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서귀포 범섬·문섬·섶섬 80만 년 전 함께 솟았다… 제주 바닷속 '화산의 선' 찾나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Ar-Ar 정밀측정으로 세 섬 형성 시기 새 규명
범섬 80.4만·문섬 82.4만·섶섬 79.6만 년
서귀포 앞바다 8㎞ 구간 거의 직선상 배열
비슷한 시기 한 줄 따라 분출했을 가능성 제기
마그마 화학조성 분석해 공통 공급계 추적
제주 남부 고기 화산활동사 새 단서 확보

서귀포 앞바다의 섶섬 전경. 정밀연대측정 결과 약 79만6000년 전 형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범섬·문섬과 함께 암석·광물의 화학조성을 추가 분석해 세 섬의 마그마 공급계 연관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서귀포 앞바다의 섶섬 전경. 정밀연대측정 결과 약 79만6000년 전 형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범섬·문섬과 함께 암석·광물의 화학조성을 추가 분석해 세 섬의 마그마 공급계 연관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서귀포 앞바다에 일렬로 떠 있는 범섬과 문섬, 섶섬이 약 80만 년 전 비슷한 시기에 솟아난 것으로 확인됐다. 세 섬이 약 8㎞에 걸쳐 거의 직선으로 배열된 점까지 맞물리면서 당시 제주 남부 해역에서 한 줄을 따라 화산활동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새롭게 제기됐다.

6일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에 따르면 제주 전역 지질도 구축 과정에서 범섬과 문섬, 섶섬의 형성 시기를 아르곤-아르곤(Ar-Ar) 정밀연대측정법으로 다시 분석한 결과 세 섬 모두 약 80만 년 전후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범섬은 80만4000±4000년, 문섬은 82만4000±8000년, 섶섬은 79만6000±3000년 전 형성된 것으로 측정됐다.

세 섬 사이의 연대 차이는 지질학적 시간尺度로 보면 매우 가깝다. 서귀포 앞바다 약 8㎞ 구간에 거의 일직선으로 늘어선 세 화산섬이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제주 남부 해역의 오래된 화산활동을 다시 해석할 핵심 단서가 될 수 있다.

■ 80만 년 전, 8㎞ 한 줄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서귀포 앞바다의 범섬 전경.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채취한 암석 시료를 분석한 결과 모두 80만4000±4000년으로 같은 연대가 측정돼 분석의 재현성이 확인됐다. /사진=뉴시스
서귀포 앞바다의 범섬 전경.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채취한 암석 시료를 분석한 결과 모두 80만4000±4000년으로 같은 연대가 측정돼 분석의 재현성이 확인됐다. /사진=뉴시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섬 하나의 나이를 새로 측정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범섬과 문섬, 섶섬은 서귀포 해안에서 바라보면 동서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다. 서쪽의 범섬에서 문섬을 거쳐 동쪽의 섶섬까지 약 8㎞ 구간에 화산섬 세 곳이 놓여 있다.

형성 시기 역시 서로 가깝다. 가장 오래된 문섬은 약 82만4000년 전, 범섬은 약 80만4000년 전, 섶섬은 약 79만6000년 전으로 분석됐다.

연대측정에 따른 오차범위까지 고려하면 세 섬은 제주 화산활동사의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화산체로 볼 수 있다.

세계유산본부는 이런 공간적 배열과 시간적 유사성을 토대로 제주 남부 해역에서 '선상(線狀) 화산활동'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선상 화산활동은 화산 분출이 한 지점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 지하의 균열이나 약한 구조대를 따라 여러 지점에서 이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쉽게 말해 지하에서 마그마가 올라온 길이 한 줄처럼 이어졌고, 그 길을 따라 여러 화산체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살펴보겠다는 의미다.

다만 세 섬의 나이가 비슷하고 직선상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화산활동에서 만들어졌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다음 단계는 마그마다. 연구진은 앞으로 범섬과 문섬, 섶섬을 이루는 암석과 광물의 화학조성을 분석할 계획이다. 세 섬의 암석이 비슷한 화학적 특성을 보인다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마그마 공급계에서 화산활동이 이어졌을 가능성을 더 구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반대로 형성 시기는 비슷해도 화학조성이 다르면 서로 다른 마그마 활동이 가까운 시기에 일어났을 가능성도 남는다.

