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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주가, 실적보단 심리 따라 움직여… 불확실성이 최대 적" [한미재무학회]

【 뉴욕=이병철 특파원】 2026년 코스피는 인공지능(AI) 반도체 특수에 힘입어 7월 초 사상 최고치(9385선)까지 치솟았다가 불과 3주 만에 약 30% 급락했다. 연중 변동성은 60%를 넘어 비트코인을 웃돌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지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운데 올해에만 서킷브레이커가 9차례 발동됐다. '거품 붕괴의 시작'과 '강세장 속 조정'이라는 진단이 맞서는 지금, 자산가격 거품의 지속성과 모호성(ambiguity)하의 자산가격 결정을 연구해 온 김화균 텍사스 A&M대 교수에게 시장 진단과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물었다. 인터뷰는 김규리 텍사스 A&M대 재무학 박사과정 연구자가 진행했다.―불확실성과 자산가격을 오래 연구해 왔고 최근 인공지능(AI)으로 연구를 넓혔다.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시카고 유학 시절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모형 안에서 정직하게 다루는 태도였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커스 교수에게서는 기대(expectation)가 가격을 움직인다는 관점을,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라스 핸슨 교수에게서는 경제주체가 자신의 모형 자체를 불신할 때, 즉 확률조차 부여하기 어려운 모호성 아래에서 의사결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배웠다. 루커스 교수의 정책 비판(Lucas critique)이 그 출발점이었다. 정책이 바뀌면 사람들의 기대도 함께 바뀌기 때문에 의도한 결과 대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따라온다. 재정·통화정책이 복잡해질수록 그 자체가 새로운 불확실성을 만들어낸다. 마침 박사과정 무렵 닷컴버블의 생성과 붕괴를 지켜보면서 표준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가격의 장기 이탈과 그것이 왜 쉽게 꺼지지 않는지가 평생의 질문이 됐다. '지속되는 거품(Persistent Bubbles)' 연구는 그 연장선이다. 생성형 AI에 주목한 계기도 같다. AI는 수익성의 분포 자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모호성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투자자들의 정보처리와 기대 형성 방식을 바꾸는 기술이다. 연구실 밖에서도 이 변화를 확인하고 싶어 학부에 생성형 AI 강의를 직접 개설했다. 이론과 강의실이 서로를 검증하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AI 거품론'과 '이번엔 다르다'는 주장이 맞선다. 경제학에서 거품은 어떻게 판단하나. ▲학술적으로 거품은 자산가격이 배당·이익 등 펀더멘털이 정당화하는 내재가치에서 지속적으로 괴리되는 현상이다. 문제는 내재가치 자체가 관측되지 않아 실시간 판별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거품이냐 아니냐'는 이분법보다 유용한 질문은 '가격이 어떤 시나리오를 선반영하고 있는가'이다. 지금 AI 장세는 2000년 닷컴버블과 달리 실적과 수출이라는 실체가 있다. 7월 들어 반도체 수출이 급증한 것이 그 증거다. 다만 가격이 그 실체의 '매우 낙관적인 경로'까지 미리 반영했다면 펀더멘털이 견조해도 기대가 재조정되는 순간 큰 폭의 급락이 나타날 수 있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분포 자체가 바뀌었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가격은 한동안 펀더멘털 아래로 내려가기도 한다. 제 연구의 핵심은 투자자들이 거품을 의심하면서도 '남들보다 먼저 나가면 된다'는 재매도 옵션 때문에 올라타고, 그 결과 거품이 오래 지속되다가 좁은 출구로 한꺼번에 몰릴 때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번 급락이 붕괴의 시작인지 조정인지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낙관적 기대와 레버리지가 함께 청산되는 국면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코스피가 고점에서 3주 만에 30% 급락했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이런 쏠림을 어떻게 보나. ▲두 종목이 지수의 절반을 넘는 구조에서는 개별 기업의 뉴스가 곧 시장 전체의 리스크가 된다. 분산이 작동하지 않으니 지수 변동성이 개별주 수준으로 올라가고,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이 오를 때는 쏠림을, 내릴 때는 낙폭을 기계적으로 증폭시킨다. 집중도 한도에 걸린 일부 외국인 펀드의 규정상 매도까지 겹치면 펀더멘털 악화 없이도 '과밀 포지션의 청산'만으로 급락이 나타날 수 있다. 최근 하락에는 이 요소가 상당해 보인다. SK하이닉스가 나스닥 상장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직후 급락한 것은 전형적인 'sell the news', 즉 호재가 실현되는 순간 기대가 소진되는 현상으로 가격에 낙관이 얼마나 선반영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미국 나스닥과의 동조화 심화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산업·종목 집중이 겹친 한국 시장은 같은 충격에도 진폭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변동성 자체보다 이 '구조'가 본질적 취약점이다. ―AI 수익성에 관세·긴축·지정학 위험까지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런 시장에서 투자자가 지켜야 할 원칙은. ▲불확실성은 모호성을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동전 던지기를 생각해 보자. 앞뒤가 각각 50%라는 것을 안다면 그것은 위험(risk)이다. 그런데 다음번에 동전을 쓸지 주사위를 쓸지 알 수 없다면 그것이 불확실성이다. 확률분포를 모른다기보다 게임의 규칙 자체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정책 불확실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 AI의 10년 뒤 수익성도 이 범주에 가깝다. 우리 연구(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2015)는 투자자들이 모호성을 싫어하며, 이것이 위험 프리미엄과 별도의 추가 보상 요구로 자산가격에 반영됨을 보였다. 모호성이 커지면 요구수익률이 높아지고 가격은 작은 뉴스에도 크게 출렁인다. 실험 연구(Management Science·2014)에서도 실제 사람들이 이런 선호대로 행동함을 확인했다. 여기서 나오는 실천 원칙은 세 가지다. 첫째,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특정 시나리오에 전 재산을 거는 집중 베팅을 피할 것. 분산은 모호성 시대의 가장 싼 보험이다. 둘째, 레버리지를 억제할 것. 모호성 국면의 급락은 예고 없이 오고, 빚은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셋째, 투자 시계를 길게 가져갈 것. 단기 가격은 기대의 재조정에 휘둘리지만 장기 수익은 결국 실현되는 펀더멘털을 따라간다. 예측력을 키우는 것보다 '틀려도 살아남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리고 금융당국은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규제에 나섰다. 현 정책 조합과 한국에 필요한 대응은. ▲자산가격 과열에 금리로 맞서는 '역풍 정책'은 학계에서 오래된 논쟁거리다. 금리는 경제 전체에 작용하는 무딘 도구여서 거품만 겨냥하기 어렵고 실물 비용이 크다. 다만 이번 한국은행의 인상은 물가와 금융안정 위험이 겹친 상황이므로 방향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과열의 진원지를 직접 겨냥하는 거시건전성 수단이 우선돼야 하며, 그 점에서 레버리지 ETF 신규 승인 중단은 올바른 표적 규제라고 본다. 가계 레버리지는 하락 국면에서 반대매매를 부르고 낙폭을 증폭시키는 가속장치이기 때문이다. 다만 규제가 해외 상품이나 장외 파생으로 수요를 밀어내는 풍선효과는 감시해야 한다. 서킷브레이커는 패닉의 속도를 늦출 뿐 방향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한계도 직시해야 한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국내 반도체에 국민 경제·세수·고용이 이미 노출된 만큼 금융자산에서라도 해외·이종자산 분산을 넓히는 것이 옳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중앙집중 구조를 봐야 한다. 중앙집중적 체제에서는 정책을 빠르게 밀어붙일 수 있지만 부작용이 나타나면 모두가 그 약을 한꺼번에 삼켜야 한다. 개별적으로 끝날 수 있었던 충격이 경제 전체의 충격으로 증폭되는 것이다. 미국은 주(州)별로 제도가 나뉘어 있어 이런 성격이 덜하다. 분권화가 지나치면 그 나름의 부작용이 있지만, 한국은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더 분산돼야 한다고 본다. 지금의 증시 쏠림도 같은 구조가 자본시장에서 드러난 것이다. 끝으로 800조원 규모의 산업정책은 국가 전략으로 존중하되 '산업에 대한 국가 베팅'과 '금융시스템의 안정'은 분리해 설계해야 한다. 산업 육성이 가계의 레버리지 투자까지 정당화하는 신호가 돼서는 안 된다. ―AI가 금융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강의실에서 실제로 목격한 변화는 무엇인가. ▲실제 수업에서 목격한 변화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보 수집·요약·초벌 분석 같은 작업의 생산성이 극적으로 올라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럴수록 '무엇을 물을 것인가'와 '결과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에서 학생 간 격차가 커진다는 것이다. AI가 대체하는 것은 정형화된 처리 업무이고 인간의 비교우위는 판단과 책임, 고객과의 신뢰 관계, 그리고 확률조차 부여하기 어려운 모호성하의 의사결정에 남는다. 공교롭게도 제가 평생 연구해 온 영역이 가장 늦게 자동화되는 영역인 셈이다. 한국의 학생과 주니어 인력에게는 두 가지를 권한다. 첫째, AI 도구를 능숙하게 쓰되 그 출력에 책임질 수 있는 경제학·재무학의 기본기를 함께 갖출 것. 둘째,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과 그것을 설득으로 바꾸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같이 훈련할 것. 다만 AI는 초안과 여러 버전을 빠르게 만들어 주지만 아직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시작은 AI가 하게 하되 끝은 사람이 내야 한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직접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결과를 검증하고 다시 질문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AI로만 해 온 세대는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건너뛸 수 있다는 점이다. 도구는 평준화되지만 질문과 판단은 평준화되지 않는다. ■ 김화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텍사스 A&M대 메이즈경영대학의 석좌교수이다. 불확실성·모호성하에서 자산가격 결정과 투자자·은행·정책당국·경영자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해 왔다. [email protected]

