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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성장통 앓는 증시

증권부에 온 지 4주 차. 증시를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이런 비극이 따로 없다. 작년 추석 무렵 기사를 찾아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당시 코스피 지수는 3400이었다. 1년 만에 2배 넘게 컸다. 멀리서 보니 또 희극처럼 보인다. "지난 1년 동안 나머지 19년에 맞먹는 일들이 있었다"는 한 금융투자업계 임원의 말이 실감 난다. 급격히 몸집을 불린 우리 자본시장은 성장통을 앓고 있다. 키가 자라는 속도를 뼈와 근육이 따라가지 못하듯, 시장을 떠받칠 제도와 신뢰가 충분히 단단해졌는지 돌아볼 때다. 지수가 두 배가 됐다고 시장의 체력까지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둘러싼 혼란은 그 간극을 드러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투자자가 몰렸지만, 하락장에서 손실도 그만큼 가팔랐다. 손실이 커진 뒤에야 투자문턱을 높이는 대책이 뒤따랐다. 투자자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기에 앞서 상품을 만들고 팔고 상장을 허용한 주체들에 위험을 충분히 따져봤는지 물어야 한다. 해외의 시선에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최근 해외 자산운용사 고위 임원은 한국 우량기업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극심한 변동성이 해외 장기투자자의 진입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좋은 기업이 많다고 좋은 투자시장이 완성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기업 가치를 보고 투자한 사람이 급등락을 견디지 못해 떠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노력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변동성만의 문제도 아니다. 최근 삼성액티브자산운용 일부 운용역의 ETF 편입 종목 선행매매 의혹으로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나섰다. 투자자의 돈을 맡은 사람이 그 정보를 사익에 이용했다는 의혹은 시장의 기본적인 약속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를 외형 성장에 따라 으레 겪는 성장통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새 상품의 시장 영향과 투자자 보호장치를 촘촘히 살펴야 한다. 금융회사는 판매와 수익률 경쟁에 앞서 내부통제가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투자자 역시 단기간에 큰돈을 벌겠다는 조급함을 경계해야 한다. 지수 상승을 반겼던 시장 주체 모두에게 그 성장을 지켜낼 몫이 있다. 내년 추석에는 시장이 얼마나 믿을 만해졌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한다. 멀리서 본 상승 그래프가 희극일지라도 그 안에 있는 투자자들의 경험이 비극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7000선에 올라선 우리 증시가 다음으로 넘어야 할 문턱은 신뢰다. [email protected]

[사설]공공임대주택, 잘 지어야 수요자가 찾는다

정부가 2030년까지 보편형 공공임대 19만가구를 포함해 총 119만가구의 공적 주택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공공임대 대상을 저소득층에서 중산층까지 확대하고 도심·역세권 공급과 중형 평형을 늘리려는 중장기 방향은 긍정적이다. 다만 당장 시급한 전월세 불안을 잠재우기엔 한계가 있고, 재원과 입지 등 핵심 대책은 여전히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21일 최근 10년 평균 공급량인 16만가구보다 많은 연평균 23만8000가구를 공급하는 '주거안정플랜'을 발표했다. 119만가구 중 공공분양은 24만3000가구이고, 나머지는 건설·매입·전세임대 등 임대주택이다. 계획대로 공급되면 10년 이상 살 수 있는 장기공공임대 규모는 2024년 193만1000가구에서 2030년 250만가구 이상으로 늘어난다. 특히 이번 발표의 핵심은 보편형 공공임대다. 택지에선 전용 55~85㎡, 도심은 40~60㎡ 위주로 짓고 2베이를 3·4베이로 개선한다. 마감재는 민간 아파트 수준으로 높이며 빌트인 가전도 늘린다. 그동안 공공임대는 엄격한 소득·자산 기준과 좁은 평형, 외곽 입지 탓에 공실이 많이 발생했다. 수요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임대료 부담과 전세사기 위험이 큰 민간 임대주택을 선택했다. 이번에는 명품·모범 임대주택 사례를 만들겠다는 다짐부터 하기 바란다. 연내 세부 계획을 발표한다는데, 입주 자격기준이나 임대료 등 핵심적인 내용을 잘 보완해야 할 것이다. 민간 아파트급 품질의 임대주택을 도심 핵심 입지에 최대 20년간 저렴하게 공급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만큼 국가재정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주택 공급기관의 부담이 불가피해 보인다. 전월세 시장 대책으로는 미흡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전셋값이 오르면서 서울 외곽에서도 10억원을 넘는 전세가 나오는 등 전월세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신규 착공뿐 아니라 기존 주택 매입 등도 포함해 전체 주택 물량을 늘리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시장을 안정시키는 공급대책으로는 미흡한 것이다. 공공 주도의 공급정책도 중요하지만 주택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민간 임대와 매매 공급의 물꼬도 터야 한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하고 실거주 의무 개선 등 규제 보완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의 직접 매입·건립만으로는 재정과 시차의 한계가 명확한 만큼 민간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를 전향적으로 활용, 민간 장기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공공·민간 투트랙' 전략도 검토할 만하다. 이번 대책이 숫자만 나열한 계획에 그치지 않으려면 연내 발표할 세부안에 청년과 무주택자가 선호하는 입지와 LH 등 공공기관의 재정건전성 확보 방안을 담아야 한다. 정기적으로 사업별·지역별 추진 상황과 실제 입주시기를 공개해 시장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주거안정 정책은 발표문의 숫자상 약속이 아니라 현장 입주물량으로 증명돼야 한다.

