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네이버 파이낸셜뉴스

최신 뉴스

[기자수첩] 신뢰 잃은 선관위

명명백백 부실선거였다. 6·3 지방선거를 사전투표부터 본투표, 개표 이후 현장까지 지켜보며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복잡함이었다. 투표의 무게를 새삼 느낀 선거였다. 사전투표 첫날 새벽부터 줄을 선 시민들이 있었고, 본투표일에는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이 언덕 위 초등학교 투표소까지 힘겹게 올라왔다. 짧은 오르막을 두 번씩 쉬어가며 몸을 가누는 모습은 오래 남았다. 그들의 한 표는 모두 같다. 투표의 평등성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잠실 투표소 앞에서 멈춰 선 투표함을 보며 그 당연한 명제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약 2000명분의 투표지가 담긴 투표함 2개는 투표 다음 날 오후까지 개표소로 옮겨지지 못했다. 현장은 험악했다. 시위대는 "개표 중단" "선거 무효"를 외쳤다. 일부는 선거 원천 무효를 넘어 외부세력 개입 의혹까지 제기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를 일부 시위대의 소란으로만 넘길 수 없다. 출발점은 선관위의 명백한 관리 부실이었다. 투표용지가 부족했고, 대기표가 생겼으며, 투표 시간이 연장됐다. 그리고 개표와 함께 투표도 진행되는 아이러니도 일어났다. 선관위는 "오해 말라"고 말하는 기관이 아니다. 오해가 생길 틈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기관이다. 투표용지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투표함은 당연히 개표소로 가야 하며, 그 과정은 당연히 의심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선관위는 기본적인 신뢰의 전제를 지키지 못했다.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의혹이 거리에서 넘치도록 힘을 준 건 선관위다. 투표용지 부족과 전국에서 벌어진 투표소 관리 미비는 단순한 행정 착오로 넘기기 어렵다.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관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번 선거를 지켜보며 내 한 표의 가치가 무엇인지 크게 느꼈다. 동시에 그 가치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도 봤다. 지팡이를 짚고 언덕을 오른 유권자의 한 표도, 투표소 앞에서 항의하는 유권자의 한 표도 제도 안에서는 같다. 한 표의 평등성을 지키는 것은 유권자의 선의만이 아니다. 이번 사태로 추락한 선관위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가 해야 할 일은 의혹을 단순히 일축하는 것이 아니다. 투표용지 부족 경위, 현장 대응의 적정성을 투명하게 밝히는 일이다. 신뢰를 되돌리는 출발점은 기본을 다시 세우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425_sama@fnnews.com

[강남視角] 3高와의 전쟁이 온다

치열했던 선거전이 막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정치의 시간이 아니라 경제의 시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금리·고물가·고환율과의 전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미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신현송 한은 총재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직후 "물가·성장·환율을 보면 갈 길이 명확하다"고 단언할 정도다. 사실상 7월이냐, 8월이냐를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시장에서는 연내 두 차례 인상을 점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출금리가 0.25%p 오르면 가계대출 차주의 연간 이자 부담은 3조2000억원(1인당 16만3000원), 자영업자 대출의 경우 1조8000억원(1인당 55만원)이 각각 늘어난다. 0.5%p 상승하면 이자 부담도 두 배가 된다. 대출가계나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폭풍 같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고금리를 감수하며 '영끌'로 집을 사고, '빚투'로 주식을 산 이들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국내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70조2728억원으로, 한 달 전에 비해 3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코스피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신용거래융자 잔액도 36조원대를 넘는다. 몇해 전 집을 늘려 이사하면서 금리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지인은 최근 밤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그사이 이자가 껑충 뛰었다. 내야 할 원리금이 지금도 만만치 않다. 금리가 더 오르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술잔 너머로 전해진다. 최근 은행권의 주담대 금리 상단은 7%를 돌파했고, 하반기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8%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의 목표치(2%)를 훌쩍 뛰어넘었다. 국가데이터처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1% 상승했다. 4월(2.6%)보다 상승률이 0.5%p 높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웃돈 것은 2024년 3월 이후 처음이다. 고유가로 가뜩이나 힘든 마당에 원·달러 환율마저 달러당 1500원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아 고물가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2~3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구조다. 이에 따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3%대에 머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지난달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겉으로는 우리 경제가 순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0.6%p 상향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중에서는 3.0%를 제시한 곳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이 산업 전반과 가계의 체감경기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특정 업종의 호황이 낙수효과로 확산되기보다 성과급 확대와 비용 상승을 통해 물가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제는 물가를 잡으려니 금리 상승과 소비 둔화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질까 걱정되고, 그냥 내버려 두자니 자칫 물가에 발목을 잡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래도 저래도 난감한 형국이다. 기업들 역시 고유가·고환율로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금리마저 오르면 금융비용 증가까지 겹쳐 '삼중고'에 빠질 수 있다. 여기에 대외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정책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지고 있다. 중동 정세가 진정될지 확전될지, 국제유가와 환율이 다시 뛰어오를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물가 불안을 이유로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글로벌 통화정책의 긴축 압력이 다시 커지는 상황이다. 그간은 중동 사태 등으로 인한 경기 둔화를 우려해 각종 지원금을 지급하고, 경기 부양에 정책의 중심추를 뒀다. 그러나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 대외 변수가 물가를 자극하고, 통화정책의 여지를 좁히는 상황에서 국내 정책도 더 이상 부양 일변도로 움직이기는 어렵다. 당분간은 선거가 없으니 정치적으로 고려할 상황도 없다. blue73@fnnews.com

