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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의대 불패’ 신화 깨는 성과급

"일반의와 치과의사가 아마존·페이스북 엔지니어보다 정말 돈을 많이 벌까?" 2018년 미국의 직장인 익명 플랫폼 블라인드에 올라온 질문이다. 작성자는 아마존 직원이었다. 그는 "의사 평균 연봉은 20만달러 수준이지만 빅테크 개발자 가운데는 총보상(TC)이 이미 30만달러를 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논쟁이 낯설지 않다. 블라인드와 레딧 등에 비슷한 글이 자주 올라온다. '의사 vs 뱅커' '의사 vs 컨설턴트' 같은 연봉 비교도 흔하다. 빅테크 엔지니어와 전문의가 같은 엘리트 인재 시장 안에서 경쟁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반응은 갈린다. "결국 의사가 낫다"는 주장이 먼저 나온다. 개발자는 40대 전후가 소득의 정점이지만 의사는 70세까지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반론도 거세다. 의사는 학부 졸업 뒤 10년 가까운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학자금대출 부담도 크다. 20~30대를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속에서 보내야 한다. 반면 빅테크 엔지니어는 20대 초반부터 고연봉을 받는다. 주식 보상까지 더해지면 자산형성 속도는 훨씬 빨라진다. 특히 구글·메타·오픈AI 핵심 엔지니어들은 전문의 못지않은, 때로는 그 이상의 보상을 받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희소한 기술과 성과에 대한 보상을 시장 논리로 받아들인다. 비슷한 논쟁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어진다. 2022년 8월 성형외과 의사 케빈 저발은 "전문의가 엔지니어의 생애소득을 추월하는 시점은 43세 전후"라고 분석했다. 의대 컨설팅업체 '메드 스쿨 인사이더스' 창업자인 그는 "돈 때문이라면 의대를 선택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의대와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엔지니어들은 이미 돈을 벌고 자산을 축적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다르다. 의사와 이공계 종사자의 연봉과 사회적 지위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다.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의대는 '성공의 종착지'였고, 공대는 그 아래 선택지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큰 반향을 일으킨 KBS 다큐 '인재전쟁'은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국의 수재들이 의대로 몰리는 동안 중국에선 반도체·AI·로봇 같은 첨단공학 분야로 향했다. 이공계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우려도 이어졌다. 첨단산업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데, 한국의 인재 구조만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연봉 때문만은 아니다. 의대는 한국 사회에서 소득과 안정성, 사회적 지위를 동시에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경로로 여겨진다. 이공계는 반도체와 IT 업황이 경기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고 구조조정 위험도 상존한다.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의대는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그런 한국에서도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 임금협상 타결이 상징적이다. 올해 반도체 부문 직원들은 특별성과급 등 성과급만 6억원 안팎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식 '테크 엘리트'가 한국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반도체학과 경쟁률이 높아지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직원이 결혼시장에서 변호사급 대우를 받는다는 기사도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의사로 사는 것이 엔지니어보다 윤택할 거라는 인식은 틀렸다"고 단언했다. 최근 방송에 출연해 자녀의 진로를 고민하는 한 학부모에게 한 말이다. 삼성전자 성과급 규모가 알려지자 서울 5대 병원 레지던트 사이에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하는 반응이 나왔다는 말도 들린다. 물론 일부 대기업 핵심 사업부의 사례에 불과할 수 있다. 노노갈등과 K양극화 논란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 변화는 의미가 작지 않다. 첨단산업 패권 경쟁이 벌어지는 시대에 최상위권 인재가 특정 직업에만 몰리는 구조를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다. 미국처럼 의사와 엔지니어가 같은 최상위 직군 안에서 경쟁하는 사회로 단숨에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대 불패' 신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만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sangsoo123@fnnews.com

[포럼] 반도체는 공공재가 아니다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는 산업과 국가안보의 핵심 투입재가 되었다. 선진국은 반도체 산업 재구축에 나섰고, 중국의 추격도 강화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보고 정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다만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사실과 반도체가 공공재가 되었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공공재란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이라는 특성을 가진 재화를 말한다. 비경합성이란 한 사람이 어떤 재화를 소비해도 다른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몫이 줄어들지 않는 성격이다. 비배제성이란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을 이용에서 배제하기 어려운 성격이다. 국방의 경우 국민 중 어떤 한 사람이 안보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보호가 줄어들지 않는다. 또한 특정 개인이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사람만 안보위협으로부터 배제할 수도 없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공공재는 시장에 맡길 경우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하고, 수요 대비 공급이 적게 될 수 있다. 따라서 국방, 치안 등의 분야에서는 정부의 직접공급 또는 강한 공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반도체는 공공재 특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정 기업이 어떤 반도체 칩을 구매하면 다른 기업은 바로 그 칩은 구매할 수 없다. 소비가 경합적이란 것이다. 또한 반도체는 가격을 지불하지 않는 기업이나 사람은 소비에서 배제할 수 있다. 반도체는 명확히 사적 재화란 것이다. 다만 반도체는 일반 소비재와 달리 많은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공급차질 발생 시 전후방 산업파급효과가 막대하며 미중 기술패권 경쟁, 경제안보와도 직결된다. 국가전략적 산업재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혼동을 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가 전략적 산업재라는 것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적으로 환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이는 국제경쟁 속에서 국내 생산기반, 기술역량 유지를 위해 기술보호, 조세·금융 지원, 전력·용수 공급 확대 등 투자환경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전략산업이라는 것은 정부 지원의 근거이지 이윤 환수의 근거가 아니다. 따져야 할 것은 정부 지원조건의 투명한 집행과 이행 여부다. 이를 따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기업 이윤을 사회적으로 환수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는 없다. 공적 지원의 집행관리와 이윤의 사회적 귀속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가 주주다" "세금이 투입됐다" "전력과 용수가 사용됐다"는 것도 반도체를 공공재로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아주 많은 지원을 했건, 국민 다수가 지분을 소유했건 이들이 제품 특성을 바꿀 수는 없다. 공공재 여부는 재화 특성, 즉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정책 논의는 '공공재'라는 오해가 아니라 전략산업 입장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정부 지원은 국가 경제와 안보에 매우 중요한 사적 재화이기 때문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념을 잘못 이해하면 정책 방향이 흐려진다. 정부는 이윤 환수가 아니라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기술·인력·인프라·금융 환경을 뒷받침해야 한다. 개념 혼동이 아니라 정확한 이해의 토대 위에서 정책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fn광장] 쿠팡 공룡화 부른 한국형 규제의 역설

