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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비교하는 사회에서 행복감 찾기

삼성전자 노조 사태로 긴장된 나날들이 지나고 드디어 타협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노사 모두 많은 고충이 있었을 것이고, 최종 결과가 양측 모두에 완벽히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태를 지켜보던 우리들은 일단 한국 경제의 불안요소 하나가 제거된 것에 안도감을 느낌과 동시에, 이후 그들이 받게 될 성과급을 떠올리며 아픈 배를 쓰다듬게 된다. 무려 6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성과금액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나의 월급 통장. 어느 순간 자책과 자괴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인간의 본능 중에는 늘 자신과 누군가를 비교하게 되는 '사회비교욕구'라는 게 있다. 자신의 신념, 능력, 성과를 평가할 때 절대적 기준보다는 '타인과의 비교'라는 상대적 거울을 사용한다. 이 비교는 상향비교와 하향비교라는 2가지 속성의 방향성을 가진다. 이 중 '상향 사회비교욕구'는 나의 성장과 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긍정적 작용을 한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능력이나 조건을 가진 사람과 비교하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성취지향적 동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결국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인으로 작동한다. 자신을 발전시키는 건강한 욕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비교 대상과의 격차가 너무 크거나 극복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되면, 자존감이 급격히 하락하고 상대적 박탈감이나 시기심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박탈감은 그저 상대의 존재만으로도 무기력과 우울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 다른 방향의 비교욕구는 주관적 안녕감의 회복을 위해 사용되는 '하향 사회비교욕구'다. 나보다 처지가 나쁘거나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나으니까'라는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사회 전체에 온기를 퍼트리는 긍정 요인이 된다. 하지만 이 하향 비교가 지나치면, 오히려 사회악이 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실패하거나 곤란한 일을 겪는 모습을 보는 사람의 뇌를 촬영했을 때, 보상중추인 기쁨 중추가 활성화되는 실험의 결과처럼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즉 타인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끼는 고약한 감정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접하는 요즘, 우리들은 매 순간 상향 비교욕구와 하향 비교욕구 상황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부러워하다 시기심이 생기고, 질투에 지쳐 나 자신을 비하하다 보면 어느새 우울감에 휩싸인다. 반면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 등 유명인들의 작은 실수 하나에, 그들의 수많은 과거 사건들이 소환되고 비난과 질책이 쏟아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 잘나가던 사람의 하염없는 추락 앞에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저렇게 유명하지 않은 나, 저렇게 잘나가지 못한 내가 더 낫다는 안도감으로 그나마 행복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사회비교욕구의 비교 대상이 전 세계 사람들 대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바다 건너 일론 머스크가 제 아무리 대단한 재벌이라 해도 그를 시기하며 우울해하진 않는다. 자신이 기준으로 삼는 것은 바로 자기 주변 환경이라는 참조집단 이론(Reference Group Theory)에 의하면 결국 회사 동료, 친구, 친척 등이 비교 대상일 수 있다. 한 실험에서 개인의 지능과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이라며, 친한 친구와 잘 모르는 사람 중 한 명에게 힌트를 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 결과 놀랍게도 타인보다 가까운 친구에게 도리어 힌트를 주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다. 즉 가까운 친구가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내 자존감에 치명상을 입히지만, 잘 모르는 타인의 점수는 관심 대상이 아니므로, 무의식적으로 친구의 성공을 방해한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진급 기회가 거의 없는 부대의 군인들보다 진급 기회가 많아 주변 동료들이 자주 진급하는 부대의 군인들이 오히려 진급에 대한 불만과 박탈감이 훨씬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비교욕구는 멀리 있는 대상이 아니라 같은 사회계층, 같은 조직 내 동료나 친구, 가족 등 가까운 상대에게 작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삼성전자 성과급이 많은 사람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잊혀질 이슈이다. 다만 삼성과 비슷한 위치의 기업, 또는 삼성 내 타 계열사나 부서 간 성과급 차이로 인한 박탈감은 쉬 가시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박탈감이나 우울감의 부정적 정서가 우리 경제의 균열을 만드는 작은 틈으로 작동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석좌교수

코스피 좌우하는 삼전닉스…'선도기업 쏠림' 자연스러운 현상 [한미재무학회]

