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배터리의 고질병, '탄탈럼'으로 길 열었다 [언박싱 연구실]
<49>건국대 최원창 교수팀
배터리 표면 정밀 도핑 기술 개발
영하 20도 혹한·고속 충전 시 망간 문제 해결
배터리 수명 획기적 개선… '스몰'지 게재
[파이낸셜뉴스] 건국대학교 최원창 교수 연구팀은 차세대 배터리의 핵심 부품(양극재) 내부로 들어가는 리튬이온의 길을 넓히기 위해, 알갱이 표면 근처에 '탄탈럼'이라는 금속 원소를 집중적으로 스며들게 하는 새로운 설계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로 겨울철 추운 날씨나 배터리를 빠르게 충전하고 쓸 때 발생하는 배터리의 힘이 떨어지는 문제를 크게 줄임으로써, 수명이 길고 출력도 높은 전기차 및 대형 배터리 저장 장치(ESS)용 차세대 배터리를 실제로 만드는 데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전기차는 겨울철 매서운 추위 속에서 한 번 충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뚝 떨어지거나 충전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를 겪는다. 반대로 한여름 뙤약볕 아래 오래 세워두면 배터리 내부가 손상되어 수명이 줄어들기도 한다. 이번 연구는 전기차와 대형 배터리 저장 장치의 이러한 고질적인 약점을 해결하는 데 쓰인다.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을 적용하면 영하 20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배터리가 급격하게 지치는 현상이 크게 줄어든다. 스마트폰을 초고속으로 충전하듯 전기차를 급하게 충전하고 쓸 때도 배터리가 잘 버텨낸다. 뜨거운 여름철에 배터리를 100% 가득 충전한 상태로 오래 세워두어도 배터리 힘이 빠지는 현상을 대폭 막아주어 처음 성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연구팀은 차세대 배터리 소재로 주목받는 '리튬망간철인산염(LMFP)'을 연구했다. 이 소재는 구조적으로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배터리가 힘을 낼 때 내부에서 움직이는 '리튬이온'의 통로가 마치 막히는 도로처럼 너무 좁다는 게 문제였다. 특히 고속으로 배터리를 쓰거나 온도가 내려가면 이 통로가 더 꽉 막혀 성능이 급격히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전압이 높아지면 표면에 있던 망간 성분이 녹아 흘러나와 배터리 구조 자체가 망가지기도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아주 기발한 방법을 썼다. 배터리 알갱이 전체에 무작정 다른 물질을 섞는 대신, 문제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알갱이 표면 근처'에만 선택적으로 '탄탈럼'이라는 금속 원소를 쏙쏙 스며들게 만든 것이다.
참고로 배터리의 기본 전기 전도성을 높이기 위해 겉면에 얇은 탄소막을 씌우는 공정은 모든 배터리에 똑같이 처리해 두었다. 따라서 이번 실험에서 나타난 극적인 성능 차이는 오롯이 '탄탈럼 방패'를 표면에 잘 심었는지에 따라 갈렸다.
연구팀은 탄탈럼을 표면에 심어도 배터리가 본래 담을 수 있는 에너지 총량(기본 용량)은 거의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평소 조용히 달릴 때의 성능은 그대로 지키면서, 혹독한 환경에서만 발동하는 약점 보완용 특수 장비를 장착한 셈이다.
표면에 집중적으로 스며든 탄탈럼 원소는 리튬이온이 지나다니는 길을 널찍하게 넓혀주었다. 이 덕분에 리튬이온의 이동 속도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시원하게 빨라졌다. 특히 빠르게 충전하고 쓸 때 '망간' 성분 때문에 병목현상이 생기던 구역의 이동 속도가 기존보다 무려 3.4배나 증가했다. 영하 20도의 추운 환경에서도 리튬이온의 움직임이 조건에 따라 최대 5배까지 빨라졌다. 동시에 탄탈럼은 불안정한 망간 성분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아두는 강력한 방패 역할까지 해냈다.
실제 배터리를 쥐어짜듯 아주 극한의 빠른 속도로 충전하고 쓰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탄탈럼 방패가 없는 일반 배터리는 원래 용량의 절반 수준(54.8%)으로 힘이 떨어졌지만, 탄탈럼을 심은 배터리는 71.1%의 힘을 그대로 유지했다.
배터리를 200회나 반복해서 쓰고 난 뒤에도 차이는 극명했다. 일반 배터리는 용량이 79.3%까지 떨어지며 눈에 띄게 수명이 줄었지만, 탄탈럼 배터리는 처음에 가까운 95.7%의 용량을 온전히 유지했다.
한여름 폭염 속 찜질방 같은 환경(섭씨 60도)에서 배터리를 10일 동안 가득 충전해 방치하는 실험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일반 배터리는 내부가 손상되어 용량이 83.1%까지 뚝 떨어졌으나, 탄탈럼 배터리는 99.5%의 용량을 방어해 내며 사실상 힘이 거의 빠지지 않은 탄탄한 상태를 보여주었다.
연구팀이 배터리를 분해해 내부 저항(방해하는 힘)을 측정해 보니, 가혹하게 배터리를 반복해서 썼을 때 두 배터리 모두 저항이 늘어나는 현상이 관찰됐다. 하지만 탄탈럼을 심은 배터리는 일반 배터리에 비해 그 저항이 늘어나는 폭이 훨씬 작았다. 배터리가 노화하면서 내부 통로가 막히는 속도를 크게 늦춘 셈이다.
실제로 배터리 표면에서 망간과 철 성분이 얼마나 빠져나오는지 확인한 결과, 탄탈럼을 심은 배터리는 두 성분이 녹아 나오는 양이 일반 배터리보다 뚜렷하게 적었다. 표면을 튼튼하게 지켜낸 탄탈럼 기술이 배터리의 노화를 억제하고 수명과 출력을 동시에 붙잡는 최고의 열쇠임이 증명된 셈이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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