2025년 11월 정부 조사에서 쿠팡의 3370만개 계정에 대한 개인정보 접근 정황이 확인되면서 온라인 유통시장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가진 쿠팡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자 쿠팡 측이 이에 불복, 해당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논란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넘어 기업지배구조와 규제체계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쿠팡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쿠팡Inc가 지분 100%를 보유한 국내 자회사라는 점에서 이번 사안은 단순한 기업 규제 문제를 넘어 한미 간 정치적 논쟁으로도 번지고 있다. 미국 공화당 의원 54명은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발한 범여권 국회의원 90여명은 주한 미국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며 "대한민국의 사법주권과 독립적인 법 집행을 전적으로 존중하라"고 요구하였다. 이처럼 개별기업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고, 나아가 한미 양국 국회의원들이 특정 기업을 둘러싼 규제 문제를 놓고 공개적으로 항의서한을 주고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단순히 쿠팡이라는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규제체계와 글로벌 경제환경의 충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쿠팡의 성장에는 혁신적 물류투자와 서비스 경쟁력이라는 내부 요인이 있었지만, 의도와는 별개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규제환경 역시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이 법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라는 정책목표 아래 대형마트의 의무휴업과 심야영업 제한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실제 소비자들은 대형마트가 쉬는 날 전통시장으로 이동하기보다 쿠팡·네이버·컬리와 같은 24시간 이용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하였다. 오프라인 점포를 기반으로 한 대형마트는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고,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규제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시장지배력 확대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측면이 있다. 다음으로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실질적 지배자를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이른바 갈라파고스적 규제 문제가 있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친족·특수관계인 관련 공시 의무가 확대되고 내부거래 및 사익편취 규제도 강화된다. 국내법적 관점에서는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국적과 관계없이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이 공정하다. 물론 외국기업이라고 해서 다른 외국기업이나 국내기업과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서도 안 된다. 과거 쿠팡이 자체브랜드(PB) 상품과 직매입 상품의 검색순위를 인위적으로 높였다는 이른바 '검색 알고리즘 조작 사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을 때에도 동일한 기준이 한국 시장에 진출한 해외 플랫폼 기업들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규제의 공정성은 규제의 강도뿐 아니라 적용의 일관성에서도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글로벌 기업 관점에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창업자를 한국의 전통적인 재벌 총수와 동일한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은 국제적 기업지배구조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규제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러한 상반된 시각과 논란이 발생하는 배경에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와 규제체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 경제는 한국 특유의 규제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외국기업의 한국 투자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투자기업들이 투자지역이나 제도적 환경에 따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한국의 투자매력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쿠팡 사태는 한국 경제가 다른 선진국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국내외 기업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규제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해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중요한 것은 규제의 완화나 폐지 자체가 아니라, 규제가 의도한 정책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면서도 시장의 혁신과 경쟁을 저해하지 않는 합리적 규제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시장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는 상황에서 국내 정책목표를 유지하면서도 국제적 정합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강성진 한국경제학회 회장·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강남視角] 미래를 위한 선택

삼성전자 성과급 광풍이 한국 사회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잔치는 끝났지만 뒷정리는 시작도 못 했다. 무너진 벽돌을 세우고 흩어진 잔해를 치워야 하는데, 모두가 넋이 나간 채 제자리만 바라보고 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 했던가. 많이 받은 사람은 "내가 벌어온 돈인데 왜 나눠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적게 받은 사람은 "어려울 땐 함께 살자더니 이제 와 등을 돌린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수많은 직장인은 월급날보다 카드 결제일이 더 무서운 현실 속에서 텅 빈 통장을 바라본다. 불씨는 아직 살아 있다. 삼성전자 파업 사태를 중재했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기업 초과이익의 사회적 재분배 방안을 논의하겠다며 '한국형 사회연대임금' 토론회를 추진했다. 반대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금은 반도체 산업이 만들어내는 이윤을 미래를 위한 생산적 재투자로 연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라고 각을 세웠다. 같은 정부 안에서도 누구는 나누자고 하고, 누구는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사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대만에 연간 1500억달러, 우리 돈 225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내놨다. 마이크론도 미국 내 투자 규모를 300조원 수준으로 늘렸다. 승자독식 구조가 굳어지는 인공지능(AI) 시장에서 글로벌 빅테크들은 외줄타기 하듯 전력 질주하고 있다. 뒤처지는 순간 낭떠러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중국은 더 무섭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CXMT는 상장을 통해 6조5000억원을 조달할 예정이다. YMTC 역시 기업공개(IPO) 절차를 밟고 있다. 반도체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드론, 배터리까지 중국의 추격은 전방위적이다. 어떤 분야에서는 추격자가 아니라 이미 선두주자다. 최근 방송된 KBS 다큐 인사이트 '인재전쟁 2'는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지난해 7월 '인재전쟁 1'은 1부 '공대에 미친 중국', 2부 '의대에 미친 한국'을 통해 중국 현지의 이공계 열풍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번 '인재전쟁 2'는 1부 '차이나 스피드', 2부 '코리아 딜레마'를 통해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후발주자로 인식되던 중국이 이제는 첨단기술 분야의 세계 표준을 제시하며 시장을 선도하는 현장을 보여줬다. 인재전쟁 2를 연출한 정용재 PD는 "작년에는 걷지도 못했던 휴머노이드가 올해는 저보다 빨리 뛰었고, 실험실 안에 들어가 찍었던 로봇들이 이제는 근처 로봇마트에서 대중에게 팔리고 있었다"면서 "지난해 놀랐던 것이 중국 기술 그 자체였다면 이번에 주목한 것은 기술발전 속도, 그리고 그 속도를 만들어낸 힘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직 대통령까지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미래 산업과 인재, 기술 패권을 논해야 할 시기에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갈등과 현재의 이해관계에 매달려 있다. 해법은 없는 것일까. '인재전쟁 2-최태원의 대답' 편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지금의 환경을 계속 불평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더 좋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약점이 있다면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미래는 불평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약점을 고치고 부족함을 메우는 사람의 것이라는 설명이다. 세계의 경쟁국들은 이미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있는데 우리만 각자의 불평과 불만을 내세워 계산기를 두드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정치는 정치대로, 요즘 가장 벌이가 좋다는 반도체 노조는 노조대로 이익 나누기에 골몰한 모습이다. 우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방식을 놓고 전력투구를 벌이고 있을 때, 우리의 경쟁국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키우느라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3년 뒤, 5년 뒤 우리의 미래가 보이는가.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기자