[기고] AI·디지털 생활격차, 연결 아닌 참여 문제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격차'라는 말은 오랫동안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의미했다. 초고속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이러한 기본적인 접속 격차는 상당 부분 완화됐다. 그렇다면 이제 디지털 격차는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디지털 격차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온라인 교육,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서비스가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오면서 디지털 격차의 모습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얼마를 쓰느냐보다 어디에 쓰느냐의 차이다. 저소득층의 정보통신 지출은 이동전화와 인터넷 같은 기본적인 '연결 비용'에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다. 반면 소득이 높아질수록 PC·태블릿 등 정보처리기기와 디지털 콘텐츠, 다양한 구독형 서비스 등에 대한 소비가 확대된다. 이는 앞으로의 디지털 격차 정책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AI 시대에 학생에게 인터넷 회선만 제공하면 교육격차가 해결될까. 고령층에게 스마트폰을 보급하는 것만으로 디지털 금융과 의료서비스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까. 저소득 가구가 인터넷에는 연결돼 있지만 고성능 PC와 AI 서비스, 클라우드, 교육 콘텐츠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면 이를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접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따라서 이제 정책의 시야도 '접속 보장'에서 '디지털 참여 보장'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통신복지 정책은 주로 통신요금 감면과 네트워크 접근성 확대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러한 정책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기본적인 네트워크 접속뿐 아니라 적정 수준의 디지털 기기 이용, 디지털 교육과 역량 강화, 필수적인 소프트웨어와 교육 콘텐츠, AI 서비스 활용, 디지털 공공서비스 이용 등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국민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느냐를 넘어 디지털 사회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느냐다. 정책의 성과를 바라보는 기준 역시 달라져야 한다. '가계통신비'라는 익숙한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이 실제로 부담하는 '디지털 생활비'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전환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국민에게 더 빠른 인터넷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누구나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내는 기회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이제 통신요금 중심의 정책을 넘어 국민의 '디지털 생활비'와 '디지털 참여 기회'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통신복지 정책을 어떻게 확장하고 보완할 것인지, 필요한 지원체계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할 필요가 있다. 결국 AI 시대의 디지털 격차를 줄인다는 것은 단순히 '연결할 수 있게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참여할 수 있게 하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기회를 함께 누릴 수 있게 하는 것'까지를 의미해야 한다. 이제 우리의 디지털 정책도 연결의 격차를 넘어 활용과 참여, 그리고 기회의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곽정호 호서대 빅데이터AI학부 교수