[사설]윤곽 드러난 대미투자, 끝까지 수익성 확보해야

정부의 대미 전략투자 윤곽이 드러났다. 정부는 22일 국회에 투자 1호 사업으로 미국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은 2·3호 협의 과제로 제시했다. 후속협상에서도 끝까지 국익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1호인 엔시날 가스발전에 대해 정부는 사업성을 검토한 결과 수익성이 충분히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공장 등이 잇따라 들어서는 텍사스에서 전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점도 긍정적이다. 총사업비 223억달러를 투입해 20년간 432억9000만~454억300만달러의 수입을 거둘 수 있어 원리금 회수가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처음부터 6.3GW를 한꺼번에 짓지 않고 1.4GW부터 시작해 실제 수요와 경제성을 확인하며 단계적으로 증설하는 방식도 위험을 낮추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사업성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장기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전력구매계약(PPA)은 핵심 변수다. 이날 공개된 국회 보고 문건에는 'PPA 거부'라는 메모도 확인된 만큼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장기 구매계약이 여의치 않다면 어떤 방식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것인지 정부가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더욱이 한국이 건설 자금을 전액 부담하는데도 미국 측이 처음엔 한미 지분 5대 5, 장기적으로는 미국 9, 한국 1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협상 중이라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더 큰 시험대는 원전과 알래스카 LNG다. 정부는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 지분을 당초 20% 안팎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현재는 5~10% 선을 놓고 협상하고 있다. 정부는 10% 미만의 지분으로도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지는 더 따져봐야 한다. 미국에 지을 원전 8기 가운데 2기에 한국형 APR1400을 적용하고 나머지 6기는 웨스팅하우스 AP1000을 적용하는 방안도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면서 정작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과 국내 설계·기자재 업체의 참여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무엇을 위한 투자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 역시 향후 한국 원전의 해외진출을 확대하는 지렛대가 돼야 의미가 있다. 형식적인 의결권에 그치고 실질적 경영참여가 제한되는 구조여서도 안 된다. 알래스카 LNG는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1300㎞가 넘는 가스관과 액화시설을 건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막대한 초기 비용과 가격경쟁력 때문에 사업성 우려가 계속 제기됐다. 정부도 이날 아직 상업성을 판단할 만큼 사업이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국회에 설명했다. 앞서 일본도 수익성 문제를 들어 알래스카 LNG를 대미투자 사업에서 제외한 바 있다. 대미투자 협상을 서둘러 매듭짓겠다는 이유로 경제성이 확인되지 않은 사업까지 떠안을 이유는 없다. 정부가 연간 투자액 200억달러, 전체 전략투자액 2000억달러라는 한도를 넘기지 않겠다고 재확인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총액만 지킨다고 국익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양해각서(MOU) 체결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며 봉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미 전략투자는 미국이 원하는 사업에 한국 자금을 대주는 일이 아니라 양국이 함께 이익을 얻는 투자여야 한다.

[강남視角] 평생학습 없는 고령 취업

올해 65세, 회사에서 은퇴한 당신이 새 직장을 구하려 면접장에 앉는다. 젊은 면접관이 위아래를 한 번 훑어보고 상투적인 질문을 던진다. "강점과 약점이 뭔가요?" 뭐라고 답하겠는가. "강점은 경험이 많다는 것이고, 약점은 나이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 센스를 발휘하면 합격 안정권이다. 영화 '인턴' 속 시나리오에선 그렇다. 11년 전 할리우드 원작 '인턴'과 한국판 '인턴'은 노년층 관객이라면 혹할 만한 이야기다. 자존심만 조금 접으면 멋진 스타트업 오피스에서 제2의 인생을 보람차게 펼칠 수 있다는 희망이 차오른다. 젊은 청년 최고경영자의 혁신 마인드와 시니어의 노익장이 시너지를 낸다고 상상해 보라.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회사를 유니콘으로 키우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영화는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영화에서 충만했던 기대 반, 설렘 반은 현실의 문을 열자마자 실망 반, 씁쓸함 반으로 바뀐다. 우리 시대 고령층 취업자의 민낯을 살펴보자. 올해 5월 기준 55~79세 고령층 취업자는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어섰다. 더구나 전년 대비 늘어난 취업자 34만5000명 가운데 65~79세가 32만6000명이다. 전체 증가분의 94%나 차지한다. 정년 60세를 훌쩍 넘긴 초고령 나이대가 취업 증가를 이끈다는 얘기다. 이런 숫자만 보면 정년 후에도 일자리가 널렸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숫자의 속살을 보면 고령층 취업자 1000만명의 화려한 숫자 뒤에 숨은 허와 실이 드러난다. 최근 늘어난 일자리는 돌봄 관련 복지 확대에 따른 것이다. 교통지도, 환경정비, 독거노인 안부 확인 등 공익활동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스타트업 같은 민간의 자발적 채용과 거리가 멀다. 일자리를 구하는 목적도 영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이들이 계속 일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에 보탬'(53.4%)이었고,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88만원에 그쳤다고 한다. 보람찬 제2인생과 거리가 먼 생계형 일자리에 몰린다는 얘기다. 미국 원작의 주인공 벤 휘태커는 70세 은퇴자인데 인턴 자리를 얻었다. 한국판 영화 주인공 기호 역시 37년 직장생활 경력을 갖춘 베테랑이다. 하지만 현실의 문턱은 높다. 영화 속 주인공이 스크린을 찢고 현실의 일터로 걸어 나오려면 그 사람도, 세상도 변해야 한다. 첫 단추는 정년 연장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쏟아지는 퇴직자들을 받쳐줄 탄탄한 안전망이다. 녹슬지 않은 실력을 발휘해 삶의 보람을 찾도록 돕는 일도 넓은 의미의 복지다. 정년퇴직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사이에 놓인 60~64세의 '소득 크레바스' 문제 역시 정년연장 도입으로 풀어낼 수 있다. 다만 정년연장이 모든 사람의 혜택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이미 60세 정년제가 적용되고 있어도 이전에 실업자가 된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제도는 도입만큼이나 실효성이 중요하다. 제도 혜택과 별개로 본인의 역량도 갈고닦아야 한다. 디지털과 인공지능(AI) 시대로 접어들면서 업무환경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의 업무 경험이 그대로 통용되는 시대도 아니다. 그렇다고 수십년 쌓아온 경험을 버릴 이유도 없다. 실무에 꼭 필요한 기술과 디지털 도구를 새로 익혀 자신이 쌓아온 업무 노하우에 장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생학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다. 그런데 꾸준히 학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 성인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2023년 32.3%에서 2025년 33.7%로 완만하게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성인 3명 중 2명은 평생학습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영화 속 실버 인턴들은 낯선 사무실에 차차 적응하고 필요한 실무도 무난히 해낸다. 왕년의 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그들이 면접장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까지 남모르게 투입했을 평생교육의 시간을 영화에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email protected] 조창원 기자

