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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불합치에도 5년간 방치… 국회서 잠자는 법안들

서지윤 기자, 최은솔 기자, 박성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17일 제78주년 제헌절
개정해야 할 헌법불합치 법률들
국회 무관심 속에 입법시한 넘겨
법인약국 설립 제한 '약사법'
24년 최장기 입법 지연 '불명예'

'낙태죄' 헌법불합치에도 5년간 방치… 국회서 잠자는 법안들

국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법률 개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낙태죄 등 사회 곳곳에서 입법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다. 정작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국회의 입법 태만 때문에 법적 보호망이 사라진 국민만 무법지대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법조계에선 국회의 입법 지연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가 최고 규범인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제헌절은 올해 78주년을 맞았다.

16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1988년 헌재가 출범한 이후 지난 6월 30일까지 총 623개 법령에 대해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위헌이지만, 즉각 효력을 잃을 때 발생할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국회에 법 개정 시한을 주고 한시적으로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하지만 국회는 이 같은 유예기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4분기 행정소송법 등 위헌성 법률 4건이 뒤늦게 개정됐지만,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령 12건은 개정되지 않은 채 국회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이 중 법령 6개는 이미 헌재가 정해준 입법 시한마저 훌쩍 넘긴 채 국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다. 개정 시한을 넘긴 헌법불합치 법률들은 사실상 효력을 잃는다. 법조계에선 처벌이나 규제 근거가 사라진 이 같은 '무법 상태'가 법치주의 관점에서 극도로 위험하다는 경고가 나온다.

대표적인 '입법 진공' 사례 중 하나로 형법상 낙태죄가 거론된다. 헌재는 지난 2019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며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20년 12월 31일을 개정 시한으로 못 박았다. 그러나 국회는 임신중지 허용 주수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대체입법을 차일피일 미뤘다. 결국 시한을 넘긴 지 5년여 동안 아무런 법적 가이드라인이 없는 입법공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합법적 기준이 사라지면서 여성의 안전과 태아의 생명권 모두가 최소한의 법적 보호망 밖으로 밀려나는 모양새다. 의료 현장에선 음성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깜깜이식' 낙태 시술과 공식 허가를 받지 못한 임신중지 약물의 오남용이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한편 임신 후기 낙태에 대해서도 명확한 불법 기준이 없어 태아를 모체 밖으로 꺼내 숨지게 한 뒤에야 '살인죄'를 우회 적용해 처벌하는 기형적인 사법 처리가 반복되고 있다.

입법 지연의 고질적 병폐는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일몰 후 옥외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지난 2009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개정 시한을 넘긴 채 무려 16년 이상 장기 미개정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법인약국 설립 제한 논의를 담은 '약사법'의 경우 2002년 9월 19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이후 24년째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아 통계상 '최장기 입법 지연 법률'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회의 입법 태만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거세다. 다만 국회의 자율적인 입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삼권분립의 원칙론 또한 무시할 수 없어 실효성 있는 입법체계 마련을 둘러싼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나 헌법불합치뿐만 아니라 '한정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해당 법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자동으로 상정되도록 국회법을 개정하는 것이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입법 부작위로 발생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상징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배상금을 받아내는 목적을 넘어 국회의 무책임한 방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jyseo@fnnews.com 서지윤 최은솔 박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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