【 뉴욕=이병철 특파원】 최근 한국 주식시장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기대와 글로벌 유동성 환경 변화 속에서 빠른 상승과 높은 변동성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역사적 고점 부근까지 상승하는 과정에서 이를 단순한 버블이나 과열로 해석해야 하는지, 혹은 글로벌 기술 패러다임 변화와 한국 기업들의 구조적 재평가 과정으로 봐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 역시 커지고 있다. 멍고 윌슨 영국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원 재무경제학 교수와 류동한 영국 옥스퍼드대 재무학 박사과정 학생의 대담을 통해 최근 한국 증시의 급격한 변화와 글로벌 자본시장의 흐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현대 자산가격이론이 오늘날 시장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윌슨 교수는 자산가격결정이론(Asset Pricing)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이 거시경제 정보와 불확실성, 그리고 투자자 간 신념 차이를 어떻게 가격에 반영하는지를 연구해 온 세계적 석학이다. ―현재 집중하고 있는 연구 주제와 자산가격결정 분야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재무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는 결국 이것이다. "위험한 자산의 가격과 기대수익률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문제다. 전통적인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M)은 시장 전체 움직임에 대한 민감도인 '베타(Beta)'만으로 자산의 위험 프리미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이론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실제 금융시장에서는 CAPM이 항상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수십년간의 실증 연구들은 베타가 높은 자산이 반드시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학계에서는 이를 재무학의 대표적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로 여겨 왔으며, 나 역시 바로 그 지점에서 큰 학문적 흥미를 느끼게 됐다. 내 연구의 핵심 관심사는 시장이 '언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는가에 있다. 특히 투자자들이 거시경제 정보와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자산가격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발표한 연구 가운데 하나가 2014년 논문 '자산가격: 이틀의 이야기(Asset Pricing: A Tale of Two Days)'다. 이 논문에서는 금융시장의 거래일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나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와 같은 주요 거시경제 발표일과 그렇지 않은 날로 구분해 분석했다. 흥미롭게도 평상시에는 잘 작동하지 않던 CAPM이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집중되는 발표일에는 매우 강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투자자들은 중요한 정보가 공개되는 순간 시장 전체의 체계적 위험(systematic risk)을 다시 평가하며, 그에 상응하는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결국 금융시장은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불확실성이 집중되는 특정 시점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연구들을 보면 기업 실적 발표 역시 시장 전체 위험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투자자 간 정보와 신념 차이가 자산가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최근 연구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핵심 질문은 금융시장이 새로운 정보를 어떻게 가격에 반영하는가, 그리고 투자자들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점이다. 초기 연구에서는 연준 회의나 물가 발표처럼 거시경제 정보가 공개되는 특정 시점에 주목했다. 그런데 연구를 이어가다 보니 흥미로운 점은 시장 전체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가 반드시 중앙은행이나 정부 발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개별 기업의 실적 발표 역시 투자자들에게 경제 전반에 대한 중요한 신호(signal)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실적은 단순히 그 기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산업의 수요 상황이나 소비 흐름, 나아가 경제 전반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투자자 사이 정보와 신념 차이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전통적 재무이론은 시장 참여자들이 대체로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위험을 평가한다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실의 금융시장은 훨씬 복잡하다. 투자자들은 같은 정보를 보더라도 서로 다른 기대와 해석을 갖고 있으며, 바로 그 차이가 가격 변동성과 거래를 만들어낸다. 최근 발표한 논문 '잃어버린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The Lost Capital Asset Pricing Model)'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흔히 CAPM이 실증적으로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투자자들 사이 정보와 기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연구자가 관찰하는 '베타'와 투자자들이 실제로 인식하는 위험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시장의 변동성이나 가격 움직임은 단순한 비이성적 과열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투자자들이 미래 경제 상태를 다르게 해석하는 과정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내 연구 전반의 공통된 관심사는 정보(information), 불확실성(uncertainty), 그리고 투자자 간 신념의 이질성(heterogeneity)이 금융시장 가격 형성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 한국 증시처럼 AI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빠른 상승과 높은 변동성이 동시에 나타나는 시장 역시 단순히 '버블' 여부만으로 설명하기보다는 투자자들의 기대와 신념 차이를 함께 봐야 한다는 뜻인가. ▲시장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동시에 변동성도 큰 상황에서는 사람들은 보통 그것이 버블인지 아닌지를 먼저 묻는다. 