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수년 전 국내 대학 초청강연에서 "농업이 진정한 미래산업"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MBA 대신 농업을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강연에서도 "금융의 시대는 끝났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농부가 돼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농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농산물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농산물 가격이 올라간다. 농부의 값어치도 함께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같은 미래예측은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농축산물을 팔아 소득을 1억원 이상 올린 농부가 3만6000여명이나 됐다. 이들은 나이가 30~40대로 젊고 유능하며 도전의식이 강하다.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에도 해박한 신지식인이다. 이들이 농사 짓는 방식도 과거와는 다르다. 첫째, 원격농업을 한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 먼 곳에서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작물을 재배한다. 둘째, 데이터농업을 한다. 온도·습도 등 재배환경과 생육상태, 생산량과 시장 상황 등에 관한 데이터를 자동으로 측정·수집·축적한다. 이를 토대로 최적의 출하 시기와 양을 결정한다. IBM은 AI 의사 '왓슨'을 개발했다. 그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 의사보다 더 정확한 진단과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 농업에서도 AI 농부가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 산업화 시대에 도시로 갔던 젊은이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농어촌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도 큰 변화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림어업 취업자 수가 2017년을 기점으로 감소에서 증가세로 바뀌었다. 지난 2년 동안에만 11만6000명(10월 기준)이나 늘었다. 농사 짓지는 않지만 농어촌으로 이사한 사람은 48만명이나 된다. 반면 같은 기간 제조업 취업자는 12만6000명이 줄었다. 과거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4차 산업혁명이 산업지도를 바꾸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농업은 제조업에 핵심산업의 자리를 넘겨주고 사양산업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농업이 IoT, 드론, AI 등의 신기술을 흡수하면서 다시 부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제조업은 쇠퇴하고, 농업이 핵심산업 자리를 되찾을 것으로 예견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짐 로저스도 그중 한 사람이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향후 10년간 가장 유망한 6개 투자분야 중 하나로 농업을 꼽았다. 농업은 더 이상 사양산업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기술과 자본을 흡수하면서 미래 성장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선 기술과 자본 유입을 막아 농업의 재부상을 방해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그 장본인이 농민단체라는 점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LG그룹은 얼마 전 새만금에 스마트팜을 조성하는 사업을 계획했다. 스마트팜은 정보통신기술(ICT)로 작물을 재배하는 최첨단 농법이다. 정부도 전북 김제시에 대규모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조성하는 사업을 지난해 초부터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LG그룹은 사업을 접었고, 정부는 2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농민단체 등이 반대해서다. 정부는 지난 10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더 이상 국내 농산물 시장에 보호장벽을 칠 수 없게 됐다. 이젠 자력으로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경지가 협소한 한국이 기존 방식으로는 미국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스마트팜을 하면 해볼 만하다. 농민단체들이 자본과 기술 유입을 막는 것은 농업 발전을 막는 일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2019-12-23 17:13:47물가가 오르면 다행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됐다. 11월 소비자물가가 그렇다. 통계청은 지난주 11월 소비자물가가 전년동기 대비 0.2% 올랐다고 발표했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0.2%는 사실상 올랐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미미한 수치다. 그럼에도 다행이란 말이 나온다. 이전 3개월간(8~10월) 마이너스권(-0.4~0%)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1970~198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물가가 가파르게 치솟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를 넘은 해가 비일비재했다. 정부가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을 짤 때마다 물가안정은 단골 메뉴였다. 특히 통화가치 안정이 사명인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이때의 물가안정은 물가상승률을 최대한 낮추는 것을 의미했다. 요즘에도 물가안정이 한은 통화정책의 최대 목표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물가안정의 속뜻은 달라졌다. 이제는 물가상승률을 최대한 높이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고물가가 경제안정을 위협했지만 지금은 저물가가 경제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협의 정도를 따지자면 저물가가 고물가보다 몇 배 더 위험하다. 경제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돼서 장기침체를 피할 수 없게 되는데 이를 디플레라고 한다. 디플레의 대표적 전조 증상 중 하나가 물가하락이다. 물가는 소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는 소비를 적극적으로 한다. 구입 시기를 늦출수록 값이 올라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가가 떨어질 때는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수중에 돈이 있어도 가급적이면 소비를 하려 하지 않는다. 구입 시기를 늦출수록 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런 물가하락 기대심리가 소비를 억제해 극심한 소비부진을 초래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소비감소→투자감소→고용감소→성장률 추락' 과정을 되풀이한다. 