[기고] 남산 곤돌라 멈춘지 2년… 국토부 나서야

서울시가 추진하는 남산 곤돌라 사업은 2024년 착공했으나, 같은 해 10월 법원이 한국삭도공업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중단됐다. 이후 지난 17일 항소심에서도 서울시의 도시관리계획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입법 취지와 법체계, 사회적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판단이라는 점에서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도시자연공원구역을 도시계획시설공원으로 변경한 다른 지자체의 행정행위도 위법으로 볼 여지가 생겨 시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하다. 더군다나 소송으로 멈춰 선 공공사업을 정상화할 제도적 보완책마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공원녹지법 시행령 개정을 국토교통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했고, 국토부도 이에 공감해 2025년 7월 입법예고까지 마쳤다. 그러나 이후 후속 절차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최근 보도를 보면 입법예고부터 다시 실시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든다. 공공사업이 표류하는 동안 그 불편과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다. 서울시는 사업이 무산될 경우 매몰비용이 11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골든(GOLDEN)' 도시 구현이 지체되는 무형의 손실도 결코 작지 않다. 바로 남산을 찾는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느끼는 실망과 불만이다. 남산은 연간 방문객이 1200만명을 넘는 서울의 대표 랜드마크다. 하지만 정상부로 향하는 교통수단은 사실상 두 가지뿐이다. 특히 남산 케이블카는 2025년 이용객이 170만명을 돌파했지만, 48인승 캐빈 2대로만 운영돼 주말과 혼잡 시간에는 1~2시간 이상 대기하는 일이 허다하다. 유모차나 휠체어 이용객 등 교통약자에게는 그야말로 극한의 코스이며, 이는 곧 남산을 찾는 세계 각국의 방문객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공공 곤돌라를 추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는 남산 곤돌라 설치로 시간당 2000명을 수송해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관광객의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공익사업은 소송과 시행령 개정 지연이라는 사슬에 장기간 묶여 있다. 그 사이 민간 케이블카는 독점 덕에 막대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한국삭도공업은 1962년부터 60년 넘게 남산에서 경쟁 없이 케이블카를 운영해 왔다. 한국삭도공업의 매출액은 2024년에는 220억원, 2025년 213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최대 90억원에 달했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에 손을 놓고 있는 동안 기업은 독점적 경제 이익을 누리고, 새로운 공공 교통수단 도입은 기약이 없다. 시민은 선택권을 잃고 관광객은 시간을 허비하며 서울시는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하는 기형적 구조다. 이것이 과연 공정하고 정당한가. 국토부는 지금이라도 시행령 개정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관광은 곧 국가 경쟁력이며 남산은 서울의 얼굴이자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국토부는 헌법적 이동권과 국격에 걸맞은 관광 편의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서둘러 명확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해답은 단 하나, 즉각적인 시행령 개정으로 남산 곤돌라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공익의 공백과 시민의 고통은 더 깊어질 것이다. 배웅규 중앙대학교 교수

[차관칼럼] 관광의 성장을 지역의 성장으로

가파르다, 그러나 쏠려 있다, 망설일 겨를이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 흐르는 관광의 기류가 그렇다. 대한민국 관광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올해 8월까지 방한 관광객은 1505만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6% 증가했다. 외국인의 관광 분야 카드 소비액도 14조180억원으로 48.5% 늘었다. 202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외래 관광객 성장률은 4위였다. 그러나 관광객의 발길은 여전히 수도권에 쏠려 있다. 방한객 10명 중 8명이 수도권을 찾고, 10명 중 7명이 인천·김포공항으로 입국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역도 외국인에게는 생소한 곳이며, 매력적인 관광지여도 접근하기 쉽지 않다. 수도권 쏠림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다. 지금이 지역관광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골든타임이다. 오는 10월 29일부터 대통령 소속으로 격상되는 '국가관광전략회의'를 중심으로 범정부 역량을 결집할 것이다. 최우선 과제는 수도권 입국 구조를 과감히 지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방한객이 지방으로 입국해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소비해야 관광 성장의 과실이 지역에 닿을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지방공항 중심 관광권'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한다. 이달 10일 김해·대구·청주·양양·무안 등 지방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5대 관광권을 선정했다. 앞으로 관광권별 특성과 여건에 맞는 중장기계획을 마련해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기존 지역관광 정책과 세 가지 측면에서 차별화된다. 먼저, 초광역 프로젝트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프랑스의 프로방스처럼 세계적 관광지는 여러 지역을 하나의 여행지로 연결한다. 일본 역시 간사이공항을 관문으로 오사카·교토·나라를 잇는 광역관광을 발전시켜 왔다. 우리도 개별도시 중심 관광을 넘어 지방공항과 경쟁력 있는 여러 도시를 하나의 관광권으로 연결하여 지방 입국객과 체류일수를 함께 늘릴 계획이다. 다음으로, 완결형 프로젝트다. 그동안 따로 추진되던 홍보, 콘텐츠, 교통, 편의 등 정책 수단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다. 해외 홍보부터 지방 입국, 교통, 숙박과 체험까지 여행 전 과정을 지원한다. 2027년 정부 예산안 기준 5대 관광권에 약 1000억원을 투입해 방한객의 불편은 줄이고 지역만의 관광콘텐츠는 키운다. 마지막으로, 협력형 프로젝트다. 관광 병목은 어느 한 기관의 힘만으로 풀기 어렵다. 홍보, 교통, 콘텐츠, 제도와 규제가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비를 지원하고 개별 지방정부가 집행하는 방식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와 지방정부, 한국관광공사, 한국공항공사 등이 기획부터 실행까지 함께한다. 범부처가 힘을 모아 관광교통 개선, 콘텐츠 확충, 해외 홍보부터 제도 개선과 규제 특례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지방공항 중심 관광권'은 대한민국 지역관광의 새로운 성공모델을 만들기 위한 선도 프로젝트다. 성과가 검증된 모델은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여 대한민국의 관광성장지도를 다시 그려나간다. 목표도 분명하다. 2025년 5개 지방공항과 항만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 256만명을 2029년 500만명까지 확대한다. 지방입국을 새로운 관광 흐름으로 정착시키고, 수도권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관광권을 지역에 만들겠다. 관광의 성장을 지역의 성장으로 이어간다.김대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사설] 200조 넘는 미래기금, 지출 원칙부터 분명히 세우길

