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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좋은 정치'의 기준

가까운 교사, 청소년 지도사 등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화의 주제는 결국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로 향하게 된다.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는 청소년부터 자해를 시도하는 청소년도 부쩍 늘었다는 것이 이들의 경험담이다. 지난해 10대 청소년만 396명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정도면 우리 청소년들이 '집단적 우울증'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한 에밀 뒤르켐의 말을 빌리자면 청소년들은 어쩌면 '학살'을 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이 이렇게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도 '더 나은 삶'을 이야기해야 할 정치권은 침묵했다. 청소년 관계자들은 이번 성평등가족부 장관 검증 국면을 보며 좌절했다. 성평등부는 청소년 정책 주무부처다. 용혜인 장관 후보자의 '가족정당' '언더조직' 논란이 심각한 문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사검증 과정에서 청소년을 위한 구제방안 등 정책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관계자들에게서 깊은 한숨을 내뱉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2027년도 예산안에서 성평등부 '청소년 정책 및 역량강화' 예산은 약 1077억원에서 907억원으로 줄었다. 위기 징후는 속출하고 있는데, 이를 포착하고 치유할 우리의 역량은 부족하다.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는 300번의 경미한 징후, 29번의 사소한 사고가 발생한다고 한다. 2023년 칼부림 사건의 원인으로도 고립이 지목된 바 있다. 고립되고 우울에 빠진 이들의 왜곡된 분노가 참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청소년들의 아우성이 훗날 거대한 참사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나만 느끼는 기우일까. 만일 참사가 발생한다면, 이후 '○○방지법'만 수십 개 발의되고 상임위에는 상정되지도 않을 것이다. 당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사법입원제'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지만 지금 어떻게 됐는지 보면 안다. 좋은 정치의 기준은 여럿 있겠지만 '효능감을 느끼게 해주는 정치'가 좋은 정치라 생각한다. 우리 삶이 나아진다는 것을 체감하게 해주는 정치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더 나은 삶'을 이야기했다.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내 삶이 더 나아졌다고 체감하게 되면 정부에 대한 평가도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대통령도 분명히 알 것이다. 공소취소 논란에 휘둘려서는 결코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국민들을 치유하는 정치를 해야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mail protected]

[강남視角] 어게인 '내로남불'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고위 관료의 부동산 투자(?)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공직자재산신고 과정에서 서울 동작구 흑석동 재개발 지분을 매입한 것이 드러난 것. 은행에서 10억원을 대출받아 25억원 상당의 지분(복합건물) 소유주가 된 것이다. 문 정부는 초기부터 '부동산 투기와의 대대적인 전쟁'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2017년 '6·19 대책'부터 무려 27차례 고강도 규제 강화를 쏟아냈다. 국민들은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면서 정작 정책을 입안한 주인공의 이 같은 행위는 '내로남불'에 불을 지폈다. 서울 아파트값은 문 정부 임기 내 무려 62% 폭등했다. '벼락거지' 신조어가 이때 탄생했다. 논란이 일자 그는 "청와대에서 물러나면 집도 절도 없는 상태여서 집을 산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집이 있는데 또 사거나, 시세차익을 노리고 되파는 경우가 투기다. 저는 그 둘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투기와 투자의 개념까지 설명했다. 내로남불 원성은 장관 후보자 낙마로 이어졌다. 2019년 당시 문 정부 2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내정된 A후보자가 자진사퇴한 것. 그는 첫 내부 출신으로, 노조도 이례적으로 '환영'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하지만 '알짜 지역'에서 다주택을 보유한 사실이 사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토부 장관 후보자 낙마는 국민들의 축적된 '내로남불' 불만이 극에 달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추억이 새 정부 들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당사자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정서는 그렇지가 않다. 첫 단초는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책사인 전 국토부 차관이 제공했다. '갭 투자' 논란이 불씨를 지폈다. 여기에 "집값이 떨어지면 그때 사면 된다"는 발언까지 겹쳤다. 결국 그는 지난해 6월 30일 취임 117일 만에 퇴진했다. 사퇴 소식에 차관이라는 '직' 대신 보유하고 있는 '집'을 택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최근 열린 장관 인사청문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모 장관 후보자는 영끌 논란에 대해 "시세차익을 노린 것이 아니라 20년 정도 오랜 전세살이에 지쳐 집을 매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른 후보자는 아들 7억원대 상가 매입과 철거민 특별공급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 17년 전 매입한 수도권 한 아파트에 두 차례, 총 4개월만 거주한 후보자도 나왔다. 이번 청문회에 등장한 '딱지' '영끌' '갭 투자' 등은 현 정부가 전쟁의 대상인 '부동산 투기'로 선포한 유형들이다. 결국 일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논란에다 다른 의혹 등으로 인해 자진사퇴 길을 걸었다. 새 정부는 다주택자는 물론 '비거주 고가주택 소유자' '부동산 과다보유자' 등을 부동산 정책 논의 및 입안 과정에서 배제하고 있다. 첫 부동산 대책인 '6·27 대책'부터 지금까지 강도 높은 규제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내세운 대원칙은 '부동산 정상화'이다. 용지를 복사하는 직원조차 다주택자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부동산 투자는 배척 대상이 아니다. 집을 사고 건물을 짓는 것도 넓게 보면 '생산적 금융'의 한 종류이다. 또 투기와 투자를 특정 기준을 내세워 구분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일반 국민의 갭투자와 영끌 역시 정부 고위 관료들처럼 다 사연이 있다. 정부 관료들만 그들만의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정과 현실 대신 정부는 '실수요'와 '투기'로 갈랐다. 하지만 실수요 개념도, 투기 개념도 명확하지 않다. 비거주 1주택자 역시 정부가 정하는 '합당한 이유'에 해당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계획이다. 다시 슬금슬금 나오는 '내로남불'은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에 폭발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믿음을 잃으면 어떤 정책도 지지를 얻지 못한다. [email protected] 이종배 기자