[노동일 칼럼] 지방선거의 교훈은 '정쟁'이 아닌 '민생'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지역 일꾼을 뽑는다는 지방선거의 본질은 중앙 정치권의 개입으로 퇴색한 지 오래다. 특히 이번에는 전현직 대통령까지 참전하는 '정치과잉'이 두드러진 선거였다. 오세훈 서울시장,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으로 야당이 전패는 면했지만 전체적으로 여당 승리, 야당 패배로 귀결되었다. 선거가 끝난 지금 대한민국에 시급한 것은 선거 과정에서 분출된 정치과잉의 에너지를 가라앉히는 일이다. 여야 모두 국민의 삶을 먼저 돌보는 '안정된 국정운영'의 정상 궤도로 속히 복귀해야 한다. 문제는 선거 과정의 격랑이 계속되거나 오히려 증폭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다. 선거 당일 서울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사상 초유의 오점을 남겼다. 준비된 용지가 소진되면서, 많은 유권자가 발길을 돌리거나 밤늦게까지 대기해야 했다. 국민의 가장 신성한 권리마저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부실한 선거 관리는 그 자체로 정치권 갈등의 기폭제가 되었다. 선거소송 등으로 후유증이 얼마나 오래갈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투표 못한 유권자 숫자, 동일한 시점에서 유권자의 의사가 집약되어야 한다는 원칙의 훼손, 출구조사 결과를 접한 유권자 표심의 왜곡 등 따져야 할 일이 많다. 오 시장 당선 여부나, 선거법을 들먹이며 일축할 사건이 아니다. 선거 이후 정국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이재명 대통령의 공소취소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이다. 법치주의 원칙과 정치적 거래의 정면충돌 양상은 사법적 영역마저 진영 논리의 전장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공소취소를 위한 특검 논란은 향후 국정 현안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공산이 크다. 고스란히 국정운영 동력의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소취소 특검법안이 선거정국의 분수령이 되었고, 국정운영의 성공이 미래 안전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돌아보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권력지형 변화 역시 격랑을 예고한다. 선거 결과에 따른 책임론 및 정국 주도권 향배와 맞물려 당 내부에서는 정청래 대표 교체 여부를 둘러싼 파열음이 이미 들려오고 있다. 여권의 권력지형 재편은 단순한 지도부 교체를 넘어서는 일이다. 차기 총선과 대선까지 염두에 둔 주도권 다툼이기에 친명·비명, 친청·반청 양측은 정치생명을 걸고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여당 전체를 극단적 내홍으로 몰고 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일이라 우려스럽다. 국민의힘도 폭풍 전야다. 한동훈 당선인의 등장은 야권 정계 개편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그는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후 무소속으로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서사를 지닌 인물이 되었다. '한동훈 의원'의 정치적 파급력은 당의 권력 주도권을 둘러싼 친윤과 비윤의 정면충돌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선거 패배의 후폭풍 속에서 촉발될 당내 갈등은 국민의힘을 쇄신 혹은 분열의 갈림길로 내몰 가능성이 크다. 선거가 끝났지만 대한민국 정치는 또다시 극단적 대결주의에 빠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선거가 남긴 상흔과 갈등을 치유하기도 전에 각 정당이 눈앞의 당권과 정쟁에만 몰두한다면, 정치는 국민의 삶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의 정치 과열을 걱정하는 이유는 민생의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서민 경제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생존전략을 찾아야 하는 산업계의 냉혹한 현실은 정치권의 한가한 정쟁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선거 기간에 보여준 진영 간의 '정치과잉'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유용했을지 몰라도 산적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고 경제를 살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야 정치권은 이제 선거 승패라는 룰렛게임에서 벗어나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여권은 선거 결과에 자만해 입법권을 무기로 독주하거나 내부 권력투쟁에 골몰해서는 안 된다. 야당 역시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며 당내 분열로 가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해답은 오직 '국정의 안정'에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이번에 새로이 선출된 지방정부가 함께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전력을 다해야 할 때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국을 걱정해야 하는 정치과잉의 시간은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선거 결과가 드러나면서 희비는 교차했고, 대한민국 정치는 또 한 번의 분수령을 맞이했다. 6·3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난 진짜 민심은 정치 경쟁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누가 더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고 내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정치권은 깨달아야 한다. dinoh7869@fnnews.com