물론 지나친 낙관론이나 투기적 요소가 일부 존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연구 관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미래 경제와 기업 실적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최근 한국 시장은 단순한 국내 시장이라기보다 글로벌 거시경제와 기술 사이클에 매우 깊게 연결돼 있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와 첨단 제조업 비중이 높고 AI 인프라 투자 확대나 글로벌 기술 수요 변화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단순히 현재 실적만이 아니라 미래 AI 수요, 글로벌 성장 경로, 미국 통화정책, 그리고 장기적인 기술 패러다임 변화까지 함께 가격에 반영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 간 기대와 신념 차이 역시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떤 투자자들은 AI 중심 기술 변화가 장기간 지속될 구조적 변화라고 보는 반면, 다른 투자자들은 지나치게 빠른 기대 반영이나 향후 경기둔화 가능성을 우려할 수 있다. 결국 시장의 높은 변동성은 단순히 비이성적 과열의 증거라기보다 미래 경제 상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충돌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한국 증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소수 반도체 기업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커졌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 역시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 7)' 중심의 집중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전통적 자산가격이론은 시장 포트폴리오가 비교적 잘 분산돼 있다는 암묵적 가정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소수 초대형 기술기업들이 시장 전체 움직임을 크게 좌우하는 구조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런 집중 현상은 단순히 특정 기업 규모 확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이러한 기업들을 미래 기술 혁신과 글로벌 성장의 핵심 수혜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장 전체 기대와 거시경제 전망이 이들 기업 가격에 매우 강하게 반영된다. 다시 말해 특정 기업의 움직임이 점점 더 시장 전체 기대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시장 역시 매우 흥미로운 사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은 단순한 개별 기업 뉴스라기보다 글로벌 AI 투자와 반도체 수요, 나아가 세계 경기 흐름에 대한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기업의 실적 발표나 전망 변화가 코스피 전체 변동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교수님의 연구들을 보면 미국 연준 정책 발표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매우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강조했다. 실제 한국 증시 역시 국내 변수보다 미국 금리나 연준 발언에 훨씬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평가가 많은데. ▲실제로 내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결과 가운데 하나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미국 연준 통화정책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현상이 미국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개방형 경제의 주식시장 역시 미국 통화정책 발표일에 높은 민감도를 보인다. 그 이유는 연준 정책이 단순히 미국 단기금리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할인율(discount rate)과 자본 흐름, 그리고 위험 선호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글로벌 무역과 기술 산업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이러한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한국 증시를 이해할 때도 국내 변수만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글로벌 유동성과 미국 통화정책, AI 중심의 글로벌 기술 투자 사이클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시장 변동성 역시 이러한 거대한 글로벌 정보 흐름 속에서 투자자들이 미래를 계속 재해석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 멍고 윌슨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사이드비즈니스스쿨 재무학과 정교수이다. 실증재무와 자산가격결정(Asset Pricing) 이론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CAPM과 위험 프리미엄, 거시경제 불확실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경제학 및 재무학 주요 학술지에 발표해 왔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 전공으로 학사를 취득했으며,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pride@fnnews.com

