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 섬 전체를 배움터로 바꾼다… 'K-런케이션' 세계 표준 도전
글로컬대학30 본지정 후 실행모델 본격화 국내외 청년·연구자 3만명 유치 목표 글로벌노마드대학·J-CORA 구축 추진 제주 자연·문화·산업을 교육 현장으로 이동선 단장 "제주가 가진 것을 제주가 연구해야"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대학교가 제주 섬 전체를 배우고, 머무르고, 연구하는 교육 현장으로 재설계하고 있다. 관광지로 소비돼 온 제주의 자연과 문화, 산업 자원을 교육·연구·창업 플랫폼으로 묶어 국내외 청년 인재와 연구자가 제주에서 학습하고 교류하는 'K-런케이션' 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제주대학교 글로컬사업단(단장 이동선)은 '제주대가 이끌어가는 글로벌 인재 교류와 지속가능한 사회, 제주국제자유도시'를 비전으로 삼고, '제주대학교, K-런케이션 플랫폼의 표준이 되다'를 목표로 글로컬대학30 실행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K-런케이션은 학습과 휴양, 연구와 체류를 결합한 제주형 교육 모델이다. 세계 청년 인재와 연구자가 제주에 머물며 온라인·오프라인 교육을 듣고, 오름과 숲, 해양, 마을, 산업 현장에서 지역 문제를 탐구하는 방식이다.
제주대는 이를 통해 K-런케이션 참여 국내외 청년 인재·연구자 3만명, 대학 간 국제화 프로그램 300건, 제주대 아웃바운드 재학생 3000명, QS 글로벌 인게이지먼트 지수 아시아 10위권 진입을 핵심 지표로 제시했다.
■ 제주 전체가 캠퍼스… 현장형 교육 플랫폼 구축
제주대의 글로컬대학30 사업은 대학 캠퍼스 안의 교육 혁신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과 지역, 산업 현장, 자연·문화 자원을 연결해 제주 전체를 하나의 학습 플랫폼으로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주대가 제시한 8대 추진과제는 글로벌노마드대학 신설, 국제화 학사 지원 시스템 고도화, JNU 교육과정 혁신, 교육방법 혁신, 제주고등인재융합연구원(J-CORA) 구축, 제주 맞춤형 지·산·학·연 연구 생태계 조성, 생애 전주기 창업 생태계 일원화, 삼다도 트로이카 창업 생태계 혁신 등이다.
핵심은 '대학의 현장화'다. 제주대는 글로벌노마드대학을 통해 섬 특화학부 등 4개 학부와 대학원 AI-SDGs 융합전공을 신설하고, 영어 기반 온라인·오프라인 교육을 확대할 계획이다. 제주 전역을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는 제주 에듀리프레쉬 센터도 구축한다.
이 센터는 교실에서 배운 이론을 제주 현장에서 체험·실습으로 연결하는 거점이다. 제주의 숲과 신화, 해양, 오름, 마을, 산업 현장을 교육과정과 비교과 프로그램으로 묶어 제주를 찾는 학생과 연구자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동선 제주대학교 글로컬사업단장은 "학교 안의 교육 시스템을 제주 현장으로 확장해야 한다"며 "제주를 찾는 학생, 연구자, 방문객이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을 알고 체험하도록 만드는 것이 글로컬대학 사업의 중요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 단장은 제주어, 오름, 화산섬, 유네스코 자연유산 등 제주 고유 자원을 교육 프로그램으로 체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가 가진 자산을 관광에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 것이 있는 곳에서 우리가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청정바이오·그린수소·MRO까지 산업교육 확장
연구축은 제주고등인재융합연구원(J-CORA)이 맡는다. 제주대는 J-CORA를 글로벌 인재와 지식 교류가 실현되는 융합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청정바이오, J-Bio 원료, 스마트팜, 넷제로 데이터 등 중점 연구 기능을 통해 기후변화 실증 연구와 지역산업 혁신을 연결한다.
제주 3대 혁신파크는 청정바이오, 그린수소, 우주항공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여기에 관광과 1차산업을 결합해 제주의 근간산업과 미래산업을 함께 키우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산업교육 확장 구상은 선박 정비·수리·운영(MRO) 분야에서도 확인된다. 제주대는 제주형 MRO산업 구축과 인재양성을 위한 지·산·학·연 협력 전략을 논의하며 한화오션 현장 세미나를 진행했다. 제조업 기반이 약한 제주에서 대학 교육과 산업 현장을 직접 연결하려는 시도다.