[사설] 변혁 앞장서는 도요타 노조, 이익 배분에 빠진 韓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쟁이 다른 기업들로 번지며 '분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래 투자는 안중에도 없이 눈앞의 이익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성과급 논쟁과 별도로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사용자성 논쟁 또한 원청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두 가지 굵직한 논쟁이 노동시장을 뒤흔들면서 기업 경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면서 먹고살 만해졌나 싶더니 미래는 내팽개치고 목전의 이익을 나눠 챙기겠다는 다툼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은 시발점이자 도화선이 됐다. 유사한 갈등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카카오의 노사 분쟁은 기업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격화되고 있다. 카카오 노조는 잘못된 경영판단이 고용불안을 야기했다며 경영진이 압도적 보상을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구조조정·분사 중단과 고용안정 보장을 요구하며 이달 10일 부분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노사 갈등을 떠나 카카오톡은 사실상 국민 메신저이자 공공인프라에 가까운 플랫폼이다. 노사 갈등이 깊어져 파업이 벌어지면 수천만 이용자와 카카오 플랫폼에 생계를 의존하는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노란봉투법이 열어젖힌 사용자성 논쟁도 들불처럼 번질 기세다.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1일 전국금속노조가 제기한 현대차 하청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교섭요구 관련 2차 심판회의를 열었다. 원청의 사용자성 범위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산업 현장 전반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원청과 하청 간 책임논쟁이 심화될수록 기업은 하청구조 자체를 재편하거나 투자를 아예 회피할 것이다. 예상한 대로 노란봉투법이 기업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렇게 노사가 과실을 놓고 다툴 만큼 한가로운 때가 아니다. 글로벌 경기둔화와 미국발 관세압박 및 인공지능(AI) 전환이라는 삼중의 파고가 몰려오고 있는 지금이다.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에 분배갈등이 촉발돼 여간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궈 세계 10대 경제대국 반열에 오른 건 노사가 함께 생산성을 높이고 파이를 키워온 노력 덕분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내놓은 '도요타 노사관계의 시사점' 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노사 관계의 심각한 현주소를 알 수 있다. 도요타 노조위원장은 올해 노사협의회에서 "지금까지의 방식을 계속한다면 고정비는 오르기만 할 것"이라며 스스로 변혁을 선언했다고 한다. 회사만 기다리거나 남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노조 스스로 먼저 움직이겠다는 결의도 내비쳤다. 특히 AI 전환에 대해서도 노조 부위원장이 "내가 할 수 있는 기술은 무엇인가, 나의 부가가치는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강성 노조가 파업을 무기로 배수진을 치는 한국의 현실과 딴판이다. 도요타가 세계 1위 완성차 기업의 위상을 꾸준히 유지하는 비결은 이런 노사 간 상생정신이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과 AI 자동화의 파고를 동시에 헤쳐나가야 하는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 도전에 성공하려면 노사 모두 미래를 위한 생산성 혁신과 상생 협력으로 중지를 모아야 한다. 너도나도 이익 챙기기에 집착하다가는 나눌 것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를 노사 모두 무겁게 새겨야 할 때다.