[기고] 에이전틱 AI가 재편하는 비즈니스의 미래

지난 20일과 21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AWS 서밋 서울 2026'이 막을 내렸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AWS가 약 2만 7000명의 참가자와 함께한 이번 행사에서 확인한 가장 큰 흐름은 명확했다. AI가 단순 기능 중심 생산성 도구를 넘어 실제 업무 프로세스와 조직 운영 체계 전반을 재편하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기업 현장에선 AI가 사람의 지시를 기다리는 수동적 조력자를 넘어 실제 운영 흐름 안에서 역할을 분담하는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에이전틱 AI'가 등장하면서, AI는 실제 비즈니스 운영 안으로 빠르게 내재화되기 시작했다. '어떤 AI를 도입할 것인가'는 이미 시효가 지난 질문이다. 기존 운영 구조를 AI와 함께 작동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 기업 앞에 놓인 본질적인 과제다. 이러한 변화는 제조, 커머스, 콘텐츠, 로보틱스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쳐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아마존 베드록 등 AWS 서비스 기반으로 AI를 활용해 피부 진단부터 제품 추천까지 이어지는 고객 경험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고 있다. NC AI 역시 단 한 장의 사진과 짧은 음성 대화만으로 모델 컷과 패션 영상, 상품 상세 페이지 생성까지 자동화하며 콘텐츠 제작과 커머스 운영 방식을 재구성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피지컬 AI는 AI가 물리 세계를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행동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로아이(ROAI)는 시뮬레이션에서 설계한 경로를 실제 로봇이 즉시 구현하는 SIM2REAL 환경을 선보였고, 컨피그는 사람과 로봇이 같은 작업 공간 안에서 역할을 나누어 협업하는 시나리오를 구현했다. 뉴빌리티 역시 AWS 기반 관제 시스템과 자율주행 로봇을 연동해 배달·순찰·이상 상황 탐지까지 하나의 운영 체계 안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AI가 소프트웨어 영역을 넘어 제조·물류 등 실물 산업의 운영 방식까지 재편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다각적인 산업 혁신의 이면에는, 기업이 기술의 복잡성에 얽매이지 않고 본연의 비즈니스 가치 창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기반이 중요하다. AWS 역시 국내 기업들이 각자의 산업 환경과 데이터에 최적화된 에이전틱 AI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 기반이 갖춰지더라도,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의 흡수력과 실행력이다. 새로운 AI 모델을 경쟁사보다 먼저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 경쟁력의 핵심은 기술을 조직 전반의 일하는 방식 안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체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에이전틱 AI를 단순한 생산성 도구가 아닌, 조직 운영의 새로운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재설계하는 기업만이 다가오는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거머쥐게 될 것이다.지용호 AWS 코리아 마케팅 총괄

[김예니의 법 이야기] '한정승인의 함정' 부동산 상속 세금

A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상속받을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에 한정승인을 신청했다. 그런데 상속 부동산에 대한 경매가 실행되자 취득세·양도소득세 등의 세금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 전문가마다 세금에 관한 의견이 엇갈려 A씨는 큰 혼란에 빠졌다. A씨는 실질적으로 물려받는 재산이 없으니 상속재산 한도 내에서만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A씨의 생각처럼, 한정승인을 한 경우에는 납세의무 또한 상속재산 한도로 제한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체로 그렇지만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A씨 사례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 이유다. 최근에는 채무 정리를 위하여 상속 부동산 등을 처분할 때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는 상속재산의 관리 및 청산에 필요한 비용, 즉 '상속에 관한 비용'으로 보아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책임 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상속인에게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것 자체는 적법하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과세관청에서 상속인의 고유 재산에 가압류 등의 체납처분을 해, 이에 대해 다투는 경우가 존재한다. 반면 취득세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과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일관되게 한정승인을 한 경우에도 상속인에게 취득세 납부의무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에 따라 상속인은 상속채무를 정리하며 고유재산으로 취득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2021년 '채권자'가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을 대위하여 상속등기를 마치며 지출한 취득세 등 등기비용을 상속인에게 청구한 사건에서, 해당 비용은 상속에 관한 비용에 해당하므로 상속인은 상속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진다는 취지로 판시해 취득세 역시 상속에 관한 비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채권자와 한정승인 상속인의 관계에서가 아닌 과세관청과 한정승인 상속인 사이의 취득세 납부 책임에 관해 아직 명시적인 판단이 없으므로, 이에 대해 개별 사건에서 다퉈 봐야 하는 실정이다. 결국 A씨의 경우처럼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한정승인을 한 경우 상속부동산에 대한 경매가 진행된다면, 과거와는 달리 양도소득세는 물론 취득세에 관해서도 위에서 언급한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다툴 여지가 있다. 한정승인을 하더라도 특히 상속 부동산이 있는 경우라면, 한정승인 신청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신청시부터 세금 문제까지 통합적으로 설계해 줄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fn사설] 日 30개사 속속 AI 동맹, 韓 소버린 AI 더 속도내야