[전광우 칼럼] 격변의 세계, 대한민국의 길

세계가 다시 격변의 문턱에 섰다. 냉전 이후 국제질서를 떠받쳐온 미국의 동맹 리더십, 미중 양극체제, 선진국의 재정·금융 안정성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중동 불안까지 더해져 안보와 경제의 경계도 사라졌다. 트럼프 2기 후반은 레임덕이 아니라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중간선거의 압박이 예측하기 어려운 대외정책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동북아 정세 변화도 심상치 않다. 지난달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가 단축된 것은 미국의 동맹 운용과 역내 전략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신호다. 한미일 훈련 '프리덤 에지'는 예정대로 실행, 3국 안보협력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북러 군사협력은 한반도 위협을 유럽과 인도태평양으로 확장하고 있다. 오는 24일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경쟁 속에서도 인공지능(AI) 안전과 같은 협력의제가 다뤄질 전망이다. 전면적 대결과 선택적 거래가 병존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하나.첫째, 외교·안보의 기준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안보와 번영을 지탱해 온 핵심축이며, 시대 변화에 맞게 발전시켜야 할 필수자산이다. 미국 내 동맹의 역할과 비용 논쟁이 거세질수록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재래식 방위와 사이버·우주 대응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동맹은 의존이 아니라 공동의 의지와 역량으로 유지된다. 중국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국가 정체성을 지키면서 협력의 공간을 넓혀야 한다. 일본과도 안보·경제·첨단기술 협력을 본격 확대해야 할 시점이다. 호주·인도·유럽 등 중견국과도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강대국 사이에서 모호성을 전략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원칙이 분명할 때 실용외교의 폭도 넓어진다. 둘째, 경제안보를 국가전략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AI와 반도체, 바이오, 조선·방산, 에너지는 국가의 생존과 협상력을 좌우하는 전략자산이다. 핵심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기술·인재 유출을 막는 한편 미국·일본·유럽과 공동 연구·투자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의 해외투자가 일방적 부담으로 끝나지 않도록 시장접근, 기술협력, 국내 고용과 연계하는 정부의 협상역량도 중요하다. 경제외교의 지평도 넓혀야 한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서두르고 디지털 통상과 'AI 속도조절론'이나 AI규범 논의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수동적 참여를 넘어 핵심규칙과 기술표준을 설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셋째, 외부 충격에 견딜 내부 체력을 키워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생산성 둔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과도한 규제는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 경제 기반이 약해지면 외교·안보 전략도 지속될 수 없다. 노동·교육·규제 개혁을 미뤄서는 안 되는 이유다. AI혁명의 성과도 반도체와 일부 대기업에 머물지 않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소기업과 공공부문으로 확산해 국가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일회성 지출보다 구조개혁과 인적자본 투자,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K자형 양극화'를 방치하면 국민적 삶의 질과 혁신의 정치적 기반도 약해진다. 재정은 오늘의 소비가 아니라 내일의 성장능력을 확충하는 자본이어야 한다. 넷째, 국내 정치가 국가전략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격변기에 가장 위험한 것은 국론의 분열과 개혁정책의 단절이다. 외교·안보와 경제의 핵심 기조는 정권을 넘어 지속되어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여야는 치열히 경쟁하되 국가 생존력 강화에는 한목소리를 내는 절제를 보여야 한다. 국력은 경제 규모와 군사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회적 신뢰, 제도의 예측 가능성, 위기 상황에서 나보다 나라를 앞세우는 시민정신이 함께해야 진정한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격변의 시대는 약한 나라에 운명을 강요하지만, 준비된 나라에는 선택의 공간을 넓혀준다. 한국이 지켜야 할 것은 분명하다. 외교의 원칙, 안보의 억지력, 경제의 혁신과 개방, 정치의 책임이다. 세계가 흔들릴수록 대한민국의 좌표는 더욱 선명해야 한다. 국익을 중심에 놓고 스스로 선택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나라, 그것이 격변의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초대 금융위원장■약력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외교통상부 국제금융대사 △포스코 이사회 의장 △세계은행(WB) 수석이코노미스트 △미국 미시간주립대학 경영학 교수