[포럼] 늦출 수 없는 온라인플랫폼 규제

2021년 발의되었던 '온라인플랫폼 거래공정화법안'은 국내 플랫폼 시장의 공정거래를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 법안은 아주 강력한 제재나 형벌조항을 담지 않은 연착륙 성격의 부드러운 규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기업들의 반대와 국회 내 이견을 넘지 못한 채 결국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온라인플랫폼 관련 법안에 대한 미국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며, 아직까지도 입법의 가시적인 움직임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통상마찰 우려와 국회의 지지부진한 논의 속에 '입법공백'이 길어지는 동안 시장에서는 예견됐던 부작용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대규모 미정산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일련의 쿠팡 사태, 그리고 배달플랫폼과 입점 소상공인들의 고비용 갈등이 바로 그 명백한 방증이다. 현재 대한민국 유통 시장은 온라인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미 전체 상품 및 서비스 시장에서 온라인 유통의 점유율은 50%에 육박하며, 배달시장 역시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두 거대 플랫폼이 전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며 견고한 복점(Duopoly) 구조를 형성했다. 국민의 일상생활은 물론 소상공인들의 경제활동마저 플랫폼에 종속된 상황에서, 제때 공정 룰(Rule)을 정하지 못한 파급효과는 실로 막대하다. 물론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는 과도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혁신의 싹을 자르고, 장기적으로 소비자 후생과 건강한 경제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 편의성'과 '혁신'이라는 명분 아래 플랫폼 특유의 네트워크 효과가 낳는 독과점 구조를 방치한다면 이는 극심한 불균형 성장과 과도한 독점적 지대 추구로 귀결될 것이다. 시장 내 승자독식으로 인한 폐해를 막을 적절한 제어장치가 적기에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입점 소상공인과 납품업체, 그리고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통상마찰이나 역차별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온라인플랫폼 거래공정화법' 중심으로의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법 추진과 더불어 당장 시급한 것은 '상생협력'을 제도권에 안착시키는 일이다. 그동안 온라인플랫폼과 입점업체 간의 상생은 기업들의 자율적인 선의에 맡겨져 왔으나,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제는 '상생협력법' 등 관련 법제 내에 온라인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수성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상생협력 가이드라인을 의무화해야 한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다수의 경제적 약자가 피해를 보고 쏠림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막는 방법은 '적절하고 적시성 있는 제도의 개입'이다. 규제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제2, 제3의 티메프 사태와 쿠팡 사태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정부와 입법부는 현재의 온라인플랫폼 사태가 던지는 경고를 엄중히 인식하고, 지금이라도 시장의 룰을 바로잡고 상생을 도모할 책임 있고 성과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서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약력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 박사(응용경제) △소상공인정책학회 회장(현) △공정거래조정원 대규모유통업거래분쟁조정협의회 위원장 △한국유통학회 회장 △중소기업학회 회장

[fn광장]중앙아시아에 '新실크로드' 연다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와 외교안보 현안의 파도에 지난 '제1회 한·중앙아시아 정상회담' 소식이 다소 묻힌 감이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한국 외교가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유라시아 지경학의 중심부로 다시 진입하고, 정부 최초의 대(對)중앙아시아 특화전략인 'K-실크로드 협력 구상'을 선언하며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 외교의 이정표를 세운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중앙아 5개국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한국에 특별한 지역이었다. 1996년 우즈베키스탄 아사카에 설립된 연산 20만대 규모 대우자동차 공장이 '대우 효과'를 창출하며, 한국은 서구 주요국들마저 중앙아 진출전략을 자문할 정도로 지역 핵심 파트너이자 선두주자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기존 유라시아 대륙 공급망이 단절되며 중앙아의 지정학·지경학적 가치는 급상승했다. 이에 미국, 유럽연합(100억유로 규모 글로벌 게이트웨이 사업), 중국(China+C5 정상회의 및 500억위안 지원), 일본,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국들이 경쟁적으로 막대한 자본과 외교력을 투입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높은 호감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공세적 강대국들과 경쟁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현재 중앙아 국가들은 연 4~6%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며 사회경제적 역동성을 분출하고 있다. 석유·가스뿐 아니라 우라늄·리튬·희토류 등 핵심광물 공급망의 중심축으로 부상했으며,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 및 데이터센터 구축 등 디지털 전환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물류 지형의 변화도 눈부시다. 카스피해를 통과하는 '중부회랑(Middle Corridor)'의 화물 운송량은 2021년 약 58만t에서 2024년 430만t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런 유라시아 물류 회랑의 재편 외에, 서울 면적 1.5배 규모의 카자흐스탄 '알라타우 스마트 신도시' 개발, 현대로템의 우즈베키스탄 고속철(EMU-250, 2700억원 규모) 첫 해외 수출, 투르크메니스탄 갈키니시 가스전 및 석유화학 플랜트(60억달러 규모) 협력 등은 한국 기업에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이런 변화는 한국 외교에 도전적 질문을 던진다. 전통적 미·중·일·러 강대국 중심 외교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인적 자원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글로벌사우스와의 연대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완성할 것인가다. 중앙아시아 전체 인구 8000만명 중 30세 이하 비중이 60%를 넘듯, 글로벌사우스는 중위연령(18~25세)의 탄탄한 인력구조와 다양한 측면의 잠재력으로 세계 무대에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이들과 특별한 유대감을 가진다. 식민지배, 전쟁, 빈곤이라는 굴레를 직접 경험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뿌리 역시 글로벌사우스와 맞닿아 있다. 단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고 세계적 문화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성공은 글로벌사우스가 '따라 배우고 싶은 전범(典範)'이다. 바로 이 지점 '선진국이지만 선진국이 아니었던 경험'에 한국 외교의 필승 자산이 있다. 과거 개발도상국의 고충을 체휼적(體恤的)으로 이해하면서도, 선진 기술과 체제를 전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협력자라는 점이다. 이에 더해 외교적 리더십을 완성할 핵심 고리는 한국 공적개발원조(ODA) 사업구조의 개편이다. 그동안 부처별로 파편화되고 단발성 지원에 그쳤던 ODA 추진체계를 과감히 탈피, 글로벌사우스 외교전략과의 호환성과 전략적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중앙아시아와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산업인프라 구축, 핵심광물 공급망 결합, 디지털 전환,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에 ODA를 전략적으로 패키지화해 투입하는 '전략적 ODA' 체제를 재설계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회성 시혜를 넘어 공영의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선언된 '신(新)실크로드 구상' 및 '서울선언' 등 많은 약속들이 말잔치로 그쳐서는 안 된다. ODA 구조 혁신을 바탕으로 핵심광물 파트너십과 인프라·교육·디지털 프로젝트 등을 면밀히 이행하고 2년마다 열기로 한 한·중앙아 정상회담에 맞춰 사후관리를 제도화할 때 한국의 글로벌사우스 외교는 비로소 '공영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신범식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약력 △서울대 외교학과 △모스크바국제관계대 정치학 박사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중앙아시아 특별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현)