[파이낸셜뉴스] 일본이 자국 기업 30여 곳을 묶어 인공지능(AI) 동맹 구축에 나섰다. 일본 경제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가 주도하는 국산 AI 개발에 NEC, 혼다, 소니그룹 등이 전격 참여했다. 이어 일본제철, 미쓰비시UFJ 등 금융·제조 대기업 30여개 사가 다음달 추가로 합류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자국의 방대한 제조업 데이터를 무기로 피지컬 AI에 승부를 걸었다. 디지털 패권전에 밀려 뼈아픈 시간을 보냈던 일본이 AI 시대엔 실책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볼 수 있다. 한국은 반도체, 모바일 전쟁에선 일본보다 우위였지만 AI 급변기 산업 지형은 결코 안심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냉정히 전열을 가다듬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AI 동맹에 이름을 올린 일본 기업들은 자동차와 전기·전자, 화학, 중공업, 물류, 금융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쳐있다. AI 성능 지표인 매개변수(파라미터)는 1조개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모델은 2029년엔 다양한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 모달 AI로 진화하고, 2030년대 초 무게, 온도, 위치, 거리 등 현실 세계 정보를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고도화할 계획이다. 소부장 강국 일본의 고품질 제조 데이터는 AI 시대 큰 무기다. 체계적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AI와 결합해 피지컬 AI 분야에서 반격을 가하겠다는 전략은 승산이 있다. 여기에 AI 패권을 잡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도 심상치 않다. 일본은 AI를 국가 재도약의 마지막 승부처로 보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AI 산업 지원을 위해 2030회계연도까지 10조엔 이상을 투입하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도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등이 출자해 만든 반도체 연합군 라피더스에 대한 대규모 지원도 추진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제조업 생태계가 강한 나라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 철강, 원전 등 실물 산업의 토대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AI 메모리 반도체 세계 최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현대차와 조선 3사는 피지컬 AI가 적용될 수 있는 거대한 현장을 가진 기업들이다. 문제는 이런 기반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키우는 힘이다. 일본 주요 기업들이 정부의 막후 지원을 발판으로 공동 전선을 짜고 있는데 한국의 소버린 AI 논의는 선언 수준에서 멈춰있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AI 경쟁은 산업 데이터, 전력망, GPU, 데이터센터, 인재 공급 전체가 맞물려 있는 총력전이다. 소버린 AI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서둘러 정비하고 대응력을 키워야 하는 중대한 시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장과 생산라인을 보유하고도 이를 AI 자산으로 만들지 못하면 국가 성장 동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사설] 기업 이익 미래투자 유도하는 日 정책 주목해야

일본 정부가 기업 이익이 주주환원보다 성장을 위한 투자에 활용되도록 유도하는 지침을 내놨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경제산업성이 최근 마련한 새 성장투자 지침은 기업이 첨단 미래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자사주 매입에 치중하는 관행이 중장기적으로는 기업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눈길을 끈다.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이 기업의 지출 경쟁력을 따져보고 있는 것이다. 다카이치 정권은 '강한 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했다. 기업 이익을 단기 환원에 소진하지 말고 성장 투자로 돌려 경제규모를 키우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첨단산업 투자를 통해 기업 수익, 임금, 소비, 세수가 함께 커지는 선순환을 노리고 있다. 과거 아베 정권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일본 기업에 주주환원과 자본의 효율성을 요구하고 강조했다. 다카이치 정권은 그 흐름을 성장투자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새 성장투자 지침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반도체 호황으로 급증한 기업 이익을 '지금 나눠먹기'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에게 일본의 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도체 기업 노조들이 이익 N% 성과급 할당을 끌어내면서 사회 전체가 이익 쟁탈전에 빠지고 있다. 이미 자동차·조선의 강성 노조들은 회사의 순이익, 영업이익 30% 성과급 지급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카카오 노조는 영업이익의 13~15%를 요구하며 결렬 시 6월 파업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N% 성과급이 뉴노멀로 굳어지고 산업계 표준이 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까지 이익분배 압박에 가세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7일 "대기업 초과이익을 사회적으로 재분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긴급 토론회를 열 것"이라고 했다. 앞서 청와대 정책실장은 인공지능(AI) 호황 과실의 일부는 국민에게 환원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와대 측은 초과세수 배당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김 장관의 발언을 보면 정부의 진심은 이익분배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계 산업질서는 거대한 전환기에 있다. AI, 자율주행, 첨단 반도체, 바이오 등 미래 산업들은 모두 천문학적인 규모의 선제투자를 요구한다. 경쟁국들은 승기를 잡기 위해 투자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만계 미국인 젠슨 황은 27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현지 본부 기공식에서 연간 1500억달러(약 207조원)를 대만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칩과 패키징, AI 슈퍼컴퓨터를 여기서 만들고 대만을 AI 혁명의 심장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와 폭스콘, 위스트론 등 AI 서버 제조사들과 AI 생태계를 확고히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들은 한국 반도체의 핵심 경쟁사들이다. 분배의 늪에 빠져 투자 타이밍을 놓치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기술경쟁에서 밀리면 순식간에 낙오될 수도 있다. 일본이 투자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과이익 배분에 빠져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정부가 앞장서는 것은 더 큰 문제로 포퓰리즘적 태도로 비친다. 이익이 성장을 위한 투자에 쓰이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노조의 과도한 요구에 대해 냉철한 중재자 역할을 해야 마땅하다. 기업의 이익은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재원이 돼야 한다.