[포럼] 中 로봇과 獨 95년 전 고속열차

판다를 대신한 로봇. 2026년 중국의 새로운 이미지다. 한국 미디어가 대대적으로 보도한 중국 로봇 100m 달리기 세계 신기록이 도화선이다. 9.39초로 인간보다 빠르다. 한국 신문, 방송을 보면 로봇만이 아니라 중국발 인공지능(AI)·전기차(EV)의 세계 제패도 확실하다. 중국에 대한 서방 측 평가는 어떨까. 한국에서 언급되는 식의 경천동지 비약과 무관하다. 달리기와 춤은 능하다. 반면 로봇에 쓰이는 작은 나사와 볼트조차 제대로 못 만든다. 100m 미인 로봇이라고 할까. 언제나처럼 디테일에 약하다. 치명적인 결점은 중국 경제 자체의 한계에 있다. 공산당 주도하 공급 중심 경제의 어두운 미래다. 로봇·AI·EV는 국가 주도 핵심산업이다. 자원과 자금 대부분이 중국 정부의 몫이다. 판매할 경우 보조금까지 따라붙는다. 필요에 의한 발명이 아닌, 공급용 육성산업으로서의 로봇·AI·EV가 되는 셈이다.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체제는 수요를 전제로 한 경제다. 경제주체는 국가가 아닌 시장, 즉 일반 소비자다. 일단 팔려야 돈이 돌면서 좋은 물건도 나온다. 시장에서 원치 않는 한 100m 1초 속도 로봇도 무의미하다. 중국은 수출로 살아가는 나라다. 국내 수요는 약하다. 공산당이 앞장서 '국뽕' 애국 소비로 몰아간다 해도 길어 봤자 한두 달이다. 서방, 특히 미국 수출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고 사업도 확장해 나간다. 최근 디리스킹(Derisking)으로 표현하지만, 미국·유럽·일본의 중국 디커플링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미국발 첨단 반도체 수출만이 아닌, 중국발 로봇·AI·EV 수입도 차단된다는 의미다. 삼각김밥을 만들고, 연어를 굽고 옮길 수 있는 로봇. 올해 일본이 목표로 하는 팔 하나만 달린 첨단 로봇의 초상화다. 바삭거리는 김의 식감을 그대로 살리고, 허물어지기 쉬운 연어 요리를 24시간 행하는 생활형 로봇이다. 정확하고 빠르며 부드럽고도 섬세하다. 물론 가격도 저렴한 초소형 로봇이다. 소비자의 기대와 요구에 맞춘 수요 중심 상품이다. 하루 출시 신모델 자동차 3.6개, 100개가 넘는 EV 관련회사. 지난 6월 중국 EV 회사 니오(NIO) 대표가 말한 공급 중심 중국 경제의 실상이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EV 신모델 총규모가 무려 542개에 달한다. 수요 중심 자본주의 체제라면 박수를 칠 만한, 경쟁을 전제로 한 신기술 개발로 이해할 듯하다. 정반대다. 눈먼 정부 돈을 차지하기 위한 통계상 개발일 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시장의 반응은 처음부터 논외다. 팔리지도 않는데 무조건 만들어낸다. 정부 돈이 사라질 경우 EV 회사 9할이 사라질 전망이다. 1931년 독일발 최첨단 기술 하나가 전 세계에 선보인다. 그 유명한 제펠린(Zeppelin) 열차다. 최고 시속 230㎞로, 시속 100㎞를 넘긴 영국, 프랑스 열차보다 두배나 빨랐다. 독일 과학이 창조해낸 기적의 열차이지만 실험실 박제품으로 사라진다. 잘 달리기는 하지만 엄청난 소음과 함께 급정거가 불가능한 열차였기 때문이다. 유민호 워싱턴 퍼시픽21 디렉터■약력 △일본 경제산업성 근무 △딕 모리스 컨설턴트 아시아담당 △조지워싱턴대 E-Politics 프로그램 디렉터 △서울방송(SBS) 보도국 기자

[사설] 미진했던 李 회견, 국민 눈높이 더 살피고 변화로 답해야

[파이낸셜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최근의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과에 마음이 앞선 나머지 국민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으며, 두려움과 겸손함도 줄었다고 했다. 최근의 민심 이반 원인을 나름대로 진단하면서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제기된 여러 논란과 쟁점이 말끔히 해소된 자리로 보긴 힘들다. 연임 개헌 문제에선 비교적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헌법 개정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적용될 수 없다면서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대통령 권한 분산과 연임제 도입 등 개헌 필요성 자체는 거듭 강조했지만 자신의 임기 연장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정치권에서 계속돼 온 연임 개헌 논쟁은 앞으로 이 발언을 전제로 논의하면 될 것이다. 공소 취소 논란에 대해선 이전보단 구체적인 입장을 보였음에도 국민들 눈높이 면에선 모자람이 있다. 이 대통령은 특검이 기존 기소 사건을 이송하거나 처분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삭제하고 진상 규명에만 집중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이는 특검에 직접적인 공소취소 권한을 주는 방안에는 선을 그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사건을 포함한 기존 재판의 향후 처리 원칙에 대해선 명쾌한 답을 하지 않았다. 계속 공방과 다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잇따른 인사 논란에 대해 속 시원한 결론을 내놓지 못한 것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진보 단체까지 부적격으로 판단한 인물이다. 부적절한 청탁과 음주 운전 등 과거 전력으로 국민들 불신과 원성이 상당하다. 여기에 후보자는 지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거짓 진술을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다. 이런 인사의 임명 여부에 대해 대통령이 확답을 피하면서 추후 강행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생과 직결된 부동산 해법도 마찬가지다. 공급을 신속히 늘리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넘어서지 못했다. 레버리지 ETF 도입 과정에 대한 설명도 충분치 못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회견에서 '국민의 뜻', '국민 눈높이'를 여러 번 강조했다. 이 말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보다 명확한 입장과 쇄신이 필요하다. 회견 직전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15~17일)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37%로 4주 연속 하락하며 다시 최저치를 기록했다. 민심을 더 살피고 민생과 성장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으로 읽어야 한다.