MRO는 선박이나 항공기 등 장비의 정비·수리·운영을 포괄하는 산업 영역이다. 제주대가 이 분야에 주목하는 것은 청년 일자리 부족과 산업 기반 취약성이라는 지역 과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교육·산업 연계 모델로 보기 때문이다.
이 단장은 "취업은 제조업 기반을 따라가기 어렵다"며 "교육을 시켜서 지역 산업 현장에 취업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귀포권에 교육과 산업이 함께 들어오면 학생 교육, 청년 취업, 지역경제가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MRO 분야는 환경영향, 입지, 기업 투자, 지방정부 협력, 교육과정 설계가 함께 맞물려야 하는 장기 과제다. 제주대가 이를 글로컬대학 사업과 연결하려는 이유는 지역대학이 청년을 길러도 지역에 일자리가 없으면 인재 유출을 막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 "교수가 바뀌어야 학생이 바뀐다"
제주대 글로컬사업단의 최근 활동은 구상이 실제 프로그램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업단은 올해 3월과 4월 도내 주요 관광지, 교육기관, 연구기관, 기업 등 20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25년부터 누적하면 도내 협약기관은 33개에 이른다.
지난 4월 25일에는 대록산과 성읍 일대에서 내외국인 학생 생태문화 런케이션 프로그램 '제주의 숲, 로컬의 지혜'가 운영됐다. 내외국인 학생 60여명이 참여해 제주의 숲을 탐방하고 생태와 치유의 지혜를 체험했다. 시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리프레시 프로그램이면서 서로 다른 문화권의 학생들이 제주 자연을 매개로 교류하는 장으로 설계됐다.
지난 5월 22일에는 제주대 교양강의동과 제주시내 일원에서 'AI로 만나는 제주신화 디지털 아트워크' 런케이션 프로그램이 열렸다. 내외국인 학생들은 제주신화를 배우고 인공지능을 활용해 디지털 창작물로 표현했다. 제주의 문화자산을 보존·해석·확산하는 과정에 AI를 접목한 사례다.
지역산업과의 연결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 5월 15일 제주대 산학협력단 1층 대강당에서는 '지역 성장엔진 연계 인재양성 전문가 특강'이 열렸다. 이병헌 지방시대위원회 5극 3특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강연자로 나서 5극 3특 균형성장 전략과 지역 대학의 역할을 설명했다.
5극 3특은 전국을 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권 중심으로 재편해 지역별 성장엔진을 키우려는 균형발전 전략이다. 제주대는 이 흐름에 맞춰 제주의 자연·문화·산업 자원을 교육과 연구, 창업의 실험장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단장은 글로컬대학 사업의 또 다른 핵심으로 대학 내부의 체질 개선을 꼽았다. 그는 "학생을 바꾸려면 교수가 바뀌어야 한다"며 "우수한 교수를 영입하고 외부 석학과 공동교육·공동연구를 통해 제주대 학생과 교수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외부 석학을 단기간 초청해 특강과 공동연구, 대학원생 논문지도에 참여시키고, 해외 연구자와 국내 우수 교원이 제주에 머물며 교육과 연구를 함께 수행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제주대 구성원에게는 새로운 학습과 연구 기회를 제공하고, 외부 연구자에게는 제주라는 현장을 연구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구조다.
제주대 글로컬대학 사업은 지역대학의 생존 전략이자 제주형 성장 전략이라는 점에서 전국적 의미가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속에서 지방대학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규모 경쟁이 아니라 고유한 장소성, 산업성, 국제성을 결합하는 데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제도 분명하다. 런케이션이 일회성 체험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규 교과, 비교과, 연구, 창업, 지역기업 수요가 촘촘하게 연결돼야 한다. 외국인 학생과 연구자의 체류 지원, 다국어 행정, 지역 주민과의 협력, 현장 거점의 지속 운영도 중요하다.
K-런케이션이 성공할 경우 제주대는 학생을 불러오는 대학을 넘어 청년 인재와 연구자, 기업, 지역사회가 함께 머무는 지식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의 다음 성장동력이 관광객 수 증가만이 아니라 배우고 연구하고 창업하는 사람의 유입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도 이 사업의 관전 포인트다.
이동선 단장은 "제주의 특수성이 전국의 보편성으로 확대될 수 있는 글로컬대학만의 특성화 사업들을 수행하고 있다"며 "제주가 가진 자산을 관광에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체계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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