[사설] 한은 금리인상 예고, 물가안정은 언제나 최고 목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8일 신현송 총재 체제 이후 첫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그러나 금통위원장인 신 총재는 "향후 적절한 시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강경한 통화정책을 지지하는 매파로 분류되는 신 총재는 "물가나 성장률, 환율, 주택시장 상황 등 모든 면에서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이 명확해졌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이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2.6%로 0.6%p 올리고, 소비자물가 전망치는 2.2%에서 2.7%로 0.5%p 상향 조정했다. 한은의 주된 정책적 역할은 물가관리다. 인플레이션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가는 경제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중동전쟁이 진행 중인 현재 세계 경제 상황은 고물가와 불경기가 겹친 모습이다. 우리 경제가 올해 1·4분기에 주요국 가운데 성장률 1위를 기록했지만 반도체 한 분야의 호황 덕분이다. 다른 분야는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를 빼면 여전히 좋지 않은 경제 상황에서 금리를 올려 긴축정책을 펴기는 부담스럽다. 정부 경제팀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가안정을 더 큰 거시경제의 목표로 삼는 것은 경제체력을 강화하고, 지속적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다 회수되지 않은 상황이며, 주식시장에도 돈이 몰려 유동성 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도 정부의 여러 정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과열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신 총재의 말처럼 경기보다 물가와 유동성을 더 큰 요소로 삼아 금리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은 현재 과열을 넘어 거품(버블)을 걱정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본다. 긴축으로 방향을 틀지 않으면 자칫 위험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는 경제에서 최고조에 이른 과열 상태인 거품이 어느 순간 꺼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목도한 바 있다. 반도체 경기가 일종의 착시를 일으켜 경제를 실제보다 좋아 보이게 하고, 그 결과 주가지수가 단기간에 큰 폭으로 올랐다. 물론 수출 호조에 따른 반도체 호경기는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 사이클이 내리막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그때는 늦다. 성장과 물가안정이라는 상충된 목표를 동시에 잡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우선순위는 물가에 둬야 한다. 중동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 종전되더라도 고유가의 후유증은 내년까지도 우리 경제를 짓누를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돈을 푸는 재정확장 정책을 펼 것이다. 신 총재 체제의 한은은 정부의 재정정책에 어긋나는 통화정책을 편다기보다는 국가경제 전체를 조망하면서 조화로운 정책조합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인플레 억제는 언제나 최고의 목표다.