[사설] 반도체 초호황에 수출 또 신기록, 온기 두루 퍼져야

반도체 호황 덕분에 수출이 다시 역대 최대를 갈아치웠다. 1일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수출은 877억5000만달러를 기록해 기존 월간 최고였던 지난 3월 수치를 넘어섰다. 한달 수출 800억달러대는 지난 3월 처음 성공했다. 이로써 3개월 연속 800억달러대 수출 행진이 이어졌다. 정부는 지금 같은 호조세가 연말까지 지속되면 연간 수출 1조달러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역동적인 수출은 기록적인 무역흑자 기록도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269억5000만달러 흑자를 기록, 16개월 연속 흑자에 성공했다. 수출과 성장, 무역흑자 중심에 반도체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 증가율만 170%였다. 수출액은 371억달러에 이른다. 전체 수출 중 반도체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40%를 넘어서 42%까지 올랐다. 지금 추세라면 수출의 절반을 반도체가 차지할 날이 머지않다. 인공지능(AI) 특수에 올라탄 반도체는 우리 경제 핵심자산이다. 더 과감한 투자와 앞선 기술로 지배력을 키우고 시장을 주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반도체 나홀로 초호황'이 가져올 시장 양극화, 경제 불균형이다. 지난달 20대 주력 수출품 중 석유화학 등 12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긴 하다. 반도체를 뺀 품목의 수출 증가율이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정도론 턱도 없다. 고용과 내수는 비반도체 산업의 비중이 훨씬 크다. 반도체와 수출 '쌍끌이' 역할을 했던 자동차 수출이 크게 뒷걸음친 것도 뼈아프다. 한국 자동차는 관세와 전쟁 유탄을 맞아 생산, 물류 차질을 겪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저가 대공습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반도체를 빼면 전 업종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노조들이 회사를 벼랑끝으로 몰아 손에 쥔 거액의 성과급은 그래서 더욱 부담스럽다. 소득 양극화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486만원, 임시·일용직 임금은 176만원이다. 정규직은 4% 가까이 올랐고, 임시직은 겨우 0.7% 상승했다. 정규직 노조의 투쟁 양상을 보건대 향후 격차가 좁혀질 리 만무하다. 증시는 반도체발 랠리로 연일 뜨겁다. 1일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장중 2000조원을 돌파했다. 기업의 2000조원 시총은 사상 처음이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 중이다. 이 두 종목의 시총이 코스피 시총의 절반을 넘는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수출, 증시 호황에 가려진 밑바닥 경제를 제대로 살펴야 하는 시기다. 중기·자영업자들의 대규모 연체로 은행권 부실채권은 7년 만에 최대치다. 개인, 법인의 파산신청자도 속출하고 있다. 고금리·고물가에 서민들 허리가 휜다. 수출 호황에도 우리가 크게 웃지 못하는 이유다. '반짝' 수준의 내수 호전으로 민생이 나아질 수 없다. 반도체를 넘어 경제의 온기가 구석구석으로 퍼질 수 있도록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테헤란로] '일관성' 있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곳곳에 자기 이름을 새기고 있다. 처음엔 "진짜야?" 하며 실소가 나왔다가 점점 "왜 그럴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를 이해해보기로 했다. 250달러짜리 지폐를 새로 발행해 거기에 트럼프 얼굴을 넣겠다고 한다. 워싱턴DC의 대표 공연장인 케네디 센터는 '트럼프 케네디 센터'로 간판을 갈았다.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어린이 자산형성 프로그램은 7월부터 '트럼프 계좌'로 출범한다. 신형 해군 전함에는 '트럼프급'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100만달러(약 15억원)를 내면 영주권을 주는 '트럼프 골드카드'도 추진 중이다. 트럼프의 이력을 보자. 그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트럼프 타워, 트럼프 호텔, 트럼프 골프장. 건물 꼭대기에 황금 글씨로 자기 이름을 새기는 것이 그에게는 성공이었다. 대통령직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낯설지 않다. 건물을 지으면 이름을 붙였듯 나라를 운영하면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우리 눈엔 권위주의의 징후로 보이는 것이 트럼프 세계관에서는 그냥 브랜딩이다. 그는 10년 넘게 리얼리티 TV 스타로 살았다. 쇼에서 배운 법칙은 단순했다. '시청자는 자극이 없으면 채널을 돌린다.' 그래선지 그의 국정 운영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던진다. 그린란드가 미국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고, 이란을 치고, 다음 타깃은 쿠바라고 말한다. 비판 여론이 한 사안에 집중하기도 전에 새로운 화제가 터진다. 분노하는 사람도, 열광하는 사람도 그가 만든 판에 앉아 있다. "저게 말이 되냐"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전에 트럼프는 이미 다음 수를 두고 있다. 트럼프 현상의 뿌리를 찾으려면 결국 그의 지지자들을 봐야 한다. 수십년간 워싱턴 정치에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를 잃은, 학력과 연줄 없이는 주류에 끼지 못한다고 느껴온 아웃사이더들. 그들에게 트럼프는 감정의 대리인이다. 트럼프가 주류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부르고, 기성 집단을 공격할 때 지지자들이 환호하는 건 그가 옳은 일을 해서가 아니다. 나의 영웅이 저 '잘난 악당'들을 주무르고 있다는 쾌감일 것이다. 케네디 센터에 트럼프 이름을 붙이는 것은 "워싱턴 기득권 문화의 심장부를 우리가 점령했다"는 상징적 업적이다. 이 얼마나 통쾌한 복수인가. 트럼프에겐 그 나름의 일관성이 있다. 그런데 조금 이해해봤더니 "왜 저래"라며 조롱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트럼프 쇼'는 우리에게도 비싼 구독료를 요구한다. 알면 알수록 웃음보다 걱정이 앞선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구본영 칼럼] 포퓰리즘 선거전과 중우정치