[포럼] AI시대 방송, 소유 논쟁 넘어야

한국 미디어 산업이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 지상파와 케이블TV,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지역 미디어는 글로벌 플랫폼 공세 속에 광고 감소와 제작비 급등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문제는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다. 인공지능(AI)과 플랫폼 중심의 새로운 질서가 기존 방송 산업의 문법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방송 산업의 위기는 산업 경쟁력의 위기인 동시에 규제체계의 위기다. 현재의 방송 규제는 전파와 채널이 희소자원이던 시대를 전제로 설계됐다. 그러나 오늘날 공론장은 방송사의 편성표보다 플랫폼 알고리즘 위에서 더 빠르게 형성된다. 방송 권력의 중심은 채널 소유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이동했다. 과거의 규제는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글로벌 플랫폼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국내 방송법 규제는 거의 받지 않는다. 반면 국내 방송사는 여전히 소유제한, 광고 규제, 재승인 심사라는 과거형 규제 틀에 묶여 있다. 국내 사업자만 양손이 묶인 채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공영성을 과거의 소유구조 논리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공영성은 더 이상 "누가 소유하느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정치 권력의 영향 아래 흔들리는 공영 구조 역시 우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해 왔다. 반대로 민간자본의 참여가 곧바로 저널리즘 붕괴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소유 형태가 아니라 거버넌스다. 편집권 독립과 뉴스룸 자율성을 실제로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구조가 존재하느냐다. 최근 방송사 소유구조를 둘러싼 갈등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승인 절차의 위법성은 사법부의 몫이다. 그러나 글로벌 OTT와 빅테크의 공세 속에서 장기자본 투자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그 귀한 투자가 콘텐츠 경쟁력과 기술혁신이 아닌 소유권 분쟁과 정치 공방으로 소진된다면 산업 전체의 손실이다. 이제는 소유 주체를 둘러싼 논쟁을 넘어 어떤 제도와 거버넌스가 산업 경쟁력과 공적 책임을 함께 담보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모아야 한다. 소유권을 둘러싼 공방이 길어질수록 미래 미디어 질서를 위한 개혁과제는 의제의 뒷자리로 밀린다. 우리가 과거를 둘러싼 논쟁에 힘을 쏟는 사이, 미래를 설계할 골든타임은 줄어들고 있다. 시장 논리에만 맡기자는 것도 아니다. AI 시대의 공영성은 오히려 더 강한 기준을 필요로 한다. 알고리즘 추천이 여론을 좌우하고 AI 생성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투명성, 공적 저널리즘의 신뢰, 그리고 뉴스 데이터의 공공성이 핵심자산이 된다. 이제 공영성은 단순한 소유규제가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 시대의 공적 책임체계로 재설계돼야 한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 질서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플랫폼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공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다. 어떠한 형태의 힘으로부터 독립된 편집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 공영성은 지켜질 수 없다. 지속가능한 산업 기반 없이 공영성만 외치는 것 역시 공허하다. AI 시대 방송의 공영성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떻게 데이터를 통제하고, 알고리즘을 설계하며, 공적 신뢰를 지켜낼 수 있느냐의 문제다.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기고] 희귀 림프종 환자와 첫 면역세포치료

지난 4월, 국내 첫 '첨단재생의료 치료'가 승인되었다. 재발 위험이 높은 희귀 림프종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세포치료가 첨단재생의료 치료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의료현장에서 시행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면역세포치료는 환자 자신의 면역세포를 활용해 암의 재발을 억제하고 장기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치료법으로, 희귀·난치 질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치료로는 더 이상 선택지가 많지 않은 환자와 가족에게 새로운 치료법이 절실하다. 때로는 해외 치료를 고민하고, 때로는 검증되지 않은 광고 앞에서 희망과 불안 사이에 놓이기도 한다. 이러한 환자와 그 가족들이 보다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과 책임이다. 첨단재생의료란 세포와 유전자 기술을 활용해 손상된 조직이나 기능을 회복하고, 질병의 원인을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료기술이다. 기존 의료로 치료가 어려웠던 질환에 근원적 치료 가능성을 제시하는 미래 정밀의료의 핵심 분야다. 환자의 세포가 치료의 재료가 되고, 질병의 원인을 보다 정밀하게 겨냥하며, 손상된 기능의 회복을 도모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실제로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를 통해 환자의 상태에 맞춰 제작한 인공 기도를 이식해 성공적으로 생착시키는 성과가 나오면서,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부는 이러한 가능성이 보다 확실한 효과를 달성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왔다. 지난해 2월 첨단재생의료 치료제도를 시행해 대체 치료가 부족한 희귀·난치질환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를 제공할 길을 열었다. 의료기관은 인력과 시설·장비를 갖춰 첨단재생의료실시기관으로 지정받아야 하며, 실제 치료를 하려면 대상, 안전성·유효성 근거, 비용 등을 심의받아야 한다. 치료 기회는 넓히되,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는 꼭 준수하겠다는 원칙이다. 최근 첨단재생의료 치료 1호 승인은 이러한 제도적 준비가 실질적인 환자 치료로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도 정부는 심의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의료와 연구현장의 의견을 반영하여 필요한 환자에게 적시에 치료 기회가 연결될 수 있도록 하겠다. 기술 발전만큼 중요한 것은 신뢰다. '첨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모든 시술이 안전성과 효과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이에 정부는 재생의료 관련 거짓·과대광고에 대한 온라인 모니터링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블로그, 유튜브, SNS, 홈페이지 등을 점검해 거짓·과대광고 246건을 확인하고, 63개 의료기관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조치를 요청했다. 첨단재생의료는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인 만큼 혁신과 안전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관리 체계를 바탕으로 첨단재생의료 기술이 의료 현장에서 보다 원활하게 희귀·난치질환자의 치료에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지속 보완해 나가겠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합리적 규제혁신을 통해 환자의 치료 기회를 확대하고, 우리나라가 글로벌 첨단재생의료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