[사설]속도전 첨단산업, 길·물·전기가 발목 잡아서야

첨단산업은 속도전이다. 기술 변화가 워낙 빨라 몇 달의 투자지연이 시장 판도를 가른다. 그런데 반도체·바이오 같은 대규모 장치산업은 투자 결정부터 가동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용수와 전력, 도로가 제때 맞물려야 돌아가는 종합예술에 가깝기 때문이다. 투자하고 싶어도 정부 지원과 규제완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속절없이 시간만 낭비한다. 첨단기술이 국가 미래를 좌우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정작 지원은 부족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반도체·바이오·배터리·로봇 등 기업 의견을 모아 정부에 건의한 규제완화와 지원 확대 과제 41건 속에 그런 사정이 담겼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내년 2월 첫 번째 팹(Y1)의 클린룸 가동을 앞두고 있지만, 주 진입도로인 국가지원지방도 57호선 개량공사는 가동 전 완공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공장이 완공되어도 길이 막히면 돌릴 수 없다. 적기에 용수를 공급하는 것도 공장 가동의 필수요건이다. 한경협은 공업용수의 경우 인허가와 착공까지 걸리는 기간을 18개월 이내로 줄여달라고 요구한다. 전력도 마찬가지다. 원자력 등을 포함한 무탄소전력 인증체계를 마련하고, 설비용량 20㎿를 넘는 대수력 발전의 기업 직접구매를 허용해 달라는 게 재계의 요청이다. 규제 위주의 행정 마인드가 산업 현장의 요구를 뒤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초기 적자 기업에는 세액공제가 무용지물이라는 배터리업계의 호소와 디스플레이 세액공제 이월기간을 10년에서 20년으로 늘려달라는 요구가 대표적이다. 대규모 투자를 장기간에 걸쳐 진행하는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액 지원제도를 바꿔달라는 것이다. 지금 각국은 국내외 첨단산업 투자를 자국으로 끌어들이려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대형 공장 하나가 들어서면 협력업체와 일자리, 지역경제가 뒤따라 살아나니 투자유치는 미래 먹거리를 두고 벌이는 경쟁이다. 그런 면에서 기업과 정부 관계는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 국내에 공장을 지으려는 외국계 기업이 있어도 도로·전력·용수가 적기에 공급되지 않으면 투자자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땅으로 떠날 것이다. 정부가 기업에 필요한 인프라를 먼저 깔아두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투자 의향이 있는 기업 앞에 길이 뚫려 있지 않다면 그것은 기업이 아니라 정부와 국회의 책임이다. 이날 한경협이 제시한 41건 가운데 20건은 법률 제정 및 개정 없이 추진할 수 있다. 행정 절차를 통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과제들이라면 속도를 못 낼 이유가 없다. 시행령과 고시 정비에도 입법예고와 부처 협의, 심사 절차가 필요하니 내년 2월에 맞추려면 지금 착수해도 빠듯하다. 나머지 21건은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몫이다. 입법이 필요한 과제들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우선 처리할 의제로 올려야 한다. 기업의 투자 확대와 성과는 일자리와 세수 확대로 이어진다. 국회는 민생을 살리는 심정으로 법안을 처리하기 바란다.

[사설] "세계 경제는 다중 위기" IMF 총재 발언 되새길 때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카타르 경제포럼에서 세계 경제가 국가부채(채무), 금융비용, 인공지능(AI) 관련 투자 폭발 등으로 다중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빠른 해결은 기대하기 어려워 각국 중앙은행들은 재정긴축과 국가부채 관리를 더욱 타이트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AI 관련 순환투자의 잠재적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지금 우리가 AI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가 너무 높은 만큼, 실패할 경우나 생각만큼 제대로 현실화되지 못할 경우에는 그 실망만으로도 시스템 전체에 대한 충격이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언급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말은 우리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재정적 확장 정책을 펴고 있는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1304조5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9%다. 아슬아슬하게 50%선 아래에 있지만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국가채무가 계속 늘어나면서 매년 갚아야 하는 이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해 국가채무 이자비용은 36조5000억원에 이른다. 국가채무 급증은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다. '빅2'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고, 프랑스와 일본 등 주요국들도 마찬가지다. IMF에 따르면 세계 공공부채는 2029년이 되면 전체 GDP의 100%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올해 성장률이 호조를 보여 지표상으로는 50% 이하의 수치가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50% 이상으로 올라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주요국들의 채무 급증은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채무가 늘어나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국가도 파산할 수 있다. 어느 한 국가라도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하면 각국 경제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닌 것이다. 경기도나 포항시의 경우처럼 지방자치단체들의 사례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선심성 정책도 원인이지만 가만히 있어도 늘어나는 복지예산 때문에 일부 지자체의 재정 상황은 최근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포퓰리즘적 정책을 자제하고 꼭 필요한 곳에만 예산을 써서 부채 증가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AI와 관련한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발언도 새겨들을 대목이다. 한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 전체가 중동전쟁의 어려운 국면에서도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AI 개발의 덕이 크다. 현재로서는 산업적 측면에서 AI의 미래는 여전히 낙관적이지만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말처럼 장애물을 만나 개발이 정체되면 한순간에 경제 냉각기에 접어들 것이다. AI 발전이 너무 빨라 개발을 주도하는 빅테크들이 속도조절에 나서는 움직임도 우리에게는 예사롭지 않다. 속도조절은 투자 축소를 의미하고, 이는 곧 반도체 수요가 감소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만큼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긴장하면서 대응태세를 평소에 점검해 두어야 한다. 끝날 듯하면서도 끝나지 않고 질질 끄는 중동 사태는 후티 반군의 가세로 오리무중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겉으로 보면 우리 경제가 순항하는 듯하지만 외부 환경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롭다. 오일쇼크가 재발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경계심을 늦출 계제가 아니다.