인터넷이 일군 디지털 생태계가 유토피아는 아니다. 1989년 월드와이드웹(WWW)을 창안한 팀 버너스리의 지적이다. 그는 '팀 버너스리, 이것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란 책에서 "현재 디지털 세계는 우리의 '의도'가 아니라 터무니없는 헤드라인이나 재미있는 밈처럼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실제로 웹사이트나 소셜미디어에서 자극적 제목과 선정적 섬네일이 판친 지 오래다. 6·3 지방선거 본투표날이 박두했다. 선거전 초반 거대여당의 압승이 점쳐지던 판세였다. 이후 경합지역이 늘어나는 여론의 추이도 감지됐다. 다만 민심을 뒤흔든 건 정책 경쟁이 아니었다. 후보자들이 방송 토론을 기피하고 유튜브 홍보전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인기몰이를 하느라 진실 규명은 뒷전으로 밀려난 꼴이었다. 버너스리가 경계했던 '디지털 디스토피아'의 한 단면도처럼. 부자 몸조심이라고 해야 할까. 선거전 초반 지지율이 앞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토론에 부정적이었다. 이로 인해 부산을 제외한 주요 격전지에서 TV토론회는 1회 토론이 전부였다. 공직선거법 규정을 가까스로 지킨 셈이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 TV토론회는 많게는 5차례 열렸지만, 이번엔 단 한 번이었다. 그것도 내심 낮은 시청률을 바라는 양 심야시간대인 28일 밤 11시부터 2시간 동안 열렸다. 그 대신 장외 공방과 유튜브 쇼츠(3분 이내 짧은 동영상) 홍보전은 불을 뿜었다. 특히 민주당 정원오 후보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간 서울시장 선거전이 그랬다. GTX-A 삼성역 구간 '철근 누락' 공방이 단적인 사례다. 이재명 대통령이 엄호사격하듯 안전점검을 지시하는 등 여권과 정 후보 측은 서울시의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오 후보 측은 지난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철근 누락과 관련한 51개 내용을 국토교통부 산하 국가철도공단에 전달했다고 반박했다. 애초 외곽에서 서로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공개토론으로 유권자들의 판단을 구하는 게 정도였다. 물론 후보 입장에선 방송 토론보다 유튜브 홍보가 가성비가 높다. 올드미디어인 방송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슨 돌발 변수가 생길지 모를 TV토론을 준비하느라 최소한 하루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면 말이다. 더욱이 주취폭력 전력과 칸쿤 출장 등을 둘러싼 의혹으로 '긁힌' 정 후보 입장에선 TV·라디오 토론은 잘해야 본전이라고 보는 게 인지상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식 토론이 줄어들면 네거티브 장외 공방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인기영합에 '올인'하는 선거전도 부산물이었다. 현금을 나눠 주는 공약은 난무했지만, 누구도 똑 부러진 재원조달 방안을 말하진 않았다. 유권자 간 이해가 엇갈리는 현안은 거론조차 않으려 했다. 예컨대 지역별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 통폐합 이슈처럼. 포퓰리즘 선거전의 해독은 분명하다. 유권자의 알 권리를 가로막아 개개인을 바보로 만든다는 점이다. 일찍이 플라톤이 "민주정은 대중의 선호가 도덕이 되는 중우정치로 변질할 우려가 농후하다"고 했던 그대로다. 문제는 중우정치의 피해자는 결국 포퓰리즘에 휘둘린 군중일 것이란 사실이다. 거리에 나붙은 '선거 전 현금폭탄, 선거 후 세금폭탄'이란 플래카드가 이를 함축하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이런 선거전 와중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종의 주가가 고공비행 중이다. 이들 글로벌 일류 기업의 위상을 보면서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발언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1995년 베이징특파원단 간담회에서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라고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었다. 예나 지금이나 대기업인들 왜 문제가 없으랴. 그럼에도 중우정치를 부추기는 저질 선거전을 보면 그의 지적이 새삼 와닿는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인기영합성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스위스를 참고할 만하다. 스위스 국민들은 지난해 초부유층에 고율 상속세를 부과하는 '슈퍼리치 과세안', 몇 해 전 '매달 300만원씩 기본소득 제공안'을 각각 압도적 다수로 부결시켰다. 지속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국부 해외이탈 등 부작용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중우정치의 늪에서 헤어나려면 국민의 분별력이 필수다. 우리 유권자들도 3일 현명하게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국민은 선거일에만 주권자 대우를 받을 뿐 선거 후엔 다시 정부의 노예가 된다"(장자크 루소)는 경구를 되새길 때다. kby777@fnnews.com

[포럼] 세계 최고 수준의 中 인공위성

중국의 인공위성이 얼마나 막강한지 잘 알려진 바 없다. 인공위성이 배치되는 지구 궤도 가운데 고도 2000㎞ 이내의 우주공간은 저궤도, 고도 약 3만6000㎞는 정지궤도라고 부른다. 한국의 천리안 기상위성은 고도 3만6000㎞의 정지궤도에 위치해 지구 자전 속도와 비슷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항상 한반도를 관측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구름의 분포와 비구름 여부를 파악하고 태풍 등 자연재해를 미리 예측하는 데 활용된다. 중국은 저궤도 위성을 활용해 일본 도쿄 인근 요코스카에 배치된 주일 미군 제7함대의 동향과 나가사키 인근 사세보 해군기지의 강습상륙함 움직임 등을 탐색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본 항공자위대 간부는 중국이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도 7000㎞의 중궤도에 다수의 첩보위성을 배치해 인도태평양 지역 전반을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위성은 북위 20도에서 적도, 남위 20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모두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강국인 미국도 이 고도에 첩보위성을 쏘아 올리지 않았기에 경계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 중궤도 위성은 저궤도 위성의 단점을 보완한다. 저궤도 위성은 특정 지역을 수분 정도밖에 관측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만, 중국의 중궤도 위성 2기는 1시간20분 정도 긴 시간을 추적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중궤도 위성으로 확보한 정보를 저궤도 첩보위성과 연계해 지상 15㎝ 이상 크기의 물체를 감시하고 있으며, 한국.일본.북한 등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중국은 2004년도에 달탐사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2024년에 무인탐사기 '상아 6호'를 달 뒷면에 세계 최초로 착륙시켜 시료를 채취하여 지구로 귀환시켰다. 중국이 달을 주목하는 이유는 물이다. 1998년 미국의 탐사기가 달에 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최근에는 달의 남극과 북극에 약 60억t의 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이 있으면 물을 전기분해해 로켓의 연료가 되는 수소와 산소 획득이 가능해 달에 기지를 세우고 장기체류할 수 있다. 일본 역시 광학위성과 레이더 위성 등 총 11기의 정보수집위성을 운용하며 지구상 어느 지점이든 하루에 한 번 이상 관측할 수 있는 우주강국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은 약 300명 규모의 우주작전군을 창설한 데 이어 2026년 말까지 670명 규모의 우주작전단으로 확대 개편하고, 2027년에는 880명 규모의 우주작전집단으로 격상해 우주의 군사적 활용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우주개발을 늦게 시작했지만, 국방부의 정찰위성 5기를 통해 북한 전역을 샅샅이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이제 우주개발은 단순한 과학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안보의 핵심 영역이 되고 있다. 특히 고도 7000㎞ 안팎의 중궤도는 상대적으로 활용 사례가 많지 않은 영역으로 꼽힌다. 그런데 중국은 저궤도와 정지궤도에만 위성을 배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궤도에 인공위성을 올려 지구를 감시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중궤도는 주로 전지구측위시스템(GPS) 위성이 자리하고 있는 궤도인데, 중국은 첩보위성을 배치하고 있다. 우주 전문가들은 미국도 배치하지 않고 있는데 중국이 중궤도에 배치하고 있는 것은 극히 예외적이라고 분석한다. 인공위성은 우주 공간에서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데, 특히 중궤도는 저궤도보다 방사선 피폭량이 높아 내구성 측면에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