출구 없는 축소재생산으로 경제는 한없이 쪼그라들게 된다. 디플레를 대재앙에 비유하는 이유는 이런 특성 때문이다.그 전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 동안(1990년대초~2010년대초) 연평균 소비자물가가 0%대, GDP물가(GDP디플레이터)는 마이너스 1%대를 보였다. 지금 우리 경제가 딱 이런 모습이다. 지난 3·4분기에 소비자물가는 전년동기 대비 0.2% 올랐고, GDP물가는 마이너스 1.6%를 기록했다. 특히 GDP물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4·4분기부터 네 분기 연속 하락했으며, 3·4분기 하락폭은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대다. 이 정도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추세로 봐야 한다. 정부와 한은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경제가 디플레 단계는 아니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디플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다가와 있을 개연성이 높다.우리 경제가 디플레 진입 직전이거나 이미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S&P 관계자는 지난주 어느 세미나에서 내년 한국 경제의 핵심 리스크로 디플레를 꼽았다. 그러면서 "중앙은행이 금리인하 이외에 다른 정책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며 한은의 역할을 강조했다. 다른 정책수단이란 양적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한은이 내년에 디플레 파이터가 돼야 한다. 설혹 우리 경제가 디플레가 아니더라도 그로 인한 부작용은 대책 없이 디플레를 맞는 위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신중은 우유부단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2019-12-09 17:48:18한국의 인구시계에서 중요한 변곡점 두 개를 꼽는다면 2018년과 2028년이다. 2018년은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가 줄기 시작한 해다. 2028년은 통계청이 총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는 해다. 이에 해당하는 일본의 인구변곡점은 1995년과 2010년이었다. 일본은 1995년에 생산인구가, 2010년에는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1995~2010년 사이에 일본 경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앞으로 10년 한국 경제에 어떤 변화가 닥칠지,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미리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일본 경제는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미국으로부터 환율폭탄을 맞았다. 그러고도 한동안은 건재했다. 1990년에도 4.9%나 성장했다. 일본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전반이다. 거품붕괴와 함께 긴 저성장 터널에 진입했다. 연평균 성장률이 1%대에 머무는 저성장 시대가 10년 이상 계속됐다. 이 기간은 생산인구가 정점을 통과해 줄어들기 시작한 시기였다. 한국으로 치면 지금이다. 일본 경제는 이후에도 계속 침몰했다. 2005~2009년에는 연평균 성장률이 -0.3%를 기록하며 혹독한 마이너스 성장기에 들어갔다. 2010년 이후에도 플러스 성장을 회복하긴 했지만 저성장은 여전했다. 아베 집권 6년간(2013~2018) 연평균 성장률은 1.1%에 불과하다. 아베 정부가 마이너스 금리를 내세워 무차별적으로 돈을 찍어내고 있지만 일본 경제는 인구감소 태풍을 견뎌내지 못하고 있다. 인구감소는 그만큼 무서운 재앙이다. 한국 경제로 시선을 돌려보자. 올해 성장률이 1%대까지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1년간(2018년 4·4분기~2019년 3·4분기) 0%를 기록했다. 지난 9월에는 마이너스(-0.4%)까지 떨어졌다. 한국 경제는 생산인구 감소가 시작됐던 1995년 전후의 일본 경제와 닮아 있다. 아직 디플레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본형 저성장·저물가 터널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부터는 생산인구 감소라는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앞으로 총인구 감소(2028년)까지 9년밖에 남지 않았다. 재앙을 향한 질주를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해법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는 시간당 평균 33달러(2016년 기준)의 가치를 창출한다. 이는 미국의 52%, 독일의 55%, 일본의 79% 수준이다. 35개 회원국 중 27위에 머물고 있다. 이런 속에서 한국 경제가 세계 11위까지 성장한 것은 기적이다. 기적은 낮은 생산성을 장시간 노동으로 메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더 이상은 기적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생산인구 감소와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앞으로 총노동시간(취업자수×노동시간의 총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낮은 생산성으로 짧은 시간 일하면 결과는 뻔하다. 저성장 아니면 마이너스 성장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뉴욕시립대 교수)은 "생산성이 전부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거의 전부"라고 말했다. 경제성장은 단기적으로는 거시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결국에는 생산성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성장을 계속하려면 노동의 저생산성 구조를 바꿔야 한다. 한국 경제의 노동개혁이 시급하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2019-11-25 17:44:17강신욱 통계청장은 통계청보다는 청와대가 적성에 맞는 듯하다. 그는 문재인정부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그런 열성이 보탬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통계청장이고, 그 자리는 그렇게 일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강 청장은 지난달 비정규직이 1년 만에 86만명이나 늘었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증가폭이 전년도(3만6000명)의 24배나 돼 충격을 주었다. 통계 내용보다 더 충격스러운 것은 그의 다음 발언이었다. "이 통계를 전년도와 비교하면 안된다"고 했다. 문재인정부 '비정규직 0' 정책에 누가 되는 보도가 나올까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통계청이 만든 통계를 통계청장이 부정하는 모습이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다음 날 유승민 의원(바른미래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통계로 국민을 속이려는 통계청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으로 경제전문가인 유 의원은 "통계청과 기재부가 명백한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했다. 