■ 73만 년에서 80만 년대로… 더 정밀한 시계로 다시 쟀다

한라산 남쪽 서귀포 앞바다에 범섬과 문섬, 섶섬이 약 8㎞에 걸쳐 배열된 위치와 형성 연대를 보여주는 그래픽. 아르곤-아르곤 정밀연대측정 결과 범섬은 80만4000±4000년, 문섬은 82만4000±8000년, 섶섬은 79만6000±3000년 전 형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한라산 남쪽 서귀포 앞바다에 범섬과 문섬, 섶섬이 약 8㎞에 걸쳐 배열된 위치와 형성 연대를 보여주는 그래픽. 아르곤-아르곤 정밀연대측정 결과 범섬은 80만4000±4000년, 문섬은 82만4000±8000년, 섶섬은 79만6000±3000년 전 형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보다 정밀한 Ar-Ar 연대측정법을 적용했다. 과거 칼륨-아르곤(K-Ar) 방식의 연대측정에서는 문섬과 섶섬이 약 73만 년 전 형성된 것으로 보고됐다. 이번 분석 결과는 그보다 오래된 약 80만 년 전후를 가리켰다.

Ar-Ar 연대측정은 암석 속 방사성 동위원소의 변화량을 분석해 화산암이 만들어진 시기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화산활동의 순서와 시기를 밝히는 연구에서 활용되며, 제주처럼 여러 시기에 걸쳐 반복적으로 화산활동이 벌어진 지역의 형성사를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도구다.

특히 범섬에서는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두 시료 모두 80만4000±4000년으로 같은 결과를 보여 분석의 재현성도 확인됐다. 이 결과는 제주 화산활동의 시간표를 더 정밀하게 만드는 작업과 연결된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한라산 일대 지질도 구축을 마쳤다. 2025년부터는 조사 범위를 제주 전역으로 넓혀 오름과 화산지형의 형성 시기와 분출 순서를 추적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도내 오름 90여개의 분출 시기 자료를 수집·정리했다.

이번 범섬·문섬·섶섬 연구도 제주 전역의 화산활동을 시간과 공간의 순서에 따라 다시 맞추는 작업 가운데 하나다.

■ 산방산까지 연결해 제주 남부 '80만 년 전'을 추적한다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 각각의 화산체가 언제 생겼고 어떤 순서로 분출했는지를 밝히는 작업은 제주 전체의 형성과정을 복원하는 기초가 된다. /사진=연합뉴스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 각각의 화산체가 언제 생겼고 어떤 순서로 분출했는지를 밝히는 작업은 제주 전체의 형성과정을 복원하는 기초가 된다. /사진=연합뉴스

연구 범위는 세 섬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계유산본부는 앞으로 산방산과 각수바위, 원만사 등 제주 남서부에 있는 약 80만 년 전후의 조면암질 화산체와 비교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조면암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지는 화산암의 한 종류다. 제주 화산섬의 대부분을 이루는 현무암질 암석과 성분과 성질이 달라 마그마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화했는지 추적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범섬·문섬·섶섬과 제주 남서부의 비슷한 시기 화산체를 함께 분석하면 약 80만 년 전 제주 남부에서 화산활동이 어디서 시작해 어느 방향으로 이어졌는지 추적할 가능성이 커진다.

핵심 질문은 명확하다. 세 섬이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생긴 개별 화산체인지, 아니면 제주 남부 지하의 특정한 구조와 마그마 이동 경로를 따라 연속적으로 만들어진 화산체인지다. 이 질문의 답을 찾으면 제주 화산섬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는 지질학적 시간표도 한층 정교해질 수 있다.

제주는 한 번의 거대한 분출로 만들어진 섬이 아니다. 오랜 시간 여러 지점에서 반복된 화산활동이 겹치면서 현재의 한라산과 오름, 해안 절벽, 부속섬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각각의 화산체가 언제 생겼고 어떤 순서로 분출했는지를 밝히는 작업은 제주 전체의 형성과정을 복원하는 기초가 된다. 약 8㎞ 바다 밑 한 줄을 따라 마그마가 움직였는지까지 밝혀지면 제주 남부 화산활동사의 새로운 장면이 열릴 수 있다.

김형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제주 전역의 360여 오름과 화산지형은 과거를 기록한 자연유산"이라며 "연구 예산과 국내외 협력을 확대해 지질도 구축 완성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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