정부가 내년 신설할 미래대응기금의 규모가 당초 계획한 162조원을 넘어 200조원 이상으로 불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반도체 경기 호조 등에 힘입어 올해 초과세수가 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걷힌 것은 재정 운용에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일이다. 경기 호황기에 늘어난 세입의 일부를 미래 성장 분야에 투자하고 세수 감소기에 대비해 비축하겠다는 미래대응기금의 취지도 일리가 있다. 정부는 내년 45조4000억원을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분야에 투자하고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을 줄이는 데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기금 덩치가 커질수록 정부의 재량도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기획예산처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기금 설명자료에 따르면 내년 순수 지출사업 131건 가운데 119건이 각 부처 요구안 그대로 반영됐고, 신규·증액 사업까지 합치면 125건이 원안 이상으로 편성됐다. 감액된 사업은 6건에 그쳤다. 이것만으로 심사가 부실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200조원을 넘나드는 거대 기금이라면 일반 예산보다 오히려 더 엄격한 사업선정 기준과 성과검증을 적용하는 게 맞다. 기금 운용의 재량을 지나치게 넓히려는 것은 아닌지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 지방계정의 국고보조사업비를 최장 3년간 쓸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항목의 지출액도 일정 범위에서는 별도의 기금운용계획 변경안 없이 조정할 수 있게 할 방침이라고 한다. 설계나 부지 선정 등으로 지방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설명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예외가 많아질수록 국회가 심의한 당초 계획과 실제 집행 사이의 간극은 커질 수 있다. 기금이 정치권의 쌈짓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도 당연하다. 국회 심의 없이 변경할 수 있는 사업비의 범위와 요건은 엄격히 정하고 사유는 신속히 공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성과가 부진하면 재원을 자동회수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재원의 성격에 맞는 지출원칙도 철저해야 한다. 한번 시작하면 줄이기 어려운 상시 지출을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수로 떠받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에는 아동기본수당, 농어촌 기본소득 등 계속 지출될 가능성이 있는 사업과 산업 인프라·인재양성 등 미래투자 사업이 함께 들어 있다. 반도체 업황이 꺾여 세입이 줄어도 한번 도입된 사업은 쉽게 없애기 어렵다. 결국 다른 세금이나 국채로 메워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기금을 만들기 전에 지출원칙부터 분명히 세워야 한다. 일시적 초과세수는 AI·반도체 기반시설, 연구개발, 인재 육성 등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한시적 투자에 우선 사용하고, 지속적인 재정 부담을 낳는 사업은 안정적 세입 재원을 별도로 확보한 뒤 추진하는 게 원칙이어야 한다. 기금의 또 다른 목적인 재정 안정화가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초과세수 중 일정 부분을 국채 축소나 경기 하강기에 대비한 여유재원으로 남기는 기준도 필요하다. 200조원을 넘을 수 있는 기금은 단순한 여윳돈이 아니다. 호황기에 확보한 재정 여력을 미래 성장과 경기 하강기에 대비해 남겨두자는 것이 '재정 저수지'의 취지라면, 돈이 많이 들어왔다고 지출의 문턱까지 낮춰서는 안 된다. 세수가 잘 걷힐 때일수록 재정 운용은 더 신중해야 한다. 국회는 이번 미래대응기금법과 국가재정법 개정안 심사 과정에서 지출원칙과 기준부터 깐깐하게 정해야 한다.

[사설] 혼돈의 글로벌 경제, 정파보다 국가 이익 앞세워야

글로벌 경제 교역을 놓고 국가 간 손익계산이 치열하다. 그런 점에서 대미투자 확정을 앞둔 한미 정상 간 전격적인 회담은 의미가 크다. 유엔총회 참석 차 뉴욕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에는 그간 답보 상태였던 대미투자 협상의 진전이 있다. 오랜 교착 끝에 물꼬가 트인 장면이다. 전시작전권 전환과 원자력잠수함 논의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도 확인한 값진 이벤트다. 그러나 한미 양국 간 거래 관계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양국 간 투자조건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실제 투자처가 확정되고 자금이 집행되기까지, 그리고 향후 추가 투자 결정이 단행되는 과정에 수많은 험로가 기다리고 있다. 원전 건설이나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처럼 추가 협의가 필요한 과제들도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투자대상 선정의 기준이 되는 '상업적 합리성' 문제는 지속적으로 양국 간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용어 자체가 생소하고 모호한 탓에 언제든 미국 측이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자국 이익을 챙기려 들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협상의 텃밭은 일궜지만 앞으로 준비해야 할 일이 태산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령 대미투자 관련 구체적인 진행상황을 다루는 국회 비공개 보고 내용이 최근 불법 녹취돼 외부에 유포되는 일이 벌어진 바 있다. 양국 간 진행 중인 협상 내용이 외부에 노출되면 국가의 대외 협상력이 떨어지고 만다. 국익과 안보가 걸린 사안일수록 비밀유지의 원칙은 확실히 지켜져야 한다. 우리의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국가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의 세금이 걸려 있는 문제인 동시에 우리 기업의 투자와 직결된 사안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국회의 검증 기능과 정부의 설명 책임도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지금 글로벌 경제와 외교 안보는 정해진 답이 없는 혼돈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어제까지 사활을 건 무역전쟁을 벌이던 미국과 중국조차 이번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안정관계'를 재확인하며 관계 관리에 나섰다. 이미 올해 초 각각 300억달러 규모의 상호관세 인하와 무역위원회 가동에 합의한 양국은 후속 이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만·AI 같은 핵심 이익 앞에서는 팽팽한 신경전을 이어가면서도 실리가 걸린 부분에서는 실용적으로 접점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어제의 적대국들도 국익 앞에서는 속도조절을 할 줄 아는 법을 보여준다. 하루가 다르게 판도가 바뀌는 혼돈의 시대다. 특히 안보와 경제가 걸린 사안 앞에서는 국내 여론 결집이 우선이다. 진영 논리에 매몰돼 서로의 발목을 잡는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기업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직시해야 한다. 국익 앞에는 여도 야도 없다. 예측불허의 글로벌 질서 속에서 생존하는 길은 국내의 힘을 모아 경제안보의 자강력을 키우는 데 있다.

[기자수첩] K반도체, 中과 초격차 벌리려면

중국 메모리 이야기가 나오면 국내 반도체 업계의 반응은 항상 엇갈린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따라오고 있다"는 경계가 나오는 한편 "그래도 아직 한국과는 격차가 크다"는 자신감도 여전하다. 최근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을 종합하면 어느 한쪽이 틀린 말도 아니다. 중국은 빠르게 쫓아오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앞서 있다. 관건은 이 두 사실 사이에서 무엇을 읽어내느냐다. 대표적으로 차세대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단기간에 기술격차를 좁히기 어려운 시장이다. 제품 개발부터 안정적인 양산과 고객사 공급까지 오랜 시간 축적한 기술과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쌓아온 제조와 양산 경쟁력은 분명한 자산이다. 하지만 중국은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영역부터 조금씩 보폭을 넓히고 있다. 범용 D램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어느새 HBM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가볍게 볼 수 없다. 반도체 산업에서 후발주자의 가장 무서운 점은 현재의 격차보다 그 격차를 좁히는 속도에 있다. 결국 '아직 우리가 앞서 있다'는 진단은 현재에 대한 설명이지 미래에 대한 보증수표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투자 계획과 실제 실행 사이의 간극이다. 중국의 추격 속도가 빨라지고 미국의 현지 투자 압박까지 거세지는 상황에서, 계획된 반도체 투자를 제때 현실로 만드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 됐다. 기업이 기술과 시장을 보고 승부수를 던진다면 정부는 그 투자가 제때 실행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야 한다. 인프라와 인허가, 인재와 연구개발(R&D)처럼 기업 혼자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다. 국내 메모리사도 제품에서는 서로 경쟁하되 소재·부품·장비와 인재 등 함께 키워야 할 생태계에서는 협력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한국 반도체의 위기가 아니다. 인공지능(AI)발 메모리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은 가파르게 뛰고, 한국 메모리의 위상은 글로벌 정상급이다. 그러나 역대급 실적에도 시장과 주주들의 눈높이는 벌써 그 너머를 향한다. 이번 호황을 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중국의 추격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우위가 영원할 것처럼 낙관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주머니가 두둑하고 기술우위가 살아 있을 때 다음 승부에 투자하는 것과 추격을 허용한 뒤 따라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아직 앞서 있을 때 한발 더 나가야 한다. 지금의 격차를 지키는 것보다 다음 격차를 만들어내는 일이 더 중요한 이유다. [email protected]