[현장클릭] '韓 숨은 일꾼' 화약, 시스템 혁신 나서야

근로자 5명이 숨지고 2명이 중경상을 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화재 사고로 인해 화약 산업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되풀이되는 사고를 이유로 '화약 산업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미 세 번째 되풀이된 사고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분노는 당연하게까지 여겨진다. 하지만 감정적인 접근을 잠시 거두고 화약 산업의 '특수성'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무게감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화약 산업은 본질적으로 파괴적인 에너지를 다루는 분야다. 반도체나 자동차 등 다른 첨단 제조 산업군과 비교했을 때, 공정 내내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다. 조그만 정전기나 미세한 온도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100% 완벽한 통제란 신의 영역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화약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험준한 산악 지형을 뚫고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낸 '경부고속도로' 건설부터, 독자적인 우주 강국으로의 도약을 알린 '누리호' 발사에 이르기까지 화약은 국가 인프라 구축과 첨단 과학기술의 가장 밑바탕에 자리해 왔다. 특히 최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K-방산'의 눈부신 성과에도 화약이 숨은 조력자로서 큰 역할을 했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자주포와 미사일을 개발하더라도, 그 심장인 추진체와 파괴력을 결정짓는 탄두에 들어갈 고품질의 화약이 없다면 방산 수출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미래 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우주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우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실패 없는 성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굴지의 우주 기업인 블루오리진조차 최근 로켓 폭발 사고를 겪으며 쓴잔을 마셨지만, 그들은 이를 데이터로 삼아 다시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위험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화약이라는 에너지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물론, 이 모든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위한 철저한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국가 기초산업부터 미래 우주산업까지 아우르는 화약 산업의 중요성이 이번 사고로 인해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고 수습이 단순히 상황을 무마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지금 화약 산업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외양간 고치기'다. 뼈를 깎는 철저한 원인 규명과 획기적인 공정 개선, 그리고 작업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 혁신이 수반돼야 한다. 위험을 회피하고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 안타까운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고, K-방산과 우주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안전하게 쏘아 올리는 유일한 길이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사설] 코스피 8800 환호 뒤 빚투·변동성 그늘 경계를

코스피가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난 2일 8801로 마감하며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또 갈아치웠다. 이제는 9000 고지도 가능하다는 투자심리가 감지된다. 그러나 급격한 주가 상승률 폭주 이후 안정적인 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징후들이 많다. 먼저 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사이드카가 무려 20차례 발동됐다는 점이다. 2002년 이후 누적된 전체 발동 건수의 25%가 반년 사이에 벌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금융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었던 2008년 연간 기록은 26회였다. 최악의 금융불안 시절과 불과 6회 차이밖에 안 난다. 이 기간 매수 사이드카 11회, 매도 사이드카 9회가 발동됐다. 장세가 급등락을 심하게 오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른바 '빚투' 가능성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5대 시중은행 마이너스통장 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41조원을 넘어 전체 한도의 42.77%에 달했다. 2023년 초 37%대였던 이 비율이 꾸준히 오르며 40%를 넘어서고 있다. 마이너스통장은 급전이 필요하면 쉽게 한도 내에서 사용하고 빨리 채워넣는 식이다. 연 4.8~6.5%에 이르는 이자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마통 대출 잔액이 늘어난다는 것은 빌린 돈을 증시에 쏟아붓는 투자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내 증시 신용거래융자 잔액도 급증하는 추세다. 이처럼 증시 활황에 편승해 여기저기에서 빚을 끌어다 증시에 몰아넣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 아닌가 우려된다. 설상가상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단일종목에 대한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이 최근 등장했다. 이 상품들은 기초자산 일일 변동률의 2배를 추종한다. 주가가 오를 때는 수익이 두 배로 불어나지만, 하락할 때는 손실도 두 배로 쌓인다. 이런 유형의 상품은 주가가 등락을 반복하기만 해도 원금이 잠식되는 구조다. 물론 상승장에 투자해 개인 자산을 불리고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는 건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금 상승장이 실물경제의 체력을 온전히 반영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도한 레버리지 효과로 급등했다면 거품이 많이 끼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빚으로 끌어모은 자금을 투자했다가 갑자기 조정장이 닥친다면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경험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기준금리 향방은 인하보다는 유지 혹은 인상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리가 오르면 빚투 투자자들의 이자 부담이 더 커질 것이다. 현재 단기간에 급등한 탓에 차익실현 가능성도 제기되는 마당에 이자 부담 이슈까지 가중된다면 증시에 큰 압박요인이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은 모니터링 강화를 선언하는 수준을 넘어 과열 투기를 조장하는 행태에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이에 앞서 투자의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 당사자가 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빚투의 대가는 고스란히 개인에게 돌아오는 만큼 냉정한 투자 분위기가 필요한 때다.

[차관칼럼] 재난 대응에 '과함'은 없어

집중호우와 폭염 같은 여름철 자연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해마다 더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달 12일 경남 남해군에는 시간당 50㎜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지며 올해 첫 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다. 이어 20일에는 인천과 경기, 전남, 경남 등에 호우주의보가 발효되며 첫 호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됐다. 이는 지난해보다 약 20일 빠른 대응이다. 폭염도 심상치 않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구 연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2024년의 기록을 향후 5년 안에 넘어설 확률이 86%에 달한다고 전망했다. 실제 지난달 18일 경북 김천시의 낮 기온은 36도까지 치솟았고, 서울에서는 벌써부터 폭염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는 온열질환 감시체계 시작 이래 가장 빠른 인명피해다. 기후변화는 숫자로 확인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시간당 50㎜ 이상 집중호우 발생 빈도는 1970년대 연평균 10회에서 2020년대는 31회로 세 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폭염일수는 29.7일로 평년 11일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이러한 기후재난에 대응해 정부는 올여름 인명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목표 아래 '범정부 여름철 자연재난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지난달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를 여름철 자연재난 대책기간으로 정하고, 24시간 상황관리 체계를 가동한다. 위험 기상이 예보되면 즉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소집하고, 필요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총력 대응에 나선다. 특히 집중호우에 대비해 산사태, 하천 재해, 지하공간 침수 등 3대 유형의 인명피해 우려지역을 지난해 8964개소에서 올해 9412개소로 확대 지정하고, 지역별 특성에 맞춘 통제·대피 기준을 강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 대피'다. 전국 모든 시군구에 주민대피지원단을 구성하고, 이·통장과 자율방재단 등 9만4315명이 참여한다. 고령자와 장애인처럼 혼자 대피가 어려운 2만4500여명을 우선대피 대상자로 지정하고, 주민대피지원단과 일대일로 연계해 안전한 대피를 돕는다. 위험상황 발생 시에는 긴급재난문자와 함께 민방위 사이렌까지 활용해 신속하게 대피를 유도한다. 폭염 대응도 한층 강화했다. 올해부터는 하루 이상 일 체감온도 38도 이상이 예상될 경우 '폭염중대경보'를 발령, 범정부 대응을 한층 강화한다. 에너지 취약계층의 냉난방비 등을 지원해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폭염 시 사업장 작업 중지와 충분한 휴식을 적극 안내한다.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 등 민간시설을 포함해 무더위쉼터도 더욱 다양화했다. 또 물·그늘·휴식의 온열질환 예방 3대 수칙도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국민주권정부는 '국민의 목숨을 살리는 정부'를 목표로, 인명피해 최소화를 최우선에 두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선제적 대응을 할 계획이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집 주변 배수로와 빗물받이를 사전에 점검하고, 대피소 및 무더위쉼터 위치와 행동요령을 미리 숙지해 주시길 당부드린다. 위험요소를 발견하면 '안전신문고'에 신고하고, 가족과 이웃의 안전도 함께 살펴봐 주시길 부탁드린다.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테헤란로]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논란

