 11억5000만배럴 원유는 어떡하나
[파이낸셜뉴스]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에 합의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됐지만 시장 정상화는 요원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MOU 체결 첫날 유조선 25척이 이미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고, JD 밴스 미 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지난밤 원유 1200만배럴 이상을 실은 유조선들이 해협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CNN은 19일 분석업체 K플러(Kpler) 자료를 인용해 이미 국제 석유 시장에서는 봉쇄 기간 원유 11억5000만배럴이 사라진 상태라 단기간에 석유 수급 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비관했다.
세계 석유, 천연가스 수송의 20%를 책임지는 호르무즈가 재개방되기는 했지만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는 비관이 높다는 것이다.
해협 재개방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임계점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략비축유(SPR)은 1990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또 미 SPR 역시 43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각 기업들이 보유한 상업용 재고도 영업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로 줄어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7일 프랑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약 4주 뒤면 비축유가 고갈된다"고 말했다.
미-이란 종전 MOU는 유가를 떨어뜨렸다.
양측 합의가 임박했다는 기대감으로 하락세를 탄 끝에 지난 일주일 브렌트유는 7.7%,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9.8% 급락했다.
이달 들어 브렌트와 WTI는 각각 12% 폭락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배럴당 126달러를 훌쩍 넘던 브렌트유는 이제 8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시장이 석유 과잉 공급이라는 완충장치를 가진 상태에서 전쟁에 돌입해 충격이 적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완충 장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석유 재고가 급속하게 쪼그라들며 시장이 임계점에 다가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란 전쟁 석 달여 만에 재고는 1억9000만배럴이 사라졌다.
세계 최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로 부상한 미국에서도 전역에 석유를 공급하는 핵심 허브인 오클라호마주 쿠싱 송유관이 가동 중단 위기에 내몰려 있다. 석유가 부족해 송유관에 정상적인 압력을 맞추기도 버겁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다 비슷한 처지다.
트럼프는 17일 발언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지 않으면 전 세계 경제가 재앙을 맞게 된다며 이란 종전 MOU를 살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호르무즈가 다시 열렸지만 정상화를 향해 갈 길은 멀다.
해협에 부설된 기뢰를 제거해야 하고, 빈 유조선들이 다시 해협을 통과해 걸프 국가들에서 석유를 실어야 한다.
석유를 보관할 곳이 없어 가동을 멈췄던 걸프 국가들의 유정도 재가동돼야 한다. 일부 유정은 아예 사용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석유 업계에서는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애널리스트들이 현재 유가는 지나치게 낮아진 상태로 조만간 다시 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시장이 현재 석유 고갈 위기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명 석유 애널리스트인 헬리마 크로프트 RBC 캐피털 마켓츠 글로벌 상품전략 책임자는 "시장이 현 수준보다 7단계나 앞서갔다"면서 "모두가 마치 "이제 (어려움은) 끝났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크로프트는 그러나 "과거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거대한 물류 문제가 놓여있다"고 강조했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둘러싼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고 나면 시장 펀더멘털이 결국 시장을 장악해 유가가 다시 뛸 것이란 우려다.
전쟁 기간 사라진 석유 공급량 11억5000만배럴을 충당하려면 IEA가 예상하는 것처럼 하루 500만배럴 가까이 더 생산하더라도 약 1년은 걸린다.
그러나 시장은 늘 논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데다, 비관론자들의 우려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다.
자산 운용사 인프라스트럭처 캐피털 어드바이저스 최고경영자(CEO) 제이 햇필드는 현금 확보에 혈안이 된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이 산유량을 대거 확대하면서 지금의 시장 모멘텀이 유지될 것으로 기대했다.
전쟁 전 막대한 공급 초과에 따른 석유 재고 역시 시장 충격을 줄여줄 것이란 기대 역시 남아있다.
맥쿼리 그룹 글로벌 석유, 가스 전략가 비카스 드위베디는 "완충장치가 충분했고, 지금껏 이를 파먹고 살았다"면서 "지난해 이전에 비해서는 (재고가) 적기는 하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미 경유 재고의 경우 2003년 이후 23년 만에 최저 수준이기는 하지만 지난 5년 평균치 대비로는 단 12.4% 부족할 뿐이다. 미 휘발유 재고 역시 전년 대비 고작 5% 적다.
드위베디는 재고 위험이 실재하기는 하지만 유가 강세론자들이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