[기고] 그 여름의 폭염이 북극에서 시작됐다면

[파이낸셜뉴스] 지난여름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열대야는 밤마다 이어졌고, 낮의 폭염은 온열질환자와 전력수요 기록을 연일 갈아치웠다. 우리는 그 더위를 '올여름의 일'로 넘기기 쉽지만, 기후과학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한반도의 이상고온과 지구 반대편 북극의 변화는 하나의 대기 순환으로 연결돼 있다. 북극이 지구 평균의 약 네 배 속도로 뜨거워지면서 제트기류가 느슨해지고, 그 느슨해진 흐름이 중위도에 열돔과 폭염, 집중호우를 더 자주 붙잡아 둔다. 지난여름 우리가 겪은 고통의 일부는, 저 멀리 녹고 있는 북극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북극, '우리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창' 그래서 북극은 '먼 곳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창'이다. 흔히 북극은 숫자로 이야기된다. 해빙 면적은 1979년 이후 절반 넘게 줄었고, 두꺼운 다년생 해빙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 숫자들은 새로운 항로와 자원, 물류라는 '기회의 언어'로 빠르게 번역돼 왔다. 그러나 정작 그 얼음 위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은 우리의 셈법에서 자주 빠져 있다. 앞으로의 대응을 준비하려면, 바로 그 사람들의 자리에서 변화를 읽어야 한다. 북극의 변화는 바닷길이 열리고 자원이 드러나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집과 도로, 항만 같은 기반시설이 흔들리고, 해안침식과 홍수는 마을의 위치 자체를 바꾼다. 알래스카의 유픽(Yup'ik) 마을 뉴톡은 강기슭 침식과 동토 융해를 견디지 못해 주민들이 9마일 떨어진 머타빅으로 마을을 통째로 옮겼다. 기후변화로 인한 미국 내 첫 전면 이주 사례다. 그린란드에서는 해빙 시기가 빨라지며 전통적인 개썰매·어로의 달력이 흔들리고, 스웨덴 북부 사미(Sápmi)의 순록 유목민은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눈 탓에 순록이 먹이를 찾지 못하는 새로운 위험에 직면했다. 북극의 기후 문제는 통계가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인 삶의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국제 학계의 시선이 이미 '회복탄력성'이 핵심어로 부상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논의는 여전히 항로·자원·지정학에 쏠려 있다. 이 '인식의 격차'는 단순한 학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경제적 비용으로 되돌아오는 전략적 공백이다. 흥미롭게도 기후위험이 커진다고 해서 원주민의 이주가 자동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북미 북극권 연구를 종합하면, 개인과 가구 차원에서 기후변화가 곧바로 이주를 유발한다는 증거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일자리와 교육, 의료, 주거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이동을 좌우했고, 가족과 문화,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은 사람들을 고향에 머물게 하는 힘으로 작동했다. 북극 원주민을 혹은 '전통의 수호자'라는 단순한 상(像)으로 가두어서는, 그곳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구와 환경을 함께 읽는 '융합의 시선' 필요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인구와 환경을 함께 읽는 융합의 시선이다. 대기·동토·연안의 변화를 장기 관측하는 자연과학 데이터가 변화의 부담이자 기회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지리정보 분석, 심층 인터뷰, 전통지식에 대한 해석이 관측 데이터와 결합할 때, 비로소 북극은 '관리 가능한 위험'과 '예측 가능한 기회'의 공간이 된다. 이 융합은 학문적 이상이 아니라 경제적 합리성의 문제다. 북극권의 항만·에너지·관광·물류 투자에는 수십 년 단위의 불확실성이 따른다. 동토 융해와 해안침식은 시설의 안전과 유지비용을 직접 끌어올리고, 삶의 터전을 잃은 지역사회의 불안정성은 어떤 사업 계획에도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로 작용한다. 전 세계 자본의 판단 기준이 된 ESG의 관점에서도 방향은 분명하다. 환경을 훼손하고 원주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프로젝트에서 글로벌 자본이 발을 빼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됐고, 반대로 지역사회의 지식을 존중하며 함께 적응 모델을 만드는 일은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된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계 10위권 경제와 높아진 문화적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기여는, 이제 우리 사회가 마주한 시대적 과제다. 북극은 그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쌓아온 관측 기술과 데이터 역량을 현지에 일방적으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 지역사회의 지식·경험과 결합해 함께 해법을 만들 때, 한국은 '책임 있는 북극 파트너'라는 국격에 맞는 위상을 얻는다. 그것은 명분인 동시에, 지속가능한 북극 진출을 위한 가장 확실한 신뢰 자산이기도 하다.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기자수첩] 금융중심지, 세 곳이나 필요한가

지난달 국민연금공단이 자리한 전북혁신도시에 도착하자 비닐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바로 옆 가로수에 걸린 산림조합의 '영농 부산물 태우지 말고 파쇄하세요'라는 현수막이 무색했다. 농부들은 밭 한가운데 피워 놓은 불로 쓰레기를 연신 밀어 넣었다. 그 밭과 8차선 도로를 두고 마주 선 빌딩에서 만난 A씨는 "그나마 연기는 금방 사그라들어서 괜찮은데 퇴비 냄새는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이나 해외에서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 똥 냄새가 나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답답해했다. A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렸다. 그는 국민연금공단이 전주로 이전한 2015년부터 주중은 전주, 주말은 서울에서 보낸다. 전북도와 전주시는 지난 16일 오라이언자산운용 컨소시엄과 전북국제금융센터 등 금융타운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여러 증권사가 참여한 컨소시엄은 2030년까지 국민연금공단 인근 빈땅에 31층 규모의 국제금융센터를 짓는다. 13층 규모의 4~5성급 호텔과 2층짜리 컨벤션도 건립한다. 사업비 6000억원을 투입해 내년 하반기 첫 삽을 뜬다. 수도권 집중은 해소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 공감한다. 빈땅에 뭐라도 지어야 악취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토 면적이 좁은 한국에 금융중심지가 세 곳이나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 31층짜리 금융타운이 없어 전주의 발전이 늦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국토부가 밝힌 대로 2차 공공기관 이전의 기준이 '집적효과'라면 여의도를 뉴욕·홍콩·두바이 수준의 금융허브로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지역구 표심에 따른 분산이다. 산업은행을 지방으로 옮기려면 산은법을, 한국은행을 이전하려면 한은법을 개정해야 한다. 문제는 산은법과 한은법이 각각 국회 정무위와 기재위 소관이라는 점이다. 정무위 소속 의원이 산은을 부산으로 옮기자고 하면, 기재위 소속 의원에게는 한은을 세종으로 옮기자고 요구하는 식의 거래가 벌어질 수 있다. 이어 기업은행은 대구로, 농협중앙회를 나주로, 금융감독원을 원주로 이전하자는 제안이 연쇄적으로 나올까 우려된다. 이미 국민연금을 전주로, 신협중앙회를 대전으로, 신용보증기금을 대구로, 거래소와 주택금융공사는 부산으로 찢어 놓은 대한민국 정치권이다. 국책은행을 옮기기보다 지금 자리에서 돈을 벌어 지역 기업에 투자하도록 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중국도 금융회사를 상하이로 모아 '금융허브 순위'를 끌어올리는 마당에 한국은 여의도에 있는 은행을 지방으로 옮기겠다니 걱정이다. [email protected] 박문수 기자