[강남視角] 서울버스 준공영제, 이제 바꿔야

얼마 전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시내버스 파업 예고다. 임금협상이 난항을 겪고, 파업이 예고됐고, 서울시는 비상수송대책을 가동하기로 했다. 그러다 노사협상이 결국 타결되며 파업은 철회됐다. 지난 1월엔 서울 시내버스가 실제 이틀간 멈췄다. 2004년 준공영제 도입 이후 최장 파업이었다. 매번 협상이 타결되고 있지만 갈등의 불씨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파업은 시민 불편뿐 아니라 적지 않은 비용 부담을 남긴다. 지난 1월 파업으로 서울시가 부담한 비용은 15억9600만원이다. 이번에는 파업이 실제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파업에 대비해 준비했던 임차버스 취소수수료와 파업 예고 안내물 인쇄 등에 12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추계치여서 비용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두 차례를 합하면 최소 28억원에 가깝다. 시민의 발이 멈출 것에 대비하는 데만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 셈이다. 문제는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가까운 지하철역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시내버스를 타야 하는 시민들은 속이 탄다. 바쁜 출근시간엔 택시 잡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파업의 원인을 노동자의 일방적 책임으로 돌릴 일도 아니다. 임금과 근로조건을 둘러싼 협상은 노동자의 권리이고, 시민의 이동권 역시 보호해야 할 공공의 가치다. 문제는 두 가치가 충돌할 때마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현재의 구조다. 20년 넘은 지금의 버스 운영체계가 이런 갈등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서울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운송수입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비용을 재정으로 지원하는 구조다. 수익성이 낮은 노선도 유지하면서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르면서 노사협상의 결과는 서울시의 재정부담과 시민의 이동권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서울에서는 세계 최초 심야 자율주행버스에 이어 새벽 노동자를 위한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 지역 주민을 위한 마을버스형 자율주행 서비스까지 운행되고 있다. 자율주행 이동서비스 누적 이용객은 올해 7월 말 23만4000명을 넘어섰다. 최근 서울시 G3서울기획위원회 교통혁신분과는 2030년 자율주행버스 500대 운행을 첫 전략사업으로 제안했다. 2029년부터 정규 대중교통에 단계적으로 도입하자는 구상이다. 새벽·심야 자율주행버스 확대와 한강공원·한강버스를 연결하는 다인승 자율주행차량 도입 등도 검토되고 있다. 여기서 자율주행을 반복되는 파업의 '해결책'으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자율주행은 파업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세계 교통산업이 향하고 있는 기술 변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기존 대중교통 체계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을 미리 준비하는 일이다. 2030년 서울에서 자율주행버스 500대가 실제 도로를 달린다면 기존 버스와 자율주행버스가 상당 기간 함께 운행될 가능성이 크다. 새벽·심야처럼 운전인력 확보가 어려운 시간대나 수요가 적은 노선에서는 자율주행이 기존 대중교통을 보완할 수도 있다. 반대로 복잡한 도심 운행과 돌발상황 대응, 교통약자 지원 등에서는 사람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필요한 것은 '사람이냐 기계냐'의 선택이 아니다. 사람이 운전하는 버스와 자율주행버스가 공존하는 시대에 노선과 배차, 인력과 재정, 노사관계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2004년 준공영제는 당시 서울 대중교통을 바꾼 혁신이었다. 이제 20여년이 흘렀다. 2030년엔 자율주행버스 500대가 서울 대중교통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미래의 버스를 준비한다는 것은 운전대를 기계에 맡기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변화 속에서 시민과 노동자 모두를 보호할 새로운 운영체계를 함께 만드는 것까지가 미래 교통이다. [email protected]

[테헤란로] 머스크가 화성 기지 짓는 이유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라는 책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저자는 머스크가 화성 탐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화성 기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화성 기지를 지으려는 게 범용인공지능(AGI) 때문이라고 한다. AGI가 지구를 지배하면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도망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저자의 유머에 웃음이 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실제로 최근 AI 개발 속도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안전을 위해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찬반은 팽팽하다. 곧바로 반론이 제기됐다. 기술적으로 안전한 AI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AI 개발을 늦출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다. 이미 AI 개발 경쟁이 시작된 상황에서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예상치 못한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각국의 대응도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인공지능안전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각국에 AI 안전을 위한 기관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다. 3년 전 영국에 처음 세워진 이후 우리나라에도 2년 전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인공지능안전연구소가 생겼다. 최근 호주에 세워진 데 이어 내달에는 독일에도 세워진다고 한다. 특히 영국의 경우 세계에서 처음으로 AI 안전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연구소에 고연봉의 글로벌 AI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전문가에 대해서는 연구소에 적용되는 연봉 상한도 없다고 한다. 그만큼 AI 리스크 관리가 절실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지금은 AI라는 말이 일상이 됐지만, 사실 기자가 AI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오래전 'A.I.'라는 제목의 영화에서였다. 영화 속 'A.I.'는 요즘말로 피지컬 AI였다. 사람의 모습이지만 내부는 AI로 작동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이 AI 주인공은 앳된 어린아이의 모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결국 인간의 마음을 얻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나 역시 좀 비슷한 면이 있다. 아직 AI에 마음(?)을 열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AI에 고민상담을 하며 대화를 하고, 구체적인 여행계획을 세워달라고 부탁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AI와 이렇다 할 대화를 하지 못했다. 필요한 부분을 단어 수준으로 검색하는 정도다.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email protected]

[구본영 칼럼] 국정기조 바꾸라는 민심의 경고등

여권이 총체적 위기다. 한때 60%대 후반이었던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1년3개월 만에 30%대로 가라앉았다. 여당 안에서도 이를 "빨간불 바로 직전의 주황색 불"(이광재 의원)이라는 경고음이 나왔다. 석달째 이어진 대통령 국정 지지도의 날개 없는 추락의 근본 원인은 뭘까.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혼선 등 몇 가지 정책 실패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을 법하다. 우선 지난 16일 공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 결과를 보자. 이 대통령이 가장 잘하고 있는 분야를 묻자 '없음'이 40.6%로 가장 많았다. 현 정부로선 뼈아픈 평가다. 수출, 명목성장률 등 집권 2년 차 경제지표는 좋은 편 아닌가. 그럼에도 여론엔 현 정권이 잘해서가 아니라 삼성·SK하이닉스 등 민간기업의 반도체 호황 슈퍼사이클 덕분으로 투영되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국민 다수는 어리석은 계엄 자폭극만 벌이지 않았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도 누릴 수 있는 과실로 본다는 얘기다. 주식시장 상승세는 외형상 현 정부의 공으로 볼 수 있다. 9000을 넘었던 코스피 지수가 7000선 안팎까지 밀려났지만, 이 정부 출범 당시 2700선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다. 다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이다. 주식시장이 단타거래 위주의 투전판이 되면서 실물투자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하면서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이라는 헛발질로 증권사의 배를 불렸을지 모르나 외국인을 뺀 다수 개미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결국 '묻지마 증시 부양'도 지지율 추락에 일조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도 지지율 폭락의 주요인이다. 애초 비거주 1주택자에게까지 징벌적 과세를 예고한 건 무리수였다. 고가의 집을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 보통 시민을 투기꾼 취급한 대가는 참담했다. 잘못 설계한 부동산 세제가 집값을 잡긴커녕 전월세 가격까지 급등시켜 집 없는 서민의 허리부터 휘게 만들었다. 그러니 얼마 전 여론조사(리얼미터) 결과에서 대통령 지지도가 서울에서 30%를 밑도는 사례도 나왔다. 정치적 측면에선 '공소취소'와 '연임 개헌' 논란도 지지율 추락에 큰 몫을 했다. 모두 이 대통령의 퇴임과 연관된 이슈다. 전자가 퇴임 이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지우려는 시도라면 후자는 퇴임 자체를 없애려는 신박한 발상이다. 그러나 두 사안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에 집착하느라 권력 사유화 논란 속에 민생은 뒷전이란 인상을 줬을 뿐이다. 여권 내에서도 "공소취소 논란과 연임 개헌 이슈가 동시 분출되면서 국민들이 신뢰를 철회하는 단계에 이르렀다"(윤건영 의원)는 지적이 나왔다. 이렇듯 현 정부를 향한 국민의 시선이 차가워진 이유를 한두 가지로 꼽긴 어렵다. 어찌 보면 경제·민생 불안보다 공소취소나 연임 개헌 추진 같은 정략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추론이 가능할 듯싶다. 엉터리 신약 로비 의혹에 휘말린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국회 청문회에 앞서 여당 지지율이 야당에 밀린 여론조사 결과를 보라. 국민은 그가 '대통령 공소취소 모임' 대표임을 직시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18일 기자회견이 주목됐다. 그는 연임 개헌에 대해선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취임으로 중단된 대장동·대북 송금 재판 등과 관련해선 "퇴임 후 재판 받겠다"는 말은 끝내 아꼈다. 연임 개헌은 비현실적으로 보지만, 여전히 공소취소에 미련을 두고 있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삼권분립을 파훼할 공소취소 추진이 순리일 순 없다. 진보단체 참여연대도 "특검법과 인사권까지 동원해 재판 자체를 지우려는 시도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혁의 이름을 빌린 특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공소취소나 연임 개헌에 부정적인 범여권 세력도 만만찮다. 이른바 '문조털래유'(문재인, 조국, 김어준, 정청래, 유시민을 일컫는 멸칭)가 그들이다. 이와 관련,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정곡을 찔렀다. 즉 "(이들은) 이재명이라는 개인의 대통령직 수행까지는 지지 혹은 용인해도 그 직을 자기 개인을 위해 사용하다가 민주당이란 밑천까지 날리는 것만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원인이 뭐든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지지율 추락으로 국정동력이 약화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이를 타개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마침 공소취소에 총대를 멜 인물로 눈총 받던 김 법무장관 후보자가 물러났다. 이제 청와대가 국정기조를 확 바꿀 때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민생을 돌보는 데 성과를 내기 위해 공소취소 포기가 그 첫 단추이기를 바란다. [email protected]

