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이란 원유 족쇄 푼 美…핵사찰은 '평행선'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국이 20여 년 만에 이란의 정상적인 원유 판매를 허용하며 대이란 제재 정책의 대전환에 나섰다. 이란은 향후 60일간 원유를 합법적으로 수출하고 달러 결제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경제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다만 미국과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사찰 범위와 동결자금 활용 방안을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으며 최종 핵 합의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스위스에서의 생산적인 회담의 일환으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롭고 개방된 통항과 IAEA 사찰단의 재입국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재무부는 이란산 원유의 생산·인도·판매를 허용하는 60일간의 임시 일반면허를 발급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의 가장 큰 변화는 이란산 원유를 미국을 포함한 국제시장에서 달러로 정상 거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란은 미국의 금융 제재로 달러 결제가 막히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노후 유조선과 위장 선박으로 구성된 이른바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을 이용해 원유를 우회적으로 수출해왔다.
미 재무부는 이번 제재 면제로 이란이 원유 대금을 달러로 직접 지급받고 해외 은행을 통해 판매 대금을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3월 발표된 한시적 제재 면제보다 한층 확대된 조치다. 당시에는 이미 해상에 있던 원유 판매만 허용됐을 뿐 달러 거래는 계속 금지됐다.
이번 조치는 원유 거래 허용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 재무부 제재 담당 고위관리 출신인 미아드 말레키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이번 면제에는 이란 중앙은행을 비롯한 일부 기관에 적용됐던 테러 관련 제재 완화도 포함됐다"며 "지난 20여 년간 유지돼 온 미국의 대이란 제재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협상 이후 후속 조치를 둘러싼 양측의 해석은 엇갈렸다. 우선 해외 동결자금 활용 방안을 놓고 미국은 해제되는 자금으로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행정명령 서명식 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추진 중인 조치 가운데 하나는 동결 해제된 자금을 식량 구매에 사용하는 것"이라며 "이 식량은 전적으로 미국 농민들로부터 구매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옥수수와 대두 등 이란이 필요로 하는 모든 품목을 미국 농민들로부터 구매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농민들이 매우 기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의 설명과는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압돌나세르 헤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현재 합의문에는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며 "동결자금을 필수품 구매에만 사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제재 대상이 아닌 다른 물품 구매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란은 미국과의 종전 협상 과정에서 해외 동결자산 가운데 120억달러를 우선 해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도 엑스를 통해 "이란산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 수출 제재가 면제되고 일부 동결자금이 해제됐으며 이란 재건·개발 프로젝트도 본격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IAEA 사찰단의 이란 복귀를 둘러싸고도 양측의 입장차는 분명했다. 미국은 IAEA 사찰단 복귀를 이번 협상의 핵심 성과로 내세웠지만 이란은 "새로운 약속은 없었다"며 이를 정면 반박했다. 미국은 핵 협상이 진전됐다고 평가했지만 이란은 기존 협력 범위를 재확인한 것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앞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스위스 뷔르겐슈톡 협상 이후 "이란이 IAEA 사찰단의 자국 복귀를 허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에스마일 바가에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국영 IRNA 통신을 통해 "이란은 핵안전조치협정에 따른 의무와 의회 결의, 최고국가안보회의 결정에 따라 IAEA와 협력할 뿐 새로운 약속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의회가 IAEA 협력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협력이 완전히 중단된 적은 없으며 현재도 부셰르 원전 등 가동 중인 핵시설은 사안별 판단을 거쳐 IAEA 사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IAEA 사찰 정상화를 핵 프로그램 검증의 첫 단계로 평가하고 있지만 이란은 기존 핵안전조치협정 범위를 넘어서는 추가 조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원유 제재 완화라는 '경제적 당근'은 제시됐지만 핵 사찰과 동결자금 활용을 둘러싼 이견은 여전해 최종 핵 합의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