강 청장은 조사방법이 달라져서 전년도와 비교하면 안된다고 하고, 유 의원은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한다. 나는 누구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국가통계를 신뢰성 논란에 휘말리게 한 것만으로도 통계청장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국가가 통계를 작성하는 목적은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분석을 통해 변화 추이를 파악하는 데 있다. 물론 표본이나 조사방법 등이 크게 달라지면 시계열 분석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통계 작성기관은 사전에 시계열 단절을 공표해야 한다. 또한 기존 방식과 새 방식으로 조사한 수치를 함께 제시해 비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강 청장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다. 시계열 단절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통계청은 지난해 5월 저소득층 소득이 큰 폭으로 줄어든 가계소득 통계를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문재인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저소득층 소득을 늘려주려고 최저임금을 많이 올렸는데도 결과는 반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강 청장이 나섰다. 표본을 수정해 저소득층 소득이 좋아지도록 통계를 고쳐 청와대에 냈다. 며칠 후 문재인 대통령은 이 통계를 보고 "최저임금은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다. 그때는 이미 곳곳에서 최저임금 과속인상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새 통계는 대통령의 눈을 가려 정책조정 시기를 놓치게 했다. 통계법은 통계청의 동의나 협의 없이 다른 기준을 적용해 통계를 작성·변경·공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실장이었던 그가 왜 통계청이 만든 공식 통계를 무단으로 변조하는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새 통계는 석달 뒤 그를 통계청장으로 발탁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통계왜곡 논란이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경기정점 판단을 뚜렷한 이유 없이 장기간 유보하거나 소득분배지표 등을 고칠 때마다 의혹의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통계는 현실을 들여다보는 눈이다. 눈이 바르지 않으면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고, 올바른 정책도 펼 수 없다. 통계청장은 있는 듯 없는 듯 일하는 것이 정상이다. 강 청장만큼 자주 언론에 이름이 등장한 통계청장은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통계인은 좋은 통계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된다. 오로지 정확한 통계를 생산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통계청장 임기제 도입이 시급하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2019-11-11 17:11:00더불어민주당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2건의 2019년 경제 종합성적표를 받는다. 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이다. 둘 다 전망이 어둡다. 한국은행은 지난 1월말 전년도(2018년) 경제성장률이 2.7%라고 발표했다. 국민적 기대치인 3% 성장을 달성하지 못해서 아쉬운 결과였다. 하지만 세계 1, 2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이 정도면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내년 1월말에는 2019년 경제성장률이 발표된다. 현재 예상으로는 성장률 2%대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성장률이 1%대로 낮아지면 문재인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게 된다. 내년 3월초에는 또 하나의 성적표가 나온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지표다. 지난해에는 3만1349달러를 기록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돌파는 선진국 자격증을 따는 것과 같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나라가 지구상에 6개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 독일, 미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에 이어 7번째로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들은 12년 만에 3만달러를 넘어선 쾌거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올해는 1인당 국민소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저성장·저물가·고환율(원화가치 하락)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려면 명목 성장률이 3%를 유지하고, 연평균 환율이 달러당 1130원 이하여야 한다. 현재로서는 둘 다 가능성이 희박하다. 환율 추이에 따라서는 최악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가 견실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 경제가 나빠진 것이 모두 다 문정부 책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내우외환이 겹친 결과다. 그중에도 외환이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외환이란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무역갈등이다. 이로 인해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의 경제가 동반침체하고 있다. 큰 시각에서 보면 한국의 불경기도 글로벌 불경기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내우도 작용했다. 친노동·반기업 정책이 경제의 숨통을 억눌렀다.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했던 정책이 지나쳐 기업을 옥죄는 결과를 낳았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과도한 인상, 주52시간제 등이 그 예다. 이들은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필요한 정책들이다. 그러나 기업의 수용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한꺼번에 밀어붙인 것이 화근이었다.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하고, 소비자도 지갑을 닫게 했다. 그 결과 성장률이 낮아지고, 일자리가 줄어 노동자들도 피해를 보는 지경이 됐다. 내년 초는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다. 