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판, 상식은 사라지고 포퓰리즘과 보스만 남았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호텔 회의실에서 파이낸셜뉴스 연중 정치 기획시리즈 '우문정답' 자문위원으로 참가한 정장선 전 국회의원(오른쪽 첫번째), 최승노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오른쪽 두번째), 손교명 변호사(왼쪽 세번째) 등이 우리 정치의 문제점과 지향점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항간에 국회 권한이 너무 큰 것 아니냐는 의문이 수없이 제기되고 있다. 무슨 권한이 새로 생긴 것도 아닌데 국민, 기업, 행정부가 체감하는 국회의 힘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하고 글로벌 무대로 활동 영역이 확장되면서 입법부의 작은 결정 하나가 큰 파장을 일으키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우문현답이라는 고사에 빗대어 '우문정답'이라는 시쳇말도 생겨났다.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는 이 말은 정치가 모든 것을 막고 있어 정치에서 풀리지 않으면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는 말이다. 정치에 대한 힐난이자 푸념인 셈이다. 파이낸셜뉴스는 시중에 회자되는 '우문정답'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통해 국회의 현재 모습과 국민이 바로보는 시각, 변화의 싹을 담아보려 한다. 정치 문제를 얘기하지만 현실정치 현안이나 쟁점을 다루려는 게 아니다. 정치라는 근본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 한다. 도덕적 해이에 빠진 국회, 선거제도.예산안.국감 개혁 등이 주요 내용이다. 미국.일본.유럽의 정당정치에서 배울 점도 취재, 보도하고 정치 원로들로부터 우리 국회가 가야 할 길 역시 들어볼 예정이다. 특히 언론의 포퓰리즘을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학계, 법조계, 정치계에서 자문위원 6명을 위촉, 시리즈를 함께 진행하기로 하고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호텔 회의실에서 자문위원 좌담회를 열었다. <편집자주> 사회=조석장 정치경제부장 ―한국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정당이 공당이 아니라 사당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이익집단 민주주의' 폐해가 등장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표만 의식한 포퓰리즘과 결합해 합리적 국가의사결정을 못하게 하고 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일반적으로 정치가 성공한 나라는 경제가 발전하고 풍요로워진다. 한국의 현실은 '정치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정치실패의 원인은 포퓰리즘적인 정치 시스템에서 나온다고 본다. 정치인들은 사익이라고 할 수 있는 정권 창출을 통해 공적이익인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정치는 사적 이익인 정권 창출을 위해 대중적 인기를 얻는 수준에 멈춰 있다. 정치인 개개인의 자질의 문제가 아닌 정치 구조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정장선 전 국회의원=상식에 기반한 정치가 돼야 한다. 여의도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합의를 도출한다는 상식이 홀대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화.반독재 투쟁의 기간이 길다보니 합의도출이라는 기본이 어색한 것이다. 정치는 6 대 4나 55 대 45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여전히 한국의 정치에서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으로 보고 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오래전에 '3김 시대' 종식을 선언했지만 내용상으로는 패거리 정치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가치와 지향, 정책에 따라 정파가 생성되는 게 아니라 보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후진적 정치에 머물고 있다. ▲손교명 변호사=정치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은 짧은 시기에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쌓여왔다. 단순히 정치만 좋아지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전반적인 국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국민도 정치인들이 인기를 위해 포퓰리즘적인 정치를 펼칠 때 거기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만을 탓하기보다는 국민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 ▲정 전 의원=한국 정치에서 청와대의 변화가 중요하다. 청와대와 국회의 관계가 다른 나라와는 다른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이 강하다보니 취임하게 되면 여당을 정부를 뒷받침하는 정도로 여긴다. 이러다보니 여야와의 충돌이 심해진다. 청와대가 국회를 보는 시각부터 교정돼야 한다. 기본적으로 정치문제는 국회에서 푼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정치가 회복될 수 있도록 대통령도 여당에 권한을 주고 국회에서 여야가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습성화해야 한다. ―국회 입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최 사무총장=입법부의 기능이 좀 더 건강하고 효율화돼야 한다. 현재와 같이 정파 다툼에 내몰린 수뇌부 중심에서 사안별로 바꿔야 한다. 가령 안건에 대해 투표를 할 때도 국회의원들이 안건을 알고 투표하는지 의심스럽다. 국회는 356일 열린 상황에서 안건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논의가 없다보니 수십건의 안건이 한꺼번에 처리되는 구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의원입법이 강화되는 시기다. 의원 입법이 단기적으로 인기를 얻는 방향으로 가게 되면 남발되거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의원입법에 대한 평가 및 규제, 감시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 전 의원=국회의 핵심은 입법권이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은 정부가 입법을 주도하다보니 국회는 종속적인 모습이었다. 현재 국회의 입법권이 강화되는 모습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국회 심의과정은 상임위제도로 돼 있어 국회의원 개개인은 법에 대해 잘 모른다. 상임위에서 하루 정도 논의하고 법안소위로 넘어오면 대부분이 통과되는 구조여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임위를 강화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사무총장=대통령제하에서 행정부 수반과 입법권력을 동시에 선출하는데 국민들이 국회에 위임한 입법권한이 비민주적 정당운영으로 훼손되고 있다. 