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냉각기술 바꿔보자" 삼성 하이브리드 냉장고의 시작 [퍼스트무버 2026]
(3)삼성전자 냉장고 개발팀
전세계 제품이 '냉매 압축' 기반
3년전 "패러다임 바꿔보자" 특명
전기로 열 변환 '펠티어 소자' 접목
두달만에 대형냉장고에 기술 적용
에너지 효율 몇단계 뛰어넘는 혁신
2030년 '냉매 없는 냉장고' 목표
【파이낸셜뉴스 경기(수원)=조은효 임수빈 기자】 꼭 3년 전인 2023년 6월이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생활가전(DA)사업부에 '특명'이 떨어졌다.
"세계 가전업계가 여전히 200년 전 처음 개발된 '냉매 압축 냉각'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제는 관점을 바꿔서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삼성전자 디바디스 경험(DX, 가전·휴대폰)부문 최고 경영진의 지시가 내려왔다. "냉장고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꿔보자." 난이도 '특등급' 주문이었다.
삼성전자 DA사업부 냉장고 개발팀의 경력 25년차 윤원재 상무를 시작으로, 10년 이상의 '냉장고 장인들'이 머리를 싸맸다. 두 달여 시간이 흘렀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원리를 900ℓ급 대형 냉장고에 적용해보겠다. 한쪽면으로는 흡열을, 다른쪽으로 발열하는 '펠티어 소자'를 접목해보자. 그렇게 되면, 압축기(컴프레셔·자동차의 엔진 역할) 기능을 축소하게 돼, 전력 효율을 높이고, 공간을 넓히게 된다. 무엇보다, 종국엔 '냉매가스 없는 냉장고'를 목표로 한다." 이런 내용의 보고와 함께 즉각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그거 말 된다. 해보자." 일사천리였다. 냉각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첫 발을 뗀 순간이었다.
■세계 첫 하이브리드형 대형 냉장고
21일 찾은 경기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DA사업부 냉장고 개발팀 윤원재 상무가 기자에게 "펠티어 소자에 손을 한 번 갖다대보라"고 권했다. 전원이 켜지자, 손 끝이 무척 차갑게 느껴졌다. 펠티어 소자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전자가 주변의 열을 흡수에 즉각 온도를 낮추게 된다. 전자는 다시 반대편으로 이동해, 열을 방출하게 된다. 윤 상무는 "전기로 열을 변환시킬 수 있는 펠티어 소자만 활용할 수 있다면, 냉장고에서 엔진 역할을 하고 있는 압축기 역할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 세계 냉장고 시장은 '냉매가스 순환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1820년대 영국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기체를 압축하고 증발시키면 주변이 차가워진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고, 1834년 미국 발명가 제이콥 퍼킨스가 인류 최초로 '냉매를 이용한 얼음 제조기'를 만들어 특허를 받았다. 오늘날 '증발기-압축기-응축기'의 시초다.
냉장고개발팀 고성복 랩장은 "2500cc자동차에 배터리를 접목해 하이브리드차량으로 바꾸게 되면 2000cc 엔진으로도 같은 성능을 낼 수 있는 원리처럼, 압축기 역할 일부를 펠티어 소자가 담당하도록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펠티어 소자의 효율성이었다. 많은 글로벌 가전업체들이 소형 와인셀러, 정수기 외에 대형 냉장고에는 엄두내지 못했던 이유였다. 불철주야로 달리며 실험이 반복됐다. 각종 상황별로 압축기와 펠티어를 어떤 비율로 운전할 지 정하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고 한다.
그해 10월 실증에 성공했다는 보고가 올라갔다. 6월 첫 지시 이후, 10월 실증, 겨우내 양산 개발까지 'K-산업'다운 엄청난 속도전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듬해인 2024년 3월 펠티어 소자를 접목시킨 세계 첫 '하이브리드 냉장고'가 탄생하게 됐다. 그것도 900ℓ급 대형 냉장고였다. 지난해에는 1등급 가전 기준선보다도 30%나 전력사용을 줄여 '최고 전력 효율 냉장고'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았다. 에너지 효율을 7% 개선하는 데에 1년 정도가 소요된다. 몇 단계를 뛰어넘은 혁신이었다. 첫 탄생 이후 3번째 삼성의 하이브리드형 신제품이 최근 시장에 나왔다. 현재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펠티어 소자를 접목한 하이브리드 냉장고는 삼성뿐이다.
■냉매 압축방식 완전 대체 기술 개발
삼성전자 관계자는 "2030년께 냉매 압축 방식의 완전한 대체를 목표로 '고효율의 나노 박막 펠티어 소자'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격 상용화된다면, 냉장고뿐만 아니라 대형 에어컨 시스템까지 확장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삼성리서치 연구진과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 연구소가 공동 추진한 '차세대 펠티어 냉각 기술'이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게재됐으며, '산학협력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미국 R&D 월드 매거진 주관 'R&D 100 어워드'의 100대 혁신 기술로도 선정됐다.
연구팀은 고효율 소형 펠티어 냉장고 실증에도 성공했다. 냉매없는 차세대 냉장고 상용화를 향해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윤 상무 등 냉장고 개발팀은 "우리들 손을 거쳐 나간 제품이 매년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선택되고, 기쁨을 준다는 것 자체가 큰 보람이다. '이 맛'에 다들 엔지니어를 한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임수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