[강남視角] 검찰은 소멸, 불안은 증폭

결국 우려했던 대로 문을 연 채 차가 출발하는 '개문발차'가 유력해졌다. 그것도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 말이다. 10월 2일 형사소송법 개정안 시행과 함께 출범하는 중대범죄수사청, 공소청 얘기다. 이재명 정부 집권 초기의 강한 동력을 바탕으로 강력하게 추진 드라이브를 걸면서 법 개정까지는 마무리했지만 제도가 시행되기도 전에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당장 컨트롤타워부터 무주공산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조직과 제도를 총괄해야 할 법무부 장관은 아직까지 공석이다. 정부가 낙점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고된다. 국회가 여당을 중심으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긴 했지만 취임도 하기 전에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중수청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에 대한 반발 기류가 야권은 물론 여권 지지층에서도 흘러나오면서 인사청문회 시기조차 아직까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급기야 정부가 직접 중수청장 후보자의 여러 논란에 조목조목 대신 반박하는 브리핑까지 하기도 했다. 여기에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의 또 다른 한 축인 공소청장 인선은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검찰청이 사라지는 우리나라 사법체계의 대변화를 앞두고 있지만 직제와 후속 입법조차 채 정비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면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사법체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백을 메워야 하는 경찰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수사권 조정 이후 몸집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편으로 사실상 별도의 견제장치 없이 대부분의 수사권을 오롯이 가져가게 됐다. 경찰 권력의 확대는 형사소송법 개정 단계부터 이미 예견돼 있던 일이었고, 경찰 역시 '막중한 책임감' '철저한 대비' 등을 내세우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잇따라 불거진 경찰 간부의 비위와 부실수사 논란, 국가수사본부장에 대한 청문회 요구까지 이어지면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수사본부는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수사심의위원회는 정작 수사기록조차 들여다보지 못하는 '구멍 뚫린 견제'라는 지적을 받는다. 검찰의 권한을 덜어내는 데는 속도를 냈지만 그 권한을 넘겨받을 경찰을 감독할 장치를 마련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탄생부터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서대필 조작사건이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만 보더라도 수사와 기소권한의 집중이 얼마나 위험한지 여실히 드러난다. 이 때문에 정부도 '날은 저물고 있는데 할일이 많이 남았다'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심정으로 검찰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조급함은 후속 입법도, 인선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시작되는 상황을 눈앞에 두게 했다. 부랴부랴 후속 입법에 속도를 낸다지만 다음 달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나서도 상당 기간은 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수사·기소 분리로 대표되는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라는 이름의 거대한 차가 출발하는 건 늦추거나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안전한 운행을 위해 남아 있는 건 견제라는 이름의 브레이크를 얼마나 제대로 달 수 있을지 여부다. 법적인 보완과 제도 정비, 인력 확보 등을 통해 새로운 체계가 연착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수사권력 오남용을 방지할 통제장치와 실효적인 방어권 보장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법 개정의 근거가 국민의 권리 보호에 있는 만큼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속한 처리와 공정한 수사를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email protected]

[사설] 대미투자 막판 진통, 손익 철저히 따져 국익 지켜야

정부가 17일로 예정됐던 20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 첫 사업의 국회 보고를 연기했다. 이에 따라 18일 예정됐던 한미 간 대미투자 1호 사업 양해각서(MOU) 서명·발표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부가 미국과 협의 중이지만 접점 모색에 시간이 걸린다고 밝힌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안보와 경제, 나아가 한미동맹을 고려할 때 조속한 합의가 필요하지만 막판까지 국익을 고려한 당당한 협상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정부는 17일로 예정됐던 재정경제기획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대미투자 프로젝트 보고를 연기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전략투자특별법에 따라 국회 보고를 마쳐야 미국과 후속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만큼 1호 사업인 223억달러 규모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 MOU 일정도 늦춰질 전망이다. 배경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미 간에 합의가 덜 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호 사업인 대형 원전 건설사업과 관련, 8기 중 2기를 한국형으로 하는 데 이견이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한국이 미국의 원전 원천기술 기업인 웨스팅하우스 지분에 투자해 의결권을 확보하는 데도 미국 측이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히 요구해 온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편입 여부도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사업 전체의 손익을 묶어 관리하는 '우산형' 투자와 달리 미국은 사업별 개별 계산을 요구해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말도 있다.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면 수익성 높은 사업의 이익으로 불확실한 사업의 손실을 보전하기 어려워져 한국의 투자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원리금 회수 후 순이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구조여서 한국은 잘되는 사업의 과실은 일찍 넘겨주고 안 되는 사업의 적자는 떠안을 수 있다. 한국 정부로서는 투자 규모가 큰 만큼 수익성 리스크를 외면할 수는 없다. 알래스카 LNG와 가스화력 발전 등은 인프라 구축비용 급증과 장기 수요예측 실패 시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손실이 나면 결국 국민과 기업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압박 수위를 갈수록 높이니 정부는 진퇴양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우리의 핵심 우방인 데다 첨단산업 협력에서도 중요한 파트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리스크를 떠안는 합의는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원전 기술 및 사업 참여권 확보, 손익 배분구조 개선 등 주요 조건에서 미국 측을 최대한 설득해 유리하게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한국형 원전 건설 여부와 지분·의결권, 인프라 투자 리스크 등이 복잡하게 연계돼 있어 막판까지 철저히 손익을 따져 조율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는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충분한 수익과 국가적 실리로 돌아와야 한다. 정부는 샅바싸움이 길어지더라도 원칙을 고수하면서 세밀한 셈법으로 실리를 챙기는 협상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철저한 리스크 통제로 '윈윈' 대미 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앞서 "사인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 말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국익을 지키는 뚝심이 필요하다.