[포럼] 사용후 核연료, 영구처분 준비를

프랑스는 원자력 대국이다. 전력의 70% 이상을 원자력발전소로부터 획득한다. 그런 만큼 사용이 끝난 원자력 연료를 영구처분하는 연구도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동쪽 방향으로 약 230㎞ 거리에 있는 뷰르라는 인구 약 90명의 소도시에 사용이 끝난 핵연료를 영구처분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다. 지하 500m에 길이 2.4㎞에 달하는 갱도가 사방으로 퍼져 있고, 2026년 5월 13일 프랑스는 이 시설을 일본 미디어에 최초로 공개했다. 2000년 이후에 만들어진 지하갱도에는 약 3만4000개의 방사선센서가 설치되어 방사성물질의 영향을 조사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시설을 유지 실험하는 이유는 수만년이 지나도 파괴되거나 지하수의 접촉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철저히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소는 프랑스의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관인 안드라(ANDRA)가 운영하고 있고, 뷰르 인구의 4배에 달하는 4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안드라가 연구소 설치허가를 받기까지 3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방사능이 포함된 사용후 핵연료를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 들여오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부지 자체가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기에 적합한 부지인지 지질학적 검토가 끝난 후 해당 후보 부지의 주민들의 허락을 받는 순서로 진행된다. 사용이 끝난 사용후 원자력 연료에서는 고농도의 방사선이 나오기 때문에 인간이 접촉하면 20초 이내에 사망할 수 있어 두꺼운 금속용기에 밀폐해 땅속 깊이 반영구적으로 보관해야 한다 일본도 마지막이라는 뜻을 가진 오메가 계획이라 하여 사용후 고방사선 폐연료의 처리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지하 100m 깊이에 있는 화강암 암반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직사각형의 큰 방을 만들어 그 공간에 사용후 핵연료를 넣어 밀봉한 두께 30㎝의 스테인리스 원통형 캐스크 장비를 하나씩 넣게 된다. 그 방이 가득 차면 화강암 윗부분의 구멍을 닫고 화강암반 주변을 점토로 감싼 후 영구처리 보관이 끝나게 된다는 계획이다. 점토로 둘러싸는 이유는 지하수가 침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랑스의 지하 영구처분 시설도 점토로 둘러싸게 된다. 고성능의 방사선을 내뿜는 사용후 핵연료가 지하수를 만나지 말아야 되는 이유는 지하수를 따라 널리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일본도 계획은 있으나 일본 내 어떤 곳에 처분해야 할지 장소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좋은 입지를 찾아도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할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고심 중이다. 한국은 경수로에서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를 발전소 내부의 풀에 저장하고 있고, 중수로를 쓰는 월성발전소의 사용후 핵폐기물은 땅 위에 시설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영구적인 처분장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임시저장 방식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화강암이 많은 나라이기에 사용후 연료의 최종처분을 일본과 유사하게 화강암 속에 처분하는 전략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 적절한 후보지가 나오면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안해 가며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

'같은 비행, 다른 처분' 그 차이를 만드는 건 부모다[알쏭달쏭 소년심판]