[강남視角] 이제는 성장판 열 때

'상생과 공존' '소상공인 회복' '디지털 전환' '글로벌화'. 역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들을 상징했던 화두다. 박영선 전 장관은 '상생과 공존'을 취임 일성으로 내걸었고, 코로나19 한복판에서 취임한 권칠승 전 장관은 소상공인의 경영 안정과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벤처기업인 출신인 이영 전 장관은 디지털 전환에 힘을 줬고, 외교관 출신인 오영주 전 장관은 중소기업의 글로벌화를 강조했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화두도 달라졌다. 처한 상황도, 풀어야 할 숙제도 달랐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소영 장관이 제7대 중기부 장관에 취임했다. 1985년생, 올해 41세인 이 장관은 역대 중기부 장관 중 가장 젊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연소 국무위원 기록도 세웠다. 파격적인 발탁이다. 젊은 만큼 경험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젊은 감각이 만들어갈 변화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실제 이 장관이 취임하면서 꺼낸 말도 '관성'이었다. "필요하다면 틀을 깨고 부딪히며 역동적으로 일하겠다"며 "관성에 따르기보다 관성을 깨는 장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후보자 시절 공언한 '규제개혁부 장관'에 대한 약속까지 떠올리면 젊은 장관의 패기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우리 중소기업을 둘러싼 분위기도 예전과 다르다.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기에는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여주는 기업이 적지 않다.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 수출액은 640억달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6% 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수출 중소기업도 8만490개사로 가장 많았다. 특히 화장품이 눈에 띈다. 상반기에만 50억70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중소 화장품 브랜드들이 이제 세계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대기업이 아니어도 좋은 제품만 있으면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런 기업들이 화장품에만 나와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버티고 있는 반도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인공지능(AI), 로봇 등 미래 산업에서도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나와야 한다. 국내 기업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글로벌 선두기업과의 격차는 여전히 적지 않다. 완제품뿐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소재와 부품, 장비를 만드는 중소기업도 강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클 수 있는 길부터 열어줘야 한다. 정부 지원을 받아 어렵게 기술을 개발하고도 써주는 곳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연구실에 있던 기술이 실제 제품에 쓰이고, 매출이 되고, 수출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 중소기업 정책은 그동안 기업을 '키우는 것'보다 '돕는 것'에 익숙했다. 어려우면 정책자금을 주고, 기술개발과 해외 진출을 지원했다.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지원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지원을 받는 기업의 숫자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그 기업이 얼마나 컸는지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지원 이후다. 지원을 받은 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개발한 기술이 매출로 이어졌는지, 국내에 머물던 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나갔는지를 따져야 한다. 가능성이 확인된 기업이 더 크게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무엇인지도 찾아 없애야 한다. 중기부의 성적표도 달라져야 한다. 예산을 얼마나 썼는지, 몇 개 기업을 지원했는지만 따질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 몇 곳이 중견기업으로 컸는지,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기업이 얼마나 나왔는지를 봐야 한다. 역대 장관들이 내세웠던 상생과 공존, 디지털 전환, 글로벌화는 틀리지 않았다. 지금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중소기업의 성장판을 열어야 한다. 이 장관이 임기를 마칠 때 '많이 지원한 장관'보다 '강한 중소기업을 많이 만든 장관'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한다. [email protected]

[포럼] 전기 '요금' 대신 '가격'으로 접근해야

요금은 '서비스나 시설을 이용할 때 내는 돈'이고, 가격은 '물건을 살 때 내는 돈'이다. 요금은 정적이고 톱다운 방식으로 책정되지만,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맞춰 시장에서 그때그때 정해진다. 오늘날 우리는 전기 사용 대가를 전기가격이 아닌 전기요금이라고 부른다. 이게 맞는 표현일까? 전기가 공공서비스처럼 소비되던 시절에는 '요금'이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력 시장이 복잡해지고 기술혁신이 등장하면서 많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도매·소매 체계를 가격 중심으로 바꾸었다. 첫째 이유는 가격이 요금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격의 발견'으로 자원의 효율적 배분, 시장 정보의 집약·전달, 거래비용 감소, 위험 관리 및 예측, 혁신과 생산 유인이 가격의 장점이다. 수요와 공급이 급변하는 가격 체제에서는 시장 실패 위험도 있다. 2000년대 초 캘리포니아 전력위기와 2021년 텍사스 한파 때의 가격 폭등이 그 예다. 그럼에도 가격제가 보편화되는 둘째 이유는 재생에너지의 등장이다. 1990년대 전력시장 자유화의 동기는 효율성이었지만, 기후위기와 재생에너지 전환이 부각되면서 실시간 가격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전에는 정부가 발전원을 조합해 공급하고 소비자는 맞춰 쓰는 방식이 효율적이었다. 재생에너지는 지역 편재성, 간헐성, 변동성 때문에 실시간 수요 관리가 중요해지며 실시간 가격이 필요하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블록체인 같은 디지털 메가트렌드가 겹쳤다. 디지털 기술은 중앙집중식 원자력·화력 중심 전력시장을 분산형·지능형 시장으로 바꾸는 기반이 된다. 재생에너지와 디지털 메가트렌드의 만남은 요금 체제를 벗어나 가격 체제로 가야 할 핵심 요인이다. 잘 짜인 시스템에서는 공급·소비를 실시간 예측해 수요·공급 연결성이 올라가고, 가격 신호에 따라 소비자가 유동적으로 전기를 쓰게 된다. 이제 이 길을 피할 수 없다. 전기는 대체재가 없고 수입도 어려운 필수불가결한 상품인데도 국내 전기 판매 사업자는 오직 한전뿐이었다. 한전이 전기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해온 역할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 분산전원 활성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RE100(재생에너지 100%)은 물론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같은 대형 사업까지 지탱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 요금 체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전기요금 체제 덕분에 정부와 한전은 주택용·농사용 전기의 적자를 산업용 요금으로 보전해왔다. 이런 모순이 지속되지 못하고 균열이 가고 있다. 대형 산업체들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거래소와 직거래를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지역차등요금제를 두고 행정안전부는 '지방우대지수' 같은 정책 요금을 추가하려 한다. 이런 '요금' 명목하에 쌓여온 정치권의 가격 개입 결과가 한전의 200조원 부채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전기의 대가는 전기가격으로 해방시키고, 정책 지원은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한다. 전기가 가격으로 거래될 때 해묵은 비효율도 사라질 것이다. ■약력 △고철연구소장 겸 ESG 네트워크 대표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본부장 △기후에너지환경부 홍보 자문위원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fn광장] 시진핑의 경고