그때 누가 한 번만 더 물어봐 줬더라면[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호사의 '알쏭달쏭 소년심판']

[파이낸셜뉴스]2016년 그리고 그 이후 몇 년 동안 소년부 판사로 일하며 수많은 소년들을 만났습니다. 법정에 선 소년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뒤에는 늘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을까?" 어떤 아이는 충동적으로, 어떤 아이는 반복된 방치 속에서, 또 어떤 아이는 도움을 요청할 곳조차 몰라 결국 그 자리에 서게 됩니다. 판사로서 나는 그들의 '행동'을 판단해야 했지만, 동시에 그 행동 뒤에 있는 '이유'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선택한 너무나 위험한 방법 어느 해 소년보호협의회(가정법원, 소년원, 아동복지시설, 보호관찰소,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 소년재판과 관련된 다양한 기관의 관계자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현장의 목소리를 공유하고, 각 기관이 겪는 어려움과 제도적 한계를 솔직하게 나누는 자리임)에서 들은 이야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일부 청소년들이 더 가벼운 처분을 받기 위해 '임신'을 선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곧 그것이 단순한 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년들은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판사가 엄한지, 어떤 경우에 처분이 약해지는지, 마치 시험 대비 요령을 나누듯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비행 청소년들 사이에서 소년원 처분을 자주 내리는 판사를 '10호 천사'라고 부른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임신하면 처분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그것을 그대로 믿고 행동으로 옮긴 소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과 함께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처벌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물론 소년원이나 아동복지시설은 집단생활을 전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임산부가 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 선택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거운 일인지 그 소년들은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소년의 선택을 함께 책임져 줄 어른이 없었습니다. 법정에서 울며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말하던 비행소년들 중 상당수는 사회 내 처분을 받은 이후 임신을 중단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이 소년들의 문제가 결코 그 소년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관심, 가정의 안정, 그리고 소년을 붙잡아 줄 누군가의 존재. 그 중 하나라도 무너질 때 소년은 생각보다 훨씬 쉽게 잘못된 선택 앞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칙을 더 엄격히 세우기로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임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분이 달라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런 선택을 하는 소년들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도의 작은 틈이 어떻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년들이 보내온 편지 소년재판이 끝난 뒤에도 소년들과의 인연은 완전히 끝나지 않습니다. 소년부 판사는 소년에 대한 처분 이후에도 집행 감독의 차원에서 일정 기간 동안 그 소년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지켜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소년들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어떤 편지는 짧았습니다. 하루 일과를 적어 내려간 일기 같은 글도 있었고, 어떤 편지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소년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길게 풀어놓으며 자신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편지는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이 담긴 편지들이었습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요." 시설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소년들은 처음으로 멈춰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제야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그 시간 속에서 처음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 변화의 시작을 담은 편지는 길지 않아도 묵직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집행 감독을 하는 모든 소년들에게 공평해야 했고 판사로서 비행소년들과의 거리도 필요했기 때문에 그 편지들에 답장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보낸 소년들을 만날 때마다 꼭 한마디는 전했습니다. "네 편지, 잘 읽고 있다." 부모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 이 글을 읽고 계신 부모님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쉽게 흔들립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대화를 미루는 하루, 아이의 변화를 지나치는 한 번의 순간, "괜찮겠지"라고 넘긴 작은 신호들. 그런 것들이 쌓여 아이를 점점 혼자 서게 만듭니다. 물론 모든 상황을 부모가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는 결국 스스로 선택을 하며 자라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 곁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법정에서 수많은 비행소년들을 만나는 동안 소년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던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때 누가 한 번만 더 물어봐 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아이를 지키는 일이 생각보다 거창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 한 번 더 묻고, 한 번 더 듣고, 한 번 더 기다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한 번이 아이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사설] 숫자로는 호황인데도 살림살이는 여전히 팍팍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한국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질주 중이다. 하지만 가계가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성장의 과실이 가계 전반으로 충분히 확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가계 실질소득은 월평균 462만8718원으로 1년 전보다 0.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반면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1·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6%를 기록했다. 거시경제 지표와 가계소득 증가율 사이의 간극이 뚜렷하다. 4월 산업활동동향도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감소하는 '트리플 감소'가 나타났다. 특히 소매판매액지수는 3.6% 급감했다. 소비가 얼어붙고 있다는 신호다. 그런데도 같은 날 코스피는 반도체 훈풍에 힘입어 다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9000선에 성큼 다가섰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온도 차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이들 지표는 한국 경제가 반도체 호황 덕분에 예상 밖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 온기가 가계 전반으로는 충분히 번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실질 근로소득은 오히려 감소했고, 자영업자 소득을 의미하는 실질 사업소득도 소폭 증가에 그쳤다. 소득 쏠림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소득분배 지표인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같은 우려는 경기 상승 국면이 시작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자본집약형 산업이다. 생산과 매출이 늘어도 고용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반도체 제조업 생산은 12.8% 증가했지만 임금근로자 일자리는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수억원대 성과급을 받게 됐지만, 이는 업황 호조를 누리는 일부 대기업 직원들에게 국한된 이야기인 것이다. '삼전닉스'가 천문학적 이익을 거두더라도 그 성과가 소비와 고용으로 충분히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 곳곳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성장률은 높아지는데 막상 국민들은 온기를 체감하지 못하고 도리어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성장의 과실이 경제 전반으로 흘러갈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정부 일각에서 '초과이익' 재분배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 그 대신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반도체 기업의 협력사 투자를 확대하는 등 성장의 낙수효과를 끌어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중소기업 지원과 내수진작에 활용하는 정책적 수단도 활용해야 한다. 반도체 호황이 일부 기업의 실적개선에 그치지 않고 국민 다수가 체감할 수 있는 성장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슈퍼사이클'의 의미도 완성될 것이다.