[사설] 美 3년 만의 긴축 전환, 고금리 장기화에 대비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6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25%p 올렸다. 3년여 만에 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장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정이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뒤에 나온 신호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12명이 만장일치로 인상에 찬성했고, 금리 전망을 제출한 18명 가운데 16명이 연말까지 추가 인상을 예상했다. 연준의 긴축 의지가 예상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이번 인상으로 미국 기준금리는 3.75~4.00%로 높아졌다. 연말에는 4.00~4.25%로 더 올라갈 수 있고, 내년에도 이 수준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 기준금리는 세계 자금의 흐름과 각국 통화정책을 좌우한다. 한국 경제도 고금리 장기화를 전제로 대응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이날 매파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미국 경제와 고용, 내수와 투자가 견조하다면서 가장 큰 문제로 물가를 꼽았다. "물가가 너무 높고 이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됐다"고 했다. 물가가 목표치인 2%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한 시점도 한 해 뒤인 2029년이다. 워시는 취임 전부터 트럼프 행정부의 금리 인하 압력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금리가 1% 이하가 돼야 한다며 연준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워시가 물러서지 않은 것은 물가 불안에 대한 연준의 경계심이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다. 한국 경제에는 만만찮은 부담이다. 한국은행은 7월과 8월 두 차례 연속 금리를 올려 기준금리가 3%가 됐다. 수출과 투자가 비교적 견조한 반면 물가는 상당 기간 목표치를 웃돌 전망이다. 수도권 집값과 가계대출 증가세도 심상치 않다. 미국의 긴축이 이어지면 환율과 수입물가까지 다시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을 따라 기계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것은 능사는 아니다. 2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에다 이자 부담에 몰린 자영업자와 한계기업의 사정도 절박하다. 두 차례 금리 인상의 효과도 아직 충분히 나타나지 않았다. 금통위 내부에서도 추가 긴축이 취약 부문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신중론이 나오는 상황이다. 통화정책만으로 버틸 수도 없다. 재정은 물가를 자극하는 광범위한 경기 부양보다 취약계층 핀셋 지원과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도 공급 확대는 서두르되 대출을 풀어 집값을 자극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외환시장의 급격한 쏠림도 제어해야 한다. 과도한 변동성은 그 자체로 금융시장의 위험요인이다. 고금리를 견뎌낼 경제체력을 키우는 일은 정부와 기업, 가계 모두의 과제다. 빚으로 연명하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미루고 취약차주의 부실 위험을 방치하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기업은 차입구조를 다시 살피고 정부와 금융권도 옥석을 가려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부채를 줄이고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고통스러운 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황두진의 건축시선] 백년의 토론

요즘 신문을 펼치면 도시와 건축 이야기가 부쩍 늘었다. 종묘 앞이 그랬고, 지금은 용산이 뜨겁다. 이런 문제가 전문가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다만 도시의 운명을 바꿀 만한 결정조차 특정 정치일정과 부동산 시장 상황 같은 당면 현안에 맞춰 서둘러 다뤄지는 듯해 아쉽다. 이런 구도에서는 장기적 안목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도시는 선거보다 오래가고, 정책보다 호흡이 길다. 한번 놓인 도로와 공원, 철도와 주거지는 수십년, 때로는 수백년 동안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파리의 역사축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루브르에서 튀일리, 콩코르드, 샹젤리제, 개선문을 지나 라데팡스의 그랑드 아르슈에 이르는 축은 여러 시대를 거치며 덧붙여지고 재해석됐다. 이런 문제일수록 '얼마나 빨리 결정하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생각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마침 우리에게는 이런 고민을 담아낼 좋은 장치가 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다. 2017년 시작해 2년마다 열렸고, 2025년 제5회를 맞아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세계 여러 도시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서울에 불러 모아 공유하는 자리다. 여기에 한 가지 제안을 보태고 싶다. 비엔날레의 한 회를 '서울도시건축센테니알레'로 정하는 것이다. 이름 그대로 100년에 한 번 열리는 전시다. 첫 전시에서 던진 질문과 토론, 설계안과 반론을 최대한 온전히 기록해 100년 뒤의 다음 세대에게 넘긴다. 기후와 환경, 에너지, 인구, 이동, 주거 등 당장 답을 내리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하게 될 장기적인 문제를 다룬다. 시장의 임기나 개발사업의 일정이 아니라, 한 세기 뒤를 기준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100년 뒤의 사람들은 우리가 남긴 질문을 다시 읽고 무엇이 맞았으며 무엇이 틀렸는지 답하면 된다. 그 과정 자체가 거대한 타임캡슐이다. 100년이라는 시간에는 묘한 힘이 있다. 지금 논의를 시작한 사람 가운데 다음 전시를 직접 볼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생각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망도 한결 옅어진다. 권력과 명성, 이해관계도 대부분 휘발된다. 발표자는 자기 주장이 당장 채택될지보다 미래의 누군가에게 어떤 질문을 남길지를 생각하게 된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을 한없이 겸손하게, 동시에 진지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당장의 편리를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가. 다음 세대가 우리를 돌아볼 때 잘했다고 말하게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비엔날레가 격년의 가쁜 리듬으로 도시를 바라본다면, 그 안에 단 하나쯤 100년이라는 긴 시간의 시계를 놓아도 좋지 않을까. 도시가 성숙한다는 것은 빨리 결정하는 것보다 오래 생각할 줄 아는 능력에 달렸다. '백년의 토론'은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이 인류에게 던질 수 있는 매력적인 화두다. 그때의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과연 어떤 답장을 보내올 것인가. ■약력 △서울대 및 예일대에서 건축 전공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스웨덴 스톡홀름 동아시아박물관 한국실, 무카스사옥, 한강 교량카페, 시마크 호텔 호안재 등 설계 △서울시 건축상,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 김종성 건축상 등 수상 황두진 건축가