[강남視角] 국토부 공급대책, 안했나 못했나

지난 26일 발표된 '비아파트 공급대책'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수고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번 대책이 나오기까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국토부 기대와 달리 혹평이 적지 않다. 현장을 잘 알고 있는 국토부가 '안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못하고 있는 건지' 평가가 그중 하나다. '5·26 비아파트 공급대책'을 보자. 핵심은 단기간 내 주택공급 촉진이다. 규제도 풀고 건설금융도 지원할 테니 '신속하게 공급하라'는 것이다. 내용을 보면 비아파트 금융지원 확대 등을 통해 수도권에서 오는 2030년까지 11만가구를 공급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공실 상가·오피스·지산 등을 프리미엄 원룸·오피스텔 등으로 용도를 전환하는 것을 촉진하는 내용도 담겼다. 그런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핵심은 빠져 있다. 돈을 빌려 줄 금융기관, 책임준공을 담당할 주체, 비아파트 수요 진작 등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비아파트 사업자에 대한 건설금융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비아파트 전용 특례 PF 보증 신설과 도생 주택기금 사업자 대출 지원 확대 등이다. 통상 사업을 진행할 때 사전에 은행과 대출 협의를 한다. 정부가 대책을 통해 지원 강화를 약속한 만큼 (협의는) 수월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이 돈을 안 빌려주면 그만이다. 요즘 은행의 PF 현실을 보자. 금융당국의 감독 강화로 제2금융권도 부동산 PF 취급을 꺼리고 있다. 비아파트는 '문전박대'이다. 자금조달의 키를 쥔 은행이 대출 문을 열 리가 만무하다. 여기에 다세대·연립 사업자들이 활용하는 사업자 및 시설자금 대출도 멈춰 서 있다. 붕괴된 비아파트 책임준공 시스템 회복에 대한 고민도 대책에서 빠져 있다. 사실 비아파트는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 토지신탁'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책임준공을 일차적으로 시공사가 책임지고, 최종 신탁사가 맡는 구조이다. 현재 부동산신탁사의 경우 '책임준공 토지신탁' 상품 판매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부실이 늘고, 건전성 기준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사라진 책임준공 주체를 누군가는 맡아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사업자 입장에서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렵게 비아파트를 건설해도 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아파트의 경우 중도금대출을 어렵게 받아도 잔금대출을 중도금보다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일선 현장에서는 비아파트 감정평가 하락 등으로 잔금을 납입할 때 오히려 중도금을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 정부는 일정 기준(전용 60㎡·수도권 6억원 이하)을 충족한 비아파트에 대해서는 주택 수에서 제외해 주고 있다. 하지만 특히 서울에서 이 기준을 충족한 상품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주택자가 되면 투기세력으로 몰려 각종 불이익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임대용 상품인 비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을까. '5·26 대책'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은 이 같은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 독자는 "임대사업자·다주택자가 되는 순간 파산하고 집을 뺏기는데 누가 사겠냐"고 적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부동산은 비생산적 금융이고, 투기라는 게 범정부의 인식"이라며 "이것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에 앞서 현장과 업계는 규제완화를 넘어 공급을 가로막는 요인에 대해 건의했다. 국토부에서도 검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현장에서 원하는 '큰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전월세난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한 이유다. 하지만 정작 나온 대책은 국토부에서 할 수 있는 대책 위주이다. 국토부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ljb@fnnews.com 이종배 기자