더불어민주당은 참담한 경제성적표를 들고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경제는 표의 향방을 좌우하는 핵심적 요인이다. 이른바 경제실정론이 민주당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민주당은 1인당 국민소득 감소가 환율효과 때문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본들 유권자를 설득하기는 어렵다. 지금이라도 정책을 바꿔야 한다. 민주당에 가장 절실한 것은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대기업 현장 탐방에 나선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이것이 신산업에 대한 획기적 규제 완화로 이어져야 한다. 신산업을 키우면 길이 열린다. 그러나 기업을 억누르면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2019-10-28 17:16:53결국 고용재난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달 취업자 증가폭은 5000명으로 줄었다. 우리 경제가 1% 성장하면 일자리가 10만개 정도 생긴다. 올해 예상 성장률이 2.9%이므로 대략 29만개의 일자리가 생겨야 정상이다. 나머지 28만5000개의 일자리는 어디로 갔을까. 김동연 부총리가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방문하던 날 청와대는 심기가 불편했던 것 같다. 삼성전자는 당초 김 부총리 현장 방문을 계기로 180조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여기에 청와대가 제동을 걸었다. 김 부총리는 예정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기는 했지만 투자계획 발표는 며칠 뒤로 미뤄졌다. 청와대의 어떤 참모가 "정부가 재벌에 투자와 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해서다. 대기업 현장을 방문해 투자를 요청하는 김 부총리의 모습이 구걸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구걸은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요구를 할 때 쓰는 말이다. 경제를 책임진 경제팀장이 기업 총수들을 만나 기를 살려주면서 투자를 요청하는 것이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대기업 CEO들을 수시로 만나 협력을 요청한다. 그는 상습 구걸꾼, 즉 거지일까. 경제가 살아나고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 청년실업자들 고통을 덜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재벌에 투자를 요청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만큼 중요한 가치는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반재벌은 경제와 고용보다 우선하는 가치다. 재벌이 투자를 늘리면 일자리는 늘어나겠지만 그 결과로 재벌의 몸집이 불어나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안 늘어도 좋으니 재벌의 덩치가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청년실업자의 고통을 줄이는 것보다 재벌의 몸집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하다. 그래서 재벌 투자는 그다지 반갑지 않다. 굳이 하겠다면 모르되 해달라고 요청할 것까지는 없다. 그러니 대기업을 돌며 투자 늘리기 현장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김 부총리가 좋게 보일 리 없다. 문재인정부는 취임 초 스스로를 일자리 정부라 칭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일자리 체감온도로 보면 일자리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정부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은 집권하기 전과 집권 이후의 판단과 행동 기준이 달라야 한다. 집권하기 전에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면 된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이후에는 다르다. 국정운영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집권이란 국민의 생존과 행복을 책임진다는 뜻이다. 재벌기업에 대한 가치판단과 호불호의 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진 정치인이라면 개인적인 가치 추구보다는 취업 못한 청년들의 고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경기 악화에 정책 오류까지 겹쳤다.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까지 터져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힘을 합쳐도 난국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그런 마당에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쌍두마차 체제를 꾸린 것이 화근이었다. 혼선을 빚었던 정책노선이 늦게나마 혁신성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다행이다. 경제팀의 지휘체계도 이에 걸맞게 일원화 해야 한다. 김 부총리에게 전권을 주어 혁신성장에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자리 정부가 맞다면 일자리를 늘리는 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2018-08-20 17:15:32모 백화점이 지난달 서울 강남에 전시장을 빌려 초대형 출장 세일을 했다. 최고 80%나 정가보다 싸게 팔았다. 전통시장 경기가 죽을 쒀도 눈 깜짝 안하던 백화점이 체면을 구기고 떨이 판매를 했다. 정부는 앞으로 상당 기간은 계획된 것 말고는 발전소를 더 짓지 않기로 했다. 전력소비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2~3년 전만 해도 여름철과 겨울철만 되면 폭증하는 전력수요로 초비상이었다. 그러나 올해 전력당국의 모습은 여유롭다. 요즘 예전에 없던 일들이 생긴다. 불황 탓일까. 경기 사이클상의 순환적·주기적 현상이라면 차라리 걱정을 덜 해도 된다. 불황은 길어야 1~2년이면 끝난다. 진짜 걱정되는 것은 이런 모습들이 추세적 현상일 가능성이다. 국내외 유수 기관들이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예측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영국의 경제연구소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해 매우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오는 2019년까지 매년 2~3%대의 성장률을 보이고 2020년부터는 1%대로 추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전망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2030년부터 2060년까지 평균 성장률은 1%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의 1.4%보다 낮다. 