지난달 5일. 필자는 '왕이의 입에 주목하자'라는 본지의 기고문에서 그의 방문(8월 19~20일) 중요성을 우리의 핵추진잠수함 사업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가늠하는 기회로 꼽았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우회적인 지적이 있었다. 더 큰 복병은 5년 만에 방한한 그의 입에서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제언보다는 우리에게 위력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로 경고를 일관한 데 있다. 그런데 우리 언론과 전문가들은 잠잠했다. 거의 두 달이 지난 지금, 이를 복기한 이유는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중국의 경고가 시진핑의 전언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경각심이 필요하고 현실적인 대응이 필요해서이다. 우리에 대한 경고는 세 가지다. 첫째,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 그래서 눈치껏 하라는 것이다. 셋째,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변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경고는 우리의 핵추진잠수함 추진 사업뿐 아니라 '동맹의 현대화'를 조준했다. 한중 양국이 지역 평화와 발전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면서도 전제를 달았다. 즉 '한국이 자국의 근본적인 이익을 고려하여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그리고 상충하지 않게(竝行不悖) 대외 관계를 발전시키기를 희망'하는 게 전제이다. '병행불패'는 외교적 경고이다. '함께 가도(竝行) 서로 부딪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不悖)'는 뜻이다. 즉 입장, 정책, 가치관이 서로 다른 일이 병행되어도 서로 모순되거나 어긋나지 않고 잘 이루어져야 양립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현실적으로 한중 양국은 경제, 무역(자유무역협정), 민간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 '병행불패'한다. 그렇지 않은 영역은 군사·안보뿐이다. 이를 우리 핵잠수함 사업이나 동맹의 현대화에 대입하면 진정한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그의 두 번째 메시지가 명확해진다. 시진핑의 전언을 전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그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한중 양국 관계를 '정상 궤도로 되돌려 놨다'고 치하하는 모양새였다. 여기서 '올바른 결정'의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 시계열적으로 보면 1월 이 대통령의 방중 이후에나 중국이 만족할 법한 올바른 결정이 이어졌다. 우리 군이 2월에 예정된 한미일 연합 공중훈련에 불참한 사실과 6월에 대만 문제에 관한 우리의 입장 정리 등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언론과 국방부는 거부 사실 확인을 놓고 공방전을 펼쳤다, 명확한 사실은 우리의 불참이었음에도. 이는 사드 '3불' 중 한미일 3국의 군사관계 발전을 반대하는 중국에 만족스러운 처사이다. 6월 17일 우리 외교부가 한중수교 공동성명을 상기하며 대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르게 정리한 점에 중국 외교부와 언론은 고무됐다. 이재명 정부의 남은 기간에 다시 문제시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시진핑의 전언은 우리가 중국에 지속적인 우호정책을 펼치라고 위압했다. 그의 올바른 결정으로 한중관계의 전면 회복과 진전이 '이성적이고 실용적이며 적극적인 대중국 정책이 한국의 이익과 시대 발전의 흐름에 완전히 부합함'이 입증되었다고 치하(?)했다. 이어서 우리를 미국으로부터 격리시키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한국이 중국을 포용하면 미래를 포용하는 것이기에 중국과 함께해야 기회도 생긴다고 읍소했다. 그리고 한국이 중국에 지속적인 우호정책을 확고히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왕이는 한반도 상황에 대해 한국과 조선(북한) '두 개의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면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을 낙관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이 2024년 '적대적 두 국가론'을 소개한 후 중국이 공식 입장을 처음으로 밝힌 대목이다. 적대적 두 국가론의 관점에서 '두 개의 나라'로 남북을 호칭한 점과 이의 최종 목표인 영구적인 평화 공존에 동의를 밝혔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과거에 중국이 남북을 '두 나라(兩國)'로 묘사한 예로 반박한다. 이 때문에 적대적 두 국가론과 무관한 발언으로 주장한다. 중국어에서 '두 개의 나라(兩個國家)'와 '두 나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사실을 적시한 것이고, 후자는 보어의 성격이다. 또한 과거에 중국 고위급 인사들은 통상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지지하며, 평화통일 지지를 잊지 않았다. 영구적인 평화 공존의 지지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본질적인 변화를 보인 대목이다. 중국이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선호하고 통일을 반대하는 우리의 의구심이 사실로 드러났다. 내정간섭과 같은 중국의 지적을 반박하며 우리만의 대중외교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사설]중대재해 최대 15년, 세게 벌 준다고 사고 못 막아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에 대한 첫 양형기준안을 내놨다. 근로자가 숨진 중대산업재해 사건의 경우 기본 징역 1년6개월~4년을 권고하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정도가 무겁다고 판단되면 최대 징역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기준안에서 눈에 확 띄는 건 15년이란 형량이다. 양형위는 사건별로 죄질이 천차만별인 현실을 반영해 형량 범위를 폭넓게 설정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15년 양형기준은 과해도 한참 과하다. 양형기준이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지만, 이를 벗어나 선고하려면 판사가 그 이유를 판결문에 적어야 한다. 양형기준도 실제로는 구속력을 갖는다는 뜻이다. 특히 과한 양형기준은 사실상 경영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알다시피 산업재해는 대부분 고의범죄가 아니라 현장의 여러 변수가 겹쳐 발생하는 과실의 영역에 가깝다. 그런데도 살인이나 강력범죄에 준하는 수준의 형량을 명시한다면 국민이 바라보는 기업인에 대한 이미지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양형 부담은 곧장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까지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안전투자를 아무리 늘려도 예기치 못한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예측 불가능한 결과에 대해 경영 책임자가 십여년의 징역형을 각오해야 한다면 누가 선뜻 지휘봉을 잡겠는가. 대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금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더욱 심각하다. 중소기업 가업승계나 안전관리 인력난 등 현장의 어려움까지 감안하면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안전관리자 선임은 의무사항이다. 이런 자격증 보유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은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서 과한 양형은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양형기준을 과도하게 높게 결정하기 전에 근본적으로 따져볼 문제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시행 이후 이미 강도 높게 현장에 적용돼 왔다. 그런데도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처벌 수위가 높은 법을 만들어 현장에서 시행하면서 실효도 없이 기업들에만 엄청난 압박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법을 강화했는데도 현장의 안전지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법의 효력부터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원인을 법조문에서만 찾을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다른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다시 말해 정부와 사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왜 이렇게 강한 법을 시행하고도 사고가 줄지 않는지 그 원인을 정밀하게 진단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대법 양형위가 사고의 근본 원인을 찾는 것보다 형량을 대거 올려 결정하는 것은 순서상 맞지 않다. 형량만 올려 기업에 겁을 주는 방식으로는 사고예방이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처벌 수위를 높이면 저절로 안전이 확보될 것이란 발상은 전형적인 처벌 만능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양형기준안은 앞으로 공청회와 관계기관 의견조회 과정에서 충분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와 처벌의 실효성을 두루 따져야 한다. 처벌을 무겁게 한다고 해서 현장의 위험요인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형량을 높인다고 사고가 예방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점을 충분히 반영해 합리적인 양형기준을 다시 도출하길 기대한다.