[기자수첩] 삼성전자 흔드는 성과급 파장

반도체 산업은 혼자 뛰는 100m 달리기가 아닌 계주에 가깝다. 앞 주자가 아무리 빨라도 바통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면 팀 전체 기록은 무너진다. 어떤 조직은 선행기술을 개발하고, 어떤 조직은 적자를 감수하며 생산라인을 유지하고, 또 다른 조직은 수년 뒤 시장을 위한 설계를 준비한다. 당장 기록표에 이름이 남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다음 주자를 위해 뛰어야만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역시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움직여왔다. 메모리가 돈을 번다면 파운드리는 미래 공정을 준비했고, 시스템LSI는 적자 속에서도 모바일 생태계와 최선단 공정 경쟁력을 떠받쳤다. 반도체연구소를 비롯한 공통 연구조직은 수년 뒤 기술 경쟁력을 위한 씨앗을 심었다. 적어도 DS 안에선 메모리와 비메모리, 연구와 생산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만든 역대급 성과급은 아이러니하게도 삼성 내부의 가장 깊은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이 최종 가결되면서 메모리사업부 직원들은 1인당 6억원 안팎의 성과급을 받게 됐지만, 비메모리사업부(시스템LSI·파운드리)는 2억원대 초반을 받을 전망이다. 반도체연구소를 비롯한 공통조직 역시 메모리사업부 지급률의 70% 수준만 적용받으면서 내부에서는 "같은 부문 안에서도 사실상 다른 회사가 됐다"고 말한다. 비메모리와 공통 연구조직의 반발은 단순 박탈감과는 결이 다르다. 현재의 AI 메모리 슈퍼사이클과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확보 과정에서 이들 조직의 기여 역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HBM4 개발 과정에서도 파운드리는 베이스 다이를, 반도체연구소와 공통 연구조직은 선행기술을 맡으며 함께 경쟁력 확보에 힘을 보탰지만 보상은 메모리사업부에 크게 집중됐다. 선행개발과 차세대 기술 연구처럼 당장 실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조직들까지 단기 영업이익 중심으로 평가받기 시작하면서 결국 남는 건 인재가 아닌 '숫자'뿐이라는 자조 섞인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균열이 단기적인 불만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내부에서는 "경쟁사로 옮기면 몇 년 안에 보상 차이를 만회할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다. 지금 삼성 반도체가 경계해야 할 것은 경쟁사의 추격만이 아닐 수도 있다. 팀 전체가 함께 뛰어야 하는 계주에서 일부 주자들이 아예 트랙을 떠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삼성 반도체에 찾아올 위기는 어쩌면 경쟁사의 추격이 아니라 내부에서 바통을 놓치기 시작했다는 데 있는지 모른다. soup@fnnews.com

[기고] 주거안정, 관계부처 협업에 있다

지난 5월 14일 국토교통부 장관 주재로 열린 수도권 주택건설 현장 관계자 타운홀 미팅에 참석했다. 장관을 비롯해 관련 부서 담당자들이 100명의 현장 관계자를 만나 주택 공급이 왜 막히고 있는지, 어떤 제도·정책이 필요한지 듣는 자리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무엇보다 실제 애로사항을 파악해 정책으로 연결하려는 진심이 느껴졌다. 이날 현장의 건의는 크게 네 방향이었다. 첫째, 금융이다. 비 아파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중도금·잔금대출 등 공급 전 과정에서 자금 조달이 막혀 있다는 호소가 많았다. 둘째, 세제이다. 소형 오피스텔 등 전월세 시장 안정화에 기여하는 주거의 경우 주택 수 제외 기준을 현실화하고 일몰을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다음으로 공공매입과 인허가 개선이다. 신축매입 약정가격 현실화, 지자체 그림자 규제 해소가 필요하다는 건의가 있었다. 넷째, 비 아파트 공급모델 다양화다. 비 주거 건축물의 주거 전환, 민간 장기임대주택 육성 등 단기간에 공급 가능한 방안들이 제시됐다. 현재 시장의 가장 큰 어려움은 집을 짓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어려운 환경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사비는 이미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금융 문턱도 높아졌다. 금리 부담, 분양시장 불확실성, 인허가 지연, 자재 수급 문제와 공사비 갈등까지 겹치면서 신규 사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비 아파트와 오피스텔은 서민과 청년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공급 여건이 크게 나빠졌다. 이는 최근 전월세 가격의 급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국토부가 도시형생활주택 규제 완화, 공실 상가·오피스의 주거 전환, 주택기금 사업자대출 확대 등의 대책을 발표한 것은 긍정적이다. 단 지금은 국토부의 의지만으로 공급이 완성되지 않는다. 세제 관련 부처는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소형 임대주택에 대해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원칙을 더 분명하고 안정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투기 수요와 민간의 임대 공급시장을 같은 잣대로 다루면 필요한 공급까지 위축된다. 금융 당국도 기존 주택 거래시장과 신규 분양시장을 구분해 봐야 한다. 투기적 수요 관리는 필요하다. 하지만 신규 공급을 뒷받침하는 분양시장까지 같은 관점으로 규제하면 공급 자체가 지연된다. 주거안정 실현은 가격 상승 억제, 수요 억제만으로는 어렵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유형의 집이, 제때 지어지도록 세제와 금융의 신호가 함께 맞아야 한다. 조일진 도시이야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