선거 이후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가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발전소가 밀집한 충남·울산·부산 등 비수도권에는 낮은 요금을, 전력을 소비만 하는 수도권에는 높은 요금을 부과하겠다는 구상이다. 수십년간 유지해 온 전국 단일요금제가 끝나는 것이다. 취지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송전탑과 소음, 환경 위험을 오랫동안 고스란히 감내하면서도 전력을 소비만 하는 수도권과 똑같은 요금을 내야 한다는 현실은 분명히 불공정하다. 그러나 이 제도가 풀려는 문제와 실제로 만들어낼 결과 사이에는 여전히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한다. 정책의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제도의 결과까지 선한 것은 아니다. 우선 차등의 기준이 불명확하다. 현재 논의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큰 덩어리로 나누는 방식에 가깝다. 그러나 인천은 전력자급률이 상당히 높은 지역임에도 수도권이라는 행정구분 하나만으로 비싼 요금을 부담하게 된다. 반대로 비수도권이라도 실제 자급률이 낮은 지역은 혜택을 누린다. 전력자급률이 3%에 불과한 대전과 200%를 훌쩍 넘는 전남이 같은 '비수도권' 범주로 묶이는 것이 현재의 구도다. 이런 설계는 실제 원가를 반영하겠다는 제도의 명분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형평을 내세우면서 또 다른 불형평을 만들어내는 셈이며, 제도의 정당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꼴이 된다. 산업 현장의 혼란도 우려된다. 반도체·철강·석유화학처럼 24시간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는 업종에서 전기요금은 생산원가의 핵심 변수다. 같은 업종이라도 공장이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비용구조가 달라진다면, 동일 업종 내 기업 간 새로운 형평성 문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 제도로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기업의 입지 결정은 전기요금 하나로 이뤄지지 않는다. 숙련인력, 공급망, 물류 네트워크, 교육·의료 인프라가 함께 갖춰지지 않는 한 요금 차이만으로 이전 유인을 만들기는 어렵다. 이는 수십년에 걸친 수도권 집중 완화정책들이 이미 반복해서 입증한 엄연한 사실이다. 지역 간 에너지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수단이다. 요금 차등보다 발전소 입지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보상, 지역 에너지 수익의 공유 모델, 분산에너지 인프라 투자 확대가 더 정밀하고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길이다. 전기요금은 모든 국민의 생활과 산업에 직결된 공공재다. 균형발전이라는 선한 목표를 내걸었더라도 기준이 불분명하고 효과가 불확실하며 부작용이 예견된다면 속도보다 정밀함이 먼저여야 한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특파원 칼럼] 가까워진 한일, 멀어진 통로