[사설]각박한 세태 속에 '부캉이'에 열광하는 우리

'부캉이'를 보려고 부산 북항에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자 전재수 부산시장이 "상어가 나타나면서 북항이 핫플(핫플레이스)이 됐다. 예뻐 죽겠다. 수조원을 들여도 안되는 홍보"라고 말했다. 전 시장은 "이 기회에 부산 북항을 전 세계에 알리는,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약 3조원을 투입해 국제항만과 오페라하우스, 호텔 등을 건설하는 부산항 북항 재개발사업은 2008년 시작돼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지난 18일 몸길이 3~4m 되는 상어가 수로로 들어와 목격되면서 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상어가 사람을 해치는 내용의 영화 '죠스'가 떠올랐지만 시민들은 상어에게 '부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상어를 보려는 인파가 몰려들어 북항의 수로는 뜻밖의 핫플이 됐다. 흉측한 이빨을 가진 상어이지만 사람들은 도리어 귀엽게 여기는 것 같다. 수년 전 동물원을 뛰쳐나온 얼룩말이나 늑대에게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꼭 사랑스럽지도 않은 동물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이런 감정은 어디에서 나올까. 인간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동물에게서 보상받으려는 것은 아닐까. 물질은 풍족해졌지만 인정은 말라붙은 세상이다. 치열한 경쟁과 격화된 갈등 때문일 것이다. 경쟁이 심하면 아무래도 상대를 친구가 아닌 적으로 느끼게 된다. 대학 입학과 취업을 놓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경쟁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점점 개인주의화되고 서로 간의 정은 메말라 간다. 이념과 젠더 갈등은 같은 국민이면서 서로 적대시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세대 갈등은 더 그렇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청년들이 노인들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하던 모습은 쉽게 찾기 어려워졌다. 최근 한 노인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젊은 여성과 몸싸움을 벌인 일도 있었다. 누구 탓이라고 따질 것도 없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고, 누구에게나 잘못은 있다.각박한 세태에서 같은 인간에게 지친 인간이 동물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언제나 변함이 없고 본능대로 움직일 뿐인 동물이다. 자식은 낳지 않아도 반려동물 인구는 늘어간다. 자식 이상으로 개나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살던 곳을 벗어나 길을 잃은 동물들에게까지 열광하는 것이다. 나쁜 현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한 관심은 인간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징표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따뜻한 마음이 남아 있고 같은 인간끼리도 다시 사랑하고 공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무서운 상어에게 보여준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면 좋겠다. 증오와 공격, 비난은 가능하면 잊어버리고 사랑과 양보, 칭찬을 언제라도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곁에는 살가운 말 한마디를 기다리는 이웃들이 있다. 상어는 곧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한가위를 맞아 잊고 있던 그들에게 잠시라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보자.

[테헤란로] 구조조정을 許하라

진보 정권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현재 2030은 돌연변이다. 젊은 세대가 진보적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어서다. 이는 금융산업적 함의를 반영하지 못한 시각이다. 버블이 지속될수록 미래세대가 먹을 파이가 줄어든다. 지출을 아끼고 구조조정하자는 말을 단순히 '우경화'됐다는 말로 받아치는 것은 한참 잘못 읽었다. 국민성장펀드, 금융지주의 상생금융의 초저금리 대출로 만들어진 버블은 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지방 소재 A기업은 상생금융이라는 명목으로 2% 수준의 대출로 여신을 바꿨다. 은행은 상생금융 실적을 위해 기준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역마진을 감수한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 투자금 유치도 상생금융에 해당하면 순조롭다. 한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는 이 상황에서는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기 어렵다고 보고 '개점휴업' 상태에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 미루어지면서 한국 금융권의 부실채권(NPL) 규모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과 금융기관들은 여전히 미지근한 대응만 이어가고 있다. 이는 극히 위험한 신호다. 최근 서울회생법원에서 홈플러스가 회생계획안을 인가받은 날에도 일각에선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기업들이 본질적인 경쟁력 개선을 외면하고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에만 의존하면서, 좀비기업들이 시장에 떠다니고 있다. 이들이 시장에 남아있는 한 신용경색 현상은 피할 수 없다. 건전한 기업까지 자금난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미 시장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유동성마저 마를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되기도 했다. 튤립 버블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은 한 송이의 튤립 구근이 주택 한 채의 값까지 오를 것이라고 믿었다. 닷컴 버블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만 하면 성공한다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기업 실적과 무관하게 '.com' 도메인만으로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았다. 벤처기업들은 사업 수익성 따위는 무시하고 IPO만 노렸다. 금융기관들은 앞다투어 투자했다. 그 결과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나스닥 지수는 78% 이상 하락했다. 수많은 기업이 파산했고, 투자자들은 재산을 잃었다. 구조조정에 부정적인 '버블'을 걷어내고,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email protected]