국감도 집권세력은 수비수 역할을, 야권은 공격수 역할을 하는데 정파만을 위한 국감으로 전락한 결과다. ―국회의원 특권과 고비용 정치, 파당정치 등의 문제에 대한 대책은. ▲정 전 의원=상식으로 돌아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 우선 대통령부터 반성과 노력을 해야 한다. 어느 나라나 국회의원에 대해 특권을 준다. 핵심은 싸움 등으로 저효율 정치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국회의원 특권이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커졌다는 점이다. 우선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집단의 정치.조직의 논리를 떠나서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본다. ▲손 변호사=국회의원 특권은 대부분 국회의원의 직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국회의원이 존경받는 사람으로 위상을 확립하지 못한 데 있다. ▲정 전 의원=결국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어떻게 충원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국회의 문제는 특정계층이 너무 많이 포진했다는 점이다. 어느 당에는 검찰 출신이, 어느 당에는 운동권 출신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어 이들이 국회를 움직이고 있다. 여야가 모두 시대를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을 충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박 이사장=국회는 권한은 큰데 능력이 낮다. 그러나 권한을 줄이는 방법보다는 국회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시급하다. 특권은 가져도 좋으니 국가전략이나 바로 세워주고 국가경영을 제대로 해주기 바란다. ▲김경종 변호사=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권한에 비해 임기 내에는 책임을 물을 방법이 적다. 국민의 대변자로서 의정활동을 하라고 많은 권한을 준 것이지만 주어진 권한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기 중에 출석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불필요한 외유나 개인 활동에 국가의 세금을 낭비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잘못된 권한 행사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논란 거센 국회 선진화법에 대한 생각은. ▲최 사무총장=선진화법은 인기를 위해서 통과됐지만 보편적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을 지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 선진화법은 합의를 문서화한 것이다. ▲정 전 의원=한국 정치에 선진화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는 반드시 통과시키려 하고 야당에서는 반대하는 경우 언제 날치기할지 모르니 상임위 자체가 열리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선진화법은 날치기를 할 수 있는 직권상정을 못하게 막은 것이다. 직권상정을 막아 상임위에서 심의하고 논의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적어도 몸싸움하는 모습이 이제는 없어지지 않았나. ―정치는 협상이라는데 대결의 장이 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거칠게 다투는 모습이 자주 나타났다. ▲최 사무총장=한국 정치에서 거칠게 싸우는 것이 인기를 담보하고 당내 입지를 강화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이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다툼의 정도에 대해 아직은 용인하고 있다. 국민들이 품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거칠게 싸우는 국회의원들을 뽑아주지 말아야 한다. 방송에 나와 막말 하는 것이 다음 선거에 효과가 있으니 그런 행동이 반복되는 것이다. ▲손 변호사=제도적으로는 국회윤리위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원끼리 하면 결국에는 자기 식구 감싸기 식이 된다. 이 때문에 외부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박 이사장=지역주의와 결합돼 있는 양당제, 이것을 강화하는 소선거구제가 승자독식의 정치, 양극화의 정치를 조장한다. 제도를 중대선거구제와 다당제로 바꾸면 덜 대결적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 사무총장=대화와 타협의 정치라는 것은 주고받는 거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의 공적기능 소멸, 대화 실종, 사적 이해가 공공의 선을 무시하는 것이 문제다. ▲김 변호사=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대변자라는 생각이 있다면 경제·민생법안을 소홀히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민생법안에 대해서는 정쟁과 관계없이 처리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정치와 돈의 문제를 어떻게 보나. ▲정 전 의원=기본적으로 정치에서 돈을 써야 한다는 구조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돈이 들어갈 부분은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 국민의 협조가 필요하다. 최근 정치권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출판기념회의 경우 하지 않거나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 허용하려면 지금과 같은 편법을 허용하지 말고 정확하게 돈을 주고 책을 사도록 해야 한다. ▲손 변호사=현재 의원들의 소득 수준을 보면 1억원 조금 넘는다. 국회의원도 입법활동뿐 아니라 생활도 하고 대외활동도 해야 하기 때문에 돈은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비공식적으로 유입되는 돈은 양성화해야 한다. 특히 출판기념회의 경우 정치자금을 모은다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축재 수단화되고 있다. 출판기념회로 모인 돈이 개인의 사재가 된다면 제도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최 사무총장=정치에는 돈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까다롭게 정치자금법을 만들면 편법이나 불법을 부를 수밖에 없다. 지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까다롭게 만들지 말고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되 돈을 적게 써도 정치를 할 수 있도록 구조화해야 한다. 너무 까다로운 법은 신입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지 못하게 막는 진입장벽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사무총장=선출직의 첫 덕목은 청렴이다. 외국의 경우 정치와 검은돈의 문제는 무관용 원칙이 적용된다. 정책개발에 돈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나 검은돈은 별개인데 정치권에서 너무나 관대한 문화를 갖고 있다. 특별취재팀 이두영 부장 김기석 전용기 최경환 김학재 김미희 예병정 박소현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