"일본에서 경영관리 비자와 영주권 심사가 예전보다 확실히 까다로워졌어요. 재류자격인정증명서(COE)도 예전에는 3~5개월이면 나왔지만 최근에는 1년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도쿄에서 활동하는 한 행정사에게 한국 기업에 대한 비자발급 지연이 실제 상황인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지연 자체는 이미 오래된 문제"라며 "최소 5년 전부터 유사한 흐름이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경영관리 비자와 영주권 심사가 훨씬 엄격해졌다고 덧붙였다. 신청건수 증가에 따른 처리 지연이 누적되는 동시에 심사기준 자체도 강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장 대응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일부 기업과 신청자들은 정식 취업이나 사업 개시 이전 단계에서 단기체류 자격으로 먼저 입국해 사전 준비를 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급여가 발생하지 않는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안내된다고 했다. 그는 이를 단순한 행정 지연으로 보지 않았다. 제도 자체가 선별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영관리 비자제도는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500만엔(약 4747만원) 자본금만으로도 창업형 체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3000만엔(약 2억8481만원) 자본금에 더해 상근직원 고용, 경영 경험 등이 요구된다. 형식은 창업이지만 실질은 선별에 가깝다. 일본 정부는 이를 정상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불법체류나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비자 악용 사례를 차단하고 실질적인 사업 운영능력을 갖춘 인재를 가려내겠다는 취지다. 변화에 따른 영향은 수치로 확인된다. 최근 도쿄상공리서치가 일본 내 외국인 경영자 2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5%가 '제도 변경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5%는 '폐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대응으로는 증자 등 요건 충족(27%), 사업 매각 또는 합병 검토(12%), 경영권 이전(6%) 등이 언급됐다. 현장에서 느끼는 부담은 통계보다 강하다. COE를 포함한 비자 심사기간이 길어지면서 일정 자체를 예측하기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기업 운영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비자수수료 상승도 맞물려 있다. 일본 정부는 체류자격 변경 및 갱신 수수료를 최대 10만엔(약 95만원) 수준으로 상향하고, 영주 허가는 20만~30만엔(약 190만~285만원)까지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행정 디지털화와 제도 유지비용 반영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은 구조적으로 이미 마케팅, 인력, 유통 비용이 한국보다 최소 2~3배 높은 시장이다. 여기에 비자비용과 시간비용까지 더해지면서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 만난 일본 진출기업 지원업체 대표는 이 때문에 일본 진출전략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일본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들어간 뒤 초기자금으로 몇 년을 버틸 수 있느냐가 먼저입니다." 이 변화는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보다 초기 스타트업이나 첫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기업일수록 충격이 크다. 시장진입보다 행정절차가 먼저 작동하면서 사업 속도가 구조적으로 늦어지는 탓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흐름이 최근 한일 관계의 방향과는 다소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에너지 공급망 협력, 핵심광물 및 인공지능(AI) 분야 협력, 스와프 형태의 에너지안보 논의까지 확대하고 있다. 양국 관계는 분명 가까워지고 있다. 협력의 속도도 다시 빨라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 협력이 실제로 작동하는 출발점인 사람과 기업이 이동하는 통로는 오히려 느려지고 있다. 가까워진 관계와 느려진 통로. 지금 한일 관계를 설명하는 두 장면은 쉽게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sjmary@fnnews.com

[fn광장] '선거 무풍지대' 향후 1년이 중요하다

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결과가 4일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취임 1년을 맞는다. 1년간의 국정운영 평가가 투표 결과로 제시된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최고로 권위가 있는 건 유권자 평가다.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국정지지도 여론조사 결과를 주목하는 건 다 근거가 있다. 대통령도, 여야 정당도 표심은 거스르지 못한다. 선거 후폭풍이 정국을 강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선거 결과가 어떻든 이 대통령은 임기 2년차에 접어든다. 지난 1년 동안 여러 성과를 냈다. 비상계엄 후 우리 사회를 뒤덮은 극심한 혼란, 분열과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안정을 회복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대외적으로도 예측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세·안보협상에서 비교적 선방했다. 한일 관계도 개선시켰다. 경제적 성과도 두드러진다. 취임 때 2770이었던 코스피지수가 9000을 넘보고 있다. 중동전쟁 와중에도 수출액은 증가일로다.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대통령 지지율은 60%대를 유지하고 있다. 여당의 지방선거 전략이 "우리에겐 이재명이 있다"고 할 정도였다면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선거라는 이벤트는 끝났다. 미뤘던 경제·정치 현안을 풀어나가야 한다. 정치 허니문 기간도 사실상 끝났다. 온전히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기다. 당면한 최대 경제정책 변수는 부동산 세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판의 핵심적 이슈는 부동산 공급이었다. 공급방안을 놓고 민간에 방점을 찍을지, 공공을 우선에 둘지를 놓고 다퉜다. 부동산 세금 문제에 대해서는 양당 모두 언급을 자제했다. 표심에 미칠 역풍을 우려해서다. 선거 이후는 다르다. 이 대통령도 SNS를 통해 틈나는 대로 '집값 안정'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세금을 최후 수단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해 왔다. 다만 세금인상 여부, 대상, 폭 등으로 구체화하지는 않았다. 이 대통령은 '집값 잡은 대통령'이길 바랄 것이다. 따라서 '1주택자 세부담 증가'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다만 1주택자까지 세금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결론 날 경우 민심이 요동칠 수 있다. 2년차에 접어든 현 정부를 흔들 변수다. 최근 급부상한 정책 현안은 초과세수 문제 해법 마련이다.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갈등을 지켜본 국민들의 관심도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개선이 3년간 이어지면 법인세가 400조원가량 걷힌다고 한다. 고소득 반도체 인력의 소득세 등도 크게 늘게 된다. 역대급 초과세수가 쌓인다. 부족하면 하나로 집중되지만, 풍족하면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최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이견이 대표적이다. 김정관 장관은 미래 경쟁력을 위한 '생산적 재투자'를, 김영훈 장관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동반성장'을 우선했다. 공론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될 수 있다. 원활한 사회적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 정부·여당은 두고두고 정치적 부담에 시달릴 쟁점이다. 공소취소 특검법 처리는 최대 정치 현안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6일 한병도 원내대표 명의로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를 가능하도록 한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특검법에 대해 6·3 지방선거 이후 법안의 내용·처리 시기에 대해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공소취소 특검법 처리로 선거에 역풍이 불 조짐이 보이자 꺼내든 일시 중단 카드였다. 본게임은 지방선거가 끝난 이제부터다. 공소취소 권한 삭제를 놓고 야당 반발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충돌이 생길 수 있다.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후보조차 정해지지 않았던 지난 4월 친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관계자를 만나 지방선거 전략을 물은 적이 있다. 당시 답변은 엉뚱했다. "지방선거보다 선거 이후 1년 전략 마련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시기라고 한 언급도 기억난다. 당분간 전국 선거와 같이 정치적으로 고려할 조건은 없다. 23대 총선이 예정된 오는 2028년 4월까지 선거는 없다. 공천 등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앞으로 약 1년은 '선거무풍지대'인 셈이다. '개혁'의 적기라고 불릴 만하다. 정부·여당으로선 좋은 조건이다. 그럼에도 부동산 세제, 초과세수, 공소취소 특검법은 여전히 휘발성 높은 사안들이다. 3가지 변수 처리 과정에 정부와 대통령의 지지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선거 성적표만 보고 즐거워하면 안 된다. 민심은 선거로 방향성을 보여주지만 법과 제도를 재단할 모든 권한을 준 건 아니다.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다. mirror@fnnews.com