[이동규의 언프레임] 최고의 스펙은 인성이다

인생이란 능력(才)과 태도(德)의 함수다. 특히 요즘엔 너도나도 스펙, 스펙 하지만 사람은 절대 무슨 통조림 같은 공산품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사회적 조건과 자격으로 사람을 분류하고, 정작 중요한 인성교육은 내팽개쳐 왔다. 따지고 보면 사람에게 스펙 운운하는 건 일종의 인격 모독이다. '아프니까 청춘'은 더욱 아니며, 아프면 환자일 뿐이다. 치열한 기업 경영프로세스에서 매우 중요한 채용(staffing)과 면접은 동전의 양면이다. 사람을 뽑는다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지식보다는 인품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직원을 뽑는다.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태도(attitude)는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 아무나 뽑지 마라(Hire carefully)"라는 대명제하에 미국을 대표하는 전설적 최고경영자(CEO)였던 사우스웨스트항공(SWA) 허브 켈러 회장을 비롯한 최상위 리더들이 늘 "돼지에게 노래를 가르치지 마라"라고 외쳤던 이유다. 테슬라 왕국의 일론 머스크는 수많은 인재를 채용하며 가장 크게 후회한 실수로 재능만 보고 인성을 보지 않은 점을 꼽았다고 한다. 우선 면접의 제1조는 '잘난 모습'보다 '바른 인성'이다. 실제로 대기업 면접 현장의 최빈출 단어도 '인성(人性)'이었다. "스펙이 좋으면 일도 잘한다"는 통설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최근에는 학벌 고정관념을 깬 구글처럼 리딩기업들을 중심으로 '스펙 다이어트'가 널리 퍼지고 있다. 한마디로 "스펙보다 스토리, 스토리보다 인성"이라는 거다. 한편 오늘날 우리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인성 파탄의 모습은 '인성보다 성공'을 외쳐온 부모와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외모지상주의와 물질숭배로 뒤범벅된 이 천박한 풍토에서 바른 인성을 기대하기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것이다. 하기야 인성의 끝판왕들이 정치판에 널려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뭘 보고 배웠겠는가. 그나마 최근 '학벌보다 인성'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은 다행이다. 무릇 바탕(質)이 좋아야 단계(品)를 거쳐 모양(格)이 나오는 법이다. '성(性)'이란 인간의 가장 근본 원료다. 그 바탕인 성질(性質)을 닦아야 성품(性品)이 길러지고, 비로소 인격(人格)이 바로 설 수 있다. 기자불립(企者不立)! 일찍이 노자는 인격적 충전 없이 앞서려는 건 발끝으로 오래 서 있으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서양에선 인성이 결핍된 사람을 '펑크난 타이어(flat tire)'에 비유한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인성이 뒤틀린 자는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향후 인공지능(AI)·로봇 시대에 감사, 배려, 공감 등 바른 인성은 인간에게 절대적 비교우위를 부여해 줄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인간이 AI라는 도구적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이다. "위대함은 지능이 아니라 인격에서 나옵니다." 과거 스탠퍼드대에서 행해진 연설에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강조한 말이다. 서울벤처대학원 초빙교수■약력 △경희대 교수 △기재부 공공기관 경영평가팀장 △민주평통 상임위원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고문

[fn광장] AI와 인간의 反사실적 사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이야기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한 번뿐인 삶의 무게와, 다양한 선택의 무한한 가능성 속 한 번의 삶은 수학적(1/무한대=0)으로는 한없이 가벼울 수 있다는 관점이 양립한다. 블레이크 크라우치의 SF소설 '리커전(Recursion)'에서는 타임머신 기술로 잘못된 선택을 번복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다른 이들의 삶에 죽은 기억을 남겨 정신이 붕괴되는 상상을 한다. 이렇게 인간은 선택한 길을 후회하고 선택하지 않은 길을 아쉬워한다. 이제 인공지능의 세상으로 가보자. 한 번뿐인 삶, 수많은 선택의 무게에 짓눌린 인간과 달리 시뮬레이션 세상에서 여러 번 살아볼 수 있는 인공지능은 실패가 두렵지 않다. 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모델은 매 순간의 결정에 대한 손실(Loss)을 계산하고, 학습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한다. 학습 사이클 속 인공지능에는 같은 상황으로 돌아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다만 이를 위한 계산 비용과 전기료는 오롯이 인간의 몫이다. 후회의 단맛을 본 인공지능은 더 나아가 '반사실적 추론'(Counterfactual inference)이라는 기술로 발전한다. 반사실적 추론은 현재의 결과를 바탕으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과거에 선택하지 않았던 행동의 결과를 추론하는 기법이다. 물론 실제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없지만, 월드 모델이라는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시뮬레이션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라면 반사실적 추론이 가능하다. A와 B 두 갈래길에서 A를 선택하고 결국 실패했다면, A의 삶을 후회하면서 동시에 비록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B선택으로 이어지는 다른 삶을 상상해 본다. 결과적으로 다음 생에서는 두 삶을 다 살아본 것처럼 행동한다. 반사실적 추론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다수의 인공지능 에이전트로 구성된 팀 전략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학교, 회사, 국가 등 집단 속에는 자기 일처럼 적극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숟가락만 얹는 얄미운 자(Free-rider)도 있다. 집단의 선택으로 얻은 성과와 손실을 어떻게 각 팀원에게 분배할 것인가-이를 시간적 자원분배 문제(Temporal credit assignment)라 하고, 알파고·무인자동차·로봇 등 행동전략을 배워야 하는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현재 집단이 얻은 보상을 각 개인의 과거 선택으로 분배할 수 있다면 이상적 보상 시스템이 완성된다. 경제논리에 충실한 자유민주주의와 공평함을 추구하는 공산주의가 겪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같이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인공지능 에이전트 사회에서는 "만약 특정 개인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집단의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반사실적 추론 기술이 활약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집단 전체 보상에서 개인의 반사실적 추론을 빼면 개인의 기여도가 남는다. 타인의 노동에 편승하는 자는 설령 다른 행동을 했더라도 팀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이므로 잘 걸러낼 수 있다. 미국의 행동과학자 존 칼훈의 '랫 시티'라는 실험에서는 쥐의 집단에게 일하지 않아도 풍족한 보상이 주어지는 환경을 만들었다. 집단에 기여하기 위해 협동하거나 보상을 추구하는 경쟁이 없는 상황 속 쥐들의 사회는 유토피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쥐들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하고 결국 그 집단은 살아남지 못한 디스토피아로 실험은 종료되었다. 쥐가 만약 반사실적 추론을 했다면 실험은 해피엔딩이라는 반사실적 생각을 해본다.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와 정리해 보면, 반사실적 추론은 매 선택에서 현실과 반사실이라는 기억의 분기점을 만들고 선택의 결과를 경험하는 시점에서 살아보지 않은 삶을 반추한다. 삶의 일회성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밀란 쿤데라 소설 속 인물의 대비는 이러한 사고에 익숙한 작가의 고민으로 볼 수도 있겠다. 다큐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의 감독은 조현병 누나를 둔 가족의 삶을 기록한 영상을 재생하며 관람객에게 선택의 분기점마다 반사실적 추론을 하게 만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 '후회막급'과 같은 사자성어는 어쩌면 반사실적 사고의 몸부림일지도 모르니 비아냥보다는 따뜻한 격려가 어떤가. 반사실적 세상 속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이상완 KAIST 신경과학·인공지능 융합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