[fn광장] 증인·참고인 없는 청문회, 뭘 검증했나

이번 주는 청문회 시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것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 김승원 의원의 청문회다. 그런데 김 후보자의 청문회에는 증인도 참고인도 전혀 없었다. 물론 증인과 참고인이 없는 청문회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회 회의록 시스템에 따르면 윤석열 정권 당시 인사청문회는 총 66차례(사법부와 선관위 관련 후보자는 제외한 수치) 실시됐는데, 이 가운데 증인 혹은 참고인이 출석한 청문회는 24차례였다.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 실시된 청문회는 총 38차례(사법부·선관위 후보자 제외)인데, 이 가운데 증인이나 참고인이 출석한 청문회는 10차례에 그쳤다. 이를 비율로 환산하면, 윤석열 정권 당시에는 전체 청문회의 36%에서 증인이나 참고인이 출석했지만,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에는 그 비율이 26%로 오히려 낮아졌다. 이 수치가 말해주는 것은 증인·참고인 없는 청문회가 윤석열 정권 때도 드물지 않았지만, 이재명 정권 들어서는 그 경향이 더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청문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될 경우 청문회는 본래의 존재 목적에 맞게 기능하기 어려워진다. 김승원 후보자에 이어 용혜인 의원의 인사까지 논란이 됐을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9월 7일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가 후보자에 대한 국민적 검증 과정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더구나 김 후보자처럼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고, 장관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여론이 높은 후보의 청문회일수록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지난 9월 11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9월 8일부터 10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결과를 보면 김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으로 '적합하다'는 응답은 22%, '적합하지 않다'는 응답은 43%였다. 이처럼 부정적 여론이 긍정적 평가를 크게 앞서는 상황이라면 청문회다운 청문회를 통해 국민의 정확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인사로 인해 닥칠 수 있는 여론의 역풍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론의 역풍을 막는다는 것은 여론에 반하는 장관 지명을 강행할 경우 권력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오히려 더 심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대통령 지지율이 급속도로 하락하는 추세라면 그 역풍의 정도는 한층 더 커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청문회다운 청문회를 치른 뒤 국민 여론을 경청하고, 그에 맞는 상식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증인과 참고인의 존재가 중요하다. 청문회의 원조 격인 미국의 사례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대규모의 증인과 참고인을 출석시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단적인 예로 1991년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지명자 청문회를 들 수 있는데, 당시 무려 90여명의 참고인이 청문회에 나섰다. 참고인은 중학교 담임교사부터 대학교 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이들은 토머스의 자질과 업적을 둘러싸고 찬반 논리를 펼쳤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90여명 전원이 빠짐없이 출석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점은 미국에서는 특정 주요 공직자를 지명하기까지 검증에 평균 290일 정도가 걸린다는 사실이다. 이 290일에는 대통령이 각 정당 지도부와 의회 지도부에 자신이 지명하고자 하는 공직 후보자를 두고 협의하는 과정까지 포함돼 있다. 이처럼 미국은 충분한 검증과 협의를 거쳐 지명하고, 그 이후에도 상당수의 증인과 참고인을 불러 청문회를 실시한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이 검증이 부실했다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과 참고인 없는 청문회를 실시하고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도 이재명 정권은 용혜인 의원을 장관으로 지명함으로써 2030세대와 여성들의 지지를 공고히 하고, 김승원 의원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함으로써 친명 세력과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확고히 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상황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입각한, 자신들 중심의 상황 타개책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용 의원 문제로 인해 2030세대의 정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더 거세졌고, 보수와 중도층은 김 후보자 문제로 인해 현 정권에 더욱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핵심부는 날로 하락하는 지지율로 인해 상당한 고민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일수록 여론을 세심히 살피고, 그에 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설] '52시간 근로'에 막힌 메가특구, 노사정 대화로 풀길

정부가 '메가특구 특별법'에 담길 주52시간제 완화 등 특례를 다룰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노사에 공식 제안했다. 글로벌 첨단기술 패권 전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노사의 이견을 좁혀 반도체·피지컬 인공지능(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의 속도를 내자는 취지다.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국가적 사활이 걸린 정책인 만큼 노사정이 지혜를 모아 조속히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5일 "특례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기업과 우려를 제기하는 노동자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노사정 대화를 제안했다. 기존 노사정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양대 노총 가운데 하나인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고 있어 별도의 사회적 대화 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김 장관은 고소득·연구개발(R&D) 노동자 등의 주52시간 근로 상한을 없애고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을 적용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근로자 합의 시 2년 더 연장하는 '기간제 2+2'를 시급한 논의대상으로 꼽았다. 정부가 이런 의제를 던진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코로나19 대응 이후 6년 만에, 그것도 경사노위 밖에서 별도로 추진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특히 "메가특구는 국운이 걸려 있으며,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프로젝트"라는 김 장관의 말대로 쉬운 의제는 아니지만 이해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꼭 풀어야 할 과제다. 아직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민주노총도 적극 참여하기를 촉구한다. 3대 메가프로젝트는 분초를 다툴 만큼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초단기 집중 R&D와 인프라 구축의 연속성이 성패를 가를 것이다. 무엇보다 현행 주52시간제의 경직된 틀을 그대로 고수할 경우 경쟁국과의 속도전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절박함을 노동계가 깨달아야 한다. 메가특구 내 근로시간 유연화가 전체 노동권의 후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첨단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핀셋 특례'로 설계하면 된다. 정부는 노사 당사자의 갈등을 막기 위해 노동 유연화와 관련한 정교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근로시간 유연화가 '공짜 야근'이나 노동력 착취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하고, 과도한 연장근로에는 충분한 보상을 하며, 적용 대상도 R&D 관련자 등으로 한정하는 등 촘촘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메가특구 특례는 속도감 있게 추진하되, 차제에 근로기준법 전반의 개편 방향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언급했듯 '투입시간'이 아닌 '결과물'로 성과를 평가받는 지식노동 환경에서 획일적인 시간규제와 위반 시 징역형 등 형벌 중심 규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건강권과 과로사 방지라는 근로시간 단축의 취지는 유지하되 업종·직무별 특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면서도 노사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 중재안을 제시해야 한다. 노사도 대립을 극복하고 국가 산업의 미래를 위한 타협안을 도출해야 한다. 경직된 주52시간제에 갇혀 글로벌 기술전쟁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자의 삶의 질과 국가 산업 경쟁력이 함께 가는 성숙한 노동시장의 이정표가 세워지기 바란다.