[파이낸셜뉴스] 변호사로 일하면서 의외로 자주 하는 상담이 있다. 바로 소년비행 사건과 학교폭력 사건이다. 체감상 이혼 사건보다는 상담 건수가 적지만 상속 사건보다는 훨씬 많다. 더 놀라운 점은 사건의 심각성보다 분쟁이 격화된 정도가 훨씬 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는 다툼이나 장난이 어느 순간 학교폭력 사건이 되고 형사사건이 되며 소년재판으로 이어진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마찬가지다. 한 번 사건에 휘말리면 부모들은 '우리 아이의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 불안은 때로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필자는 법원에 근무할 당시 2016년과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총 4년 동안 소년재판 업무를 담당했다. 매년 수천 건의 소년사건을 접하면서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분명하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소년재판에서 판사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단순히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소년재판은 처벌보다 '변화 가능성'을 본다 소년재판은 형사재판과 출발점부터 다르다. 물론 비행사실의 내용과 정도도 중요하다. 하지만 소년부 판사는 사건의 과거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 아이가 앞으로 달라질 수 있는지, 다시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비행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함께 살핀다. 그래서 소년부 판사는 전통적인 의미의 판사 역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의사나 교사의 역할도 하게 된다. 소년부 판사가 단순히 잘못에 대한 대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년이 다시 사회 안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때 핵심이 되는 개념이 바로 '보호력'이다. 보호력이란 부모가 자녀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돌보고 지도할 수 있는지, 자녀가 어떤 가정환경과 교우관계에 놓여 있는지, 비행을 반복하게 만들 위험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개념이다. 같은 비행을 저지른 두 명의 소년이라도 처분이 달라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년부 판사는 1) 부모가 자녀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2) 부모가 자녀가 비행을 하게 된 원인을 파악하고 있는가, 3) 문제가 된 교우관계가 정리되는 중인가, 4) 자녀가 다시 비행을 하지 않도록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치가 이루어졌는가, 5) 부모가 자녀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는가 등을 세세히 살핀다.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과 부모 또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양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소년재판에서는 다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교우관계, 가정의 안정성은 처분을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잘 지도하겠습니다'만으로는 부족하다 많은 부모가 재판부에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아이를 잘 지도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부모로서 더욱 신경 쓰겠습니다." 하지만 소년부 판사를 설득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변화의 흔적이다. 이미 엎질러진 비행사실은 과거의 문제다. 반면 자녀를 둘러싼 환경은 지금부터라도 바꿀 수 있는 미래의 문제다. 따라서 부모는 막연한 다짐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준비해야 한다. 1) 문제가 된 친구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했는가, 2) 학교생활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3) 자녀가 귀가한 뒤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 4)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 실제로 상담을 시작했는가, 5) 부모 중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자녀를 지도하고 계도할 것인가, 6) 비행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가정에서 어떤 규칙을 만들었는가, 7) 부모가 맞벌이거나 자녀를 직접 돌보기 어려운 경우 이를 보완할 방법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바꾸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언제부터 바꾸었는가'다. 소년부 판사는 당신의 자녀가 비행을 저지른 그 당시의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다. 비행 이후 부모가 얼마나 진지하게 개입했는지, 그로 인해 자녀의 주변 환경이 실제로 달라졌는지, 그 변화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본다. 이 부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다른 소년이라면 사회 내 처분을 받을 사건에서 시설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조사 과정은 재판만큼 중요하다 소년재판에서 부모가 자주 놓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심리개시결정 이후 진행되는 각종 조사다. 소년부 판사는 소년의 교우관계와 가정환경, 생활태도, 비행의 원인 등을 파악하기 위해 소년조사관,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보호관찰관 또는 소년분류심사원 등에 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 이 조사 결과는 단순한 참고자료가 아니다. 소년부 판사가 최종 처분을 결정할 때 상당히 중요하게 참작하는 핵심 판단 요소이다. 법정에서 소년부 판사가 부모에게 직접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우 많은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짧은 법정 심리만으로 부모의 보호력과 가정환경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결국 조사기관이 작성한 조사 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행소년을 둔 부모는 법원이 아닌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고 해서 절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법원에서 부른 것도 아닌데 꼭 가야 하나요? 전화로 대충 설명하면 되지 않나요?" 이런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조사에 불성실하게 응하거나 회피하게 되면 부모가 자녀를 제대로 보호하고 지도할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사 과정에서 부모는 무조건 방어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자녀의 현재 생활과 성격, 비행이 발생한 경위, 비행 이후 자녀에게 나타난 변화, 부모가 취한 구체적인 조치, 앞으로의 지도 계획 및 학교와 상담기관, 가족이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등을 진지하게 설명해야 한다. 조사기관에 전달된 내용은 결국 소년부 판사에게 보고된다. 조사관을 대하는 태도 역시 소년과 부모의 보호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출석은 말보다 강한 메시지다 소년재판에서 부모가 당사자는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부모의 보호능력과 보호의지는 소년의 재비행 가능성과 사회 내 처우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부모가 보호자로서 소년과 함께 법정에 출석하는 것이 좋다. 회사에 연차를 내야 하더라도 적어도 심리기일에는 부모 모두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깔끔한 옷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해 보호자로서 자녀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모습 자체가 부모의 관심과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대로 특별한 이유 없이 자녀를 법정에 혼자 보내거나, 심리 절차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면 부모의 보호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물론 단정한 옷차림만으로 처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이 사건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자녀의 변화를 위해 실제로 행동하고 움직이고 있는지다. 법정 출석은 그 진정성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소년분류심사원에서는 '칭찬'보다 '사고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행의 내용이 중하거나 소년의 주변환경이 매우 불안정한 경우 소년부 판사는 심층적인 조사와 소년의 안전을 위해 소년분류심사원 위탁 결정을 할 수 있다. 장기간 이유 없이 가출을 반복하는 경우, 지속적으로 성매매에 노출된 경우, 자해를 반복하는 경우 등이 그 예다. 소년분류심사원에서는 비행소년의 생활 태도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규칙 준수 여부 등이 관찰된다. 생활을 성실히 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범을 보이면 칭찬카드를 받을 수 있고, 규칙을 어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꾸중카드를 받을 수 있다. 많은 부모가 자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칭찬카드를 되도록 많이 받아야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칭찬카드를 많이 받는 것보다 꾸중카드를 받을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소년부 판사가 궁금해하는 것은 비행소년이 완벽한 모범생인지 여부가 아니다. 위험한 환경과 유혹이 모두 차단된 곳에서만이라도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다. 소년분류심사원 안에서도 반복해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더 많은 유혹과 위험이 존재하는 사회 내에서는 다시 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모는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된 자녀를 면담할 때 단순히 '잘 지내라'라고 말하기보다 "다른 소년들과 다투지 않을 것, 정해진 시설 내 규율과 규칙을 반드시 지킬 것, 화가 나더라도 즉시 반응하지 않을 것, 불편한 일이 있으면 담당자에게 먼저 말할 것, 사소한 장난이라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 등을 구체적으로 당부해야 한다. 소년분류심사원에서의 수용 기간은 소년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관찰 기간이다. 비행사실을 다투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소년재판을 받게 된 부모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 중 하나는 비행사실을 아무런 조건 없이 전부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일부 애매한 부분을 다툴 것인지다. 비행사실을 다투는 문제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녀가 실제로 하지 않은 일을 인정하라는 뜻은 아니다. 억울한 부분이 있고 무죄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다툴 필요가 있다. 소년부 판사는 비행사실과 증거를 심리한 뒤,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사실이 인정되고 그 동기와 죄질에 비추어 형사처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할 수 있다. 소년부 판사가 검사에게 송치한 사건은 검사가 다시 소년부에 송치할 수 없으므로 송치의 가능성과 그 이후 형사절차의 의미를 사전에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소년 법정에서 형사재판과 같은 방식의 복잡한 증거조사가 충분히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소년부 판사가 검찰로 사건을 송치한 후 검찰이 보완수사 등을 거쳐 기소하게 되면 형사재판이 진행될 수 있고 그러다가 그 사건이 다시 소년부로 송치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수사와 형사재판을 거치게 되면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만약 사건이 유죄 취지로 다시 소년부로 돌아오게 되는 경우 소년은 중한 처분을 면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사기관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높거나,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입증할 명확한 자료가 있거나, 핵심 증거가 허위·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거나, 자녀가 실제로 비행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충분한 경우가 아니라면, 소년보호사건에서는 비행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전략적으로 나을 수 있다. 특히 소년부 판사가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기로 결정한 뒤에는 그 결정은 번복될 수 없다. 즉 소년이 비행사실을 부인하여 소년부 판사가 검찰로 사건을 송치하기로 했는데 나중에 입장을 바꾸어 '다시 소년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호소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부모가 바꿔야 아이도 바뀐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녀의 생활과 교우관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녀가 누구와 어울리는지, 무엇을 보고 배우는지,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는지는 부모는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비행소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친구관계, 온라인 콘텐츠, 가정 내 갈등, 부모의 부재, 학교생활의 실패가 조금씩 쌓이면서 어느 순간 돌발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소년재판은 자녀의 인생에 낙인을 찍는 절차가 아니다. 오히려 자녀의 생활환경과 부모의 양육방식을 다시 점검할 수 있는 마지막 경고라고 볼 수도 있다. 비행은 이미 발생한 과거다. 그러나 자녀가 앞으로 어떤 환경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지금부터 바꿀 수 있다. 소년부 판사가 보고 싶은 것도 바로 그 부분이다. '이 아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고, 부모는 그 원인을 파악했으며, 다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실제로 환경을 바꾸고 있다'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소년재판에서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녀를 무조건 감싸는 것이 아니다. 자녀가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부모가 먼저 책임 있게 움직이는 것이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 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 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 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사설] 민노총 '연장근무' 반대 시사, 정부 속히 결단을