[사설] '투표용지 부족' 초유의 사태 발생한 6·3 선거

6·3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사실상 승리한 가운데 일부 선거구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함으로써 앞으로 큰 국민적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여당은 자체 예상대로 주요 경합지역을 포함한 대부분 지역에서 승리함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국정 운영에 힘을 얻게 됐다. 그러나 애초 기대한 득표와 당선자 배출 목표에는 결과가 미치지 못함으로써 부담도 동시에 떠안게 됐다. 특히 서울 송파구 잠실동 등 14개 투표소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어떤 해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어이없는 사고였다. 가뜩이나 여야 대립이 격화된 마당에 앞으로 정국에 큰 풍파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부정선거 논란도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 투표율을 50%로 예상해서 용지를 인쇄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설명을 어느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한 뒤 관련자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따라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여야는 유권자의 의중을 파악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민심을 잘 읽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한표라도 많은 다수 득표를 한 후보자를 당선자로 뽑는 게 민주주의의 원칙인 다수결의 원리다. 선거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며 지역 발전과 나아가 국가 발전을 향해 협력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의 근본 바탕이다. 그만큼 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역할은 중요하다. 벌써 아홉번째 선거를 치른 지방자치제를 돌이켜보면 성과가 작지 않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단체장들과 의원들이 힘을 모아 지역 발전에 매진함으로써 어느 지역을 가도 수십년 전의 과거와 다른 발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는 심각하고도 다양하다. 가장 큰 문제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확대다. 이는 물론 중앙정부의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는 반면 지역은 소멸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5극3특 정책과 지자체 통합정책으로 지역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원하는 성과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균형발전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원팀이 되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다.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수도권 인구가 다시 분산되게 하려면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시키는 도리밖에 없다. 이번에 당선된 지역 단체장들과 의원, 교육감들은 어떻게 하면 내 고장을 부유하고 환경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심을 거듭해야 한다. 중앙정부와도 손발을 잘 맞춰야 한다. 지역 산업을 일으키고 뛰어난 교육 성과를 내면 수도권 인구가 저절로 몰려들 것이다. 그 책임이 당선인들의 어깨에 걸려 있다. 당선된 14명의 국회의원들 또한 국회로 들어가서 정치공방에 매몰된 여야 정당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 국민들은 싸움질을 그치지 않는 대한민국의 정치에 신물이 난 상태다. 미래의 발전을 위해 진지하게 정책을 논의하고 여야가 손을 맞잡고 협력하는 모습을 간절하게 원한다. 바른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당선된 의원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흐려진 정치에서 '메기' 역할을 하는 신참 정치인들을 국민들은 보고 싶어 한다.

[사설] 3%대로 치솟은 물가, 인플레 쇼크 대응책 시급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2년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르며 다시 3%대로 올라섰다. 중동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석유류 가격이 3년10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영향이 컸다. 유가와 환율이 동반 상승하는 '이중 충격' 속에 생활물가까지 가파르게 오르며 서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통화당국의 추가적인 선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가데이터처가 2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9.92(2020년 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상승했다. 작황 부진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던 2024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2.3%에서 올해 1~2월 2.0%까지 떨어지며 안정되는 듯했지만 3월 2.2%, 4월 2.6%, 5월 3.1%로 다시 상승했다. 가장 큰 원인은 국제유가 상승이다. 중동전쟁 장기화로 원유 공급불안이 커지면서 석유류 가격이 24.2% 급등했다. 전체 물가를 0.92%p 끌어올렸다. 석유류 물가 상승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인 2022년 7월 이후 가장 높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와 석유 최고가격제 등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상승률은 3.7%에 달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석유류 가격 상승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제조업 생산비는 물론 농축수산물 가격, 물류비, 외식비, 서비스 요금까지 연쇄적으로 상승한다. 가계 소비여력은 줄고 기업 투자심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고물가가 장기화할 경우 경기회복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물가 상승은 어느 정도 예견된 측면이 있다. 중동전쟁 이후 국제 원자재 시장 불안이 이어졌고, 정부도 물가 안정대책을 내놓았지만 전쟁 장기화로 효과가 제한되고 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마저 연일 1500원을 웃돌며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에너지와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에는 이중 부담이다. 한국은행도 물가 재상승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지난달 28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적절한 시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이달 1일에도 통화정책 조정 가능성을 거듭 시사했다. 다만 이번 물가 상승은 경기 과열에 따른 수요 견인형이라기보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공급충격형 인플레이션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에너지·세제 지원과 취약계층 보호 등 정부 차원의 보완대책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물가 안정 없이는 경제성장도, 양극화 개선도, 지속가능한 발전도 불가능하다"며 장바구니물가 안정대책을 주문했다. 정부 역시 비축물량 공급 확대, 농축산물 할인 지원, 할당관세 확대, 유류세 인하 연장 등을 추진하고 있다. 물가 안정은 민생의 출발점이다. 저소득층일수록 식료품과 에너지 지출 비중이 높아 물가 상승의 충격이 더 크다. 통화·재정당국은 선제적·협력적 대응 등 정교한 정책조합을 통해 물가 불안을 조기에 차단하고, 고물가 직격탄을 맞는 취약계층의 에너지·생활비 부담을 덜어줄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