[사설] 기업 붙잡으려면 획기적인 '한국판 IRA' 나와야

반도체·배터리 등 국가전략산업의 국내 생산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이른바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도입 토론회가 16일 국회에서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실이 주최한 토론회의 취지는 미국 등 주요국의 보조금 경쟁과 국내 기업들의 해외투자 확대에 대응해 국내 투자를 유도할 지원체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외국으로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 인건비가 상승해 많은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과 동남아로 옮겨갔다. 인건비만이 아니라 노조의 강성화도 기업들을 외국으로 내몰았다. 두번째는 수출기업들이 관세 부담을 덜고자 자발적으로 수출국 현지에 공장을 건설,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처럼 외교적 수단을 통한 강요에 못 이겨 외국에 공장을 짓는 일도 있다. 다양한 이유로 제조업체들이 한국을 떠나 국내 제조업 공동화(空洞化)의 우려가 커진 지도 오래됐다. 미국처럼 외국으로 떠난 기업들의 자국 복귀(리쇼어링)를 유도하는 정책을 정부도 꾸준히 펴고 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지난 6월에는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고, 태양광발전·이차전지·반도체·인공지능(AI) 로봇 부품 등 6개 분야에서 '국내에서 만든 만큼' 세금을 깎아주는 국내생산세액공제 제도가 내년에 시행될 예정인데 효과는 불확실하다.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이 돌아오게 하거나 나가지 않게 하려면 과감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기업들의 회귀가 미흡한 이유는 정부가 제공한 혜택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토론회는 이런 상황에서 해외진출 기업들의 복귀는 물론 국내 잔류를 돕는 방안을 국회 차원에서 모색해 보자는 것으로 의미가 작지 않다. 중국이나 동남아도 인건비가 상승하고, 노동과 환경 문제 등이 부각되면서 기업 활동이 예전 같지 않다. 이런 변화를 역으로 활용해 국내로 기업들이 다시 들어오게 하는 획기적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들도 여건만 갖춰진다면 아무래도 국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게 나을 것이다. 세금 혜택이나 부지 제공을 비롯한 회귀 기업들을 위한 맞춤형 지원책은 기본적인 것들이다. 무엇보다 제조업체들이 고민하는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고, 숙련된 노동력을 확보할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 스마트팩토리 구축이나 로봇 활용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섬유업체들이 복귀해도 국내에서 같은 업종을 영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업들이 전통산업에서 벗어나 신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세액공제 등을 통해 연구개발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가장 큰 장애물은 역시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인한 노무적 부담 증가다. 노조에 시달릴 생각을 하면 들어오고 싶은 마음도 사라질 것이다. 이미 발효된 법이지만 노사분쟁 폭증 등 문제점들이 확인된 만큼 조속히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테헤란로] 네팔의 오늘, 우리의 내일

최근 대규모 홍수 피해를 입은 네팔은 스스로를 기후위기 피해국으로 규정하며 국제사회에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책임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기후변화의 대가는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네팔은 유엔의 '손실과 피해 기금'을 통한 지원도 요구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공평하지 않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국가와 그 피해를 먼저, 더 크게 겪는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다. 히말라야를 품은 네팔은 빙하가 빠르게 녹고, 극한강수와 홍수 위험이 커지면서 기후변화가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더 뜨거워진 지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최근 유엔이 내놓은 경고는 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이달 발표한 '오버슈트 제한(Limiting Overshoot)' 보고서에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1.5도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일시적으로 넘어설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얼마나 높이, 얼마나 오래 넘느냐 하는 것이다. 온도가 더 오를수록 극한기후는 심해지고, 일부 변화는 되돌리기 어려워진다. 그 위험선은 이미 눈앞까지 다가왔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6~2030년 중 적어도 한 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높을 가능성을 91%로 내다봤다. 한 해의 기온과 장기 평균은 다르지만 1.5도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숫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 역시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910년대 7.7일이던 연평균 폭염일수는 2020년대 들어 16.9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기후변화는 이미 일상의 비용으로 돌아온다. 폭염은 전력수요와 산업현장의 부담을 키우고, 이상기후는 농산물 가격을 흔든다. 집중호우는 기반시설을 위협하고, 복구비용을 키운다. 기후위기는 이미 물가를 넘어 산업, 안전의 문제가 됐다. 국경 밖이라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번 네팔 재난에는 한국인도 휘말렸다. 현지에서 한국인들이 연락 두절되면서 정부는 수색과 구조를 위해 해외긴급구호대를 급파했다. 수천㎞ 떨어진 곳의 재난도 우리 국민의 안전과 무관하지 않았다. 네팔과 한국이 겪는 기후재난의 모습과 피해의 크기는 다르다. 그러나 네팔의 오늘이 보내는 경고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1.5도 초과가 현실로 다가오고 우리 역시 달라진 기후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팔의 오늘을 먼 나라의 재난으로만 바라보기에는 우리의 내일도 이미 너무 가까이 와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