세계경제도 저성장 국면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 추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앞으로 5년간 세계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정체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선진국의 잠재성장률이 2015~2020년 연평균 1.6%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전망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3%대의 성장을 불황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시각이 과연 옳은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며칠 전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에서 3%대 성장률이면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 다른 나라 중앙은행 총재들의 얘기를 전하는 형식이었다. 중앙아시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아세안+3(한국·중국·일본) 회의에 참석 중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비슷한 얘기를 했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3%가량이라고 한다. 지난해 성장률 3.3%와 올 1·4분기의 0.8%(전분기 대비)는 잠재성장률 범위 안에 있다. 실적치가 잠재성장률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은 현재의 기초체력에 비추어 적정 수준의 성장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지금은 불황이 아니며 앞으로 경제가 좋아지더라도 지금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요컨대 잠재성장률 3%에 동의한다면 성장의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4%대로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고성장 시대의 착각에 젖어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런 착각이 정부와 기업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어서다. 저성장 시대라고 말하면서 생각과 행동은 여전히 고성장 시대를 따라 하는 것은 부조화다. 우리 문제의 해법은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연간 3%대의 성장이 '뉴 노멀'이라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저성장 구조를 벗어나는 중장기 과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다. 지금은 어설픈 처방 때문에 소실되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 보인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2015-05-07 16:45:33'고비용 정치'가 또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부패 기업인이 남긴 메모 한 장이 나라의 미래가 걸린 개혁 과제들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월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추진해 30년 성장의 초석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노사정 대타협은 이미 실패로 끝났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처리시한이 임박했지만 진전이 없다. 금융과 교육 쪽은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조차 못했다. 국회는 거의 마비 상태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여야는 즉각 '정쟁 모드'에 돌입했다. 국정은 뒷전으로 밀쳐두고 거친 언사를 나누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의료법, 크라우드펀딩법 등 경제 살리기 관련 법안들이 언제 처리될지 기약이 없다. 성완종 사건은 우리 정치가 돈 문제에서 얼마나 취약한가를 잘 보여주었다. 부패 기업인의 말 몇 마디, 글 몇 줄에 국무총리가 날아갔다.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하는 거물급 정치인도 여럿이다. 야권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다. 문제는 매번 고비용의 정치에 휘말려 골병 드는 건 경제라는 사실이다. 중요한 시기에 정치자금 사고가 터져 경제의 맥을 끊어놓기 일쑤다. 고비용의 정치는 경영을 잘하는 기업보다 돈질을 잘하는 기업들을 키웠다. 그런 기업들은 결국 부실화해 국가경제에 짐덩어리가 됐다. 1조원이 넘는 빚을 남긴 경남기업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우리 경제는 여건이 좋지 않다. 간신히 성장률 3%대에 턱걸이하고 있지만 투자, 소비, 수출 등이 모두 비실비실하다. 청년 구직자들이 한 해 50만명이 쏟아지는데 정규직 일자리를 20만개밖에 공급해주지 못한다. 청년 30만이 실업자로 떠돌아야 한다. 며칠 전 치러진 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는 20만명이 몰렸다. 청년 일자리 부족은 경제가 제대로 성장을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국회는 마비 상태고 정부는 무주공산이나 다름 없다. 한국은 일본이 걸었던 '잃어버린 20년'의 궤적을 따라가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나온 지가 이미 한참 됐다. 경제 살리기에 국회와 정부가 있는 힘을 다 쏟아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도 정치가 경제를 도와주기보다는 훼방꾼 노릇만 한다. 성완종 사건은 부패 기업인이 권력에 접근해 검은 돈을 뿌리고 그것을 폭로한 사건이다. 지정 계좌로 운영되는 후원금과 국가보조금 이외에 5만원권 다발로 거래되는 정치자금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 일로 기업인들이 수시로 검찰에 불려다니고 있다. 이번 사건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기업들마저도 노심초사한다.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투자계획을 보류하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이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돈과 특혜를 주고받는 행위가 당사자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러나 고비용의 정치가 기업을 파멸로 이끌고 경제를 망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해선 안된다. 이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정치의 살얼음판 구조를 안정적인 구조로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려면 '고비용 정치'의 현실과 '저비용 정치'의 규범틀 사이의 괴리를 좁혀야 한다. 규범을 현실에 맞춰 고치자는 주장이 있다. 고비용의 정치를 인정하고 합법화하자는 얘기다. 그렇게 하면 부패만 더 키울 것이다. 현실을 규범틀에 맞춰가야 한다. 이번이 기회다. 어려운 과제지만 규범틀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 규범을 엄격히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 지뢰밭 정치가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곤 하는 수십년의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곳은 검찰과 법원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2015-04-23 17: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