[사설] 핵심 K방산업체서 반복되는 참사, 뭐 때문인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에서 또다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일 한화에어로의 대전사업장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7명 중 5명이 사고로 현장에서 숨졌고, 2명이 병원에 이송됐다. 이곳은 이전에도 두 차례 대형 폭발로 8명이 목숨을 잃었던 사업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참담하다. 지난 2018년 5월, 2019년 2월에 이어 이번까지 세 차례 사고로 심각한 인명피해가 난 것이다. 물론 과거 두 차례 사고는 위험공정에서 일어난 것이고 이번엔 세척 공실에서 추진체 제작 공구를 세척하다 발생했다는 점에선 차이가 있다. "종전에도 계속해 온 공정이고, 위험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해 왔다"는 회사 측 설명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한 끗 차이로도 발생하는 것이 사고다. 더군다나 화학물질을 다루는 곳은 어디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회사가 현장의 안전관리에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있었는지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 대전사업장은 미사일 추진기관과 전술유도무기 등을 개발·생산하는 핵심 방산시설이다. 다연장로켓 천무와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L-SAM 등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한화에어로의 매출 5%가 이곳에서 나온다. 사고 직후 사업장 후공정 라인이 대전노동청의 작업중지 조치로 가동이 중단됐다. 멈춘 작업은 연료 주입에 쓰인 공구를 세척하는 공정 일부라고 하지만 수출 납기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해외 경쟁사와 피말리는 접전 끝에 따낸 수주물량이 안전사고 문제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안전관리가 경쟁력의 중요한 부분임을 다시 각인시켜 준다. 방산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축으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각국의 재무장 흐름 속에서 K9 자주포, 천무, 유도무기, 추진체 등 한국산 무기체계의 위상은 높아졌다. 방산은 이제 단순한 제조업을 넘어 안보와 수출, 첨단기술을 잇는 국가 전략산업이 됐다. 하지만 작업 과정은 고압·고열 공정이 많고, 화약·추진제·정밀장비 등 고위험 물질과 물체를 주로 다룬다. 일반 제조업보다 사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런 만큼 안전관리 기준이 엄격해야 하고 예방 시스템은 촘촘해야 마땅하다. 방산시설 현장을 전수조사해서라도 다시는 유사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방산시설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만큼 보안도 중요하다. 민간 감시와 외부 접근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안전관리의 빈틈이 되어선 안 된다. 기술보안은 지키되 안전검증은 더 엄격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첨단부품 수요가 급증하는 만큼 첨단 화학물질 사고에 대비한 새로운 관리체계와 매뉴얼도 필요하다. 작업 현장은 달라졌는데 정부의 안전관리 대책은 과거 산업현장 수준에 맞춰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사후 처벌에 초점이 맞춰진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도 다시 따져봐야 할 것이다. 예방하지 못한다면 비슷한 참사는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기자수첩] 말 많은 휴대폰 개통 안면인증

"휴대폰 개통 안면인증 시범사업은 문제없이 추진 중이다. 30일 상용화 계획이며, 연기는 없다." 최근 열린 정부 출범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입장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되는 대포폰 근절을 위한 휴대폰 개통 시 안면인증 의무화 조치 시행에 대한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23일 휴대폰 개통 안면인증 의무화 조치를 발표한 이후 여론의 거센 반발 끝에 시범운영 기간을 3개월 연장했지만, 또다시 미룰 경우 정책 추진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정책 추진력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국민적 불안과 현장의 혼란이 이어지는데도 일상과 밀접히 닿은 중요한 정책을 너무 급하게 추진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대포폰 이용자의 70%가량이 외국인으로 파악돼 정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와 일부 알뜰폰 업체의 안면인식 시스템의 잦은 오류로 개통 지연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휴대폰 개통 안면인증에 대한 국민적 반발은 정부가 자초한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휴대폰 개통 안면인증 의무화를 둘러싼 정부 기관 간 엇박자가 정책 신뢰도를 훼손했다. 개인정보 보호 업무를 총괄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달 27일 휴대폰 개통 안면인증 정책에 대해 개선 권고를 의결했다. 현행법상 안면인증을 휴대폰 개통 시 본인인증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개인의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아 안면인증 거부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안면인증 정보는 한번 유출되면 변경이 어려운 비가역적 정보다. 주민등록번호, 주소, 휴대폰 번호 등 유출이 일상화된 일반 개인정보와 달리 얼굴 정보는 더 높은 수준의 관리체계가 요구된다. 당연히 민감한 국민정서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정책을 더 촘촘하게 설계해야 했다. 하지만 대포폰 근절이라는 기존에 설정한 목표에만 매몰돼 개인정보 보호에는 미흡했다. 뒤늦게 과기정통부는 영상통화, 모바일 신분증, 지문·홍채 등 생체인증, 계좌인증 등 대체수단 도입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이는 휴대폰 개통 안면인증 의무정책을 처음 발표할 때부터 준비했어야 했다. 정책설계 과정에서 과기정통부와 개인정보위가 사전에 면밀히 논의했다면 혼란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정보위 권고에도 휴대폰 개통 안면인증 제도는 예정대로 시행된다고 한다. 제도 시행을 더 미루거나 철회하는 게 어렵다면 지금이라도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 순위로 두고 정책 보완에 총력을 쏟을 때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