정부가 '메가특구 특별법'에 담길 노동규제 완화를 논의하자며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가운데 그동안 유보적이던 민주노총이 참여를 결정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참여 이유로 "노동 특례 확대와 노동권 후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공언했다.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노동 유연화가 시급한데도 정부가 신속한 추진 대신 대화를 내세우면서 사회적 대화가 시간 끌기용 명분 쌓기에 그쳐 자칫 골든타임을 허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지난 15일 제안한 '메가특구 사회적 대화'에는 재계에서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가, 노동계에서 한국노총·민주노총이 참여해 조만간 열릴 전망이다. 주요 의제는 고소득 관리자·연구개발자에게 주52시간 상한과 연장·야간·휴일 수당을 적용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소득 전문직 근로시간 규제 적용 제외)과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2년에서 근로자 합의 시 2년 더 늘리는 '기간제 2+2'다. 첨단산업 선점 경쟁은 이미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총력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쟁국들도 노동 유연성과 자금력을 앞세워 자국 첨단기업을 지원한다. 미국은 일정 직무·소득 요건을 갖춘 관리·전문직에 연장근로수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운영한다. 일본도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로 요건을 갖춘 고소득 전문직을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한다. 중국 역시 노동행정부처 승인을 받으면 근로시간을 주·월·분기·연 단위로 묶어 평균으로 관리하는 '종합계산공시제'를 통해 프로젝트별 탄력 운용을 허용한다. 우리 기업은 경쟁국 기업에 비해 이중·삼중으로 불리하다. 근로시간·고용 형태·인력 운용 전반에서 경직된 노동법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경영계 설명이다. 노동계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면서도 노동 유연화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노사정이 빠르게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메가특구 도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재계는 산업현장 혼선을 막으려면 정부가 노동특례에 더 강력한 추진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단 대신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사회적 대화를 앞세운 것이 오히려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의 경우에도 정부 지침이 나왔지만 신설 공장 인력 전환·배치가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여지가 남아 투자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정부는 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획일적인 주52시간제의 경직성을 깨고 미국·일본·중국의 사례처럼 업종 특성과 성과를 반영한 타협안 마련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는 판만 깔 것이 아니라 시급성을 반영해 속도감 있게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럼에도 대화가 겉돈다면 정부가 직접 결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경쟁의 골든타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설] 김승원 후보자 결국 사퇴, 검증 시스템 개선 따라야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9일 사퇴했다. 김 후보자는 임상시험 청탁 문제 등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기에 이른 것이다. 두 후보자의 부적합성에 대한 이유는 달랐지만 누구도 국민의 뜻과 눈높이에 어긋나고서는 장관직에 오를 수는 없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확인됐다. 대통령과 국회가 임명과 청문에 관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어떤 권력도 국민 여론을 뛰어넘거나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두 후보자 임명에 대한 반대 여론은 찬성보다 훨씬 높았다. 용 후보자는 의원과 장관 겸직의 적절성, 김 후보자는 불법적 청탁 의혹이 문제가 됐는데 각종 여론 조사를 통해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그런데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덮어놓고 두 후보자를 옹호하고 변호하기에 바빴다. 두 후보자의 문제점들이 거의 명확한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여당 의원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을 감싸는 데 몰두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은 조금도 보여주지 못하고 오직 자신들의 흠집을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더 큰 실망에 빠졌다. 특히 눈물까지 보이며 김 후보자 편을 든 여당 의원들은 볼썽사납기 그지없었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한국 정치와 정치인들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도덕적·법적 흠결이 거의 없는, 청렴한 인물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비단 이번 청문회만이 아니라 역대 정권의 청문회에서 낙마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라. 우리 사회의 권력층이 썩어 있다는 말밖에 더 할 말이 없다. 판사 출신인 김 후보자는 유흥업소 여성과 어울리면서 의원 신분을 이용, 행정기관인 식약처에 대놓고 청탁을 하지 않았나. 정책적 능력보다 도덕적 문제를 더 따지는 청문회의 문제점은 이번에도 드러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도덕성을 그냥 넘기기 어려운 것이 국민들의 인식이기도 하다. 법을 어기고 도덕 기준에서 벗어난 후보자의 행동을 그럴 수 있는 일쯤으로 치부하고 용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론과는 정반대로 "볼수록 잘한 인사"라고 한 여당 대표의 말은 천박한 우리 정치의 수준을 자인한 꼴이기도 하다. 후보자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고 감싸는 것도 모자라 의혹을 제기한 의원을 공격하는 데 힘을 쏟는 여당 의원들의 모습도 저급한 한국 정치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 보호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다. 결국은 화살이 자신들에게로 날아와 국민의 지지를 잃을 것임을 예상이나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자격미달의 후보를 걸러내지 못한 검증시스템이다. 특히 김 후보자의 청탁 의혹은 수사 대상까지 된 중한 사안인데도 무사통과했다. 김 후보자는 성추행 의혹과 추가 음주운전 의혹, 보좌진에 대한 상습적인 폭언 의혹이 드러났지만 검증에서 전혀 걸리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의 인사에 딴죽을 걸지 못해 대충 검증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검증시스템을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차제에 반드시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재지명되는 후보자 청문회는 도덕성은 크게 따질 것이 없어 정책능력 점검에 집중하는 청문회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