[사설] 초과이익 분배 논란 확산, 기업 자율성 해쳐선 안돼

기업의 초과이익을 하청기업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재분배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앞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민배당금제' 발언으로 논쟁의 불길을 댕긴 데 이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사회적 재분배를 제안하고 나섰다. 이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윤을 미래를 위한 '생산적 재투자'로 연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라며 노동부 장관의 주장을 반박했다. 우리는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와 관련해 삼성전자의 초과이익에는 정부와 하청기업 등의 기여와 협력이 있으므로 노조원이 독식할 것은 아니라고 밝혔었다. 삼성전자 노사협상 결과 노사는 노조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면서 협력업체 지원 등에 5년간 5조원을 투자하는 것에도 합의했다. 충분할 수는 없지만 초과이익을 상생에 활용한 첫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초과이익을 하청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분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익의 어느 선까지를 초과이익으로 볼 것인지도 모호하거니와 외국까지 포함하면 하청·재하청기업은 수천개에 달해 원청기업인 삼성전자로서는 다 감당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이해관계자에 대한 분배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기업의 자율성과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장경제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상생 차원에서 원청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활용해 하청기업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기업의 자발적·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산업부 장관의 말처럼 기업의 초과이익은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투자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이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은 이익의 많은 부분을 노조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해야 해 투자재원이 그만큼 줄어든 판이다. 막대한 금액의 법인세를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 여타 이해관계자에게 재분배한다면 투자할 돈은 바닥날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논쟁처럼 성장을 위한 투자와 복지를 위한 분배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업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예산의 대부분을 복지에 쓰면 나라의 성장을 위해 쓸 돈이 없게 된다. 기업 역시 이익을 많이 냈다고 모두 나눠버리면 그 기업에 미래는 없다. 노동부 장관은 분배주의자 입장에서 말한 것이고, 산업부 장관은 성장주의자의 시각에서 본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분배를 배척하고 무시하지 않는다. 성장을 중시하면서 분배와의 균형을 추구한다. 초과이익도 같다. 이익의 일부를 하청기업에 지원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반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익의 대부분을 재분배에 써버린다면 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해관계자에게 재분배하더라도 결정권은 기업이 가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하거나 관여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바탕을 흔드는 일이다. 삼성전자 등 기업 입장에서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도 힘이 부치는 형편이다. 만약 이해관계자들에게 재분배하는 책임까지 짊어진다면 굳이 이익을 많이 낼 필요성도 못 느낄 수 있다. 반도체산업의 투자 규모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투자에 한두번 뒤처지기 시작하면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영원히 낙오될 수도 있다. 지금 시점에서 예상을 넘어선 이익을 어디에 써야 할지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자명해진다. 나눠먹는 것보다 투자에 초과이익을 더 써서 더 많은 이익을 내야 하는 것이다.

[기자수첩] 하인리히 법칙의 교훈

졸지에 다가오는 재앙은 없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란 게 있다. 지난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7만여건을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법칙을 발표했다. 하나의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작은 재난이 29번, 가벼운 징후가 300건 발생한다는 것이다. 참사의 징후에 주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말이다. 하인리히 법칙을 그저 공허한 통계 이론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100년 가까이 거론된 안전관리 금언이 2026년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얼마 전 6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도로 붕괴사고를 떠올려 볼 때 그렇다. 안전진단에서 D등급(미흡) 판정을 받았으나 철거는 수년이나 미뤄졌다. 다리 상판 콘크리트에서 2.9㎝의 침하가 발견돼 무너질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고 한다. 철거작업 전부터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졌다는 상인 증언도 잇따른다. 사고를 막을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징후에 제때 주목하지 못한 결과는 한없이 참혹하다. 이번 사고로 시공사 현장관리소장과 감리단장, 외부 전문가가 숨졌다. 붕괴 징후가 나타났음에도 안전진단 작업에 나섰던 이들은 추락 방지용 보호구조차 착용하지 않은 채 구조물에 진입했다. 차도가 무너지기 5분 전엔 승객 42명이 타고 있던 KTX 열차가 차도 밑을 통과했다. 붕괴 직전 도로 밑을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긴급하게 핸들을 돌리는 사고 영상도 공개됐다. 더 큰 인명피해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 우려되는 지점은 이러한 '후진국형 인재(人災)'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데 있다. 모두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미적거리는 사이에 인재가 '판박이'처럼 반복된다. 과거를 돌아볼 때 수도 없이 그랬다. 지난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도 바닥과 기둥에 균열이 생기는 등 사고 전조증상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도 선사가 징후들에 대해 특별히 대처하지 않고 넘어가 304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난 3월 14명이 목숨을 잃고 59명이 부상을 당한 '안전공업' 공장 대형화재도 마찬가지다. 사고 이전부터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참사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사회 전반적으로 그동안 놓친 사고 징후가 없는지 되돌아보며 그 징후를 더 안전한 사회로 가는 디딤돌이 되게 해야 한다.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추모의 길일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의 교훈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jyseo@fnnews.com

