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처럼 뭉쳐야 산다" 삼전·닉스만으로는 빅테크 하청기지 신세
대만, TSMC 육성하며 설계·생산·후공정 함께 성장
AI 시대 HBM 부상에 메모리도 파운드리형 구조로 변화
"반도체, AI칩, AI 모델 잇는 한국형 AI 생태계 구축해야"
【신주(대만)·서울=정원일 임수빈 기자】 "메모리만 팔아서는 인공지능(AI) 패권을 잡을 수 없다."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 단순한 반도체 생산을 넘어 가속기와 서버·모델·서비스를 아우르는 '종합 생태계'로 치달으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정작 AI 밸류체인(가치사슬)의 주도권은 미국 빅테크와 엔비디아가 쥐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30여 년 전부터 대만이 TSMC를 축으로 견고한 산업 생태계를 다져온 것처럼, 한국 역시 메모리 주도권을 지렛대 삼아 설계부터 AI 모델까지 촘촘하게 연결하는 'K-AI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AI 랠리는 반도체 설계·생산·패키징을 넘어 인프라와 소프트웨어(SW) 역량까지 융합된 생태계 경쟁으로 진화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대만이다. 업계에서는 대만의 진정한 저력이 TSMC라는 단일 기업을 넘어 그를 둘러싼 '촘촘한 반도체 생태계'에 있다고 평가한다.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 육성 초기부터 TSMC를 중심으로 팹리스(반도체 설계) 생태계를 함께 키워왔다. 미디어텍 등 자국 팹리스와의 끈끈한 협력을 시작으로, 현재는 ASE(패키징)와 폭스콘(제조) 등으로 연계해 '설계-생산-후공정-완제품 조립'까지 이어지는 막강한 공급망을 완성했다.
반면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투톱'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AI 시대의 최대 수혜처가 메모리 산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팹리스 등 비메모리 분야의 빈약한 기반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다.
역설적으로 AI 시대의 도래는 한국에 새로운 돌파구로 작용하고 있다.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의 범용 메모리 사업이 고객사와의 공동 설계, 맞춤형 패키징, 시스템 최적화가 필수적인 산업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어서다.
핵심은 고대역폭메모리(HBM)다. HBM은 AI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필수재로 자리 잡았으며, 세대를 거듭할수록 철저한 고객 맞춤형(커스텀) 제품으로 진화 중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과거 메모리는 만들어 놓고 판매하는 '빵'과 같은 사업이었다면 AI 메모리는 고객 주문에 맞춰 제작하는 '도시락'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메모리 산업 자체가 점차 파운드리형 사업 모델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한국 AI 생태계 확장의 절호의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과거엔 칩 하나만 잘 만들면 됐지만, 이제는 메모리와 AI 가속기, 첨단 패키징, 서버, AI 모델 간의 유기적 협업이 생존 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대만이 TSMC를 구심점 삼아 팹리스 생태계를 일궈낸 것처럼, 한국 역시 압도적인 메모리 경쟁력을 레버리지(지렛대) 삼아 설계·패키징·AI 모델을 아우르는 동반 성장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안 전무는 "메모리만 공급하는 구조로는 결국 글로벌 빅테크의 하청업체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다"며 "국산 AI 반도체와 메모리, AI 모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soup@fnnews.com 임수빈 정원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