[강남視角] 반도체 시대, 네덜란드病의 경고

일본화(Japanification), 차이나 쇼크(China Shock),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국가 이름과 경제학 용어가 결합한 말들이다. 대개 반가운 의미는 아니다. 경제가 겪은 실패나 부작용, 혹은 시장에 남긴 충격을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화는 장기 침체의 상징이 됐고, 차이나 쇼크는 제조업 충격의 대명사가 됐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우리 기업들이 제값을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적 저평가를 설명하는 말이다. 서양 국가 가운데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말은 1959년 네덜란드 북해 흐로닝언에서 거대한 천연가스전이 발견되면서 탄생했다. 당시 가스전의 회수 가능 매장량은 2740억㎥로 유럽 최대 규모였다. 수년 만에 거의 모든 유럽 국가가 네덜란드산 천연가스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네덜란드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당시만 해도 이는 네덜란드가 다시 한번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올라설 기회처럼 보였다. 17세기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세계 무역과 금융을 지배했던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천연가스는 네덜란드를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경제를 더 강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막대한 외화가 유입되며 화폐가치는 급등했고, 사람과 자본은 에너지 산업으로 몰렸다. 정책과 인력까지 한쪽으로 쏠리는 사이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한 산업의 성공이 경제 전체의 다양성을 갉아먹은 것이다. 올해 한국 경제를 보면 이 단어가 떠오른다. 한국은 반도체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인공지능(AI) 투자 열풍 속에서 반도체 수출은 폭증하고 있다. 반도체에 힘입어 지난해 한국 수출은 사상 처음 7000억달러를 돌파했고, 올해는 9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달 들어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어섰다. 반도체 효과는 주식시장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실적개선 기대 속에 한때 꿈같이 여겨졌던 30만원, 200만원선을 각각 넘어섰다. 노무라증권은 목표주가로 각각 59만원, 400만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6억원'에 달하는 반도체 기업들의 성과급 규모가 알려질 때마다 '이제는 공대가 의대보다 더 인기를 끌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돈과 인재가 가장 뜨거운 산업으로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문제는 모든 것이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다. 기업의 투자도, 청년들의 진로도, 국가 정책도 같은 곳으로만 흐르기 시작하면 다른 산업의 혁신역량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수출은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내수경기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금 한국의 반도체 호황을 네덜란드병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네덜란드가 천연가스 호황에 경제 전체를 의존했던 것과 달리 한국은 자동차·조선·방산·화장품 등 여전히 경쟁력 있는 산업 기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병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분명하다. 한 산업이 지나치게 강해질 때 경제 전체를 그 산업의 성과로 착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산업활동동향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생산·소비·투자가 동시에 감소하는 '트리플 감소'가 8개월 만에 나타났다. 이 와중에 반도체 생산은 3.1% 증가했다. 반도체는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는데 경제 곳곳의 체감경기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호황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네덜란드도 가장 부유했을 때 자신들이 병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문제는 위기가 왔을 때가 아니다. 아무도 위기를 상상하지 않을 때 시작된다. kkskim@fnnews.com

[포럼] 韓 북방외교 근본부터 재설계 하자

미중 정상회담과 중러 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남북 관계를 포함한 동북아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러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미중 전략경쟁이 장기화되면서 한반도 긴장 고조와 안보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론만으로는 급변하는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롭게 형성되는 북방 질서 속에서 우리의 전략적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변화는 북한의 노선 전환이다. 북한은 지난 3월 헌법 개정을 통해 기존의 통일·민족 개념을 삭제하고 사실상의 '두 국가 노선'을 공식화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중심의 통치체제를 강화하고 핵무력 지휘체계를 명문화한 것은 단순한 대남 압박을 넘어 체제 생존전략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이후 유지돼 온 남북 특수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국내 일각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통일담론이나 선언적 접근에 머물러 현실을 충분히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북러 밀착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북극항로와 극동개발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중시하고 있다. 중국 역시 정상외교 재개를 통해 북중 협력 기반을 확대하고 중국 중심의 경제·안보 질서 안에 북한을 안정적으로 편입시키려 한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비하면서 동시에 북한은 미국과의 전략경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정학적 카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앞으로는 북방 경제와 지역 협력이 새로운 핵심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두만강 개발과 북극항로(NSR)를 연결하는 북방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로 북극항로의 상업적 가능성이 확대되면서 러시아 극동과 동북아를 잇는 물류경쟁이 본격화될 경우 나진항과 두만강 유역의 전략적 중요성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따라서 한국의 북방외교 역시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미·중·러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이 지역을 단순한 갈등의 단층선이 아니라 '경제적 완충지대'로 전환할 수는 없을까. 그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광역두만개발계획(GTI)의 재활성화다. 지난해 12월 러시아에서 열린 GTI 총회에서는 교통, 무역·투자, 관광, 에너지, 환경, 농업 등 주요 협력분야의 추진 현황과 향후 협력방안이 논의됐다. 특히 GTI의 국제기구화와 북한 재참여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으며, 회원국들은 '모스크바 선언'을 통해 역내 협력 확대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협력 사업을 넘어 북방 지역을 새로운 평화·물류 협력축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국제 제재와 미중 전략경쟁 심화로 인해 실질적 협력에는 적지 않은 제약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 북방외교는 과거의 자원외교나 단순 경협을 넘어 안보·물류·공급망·디지털·기후협력을 결합한 복합전략으로 재구성돼야 한다. 한반도의 미래는 이제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전체 질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안보위기를 평화적 공존과 지역 협력의 기회로 전환하려는 모색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